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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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계명을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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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4월호>

몇 년에 한 번씩 필자는 “십계명”을 시리즈로 설교한다. 그 이유는 십계명 자체의 중요성 때문이다. 십계명은 모세가 아닌,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명령이다(출 31:18, 신 9:10). 십계명을 주신 목적은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롬 3:20). 또한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는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지도교사”이다(갈 3:24). 그래서 미국인들은 십계명이 공립학교 건물 내에 게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는 십계명이 하나님의 진정한 속성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이 미국인들이 숭배하기 원하는 신의 속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계명은 인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법칙들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십계명 중에서 제1계명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집트 땅, 종의 집에서 너를 데리고 나온 주 너의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 다른 어떤 신들도 있게 하지 말지니라』(출 20:1-3). 이 첫 번째 계명은 다른 “신들”이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신들은 시편 82편에 나와 있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신들”이라고 부르셨다(6절). 또한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신들의 하나님”으로 불리신다(신 10:17, 수 22:22, 시 136:2, 단 2:47; 11:36). “참 하나님”으로도 불리시는데(대하 15:3, 렘 10:10, 요 17:3, 살전 1:9, 요일 5:20), 이 말은 하나님께서 “신들”이라고 부르신 다른 신들은 하늘들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이다(렘 10:11).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결코 동급이 될 수 없으며 영원하지도 전지전능하지도 않은 존재들이다(사 44:6-8). 성경의 진리는 확고하다.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결코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 아니시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마 22:37,38).



그렇다면 이 계명을 주신 “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선 하나님은 “에피쿠로스학파”와 아무 관련이 없으시다. 즉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내일이면 죽으리라.”라는 식의 신이 아니신 것이다. 또한 툭하면 싸우기 좋아하는 “동성연애자들”의 신도 아니시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유일한 목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이 “원할 때” 행하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 많은 육신을 가지고 마음껏 즐기도록 소위 “긍정적인 명령”을 주시는 “쾌락주의자”가 아니시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사람들이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4)라고 말씀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쾌락을 즐기면서 살기를 원하시지 않으며, 주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기를 원하신다(레 11:44,45, 벧전 1:15,16).

또한 “범신론”이나 “만유 재신론”과 무관하시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동일하시지(범신론) 않으며, 그분께서 우주 만물 안에 계시거나 우주의 만물이 그분 안에 있는 것도(만유 재신론) 아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채우시는 분이고(렘 23:24),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한다(행 17:28). 그러나 그것은 “지리적으로” 그런 것이지 “영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붙들고 계시지 않는다면, 우주는 대규모의 폭발과 함께 버섯 모양의 원자구름을 일으키며 사라질 것이다(히 1:3, 골 1:17). 소위 “빅뱅”(우주의 대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벧후 3:10). 그러나 이러한 진리가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 안에도 영적으로 계신다는 뜻은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불결한 영이 거하는 전(殿)”일 뿐이다(엡 2:2, 요일 5:19). 넓은 의미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자손”(행 17:28)으로 부를 수 있고, 그들이 “사생아”(히 12:8)처럼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는 없다(요 8:44).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에, 주님께서도 그런 사람을 자녀로 인정하시지 않는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중성의 존재”도 아니시다. 필자는 어떤 신학이나 철학 관련 서적을 접할 때면, 가장 먼저 책의 “마지막 장”으로 가서 그 저자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곤 한다. 그러면서 그가 제기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책으로 무엇을 제시하는지 살펴본다. 책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장에 가서 자신이 그 책을 쓴 목적에 대해 정당화하기 마련인데, 만일 그가 문제의 해결책으로 어떤 “것”을 제시하고 있다면 그 책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도 좋다!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 어떤 “것”은 우리를 위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누구”이다. 옛말에도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를 알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성경은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라고 말씀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누구를 알고 있는가”에 우리 구원의 여부가 달려 있는 것이다. 종교와 성사들은 어떤 “것”에 해당한다. 이런 “것”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아무리 어떤 좋은 것이 있다 해도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나타나신 “인격체”(요 1:14)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하나님께서(요일 4:8)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인격체”이신 것이다.

