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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의 전쟁에는 면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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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11월호>

『영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 영으로 머무르게 하는 사람이 없고 죽음의 날에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으며 그 전쟁에는 면제되는 사람도 없고, 악에게 넘겨진 자들을 악이 구해 내지도 못하리라』(전 8:8). 나는 이 구절에 대해 자주 곰곰이 생각해 보곤 했었다. 여기서 솔로몬은 결국 죽음이 찾아오면 더 오래 살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구절에 관한 한 예외가 되신다. 주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죽으신 것이 아니며(요 10:17,18), 친히 죽으실 준비가 되셨을 때 자신의 영을 내어놓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유일한 사람"이셨다(눅 23:46). 그러나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살려 두려 하신다면 당신은 결코 죽을 수 없고, 또한 데려가고자 하신다면 더 이상 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는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전쟁』으로 표현했다. 즉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죽음"과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전쟁에 투입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어떤 군인이라도 해외 파병을 나갔을 때 일정한 "점수"를 따면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에서는 미 국방부가 군인들을 전장에 더 오래 붙잡아 두려고 그 점수 기준을 높였고, 베트남전에서는 본국으로 귀환했다가도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싸워야 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미 해군 소속의 한 소령이 있었는데, 그는 복무 기간이 다 되었는데도 제대할 수가 없었다. 복무 기간이 다 만료되어 현 임무에서 물러나려 했을 때, 미 해군 측에서는 그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었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모든 군인은 제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 심지어 제대하는 날을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 놓은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멋모르고 군에 입대한 여군들은 막상 군 생활이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빨리 제대하려고 온갖 꾀를 다 부리기도 한다. 어떤 여군들은 함께 복무하는 남자 군인을 유혹하고 나서는 강간이나 성희롱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고 아예 임신하기도 한다. 어떤 군인들은 정신 이상으로 제대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정신이 이상해진 경우도 있지만 "연기"를 하는 자들도 더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맘대로 전역할 수 없는 전쟁이 있으니, 곧 "죽음과의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면제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전쟁에서 면제될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들이 나온다. 신명기 20:8에서 주님께서는 "겁에 질린 자들"은 다른 형제들의 마음을 똑같이 낙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패튼 장군은 "두려움은 병이다. 그 전염성이 확산되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군대를 전투에 투입하시기 전에 겁이 많은 자들을 미리 가려내신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과의 전쟁은 무섭다고 면제될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당신은 "정말이지 죽기 싫단 말이에요!"라고 울부짖을지 모른다. 심정이야 이해되지만 당신 역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선행"을 많이 하면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었던 바울도 죽었다. 스테판 역시 선한 사람이었지만 죽었다.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죽으셨었다! 그렇다면 왜 당신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반대로 "행실이 나쁘다"고 하여 전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군대에서는 악행을 너무 많이 저지른 사람을 받아주지 않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군 복무에 부적합한 자"로 취급된다. 그러나 죽음과의 전쟁은 당신의 행실이 선하든 악하든 반드시 싸워야 하는 불가피한 전쟁이다. 여기에는 "부적합한 자"로 판명되는 자가 있을 수 없다. "그 전쟁에는 면제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또한 "계급"이 높다고 해서 열외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높든지 죽음은 그런 지위를 개의치 않고 찾아온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는 것이다. 말단 이등병이든 전군을 통솔하는 오성 장군이든 봐주지 않는다. 백악관에 있는 대통령이든 길거리의 부랑자든 가리지 않는 것이다.

독일의 롬멜 장군은 훌륭한 군인이었지만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장군이었는지, 영국의 윈스턴 처칠까지도 적군인 롬멜의 용맹함과 지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롬멜은 북아프리카 전선을 종횡무진하면서 물이 떨어지고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싸웠다. 그는 아프리카의 "카세린 패스 전투"에서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미군을 참패하게 만들기도 했다(물론 최종적으로는 그 전투에서 패배했다). 롬멜 장군은 북아프리카에서 전투를 치른 이후 히틀러가 독일 군인들을 돕는 게 아니라 희생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음모에 연관되기도 했다. 당시 히틀러의 식탁 아래에 폭탄이 설치되었지만 히틀러는 죽지 않고 부상만 입었다고 한다. 롬멜이 그 일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장군 두 명이 그의 집에 있던 롬멜을 방문했다. 그들은 롬멜을 검정색 차량 뒷자리에 태우고는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했는데, 자살해서 아내와 자식들이 여생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연금을 받게 하고 동시에 자신의 명예를 지키든지, 아니면 군법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고 가족을 강제수용소로 가게 하든지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롬멜은 자살을 택했으니, 죽음이라는 전쟁에서 그 누구도 면제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어떤 "상"이나 "메달"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 전쟁에서 열외가 되는 것도 아니다. 군인으로서 무공 훈장이나 명예 훈장을 받는다 해도 이 전쟁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다. 아무리 용감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죽음을 따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무슨 유명한 클럽이나 단체의 회장 또는 임원이라는 이유로 죽음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그 역시 땅속에 눕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 어떤 이들은 "해외 파병"을 나간 적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자기를 피해 갈 것처럼 생각한다. 즉 어느 누구보다도 더 극심한 고생, 속앓이, 역경, 고난, 비극 등을 경험했기 때문에 불못에서의 둘째 사망을(계 20:14,15)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참전 용사들이 자주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그들이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소위 "성 베드로"를 만나 이렇게 말할 거라는 것이다. "저는 지상에서 이미 지옥을 충분히 맛보았으니까 하늘나라에 들여보내 주셔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싸우며 지옥 같은 고통을 이미 맛보았으니 곧바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심산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생각이 하나님께는 농담처럼 들린다.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은 지상에서도 지옥 같은 인생을 살다가 사후에도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죄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어떤 죄인이 지옥에 가고 안 가고는 정해진 "업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죄들을 위한 대가가 이미 지불되어 있음에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구원받기 전에 너무도 방탕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27살이 되기도 전에 이미 지옥에 갔어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한 목사님이 내게 지옥에 가지 않는 길을 보여 주셨고 나는 지체 없이 그 "길"을 선택했다(요 14:6).

