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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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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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6월호>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 주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아니하리라』(출 20:7). 십계명 중에 이 세 번째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JEHOVAH]』(출 6:3)이다.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자신을 『예수[JESUS]』(마 1:21)라는 이름으로 계시하신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호”를 거룩하게 다루셨으므로 그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하셨다(레 24:10-16). 신약에서도 그분의 아들의 성호를 그만큼 거룩하게 여기셨기에 그 이름을 자신의 『영광스러운 이름』(느 9:5)보다 더 높이셨다(빌 2:5-11).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알라, 마호메트, 테레사 수녀, 요한 바오로 2세나 6세, 대중매체가 신들로 추켜세워 숭배하도록 만든 어떤 남자나 여자의 이름보다 더 높이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성령님께서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행 4:12)라고 말씀하셨다. 믿는 성도들은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고(요 16:23),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신다(요 14:13,14; 15:16; 16:24). 또한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으로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셨다(요 14:26).

“제3계명”은 하나님의 성호를 함부로 들먹이며 저주하고 욕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특히 미국인들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쓰면서 저주하고 욕을 한다(God Damn).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면서 욕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하나님께서 말 그대로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슨 기도를 말하는 것인가? 미국인들은 이런저런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God Damn!”(빌어먹을, 제기랄)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께 “저주해 달라!”라고 간구하는 일종의 “기도”인 것이다. 필자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첫 번째로 하는 일은 주님께서 이 비행기에서 모든 저주를 거두어 주시라고 기도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비행기, 날씨, 조종사, 승무원 등을 욕하며 저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저주받은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께 모든 저주를 제거해 주셔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집트에 거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출 3:13)라고 말하게 하셨을 때, 모세는 “그들이 제게 주님의 이름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합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는 곧 나니라[I AM THAT I AM]』(출 3:14)라는 이름으로 말하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라는 성호의 올바른 의미이다. 곧 “영원하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절대 권위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이유는 그분께서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존(自存)하심”을 의미하는데, 주님께서는 창조되시지 않았으며 어떤 시작점이 존재하시는 분도 아니시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말하는 것으로서, 주님께서는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도 항상 계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성호가 자신에게 속한다고 말씀하셨다(요 8:58,59; 18:6).

구약에서는 “주께서 살아 계시거니와”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는데(판 8:19, 룻 3:13, 삼상 14:39,45; 19:6; 20:3 등), 이것은 유대인들이 개인적으로 맹세하거나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어떤 일에 대해 “인을 쳐서 확정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표현이 올바르게 사용된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왕상 22:14) 잘못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왕하 5:20).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되게 맹세하거나 그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그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금지되어있었다(레 19:12). 그래서 신약에서는 이런 것과 관련하여 『아예 맹세하지 말라.』(마 5:34)라고 명령하신다. 쉽게 말해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의 말을 믿게 한답시고 굳이 주님의 이름을 쓸 필요가 없다. 정직한 마음으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되고, 또한 그럴지도 모르는 것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된다(약 5:12).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건대”라고 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죄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거짓되게 맹세한 것이 되고, 결국 주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여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맹세하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이다(마 26:63,64).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신약에서 “하나님의 성호”는 『예수』(마 1:21)이다. 한편 어느 누구도 “마호메트의 이름”으로 저주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인가? 그 이름에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나 마리아의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 능력이 없다. 미국인들은 욕을 할 때 “Jesus!” 또는 “Jesus Christ!”라는 표현을 쓴다. 왜 그런 것인가? 그 이름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탄주의자들도 “루시퍼”나 “사탄” 혹은 “마귀”의 이름으로 욕하지 않는다. 그들의 “의식”에서는 사용할지 모르지만, 욕을 할 때는 “사탄의 이름으로 저주하노라.”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의 이름(마 28:18),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경우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특별한 목적 없이”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중세 암흑시대에 로마카톨릭이 그랬었다. 소위 “성체 성사”에 사용되는 “제병”(빵)을 “오즈 밧킨스”(Ods Bodkins), 곧 “하나님의 몸”(God’s Body)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빌어먹을” 혹은 “제기랄”과 같은 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도 “제기랄”의 뜻으로 “Sacrebleu”라는 욕을 쓰는데, 이것은 “성스러운 푸른색”(holy blue)이란 뜻으로서 본래 “거룩하신 하나님”(Holy God)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영국에서도 “블러디”(Bloody)라는 말을 욕으로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한다. 이상의 내용들은 모두 구체적으로 무슨 분명한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순전히 “과시용”이다. 자신에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God Damn,” “Hell,” “Jesus Christ”라는 표현을 쓰면서 스스로를 좀 강하고 거칠게 보이고 싶어 하는데, 이는 그런 식으로 오용하여 “욕”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카톨릭이 묵주를 돌리면서 반복적인 기도를 하는 것도 아무 목적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들은 묵주를 돌리면서 “우리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사제들이 “고해 성사”를 하기 위해 몇 번 기도하라고 지시한 그 횟수만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행위를 『헛된 반복』이자, 『이교도들』, 곧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하는 짓이라고 규정하셨다(마 6:7).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두 번째 경우는 “자기들의 잘못된 목적”을 위해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주로 은사주의자들이 그렇다. “성령 세례”나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등과 같이 그들이 떠벌리는 말들은 모두 추종자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한 표현들이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아말렉을 완전히 멸하라고 명령하신(3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에게 사무엘이 “이 울음소리는 무엇이냐?”라고 묻자(14절), 사울은 『주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남겨 둔 것』(15절)이라고 대답했다. 말하자면 사울은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했으니, 곧 불순종하는 망나니이면서도 경건하게 보이려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의 복을 가로채려고 했을 때 『주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 주셨나이다.』(창 27:20)라고 말했는데, 그 또한 아버지를 속이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했다.

