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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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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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10월호>

십계명 중 제7계명은 간음을 금지하고 있다.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 성경은 간음에 대해 많은 구절을 할애하여 경고하고 있는데, 바울은 히브리서 13:4에서 이렇게 말했다. 『혼인은 모든 면에서 귀한 것이니 침상을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에스겔 16,23장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이스라엘을 “간음하기 좋아하는 여인”으로 묘사한다. 간음죄를 일삼는 여자가 성경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일부 구절뿐만 아니라 “한 장” 전체가 간음하는 여자를 다루는 본문도 많다. 물론 남자도 간음죄를 짓는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음죄를 매우 면밀하게 다루셨다. 남자가 여자보다 간음죄를 더 잘 범하는 경향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부유하고 큰 권세를 지닌 남자들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하여 한 명 이상의 남편을 두는 여자는 1%도 채 되지 않는다(0.47%). 더욱이 대개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한 가족 내의 여러 형제가 아내 한 명을 두는 식의 형태인 것이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일부다처제를 행했던 인물은 카인의 후손인 “라멕”이다(창 4:19). 솔로몬에게는 700명의 왕비와 300명의 후궁이 있었다(왕상 11:3). 그가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배운 것임이 분명하다(삼하 5:13). 하나님께서는 많은 아내를 두는 것을 금지하셨는데, 이는 그것이 “왕의 마음”을 하나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아서게 하기 때문이다(신 17:17). 실제로 솔로몬이 그러했다(왕상 11:1-3).

1. 간음의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불행한 결혼 생활”이다. 불행한 결혼 생활은 대부분 첫 시작을 잘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어떤 청년은 여자를 만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타부타 “결판”을 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한 달 만에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가? 성경은 남편이 “지식을 따라” 자신의 아내와 동거해야 한다고 말씀한다(벧전 3:7). 결혼은 단순히 같은 침실을 쓰는 것 이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 또는 남자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힘든 결혼 생활이 될 수 있다.

결혼 생활이 불행한 또 하나의 원인은 부부 가운데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 형편없는 인격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일부 형제들이 비난하는 것과 달리 나는 “이혼”을 별로 탐탁스럽지 않게 생각한다. 혹자는 “당신도 이혼했잖아요?”라고 반문할 것이다. 사실 이혼을 요구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를 비난하는 근본주의 대학교 교수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나는 아내를 버린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식 주례사에 으레 등장하는 상투적인 말, 곧 “기쁜 일이 있으나 슬픈 일이 있으나, 죽음이 두 사람을 영원히 갈라놓을 때까지...”를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얼마든지 그 말보다 더 안 좋은 일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 두 사람 중 하나가 자기 좋은 대로 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한쪽 배우자가 그냥 훌쩍 떠나기도 한다. 특히 현대의 미국 사회가 그러한데, “평균 결혼 기간”이 2년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초래하는 또 다른 원인은 텔레비전과 잡지들이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에서 부부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는 장면조차 방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결혼하지도 않은 성인 남녀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장면을 버젓이 내보낸다. 잡지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여자들은 잡지를 통해 남자 모델 사진들을 보면서 자기 남편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바람피우는 것을 동경한다. 남자들 역시 옷을 반쯤 벗은 여자 모델들을 보면서 그 모습과 비교되는 자기 아내에 대해 불만족을 느낀다.

때로는 정상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어서 이혼이 불가피한 때도 있다. 한편 다윗이 밧세바와 저지른 간음죄가 끔찍한 죄인 이유는 그가 그런 죄를 지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사울의 집과 그의 아내들을 주셨고 유다 집과 이스라엘 집을 모두 주셨으므로, 다윗이 무언가 더 필요하여 구하기만 했다면 어떤 것이든 더 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삼하 12:8).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정욕”이라는 제단 위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제물로 삼아 희생시키고 말았다. 다윗이 저지른 간음은 전혀 “정상을 참작할 수 있는 대상”이 못 된다.

물론 죄를 정당화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미군 병사들이 아내로부터 “이별 통보 편지”를 받았다. 해외에서 군 복무하는 대략 2년의 기간은 현실적으로 아내가 혼자서 자식들을 기르기에는 너무 힘든 기간이다. 또 어떤 아내는 남편이 술주정뱅이이다. 남편이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되어 아내가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나마 있는 돈도 남편이 몰래 가져가서 술을 사 마시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에는 술이 이혼 사유가 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또한 계속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둔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허구한 날 뺨을 때리고 구타하면서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것 역시 이혼 사유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병원 신세를 지거나 맞아 죽을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가? 이처럼 정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2. 간음으로 겪게 되는 저주가 있다. 그런 저주 가운데 하나가 “사생아 출산”이다. 언젠가 미국 뉴저지 주에서는 20세 이하의 여자 중 71%가 사생아를 낳았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1964년 이후로 미국의 사생아 출생률은 300%나 증가했다. 미국의 인구가 100%도 채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증가이다.

간음 때문에 겪는 또 다른 저주는 “성병”인데, 곧 헤르페스, 임질, 매독,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등이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성교육”을 도입한 이래로 성병 감염률이 80%나 증가했다. 북아메리카의 성병 발생률은 유럽이나 아시아보다 높다. 북아메리카보다 높은 지역은 아프리카가 유일하다.

간음이 초래하는 또 다른 저주는 “이혼”이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결혼 생활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나쁜 짓을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미국의 어떤 가정은 자식이 서너 명밖에 안 되는데도 자식들의 성이 모두 다르고, 또 어떤 아이는 학부모간담회에 모셔 온 부모가 여섯 명이어서 상을 받은 일도 있다.

