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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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내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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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1월호>

『너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며... 네 이웃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지 말지니라.” 하시니라』(출 20:17).
『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주의하고, 탐심을 조심하라. 이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가 소유한 것의 풍부함에 있지 않음이라.”고 하시고』(눅 12:15).

십계명 중 마지막 계명은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이다. “탐내다”(covet)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것들을 열망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열망이나 원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바울도 “최상의 은사들”과 “예언하는 것”을 열망하라고 했다(고전 12:31; 14:39). 하지만 제10계명에서 말하는 “탐심”은 “비정상적인 욕구”와 관련이 있다. 자기의 소유가 아닌 어떤 다른 대상을 원하는 비정상적인 욕구를 가리킨다. 그래서 “탐심”은 “욕심”이나 “정욕”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탐심은 인간이 가장 자주 짓는 죄이다. 이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죄이기 때문이다. 다른 죄들은 그 행위가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제하게 되지만, 탐심은 그렇지 않다. 탐심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젊은 부자 관원을 만나셨을 때, 의도적으로 이웃과의 관계와 연관된 여섯 개의 계명 중 다섯 개만 언급하셨고 제10계명은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 관원은 나머지 계명들을 잘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주님께서는 그가 이 마지막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결국 그는 이 마지막 계명이 화두에 오르자 몹시 슬퍼하며 나가떨어지고 말았다(눅 18:23). 야고보는 “정욕,” 곧 탐심이 “싸움과 다툼의 원인”이라 했고(약 4:1),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딤전 6:10)라고 말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욕심 많은 자』(시 10:3)를 미워하신다. 탐심이라는 죄뿐만 아니라 그 죄를 짓는 죄인 자체도 미워하시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하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셔도 죄인은 사랑하신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은 틀렸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미워하시는 사람들이 있으시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롬 9:13). 왜 미워하셨는가? 에서가 자기 장자권을 팔아넘길 정도로 팥죽 한 그릇에 욕심냈기 때문이다(히 12:16, 창 25:29-34).


탐심은 여러 가지 죄의 목록에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7:21-23, 로마서 1:29-32, 고린도전서 5:10,11; 6:9,10, 에베소서 5:3-5, 골로새서 3:5 등이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탐심을 조심하라.』(눅 12:15)라고 명령하셨고, 바울 역시 『너희의 생활방식에 탐욕이 없도록 하고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히 13:5)라고 권면했다. 또한 지역 교회를 맡은 “감독”(목사, 장로)은 “탐욕스러우면” 안 된다(딤전 3:2-4). 탐심은 음행과 간음(출 20:17), 도둑질(수 7:21), 우상 숭배(골 3:5) 등의 원인이며, 오늘날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특히 초림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마음속에 가득 찬 탐욕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비웃기도 했다(눅 16:14).


탐심은 계속 소유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소유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는 속성이 있다. 탐심을 만족시키는 일은 마치 소금물을 마시면서 갈증이 해소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원하게 되고, 마침내 그 욕심은 그 당사자를 죽이고 만다(약 1:15). 나는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수중에 140억 달러나 있었으면서도 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돈을 더 벌어서 965억 달러까지 모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빌 게이츠보다 부자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원하는 돈을 다 가졌고 더는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한다!


탐심이 초래한 결과는 무엇인가? 유대인 대제사장들은 탐심으로 인해 로마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그들이 잠자는 사이에 제자들이 와서 몰래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고 거짓말을 하게 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주된 원인이 되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돈과 옷을 탐내다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갖게 되었다. 아칸은 여리코의 저주받은 물건을 탐내다가 그의 온 가족과 더불어 목숨을 잃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은 30개(2013년 기준, 324달러 60센트)를 탐내다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다윗은 다른 사람의 아내를 탐내다가 살인까지 저질렀다. 또한 이 한 번의 탐심으로 인해 네 명의 자식들이 죽었고, 내전까지 일어나 백성들이 서로를 죽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브는 금지된 열매를 탐내다가 인류 전체의 저주를 초래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모두 죽은 후에 지옥에서 눈뜨게 되었을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일말의 과장”도 없는 진리의 말씀이었다. 예컨대 음주 운전자가 다른 자동차를 정면으로 들이받아 사람을 죽게 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 어떻게 돈을 사랑하는 것이 그 죄악의 “뿌리”가 될 수 있겠는가? 누군가는 술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술 광고를 했으며, 누군가는 그 술을 팔았을 것인데, 모두 돈을 사랑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결과 사람이 죽은 것이다. 연쇄 살인범이나 변태 성욕자들이 생겨난 원인도 마찬가지인데, 그 이면에는 돈을 사랑해서 더럽고 추악한 포르노를 만들어 유통한 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딤전 6:10)이다!


