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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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춤을 추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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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11월호>

『울 때와 웃을 때, 애도할 때와 춤출 때며』(전 3:4). 『탬버린과 춤으로 그를 찬양하며 현악기들과 오르간들로 그를 찬양하라』(시 150:4). 본 글에서는 "춤"을 다루려고 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성별된 그리스도인들이겠지만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숙독해 두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 세상 교육은 "리듬 학습"이다 뭐다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옷을 벗기려고 한다. 세상은 왜 그리스도인이 옷으로 몸을 가리고 단정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앞에서 제시한 구절들에서는 "춤출 때"가 있다는 것과 "춤을 춰야 하는 시기"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성도가 정말로 춤춰야 할 때가 언제인가? 누가복음 15:22-26을 보라. 방탕한 아들이 고향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위해 잔치를 베풀면서 "노래와 춤"으로 축하했다(25절). 즉 죄인이 구원받았을 때 춤을 추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죄인이 교회에 와서 구원받을 때마다 매번 그리스도인들이 춤추고 뛰놀며 발을 구르고 기뻐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분명 그리스도인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 죄인들은 술집이나 스포츠 경기장 등에서 사람들이 방방 뛰며 좋아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여긴다. 독자들 중에는 "나는 그런 죄인들의 행동이야말로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당신이 집 안에 TV를 들여놓고, 거실에 앉아서 스포츠 경기나 연속극 같은 것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내가 왈츠 같은 춤을 춰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 혹자는 나를 너무 극단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왈츠가 처음 나왔을 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왈츠는 마귀의 작품이라고 여겼다. "왈츠가 뭐가 나쁘냐?"라고 항변할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어떤 젊은 여자가 화려한 조명과 빛나는 샹들리에 아래서 깊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왈츠 같은 느린 춤을 멋있게 차려입은 한 남자와 추고 있다고 할 때, 과연 그 여자가 "수요기도회" 같은 것을 생각이나 하겠는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정직하고 혈기가 왕성한 남자라면, 남자들이 왜 춤을 추는 장소에 가려고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음악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여성을 팔로 안는 등의 신체 접촉을 즐기러 가는 것이다.

춤은 그 역사가 길다. 나도 1900년대의 춤과 오늘날의 춤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처음에는 춤의 종류가 폴란드의 "마르주카"나 영국의 "혼파이프" 혹은 독일의 "폴카" 같은 포크댄스가 전부였다. 이런 전통 춤들은 무해하게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국의 "스퀘어댄스" 같은 포크댄스를 근거로 모든 춤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주의할 점은, 왈츠처럼 포크댄스를 출 때도 남녀가 신체 접촉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춤"은 위험하다. 현대 여성들은 춤을 취미 정도로 여기고 있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죄들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그러나 여자가 춤을 출 때 취하는 자세와 몸짓을 음악과 관계없이 바라보면, 그것이 사실상 음행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마약 없이 살 수 없는 마약중독자들처럼 춤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특히 여자들이 그러한데, 미국의 십 대 청소년들 중에는 춤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겠다는 이들도 있다. 춤을 출 때 경험하는 신체 접촉과 육감적인 흥분을 느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섹스의 전 단계이다. 그래서 춤은 위험하다. 춤의 본질은 "섹스"에 있다. "봄 축제," "고교졸업무도회," 프랑스의 "코티용" 같은 궁정 무용 등이 뭐가 문제냐고 따지려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무도회에서 남녀를 분리시켜 서로 다른 장소에서 춤추라고 한다면 과연 춤추러 올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동성연애자들은 올 것이다!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목적은 결코 리듬을 배우거나 운동하려고 하는 데 있지 않은 것이다.

① 우선 춤을 추면 악한 사귐을 갖게 되어 있다. 보호자가 함께 가도 소용없다. 나는 춤곡을 만든 가수들과 작곡자들을 알고 있는데, 그중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춤을 추는 장소에는 구원을 받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무언가 조금이라도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춤추는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당신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당신은 그곳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거나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따라서 당신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며, 오히려 그들이 당신을 죄로 물들여 놓게 된다.

