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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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혼에게 냉수와 같은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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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7월호>

『먼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은 목마른 혼에게 냉수 같으니라』(잠 25:25). 먼 나라에서 오는 나쁜 소식은 멸망을 의미하지만(사 13:5; 46:11, 렘 4:16), 좋은 소식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처럼 시원하다. 성도라면 누구나 "좋은 소식"을 복음으로 알고 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종교 사기꾼들이 전파하는 "나쁜 소식"도 많다. 즉 의롭게 살고, 계명들을 지키며, 성사들을 수행하고, 침례를 받으며, "황금률"을 지키고, 열심히 기도하며, 십일조를 하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에 다니고, 회개하고 죄들을 자백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부활하신 사실 그 자체이다(고전 15:3,4). 만약 누구든지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고전 15:1, 엡 2:8)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전 15:2). 뿐만 아니라 자신이 구원받은 것도 알 수 있다(요일 5:13). 앞선 본문의 "좋은 소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적용해 보면, 복음이 냉수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주님께서 목마른 죄인들에게 "와서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라."라고 두 번이나 초청하셨다(계 21:6; 22:17). 요한복음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라고 두 번이나 초청하셨다(요 7:37; 4:14).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 너희 목마른 자들은 누구든지 물들로 나아오라.』(사 55:1)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복음은 물과 같다.

첫째로, 물은 강력하다. 만약 홍수, 태풍, 쓰나미로 일어난 거대한 파도를 본 적이 있다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노아의 시대에 일어난 대홍수는 집채만 한 바위들을 수십 혹은 수백 킬로미터까지 옮겨 버렸는데, 이런 것을 "미아석"이라고 부른다. 창세기 6,7장의 내용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과학자들은 그 바위들을 옮긴 것이 홍수가 아니라 빙하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홍수로 인한 물은 거대한 미아석들을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실제로 쓰나미는 2백 톤에서 심지어 1천 톤의 미아석도 옮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라고 말씀한다. 나는 종신형을 살아야 하는 죄수들, 즉 결코 감옥에서 나갈 수 없는 죄수들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아 감옥에서의 삶이 변해 버린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사도 바울에게 일어났던 일도 마찬가지다. 타소의 사울은 구원받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죽였으며,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 전에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기도 했다(행 26:10,11).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고꾸라지게 하셨고 설교자로 부르셨다(딤전 1:12,13).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둘째로, 물은 소생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나는 소싯적에 캔자스 주 토피카에 살았었는데, 여름에는 기온이 너무 높아서 창문을 비롯하여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 놓고 잠을 자야 했었다. 그래야 열사병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뜨거운 여름 날씨에 얼음같이 차가운 냉수 한 잔을 마시면 정말로 상쾌했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그런 즐거움을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어두워질 때까지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았고, 물 호스를 가지고 장난치며 놀다가 목이 마르면 그 호스에 입을 대고 마시곤 했다. 정말로 "소생한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싶다면 내가 했던 것처럼 차가운 물에 풍덩 뛰어들어 보라! 나는 사시사철 차가운 물에 뛰어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마치 220볼트의 전기가 몸에 흐르는 듯이 아주 짜릿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원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나사로로 하여금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자신의 혀를 시원하게 해 주기를 원했다(눅 16:24).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었기에, 이런 지옥의 끔찍함을 말씀하는 구절을 볼 때마다 지옥이 "비유적인" 장소였으면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의 "곡식과 독보리의 비유"에서 "이것은 이것이며, 저것은 저것이다."라고 비유를 풀어 설명해 주실 때에 "불"만큼은 어떤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마 13:37-40). 왜냐하면 "불"은 있는 그대로의 불이기 때문이다(마 13:42). 즉 지옥은 영원한 불 속에서 불타며 고통받는 장소인 것이다(계 14:10,11). 지옥의 불길에서 소생하고 싶다면 복음의 생수를 마셔야 한다. 그러나 그 생명수를 마시려면 지옥에 가서 마시려 하지 말고 바로 지금 마셔야 한다. 일단 지옥에 던져지고 나면 너무 늦다. 누가복음에서 지옥으로 내려간 부자는 결코 단 한 방울의 물도 얻지 못했다. 생각해 보라. 우리의 죄들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두 번이나 물을 요구하셨으나 얻지 못하셨다(요 4,19장). 이처럼 죄인들은 한 잔의 물조차 예수님께 드리지 않았는데도, 생명수의 값없는 선물을 거절함으로써 지옥에 간 죄인들에게 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물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셋째로, 사람들은 물을 당연시한다. 즉 물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이다. 물은 색깔도 맛도 냄새도 없으나, 목마를 때 물보다 더 갈증을 잘 해소시켜 주는 것도 없다. 모세(출 24:18), 엘리야(왕상 19:8),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마 4:2), 사람은 음식 없이도 40일 이상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황에서 물 없이는 일주일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현대 미국인들은 복음의 가치를 잊은 채 살고 있다. 주위에 성경과 교회와 전도지가 넘쳐 나다 보니 너무 익숙해져서 소홀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는 사막에서 물을 소중히 여기듯이 복음을 귀하게 여긴다. 특히 중국의 경우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집을 판 사람도 있다. 구소련이 개방되었을 때, 어떤 군인이 그곳으로 들어간 선교사에게 다가와서 성경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 선교사는 성경을 나눠 주는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에게 나눠 줄 성경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의 성경이라도 아끼지 않고 줄 요량으로 내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비가 왔기에 선교사는 그 군인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속 장소로 나가 보았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 군인은 성경을 받기 원하는 또 다른 20명의 군인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처럼 그런 곳에서는 복음 자체가 무척 귀한 것이어서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