탐심은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다가온다. 그중 하나가 바로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의 목적은 사람들이 하루 24시간 내내 탐심을 갖게 하는 데 있다. 그 목적 자체가 사람들이 현재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어떤 대상을 계속 원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은 옷을 벗은 여성이나 근사하게 생긴 남성만을 말하지 않는다. 냉장고, 새 차, 비싼 식당, 최신 유행의 옷 등 모든 대상이 포함된다. 텔레비전은 탐심을 양산해 내는 기계로서 온갖 종류의 더러운 드라마를 방영한다. 왜냐하면 “성”과 관련된 상품이 돈을 벌어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탐내는가? “직분”을 탐낸다. 예를 들어 로마카톨릭에는 “대주교”(Archbishop)라는 직분이 있는데, “감독”(Bishop, 벧전 2:25)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높은 직분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자들은 “땅”을 탐낸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러했고, 마호메트, 교황들,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히로히토의 명령을 받든 일본인들이 그러했다. 이러한 탐심은 인류 역사에서 거의 모든 전쟁의 발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자기들의 것이 아닌 땅을 탐낸 것이며, 심지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살상도 불사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인정”을 탐낸다. 칼 마르크스가 그러했는데, 그는 세상이 자기를 명석한 지성인이자 언론인, 역사가, 경제학자 등으로 추앙해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술주정뱅이 거지로서 평생에 단 하루도 제대로 일한 적이 없었고, 일곱 명의 자식 중 네 명을 더러운 환경에서 가난과 기아 속에 죽게 했다. 록 가수들과 그룹들이 그렇게 광기 어린 짓들을 하는 이유 역시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한편 탐심은 “부정 선거”나 “정부가 자행하는 부정”과도 연결된다. 백만장자가 아니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누군가가 높은 직책에 임명되고 승진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가 그 직책과 사람들의 인정을 탐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환경 보호”나 “보호 구역 설정”은 누군가가 땅을 탐내고 있다는 뜻이며, 전쟁은 땅과 자원과 권력을 탐내는 누군가가 있음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부속 기관과 규정을 만드는 것도 누군가가 지배력을 탐내기 때문이고, 법정 소송이 일어나고 뇌물을 받으며 국제 은행에 돈을 맡기는 등의 일들 역시 누군가가 돈을 탐내기 때문에 벌어진다.

탐심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자신이 “탐심의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나』(요일 1:8). 구원의 여부와 관계없이, 죄인들은 누구나 다른 어떤 죄들보다 “탐심의 죄”에 대해 극구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기만한다.


두 번째로 찬송가에도 있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들”을 세어 보아야 한다. 그 복들을 하나하나 세다 보면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그 복들에 감사해야 한다. 『너희의 생활방식에 탐욕이 없도록 하고 현재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히 13:5)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몇 구절 뒤에 가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빌립보서 4장에서도 “감사”(6절)와 “만족”(11절)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감사하는 마음은 탐심을 막는 좋은 예방책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현재 자신이 소유한 것에 만족하며, 이러한 만족이야말로 탐심을 죽이는 강력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려 하지만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때때로 “마귀의 종들”만 돈을 버는 현실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샘 존스는 “하나님께서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려면, 주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돈을 주시는지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시기를 원한다. 다만 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그 돈에 조종당하지 않고, 올바른 일 또는 하나님의 사역에 그 돈을 사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소유를 다시 내놓아야 한다. 배우자, 자식들, 집, 자동차, 일자리, 재산 등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받은 “청지기직”(눅 16:2)에 관해 회계를 보아야 한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마치 “자기들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조금의 “이자”도 하나님께 돌려 드리지 않는다. “은혜의 시대” 운운하면서 하나님의 것을 탈취하는 성도들은 이 말에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십일조”가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한다(레 27:30). 이에 대해 하나님의 것을 즐겨 탈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변명을 둘러댄다. “아, 그것은 율법 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이죠.” “그 당시의 십일조는 곡식과 가축이지 않았습니까?” “서로 다른 세 가지 형태의 십일조가 있었죠.” 그러나 율법 시대 이전에 은혜 아래 살았던 아브라함과 야곱 같은 족장들은 십일조를 드렸다(창 14:20; 28:22). 한편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곧 우리가 빚진 모든 것의 “일부”를 드리는 일에 불과하다. 십일조만 드리면서 하나님께 많이 드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돈’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인가?” 하나님께 자신의 “혼”을 의탁한 사람이 “지갑”은 맡기지 못하는 것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오히려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마 6:20).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주는 것”이다(눅 12:33; 18:22). 헌금은 “학문적 연습”이 필요 없다. 실제로 드리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혹자가 말했듯이, “줄 수 있는 사랑의 탄생은 탐심의 죽음을 의미한다.” 한 성도가 목사에게 “저는 도무지 선교에는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하자, 그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교에 관심을 두는 것은 마치 은행 이자와 같습니다. 우선 입금을 해야 이자가 생기는 것처럼, 선교를 위해 먼저 드려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도 생기는 겁니다!”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하나님께 적게 드리면서 겨우겨우 살아간다. 적게 드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탐심”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고후 9:7)라고 말씀한다.
끝으로 탐심에 대한 궁극적인 치료책은 다름 아닌 “하늘나라”이다. 주 하나님을 송축하라! 언젠가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게 될 장소로 갈 것인데, 그곳은 바로 하늘나라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또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장소, 그곳은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항상 행복하다. 정욕 없이 사랑하고, 이기심 없이 기쁨을 누리며, 욕심 없이 부유하고, 걱정 없이 행복을 만끽하며, 어떤 자랑도 하지 않고 영광을 누리는 곳, 그곳이 바로 하늘나라이다!

조지 휫필드는 임종 시에 시편 17:15을 읊조리며 지상 생애를 마감했다. 『나, 나는 의 가운데서 주의 얼굴을 보리니 내가 깨면 주의 모습으로 만족하리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또 죽어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27년 동안 구원받지 못한 죄인으로 살았었고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 “최악의 역경”을 맞이했을 때가 댄스 밴드의 드럼 연주자로 살았던 때의 “최고의 날들”보다 더 행복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늘나라라는 본향 집을 소유하고 만족할 방법이 여기에 있다. 곧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를 신뢰하고 그분을 영접하면 되는 것이다.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거니와 부요하신 분이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를 부요하게 되도록 하심이라』(고후 8:9).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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