또한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인본주의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 해서 우리가 그분의 계명들을 위반한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아주 가볍게 여기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 계명들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면밀하게 검토해 볼 문제이다. 십계명의 제1계명 하나만 점검해 보아도 금방 드러나기 마련인데, 당신은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이후로 당신이 행한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을 첫째로 두었는가?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그렇게 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했는가? 몇 분 혹은 한 시간, 아니 반나절 동안 그렇게 했는가? 전혀 쉬지 않고 그렇게 사랑했는가? “인본주의자”가 아니신 하나님께서 과연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알기 원한다면 시편 39:5; 62:9, 전도서 7:20, 이사야 64:6, 예레미야 17:9 등을 찾아서 읽어 보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신론자”도 아니시다. 미국은 “신들”의 수가 3억이 넘는 인도만큼이나 악한 나라이다. 『탐심은 우상 숭배』(골 3:5)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국 역시 거짓 신들로 넘쳐 나는 나라인 것이다. 이는 미국의 모든 경제 체제와 대중 매체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탐심을 조장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실제로 필요하지도 않은 쓰레기들을 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또한 할리우드의 신들, 대중 매체의 신들, 월스트리트의 신들도 섬기고 있다. 십 대 청소년들의 방에 들어가 보면, 그 아이들이 어떤 신들을 모셔 놓고 사는지 잘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신”으로 떠받드는 “자동차”를 세차하고 왁스칠해서 주일마다 강이나 해변으로 데리고 가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에는 갖가지 종류의 신들이 있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다신론자”가 아니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참 하나님” 대신에 무엇을 숭배하는가? 첫째로 “자기 자신”을 숭배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최고의 권위로 착각한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법칙”이기도 한데, “나 먼저, 당신은 그다음”인 것이다. 사탄도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꾸오니 정녕 사람이 자기 생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리이다』(욥 2:4). “나 먼저,” 이것은 일종의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돈”을 숭배한다. 그러나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딤전 6:10)이고,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마 6:24)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돈을 섬기든지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섹스”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미국은 “오후 6시”가 “섹스 어클락”(sex o’clock)이 되어 버렸다. 십 대 여자아이들은 자기들의 복부와 다리를 젊은 남자들에게 보여 주지 못해 안달이 나 있으며, 해변을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여자들보다 속옷 가게의 “마네킹”이 더 많은 옷을 걸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이들은 “권력”을 숭배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그들이 대표하는 지역이나 주(州) 또는 국가의 안녕이 아니라 주요 공직을 차지하여 가능한 한 오랫동안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있다. 출애굽 당시의 파라오는 이집트가 망해 가는 것(출 10:7)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권력을 유지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통제할 수 있기만을 원했다. 그는 첫아들을 잃고 나서도 이스라엘을 추격하다가 급기야 자기 목숨마저 잃고 말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신으로 삼는다. 미국의 「펜사콜라성경신학원」에는 구원받은 이후에 한때 신으로 섬겼던 “록 음악”을 던져 버렸다고 간증하는 상당수의 젊은 학생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기 배”를 신으로 섬기기도 한다(롬 16:18, 빌 3:19).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탐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복음전파자로 사역하다 보면 초청받은 지역 교회에서 자매들의 식사 대접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정말이지 너무 많아서 그 음식을 다 먹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복음전파자로 사역했을 당시 하루에 두 끼만 먹기로 결심을 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뚱뚱한 설교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육체의 힘,” 곧 “운동 경기”를 숭배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은 스포츠에 미친 나라이다. 스포츠 중계방송이 주말이나 주일 오후에만 있지 않으며, 심지어 일 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스포츠만 방영하는 방송국들도 있다. 또한 “지성”을 신으로 삼기도 한다. 그래서 “지성을 소홀히 여기는 자는 크게 낭비하는 자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교육 기관들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을 거부한 교육자들이야말로 지난 50년 동안 학생들의 지성을 낭비해 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나타나는 증거들이 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누구라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는 그분께 알려진 사람이라.』(고전 8:3)라고 말했다. 즉 누군가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런 사람을 알아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들 간의 사랑의 표현 방식”과 비교해 보면서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라.

①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처럼 당신은 하나님을 생각하는가? ②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에 관하여 말하기를 좋아한다. 당신은 주님에 관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있는가? ③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당신은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있는가? ④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대적들을 피하게 된다. 당신은 구주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증오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지는 않은가? 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친구들도 사랑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⑥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에게 선물을 준다. 당신은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드리고 있는가?(고후 9:7) ⑦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가 성공할 때 기뻐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행복해하는가? ⑧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잘못들을 묵과하기 마련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잘못을 범하시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당신이 오해하여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을 “용납”하고 넘어가는가? 이것은 신학적인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⑨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악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어떤 “끔찍한 일”을 보게 된다 할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중요한 목적이 있으시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셔서 그렇게 하셨을 것이라고 믿으며 주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 의사이자 예수님의 훌륭한 증인이었던 월터 윌슨 박사가 새해 전날 밤에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초대한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파티에 예수님을 모셔 가도 될까요?” 이에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파티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윌슨은 “그렇다면 저도 그 파티에 참석해 봤자 즐거워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파티에 가지 않았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쓴 시에는 “그대가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예수님도 모시고 가고 있는가?”라는 시구(詩句)가 있다. 그렇다! 당신이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가 절대로 가지 않는 곳에는 당신도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 앞에 다른 어떤 신들도 있게 하지 말지니라』(출 20:3).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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