복음은 갈증을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물이다. 당신은 생명수의 "오아시스"를 발견했는가? 결코 목마름이 없는 샘물을 마셨는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이 생명수에 대해 알려 주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사막에서 발견한 맑고 신선한 물로 타들어 가는 갈증을 해소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했으면서도 다른 여행자들에게는 그 물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들은 그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사람처럼 처신하고 있다. 생명수가 넘쳐 나는 샘을 발견하고서도 다른 죄인들에게는 그 샘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복음은 『먼 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이다(잠 25:25). 『먼 땅』은 "하늘나라"이다. 마가복음 12장의 "포도원의 비유"와 누가복음 19장의 "므나의 비유"에서 집주인은 종들에게 무언가를 맡기고 『먼 나라』(막 12:1, 눅 19:12)로 가게 되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하늘로 가시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떠나실 때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바로 복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말이 물을 마시거나 말거나 "말을 물가로 데려와야" 한다. 물론 죄인들은 성경에서 말이 아니라 "들나귀"로 묘사된다(욥 11:12).

넷째로, 성경은 물이 "냉수," 곧 차갑다고 말씀한다. 『목마른 혼에게 냉수』(잠 25:25)와 같다고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뜨뜻미지근한 것을 싫어하신다. 우리가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기를 원하신다(계 3:15).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차가운" 물이다. 갈증이 정말로 심할 때는 청량음료가 아니라 오직 물만이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사관후보생 시절 나는 고생해 가면서 물의 소중함을 배웠다. 당시 교관들은 훈련받는 후보생들이 각자가 휴대하고 있는 수통 하나로 하루하루를 생활하게 했다. 즉 물 한 통으로 이도 닦고 식기도 씻고 마시기도 하고, 또한 행군이나 다른 훈련을 하는 데도 사용하게 했던 것이다. 당연히 물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는 행군을 하다가 너무 목이 마른 나머지 길옆 웅덩이에서 물을 핥아 먹는 개가 너무 부러워 욕을 해 대는 후보생들도 있었다. 한번은 행군을 하다가 블랙베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했는데, 모두 블랙베리 즙을 먹으려고 열매를 따고 있었다. 나도 개인 전투 장구를 벗어 놓고 블랙베리를 따고 있었는데, 그사이 함께 생활하던 "리치"라는 이름의 동료 후보생이 내 수통에 1/4 정도 남아 있던 물을 다 마셔 버렸다. 당시 구원받지 않았던 나는 어찌나 화가 났던지 그날 밤 경계 근무를 서면서 그의 목을 따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을 정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탄의 죽음의 행진"에서 일본군은 미군 포로들을 포로수용소까지 1백 킬로미터 이상 행군을 시키면서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어쩌다가 필리핀 물소들이 뒹구는 물웅덩이, 즉 이끼가 껴서 거의 초록색에 가까운 웅덩이로 달려들어 물을 마시려 하는 포로가 있으면, 일본군은 그런 미군을 비웃고 조롱했으며 때로는 죽이기까지 했다.

사람에게 공기 다음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이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주님께서는 생명의 호흡을 주셔서 물리적인 생명을 향유케 하셨다. 영적인 생명도 얻고 싶다면 반드시 그 생명수를 마셔야 한다. 나는 지금 종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좋은 소식이며 『목마른 혼에게 냉수』와 같다.

마지막으로, 물이 아무리 좋아도 받아 마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언젠가 밤에 잠을 자야 하는데 아들들 중 하나가 침대에 누운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물을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늦었으니 그냥 자거라."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아빠, 목이 말라요."라고 대꾸했다. "열 시잖아. 지금 물을 먹으면 새벽에 일어나서 또 화장실을 가야 돼." "그래도 물 한 컵만 주세요." "한 번만 더 말하면 아빠가 가서 혼내 준다!" 그랬더니 몇 분 정도 조용하던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빠, 혼내러 오실 때 물 한 컵만 갖다 주시면 안 돼요?" 그날 밤 나는 아들에게 물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원할 때 그것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는 로마서 10:9,10에 나와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당신이 직접 주님을 영접하고 믿어야 한다(요 1:12). 칼빈주의자들이 가르치듯이 하나님께서 당신이 영접하도록 억지로 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당신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실 때(요 6:44), 당신이 직접 당신의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러면 값없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값없는 생명수를 취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앞선 본문을 가지고 그림 설교를 할 때면 "두 가지 샘물"이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구약"인데, 구약에는 복음이 예언적으로 주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에서부터 "구속주"에 대한 약속을 주셨으니(창 3:15), 구약은 목마른 혼에게 냉수인 것이다. 다윗도 주님께서 "잔잔한 물가로" 자신을 인도하신다고 고백했다(시 23:2). 시편 1편에서도 의로운 사람을 "강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고 묘사한다. 또 하나의 샘은 "신약"인데, 신약에서는 그 복음이 성취되었다. 구주께서 오셔서 인간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신 것이다. 또한 성령께서 오셔서 죄인들을 책망하시며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주님께서는 이 복음을 죄인들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증인들을 보내신다. 이처럼 성경의 마지막 초청은 "와서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라."(계 22:17)이다. 이 생명수를 마시는 사람은 "말씀에 의한 물"로 씻기어 깨끗해진다(엡 5:26, 요 15:3).

지금까지 구원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자기 의와 종교의 황량한 사막을 방황하지 말라. 이 생명수의 샘으로 나아오라. 와서 흡족히 마시고 깨끗하게 되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을 값없이 주리라』(계 21:6). 이 생명수로 영생을 얻었다면, 다른 죄인들을 이 생명수로 초청하는 것도 잊지 말라. 『또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오라." 하더라. 듣는 자도 "오라." 말하게 하고, 또 목마른 자도 오게 하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할지어다』(계 22:1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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