나는 춤을 무해한 줄로만 알았다가 결국 춤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하는 십 대 소녀들의 고백을 많이 들었다. 그중 한 가지 사례만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사실 저는 낯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과 춤을 추면 묘한 감정이 생겨나요. 옛날 춤들보다는 현대에 들어와서 생겨난 춤들이 더욱더 그런 감정을 부추겼는데 왈츠만은 예외였어요.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당연히 어떤 난잡한 짓이라도 하게 돼요. 그런데 저를 가장 많이 흥분시켰던 춤은 오히려 부드럽고 꿈결 같은 왈츠였어요." 그렇다! 처음에는 빠른 곡으로 흥분하게 하고, 그다음에는 느리고 매혹적인 춤을 추게 하면서 어색한 감정을 잠재워 버리는 것이다. 결국 그런 식으로 서로 몸을 비벼 대는 젊은 남녀들이 무슨 짓을 하겠는가? 그래서 춤은 항상 육신적인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교회들이 너무도 타락해서 "춤"을 주일 오전예배의 일부로 채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그런 일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이곳 펜사콜라에서는 소위 "은사주의 브라운스빌의 부흥 운동"이 있었는데, 당시 여자들은 예배당에서 벨리댄스를 추면서 남자들이 초청에 응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사실 그런 짓은 페니키아의 바알 숭배자들, 영국의 드루이드족, 인도의 힌두교도들 등이 했던 짓이다. 즉 불경건하고 타락한 죄인들이 자기들의 우상 신들을 섬길 때 그런 춤을 추었던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오용한 것인데, 성경에서 처음으로 "춤"이 언급된 상황을 보면, 당시 미리암과 이스라엘 여인들은 하나님께서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신 것에 대해 노래하며 춤을 췄었다(출 15:20,21).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이 경우에 있어서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춤을 추지 않았고, 또한 남자들을 유혹하려는 의도도 없었으며 옷도 다 갖춰 입은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런 점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② 다음으로 춤을 추면 악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추는 춤을 보면서 그것이 올바르고 건전한 생각을 갖게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당연히 그의 인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의 모습이 보고 듣는 대로 변하는 것이다.

오늘날 춤에 곁들여지는 음악은 악하고 육감적이다. 아프리카의 무당들이 사용했던 음악이 그 기원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음악이 혼의 언어라면, 재즈는 욕지거리에 해당한다." 정말이지 명언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재즈보다 더 심한 록 음악과 랩 음악이 있고, 그런 음악의 노랫말 안에는 더러운 말과 욕지거리들이 수두룩하게 들어가 있다. 만약 흑인들이 부르는 그런 노랫말을 내가 당신의 부인이나 딸에게 아무런 곡조 없이 말했다면, 당신은 내게 죽일 듯이 덤벼들 것이다. 춤을 추면 악한 생각만 하게 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춤을 추며 접촉하는데, 어찌 악한 생각들을 안 할 수 있겠는가? 1930년에 발행된 <의학평론>에는 이런 글이 실렸었다. "성적 흥분이 춤의 부산물로 일어난다는 점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대로부터 원시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목적으로 춤이 존재했고, 지금도 춤은 현대인들 가운데서 그와 동일한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춤추는 사람들의 신체가 맞닿는 춤들로는 스페인의 "탱고"와 쿠바의 "룸바"가 대표적이다. 이 두 춤은 모두 아프리카 흑인들이 만들었고 카톨릭 국가들에서 기원했다. 두 춤을 보면 그 노골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미국인들은 이 두 춤으로부터 각기 나름대로 춤들을 발전시켰는데, 하나같이 동물 이름을 가진 춤들이다. "버니허그"(토끼), "그리즐리베어"(곰), "터키트롯"(칠면조), "폭스트롯"(여우) 등이 그렇다. 도대체 왜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이 이런 동물적인 짓들을 해야 한단 말인가?(레 18:23)

③ 또한 춤은 악한 생활을 하게 만든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과 교육자들은 십 대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발정한 개처럼 사는 것을 정상이라고 여긴다. 십 대들은 자기들이 우리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오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십 대들이라고 해서 올바로 살아야 하는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네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라.』(딤전 5:22)라고 명령하셨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권면이 아니라 명령이다!