세 번째는 “마귀의 목적”을 위해 그 이름을 쓰는 경우이다. 프리메이슨의 집회소나 예수회의 모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는 절대로 주님께 드리는 신성한 맹세가 아니다. 그들의 모임에 입단한 어떤 자가 그 단체의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그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륙하여 내장을 꺼내거나 그의 목을 따겠다고 하는 것은 마귀에게 하는 맹세이다. 사도행전 23:12,13에 나오는 4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비 마귀를 섬겼던 것인데(요 8:44), 다만 그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했던 것뿐이다(요 8:38-43). 암흑시대에 로마카톨릭의 종교재판에서도 사제들은 고문 도구 위에 소위 “성수”를 뿌리면서 그것을 “거룩하게” 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박해하는 데 쓰일 도구를 놓고서 하나님께 복을 내려 달라고 간구했던 것이다. 이런 것이 사탄의 목적을 위해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경우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신성 모독을 자행하게 하려고 십자가 위에 소변을 보게 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것에 관한 한 미국은 위선자들로 가득한 나라이다. “화폐”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In God We Trust)라고 써 놓았는데, 정말로 미국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나라인가? 개별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해도, 과연 한 국가로서 미국이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2001년 9월 11일, 19명의 모슬렘들은 교회나 성당이 아닌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공격했다. 그들은 “미국의 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달러 지폐,” 곧 “돈”이 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미국은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 또는 의회, 대법원, 공립학교 등에서 십계명이나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제거해 버렸다. 창조주 하나님을 존중하면서 시작한 나라가 하나님을 완전히 몰아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아니하리라.』(출 20:7)라고 말씀하셨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름이 “기도 응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이나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라고 약속하셨고,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요 16:24)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주의 이름”이 기도 응답을 받는 열쇠이므로, 그 이름을 무용한 것처럼 취급하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면 그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성호를 우리 인간의 수준, 곧 “추한 죄인”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행위로서 『경이로운 분』(사 9:6)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격하시키는 가증한 죄인 것이다.

셋째로, 그 이름이 “우리를 위해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룬 이름”이기 때문이다.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마 1:21).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없음이라』(행 4: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구원이 그 이름에 달려 있기에 그 이름을 헛되이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곳 「펜사콜라성경신학원」에서 공부했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그가 일하고 있던 직장에서 말끝마다 욕을 하는 어떤 죄인의 그 험한 입 때문에 무척 괴로워했다. 마침내 그는 구원받지 못한 그 죄인의 더러운 언사에 신물이 난 나머지 그를 향해 “너는 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라고 물었고, 그 거만한 죄인은 몸을 곧추세우고 가슴을 내밀면서 “네깟 놈은 내 상대가 안 돼!”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 청년은 “나는 네가 십 년이 지나도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어!”라고 응수했다. 이에 그 죄인이 물었다. “그래? 그게 뭔데?” “나는 여덟 시간 동안 욕하지 않고 일할 수 있지만 넌 못할 걸!” 이 말을 들은 그 죄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자기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청년은 펜사콜라에서 지붕을 보수하는 일을 했다. 이 일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펜사콜라의 7,8월은 무척 덥다. 이 청년은 흑인 동료와 한 팀이 되어 일했는데 그 역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래서 그 둘은 다른 동료들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큰 소리로 주님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넌지시 복음을 증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팀에는 말끝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면서 “저주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흑인 동료는 우리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친구, 정말 불경건한 죄인이지 않아?” “아니, 내 생각에는 정말 훌륭한 그리스도인 같은데.” 그러자 그는 놀라면서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다. “저 친구의 기도가 얼마나 많이 응답되고 있는지 몰라!” “쟤는 기도하는 게 아니라 욕하는 거라고!” 그때 우리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아냐, 저 친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저주해 달라고 기도하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거고. 보라고! 저 친구가 손대는 일마다 엉망이잖아!”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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