이 땅에 동성연애자들이 창궐하여 가정과 국가를 망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그의 아내와 결합하는 것”을 결혼이라고 명시하셨으며(마 19:5), 이러한 “하나님의 법”을 어긴 모든 종류의 동성연애를 가리켜 난잡하고 “가증한 짓”(레 18:22; 20:13)이라고 규정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런 짓을 저지른 민족을 그 땅이 토해 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레 18:25).

3. 간음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곧 “욕망에 의한 간음,” “육체적인 간음,” “영적인 간음”이 있는 것이다.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간음은 “육체적인 간음”이다. 현세대는 “간음”을 “간음”이라 하지 않고 “부정,” “바람피우기,” “성인 간의 합의” 정도로 부른다. 잠언 6:32에서는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명철이 부족하고 자신의 혼을 파멸시키는 자”라고 말씀한다. 간음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adultery”는 “이질적이거나 열등한 것을 첨가하여 불순하게 만든다.”라는 뜻의 “adulterate”에서 나왔다. 즉 남편이 아내가 아닌 여자와 몸을 섞거나 아내가 남편이 아닌 남자와 몸을 합한다면 결혼을 “불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로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또한, 창녀와 합하는 자는 한 몸인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가 말씀하시기를 “둘이 한 몸이 되리라.”고 하셨느니라』(고전 6:15,16). 요셉은 육체적인 간음을 저지를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포티발의 아내가 계속 유혹하더니, 어느 날 집 안에 혼자 있는 요셉을 보고는 그의 옷을 붙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요셉은 옷을 버려두고 도망쳤다. 레스터 롤로프는 이렇게 말했다. “요셉이 옷은 잃어버렸지만, 인격은 지켰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너는 또한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딤후 2:22)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욕망에 의한 간음”은 밖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어도 마음이나 생각으로 간음을 저지르는 것으로서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적시하셨다. 『너희는 옛사람들이 말했던 바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한 것을 들었으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그의 마음으로 그녀와 더불어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어떤 남자가 “육체적인 간음”을 저지르지 않는 이유로는 단지 기회를 잡지 못해서인 경우가 있다. 또는 간음을 저지를 만한 대범함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의 동기는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주님께서도 『그녀와 더불어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라고 말씀하신바, 어떤 여자가 자신의 몸쪽으로 남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옷을 입거나 반쯤 걸쳐 입을 때 성경은 그녀가 간음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매들은 옷을 입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영적인 간음”의 견지에서 볼 때, 솔로몬이 저지른 죄는 1,000명의 여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것 이상으로 훨씬 큰 것이었다. 이는 그가 그들의 신들을 섬겼고, 그 결과 주님께서 그 왕국을 그에게서 취하여 둘로 나누셨기 때문이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죄로 인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한 솔로몬보다 다윗을 너그러이 대하셨다. 즉 다윗은 충분히 장수하여 부와 영화를 누리다가 죽었지만(대상 29:28), 솔로몬은 그렇지 못하여 자신의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붕괴되는 것을 보며 죽은 것이다(왕상 11장).

사도 바울은 영적인 간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정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이것은 단지 어떤 “이성”을 탐하는 것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지 탐내면 우상 숭배가 된다. 어떤 설교자는 돈을 탐내면서 영적인 간음을 저지르는데, 실제로 지미 배커, 타미 배커, 케네스 코플랜드 같은 미국의 “텔레비전 복음 전파자들”은 문자 그대로 수백만 달러의 돈을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갈취한다. 어떤 설교자는 땅을 탐낸다. 예전에 밥존스대학교를 졸업한 어떤 사람이 필자가 목회했던 브렌트침례교회의 땅을 탐내더니, 내가 이혼했기 때문에 사역에 부적합한 자라고 말하면서 밥 존스 주니어에게 부탁하여 나를 밀어내고 교회 땅을 차지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밥 존스 주니어에게 편지를 써서 “재혼할 것이니 문제없다.”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그렇게 되면 살아 있는 아내가 두 명이 되는 것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나는 “어떻게 대학교 학장이라는 사람이 ‘0’ 더하기 ‘1’을 ‘2’라고 말할 수 있느냐?”라면서 그를 꾸짖었다.

4. 어떻게 해야 간음을 피할 수 있는가? 첫째, 욥은 『내가 내 눈과 더불어 언약을 세웠는데, 어찌하여 내가 소녀를 생각하랴?』(욥 31:1)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잘못된 대상이나 방향”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안 된다. 다윗 역시 이것 때문에 죄를 범했다. 둘째, 가정 안에 단순히 정욕을 채우기 위한 성생활이 아니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가정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정욕은 소진되고 성생활도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셋째, 가정에서 서로를 격분시키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문젯거리를 놓고 싸우려 들지 말고 그것에 대해 기도해야 한다. 넷째,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정결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조심할 것이니이다』(시 119:9).

우리는 여름성경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성경이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지켜 주든지, 죄들이 우리가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방해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주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지 않으면 성경을 믿는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회피하게 된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죄 많은 아담의 성품이 성경을 반대하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성경을 읽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담의 성품이 원하는 대로 살게 된다.

요한복음 8장에서 한 간음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붙잡혀 왔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고소를 못 들은 체하시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는데 아마 레위기 20:10이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7절)라고 말씀하셨고, 그 후에는 그녀를 궁지로 내몬 자들의 이름을 땅에 쓰셨을 것이다. 그러자 가장 늙은 자로부터 젊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떠났다. 그렇게 그녀만 홀로 남았을 때 예수님께서 『여인아,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않더냐?』(10절)라고 물으셨고, 그녀는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나이다.』(11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 가라,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11절)라고 말씀하셨다. 실로 이것은 간음한 사람을 위한 가장 훌륭한 메시지이다.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롬 8: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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