한 번 지옥에 간 사람은 거기에서 절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큰 백보좌 심판을 받기 위해 잠시 나오긴 하겠지만 또다시 불못으로 던져져야만 한다. 당신이 죄인으로서 지옥에 가는 것은 그분의 거룩하심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결과이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즉 "영원토록" 불타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히 9:27). "그 전쟁에는 결코 면제되는 사람이 없다!" 단테의 <신곡>, "인페르노"(지옥) 편에는 지옥의 입구가 나오는데 그 위에 이런 글귀가 있다. "여기로 들어가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에 가서 잠시 불타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생각을 고쳐먹는 것이 좋다. 일단 지옥에 가게 되면 "희망"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다!

"정신 이상"으로 그 전쟁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플랑드르 전투"에서 "포탄 충격"으로 인해 전장에서 돌아온 많은 군인들이 정신 이상으로 전장에 다시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역이 허용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숙영지로 다시 돌아와서는 눈동자가 풀린 채 무표정으로 앉아 있곤 했다. 자신이 누구이며 자기가 입은 옷이 어떤 옷이고 어디를 가고 있었는지 등의 질문을 받으면 답변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의 전쟁에서는 정신 이상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 전쟁에는 면제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무 연수"가 죽음과의 전쟁에서 열외시켜 줄 수 없다. 미군에는 "해시 마크"라는 것이 있는데, 한 군인이 복무한 햇수를 보여 주는 마크이다. "해시 마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미군 식당에서 고기와 감자를 잘게 다져 섞어 만든 요리인 "해시"를 줄을 서서 먹은 햇수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의 경우 "짬밥"의 개념과 비슷함). 나도 어렸을 때는 아침 식사를 무척 맛있게 먹곤 했다. 그런데 군대에서 복무하고부터는 아침 식사에 대한 입맛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아들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야 아침 식사를 하는 정도가 되었다. 요즘에는 미군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내가 복무할 때만 해도 그나마 운이 좋아서 달걀 요리가 나온 날에는 제대로 익지 않은 것을 배식받았고, 베이컨은 바삭하게 익히지 않은 설익은 것이 제공되었으며, 토스트도 거의 다 타서 돌처럼 딱딱한 것을 먹었다. 한번은 노른자를 말려 빻은 가루인 분말계란으로 만든 요리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 달걀 껍질이 들어 있었다. 껍질이 들어갈 수 있는 요리가 아님에도 들어 있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일부러 넣었다는 뜻이 된다. 나는 그런 음식을 먹으며 군 생활을 했던 것이다.

나는 보병 출신의 참전 용사들을 좋아한다. 일전에 한 참전 용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미 육군에서 주는 훈장이라는 훈장은 모두 다 받은 군인이었다. 그가 그동안 참전했던 영웅담을 들려주었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끔찍한 일을 겪고서도 구원받지 않을 수 있지?"라고 의아해 했었다. 그는 결국 술을 죽어라고 마시다가 죽고 말았다. 정말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이 "죽음과의 전쟁"에 관한 고견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 줄 것이다. "이 문제를 규명하려고 수년 동안 애쓰며 연구한 결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곧 우리 모두를 위한 가장 과학적인 해결책은 우리 각자가 에녹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나의 이런 답변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에녹이 누군지도 모른다. 에녹은 성경에서 결코 죽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죽지 않을 유일한 사람이다. 하늘로 들림받았던 엘리야도 죽지 않았다(왕하 2장). 하지만 그는 앞으로 이 땅에 내려와서 죽게 될 것이다(계 11장). 사실 에녹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도 누리지 못한 특권을 누린 것이다. 누구든 "그 전쟁에서 면제"되기를 원한다면 에녹처럼 되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이 증거를 지녔느니라』(히 11:5). 말하자면 죽음을 피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것이다. 신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간증을 지니신 한 분이 등장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마 3:17). 당신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당신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하라!(마 17:5)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신뢰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마지막 전쟁에서 당신을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전쟁에서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을 신뢰한다면 그 순간부터 당신 안에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분이 사시게 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 11:25,26)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복된 소망이 있다. 즉 오늘 아침에 혹은 오늘 밤에 구주께서 오셔서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딛 2:13). 혹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죽어야 한다 해도 주님께서는 그 성도를 얼음장같이 차가운 죽음의 잠에서 깨우시어 그분과 영원히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살전 4:13-17).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친히 사망을 이기신 분이기 때문이다(고전 15:51-57). 따라서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모든 사람들은 "그 전쟁에서" 명예로운 전역을 하게 될 것이다.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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