언젠가 침례교회에 다니는 한 여성이 R.A. 토레이에게 "춤이 뭐가 잘못된 거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지금까지 20년간 설교해 왔지만, 춤추러 다니는 침례교도들 중에서 상대할 가치가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라고 대답했다. 춤에 잘못된 것이 없다면, 왜 M.R. 디한, 찰스 풀러, 하이먼 애플만, E.J. 다니엘즈, 리 로버슨, R.G. 리 등의 신실한 설교자들은 구원받은 이래로 춤을 춘 적이 없었던 것인가? 한 여자가 그리스도인 의사에게 밤새도록 춤을 추느라 발에 물집이 잡혔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의사는 이렇게 물었다. "아가씨, 혹시 하나님을 위해 발에 물집이 잡혀 본 적 있나요?" 춤추러 다니거나 육신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이 질문에 답해 보라! 당신은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 위를 누비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전도지를 나눠 주느라 발에 물집이 잡혀 본 적 있는가?

결과적으로 춤은 사망을 낳게 되어 있다. 성경이 『향락 속에 사는 여인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라.』(딤전 5:6)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춤추러 가는 것을 보거든, 그것은 마치 목 잘린 닭이 마지막으로 다리를 떨며 발작하는 것이라고 여겨도 좋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이미 영적으로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④ 마지막으로 춤은 도덕적인 타락을 가져온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매음굴 또는 변두리 술집에나 가야 아프리카 섹스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나 듣게 된다. 나도 험하게 살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현대 춤들은 옛날로 보면 스트립쇼에나 나올 법한 난잡한 짓들이다.

당신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죄 때문에 멸망하고 말 것이다. 물론 사람을 지옥에 가도록 만드는 유일한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이다(요 16:9). 그러나 당신이 담배, 술병, 마약 바늘, 춤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한다면, 바로 그 죄가 당신을 지옥으로 보내는 저주가 되는 것이다. 당장 그 죄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포기할 용의가 있다고 고백하기라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그분을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라! 물론 지금 주님께 나아와 구원받는다 하더라도 남은 생을 "죄의 잔재" 때문에 힘들게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한다. 본 글의 제목은 "사망의 춤을 추는 자들"이다. 이는 성경이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라고 명시하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서도 무사안일하게 살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나는 구원받기 전에 댄스 밴드 드러머였기 때문에 온갖 쓰레기 같은 장소에 연주하러 다녔었다. 어떤 곳은 담배 연기와 더러운 먼지가 너무 자욱했던 나머지, 그곳에서 연주했던 음악가들은 30세가 되기도 전에 폐결핵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펜사콜라에도 "뉴워링톤로드"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일주일에 한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었다. 죄인들이 술 먹고 떠들며 놀다가 맥주병을 던지고 칼이나 총을 꺼내 서로 싸웠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기 절정에 있는 가수들도 그런 더러운 곳들을 전전하다가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이다.

옛날에 행크 윌리엄스라는 유명한 가수가 있었다. 그는 완전한 정신병자에 신경질적인 패배자였는데 세상은 그를 훌륭한 음악가로 평가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걸어 다니는 약국"이었다. 주머니에 빨갛고 파란 온갖 종류의 알약들을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가끔씩 유명한 가수들이 어울리지 않게 찬송가나 영적인 노래들을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역시 『빛을 보았네』라는 찬송을 불렀던 적이 있다. 한번은 행크가 콘서트 때문에 한 대학생을 운전기사로 고용한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이 운전을 하다가 백미러로 행크의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울적해 보였다. 그래서 기운을 좀 내라는 의미에서 그가 불렀던 찬송 『빛을 보았네』를 불러 주었다. 하지만 행크는 이를 꽉 깨물더니 "빛은 없다고! 빛은 없단 말이야!"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는 영적 어둠 속에서 죽어 갔던 것이다.

사람들이 추는 춤은 "사망의 춤"인데, 그것이 예수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고, 구원받은 사람의 경우에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쓸모없고 열매 없는 자가 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중독적이고 치명적인 죄로부터 돌이키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 8:13).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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