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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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죽인 안나스와 카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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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10월호>

사복음서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한 것으로 악명 높은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안나스”와 “카야파”다. 이들은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에는 거짓으로 고소했고, 그 뒤에는 십자가에 못박도록 공회를 사주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 이후 사도행전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공회의 일원들이기도 했다. 성경에서 “공회”(council)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좋은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 그 의미가 중립적인 구절에서조차 재림 때 천년왕국에서 사람들을 다룰 『공회의 위험』(마 5:22)에 관해 언급한다. 그 외 다른 모든 구절에서는 공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억압하기 위해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종교 통합적인 모임”으로 등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명심해야 한다!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하는 자는 “역사의 오류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성경에서 배워야 할 진리 한 가지가 있다면, 성경은 어떤 단어라도 무작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경이 “공회”를 가리켜 “진리를 억압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이라고 했다면, 그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의심이 간다면 <영의 성구 사전>이나 <스트롱의 성구 사전>을 펼쳐서 공회라는 단어가 나오는 구절을 모두 찾아보라.



선 “안나스”와 “카야파”에 대해 공부할 때 기억해야 할 사실 하나가 있다. 이 두 사람은 당대의 “종교적인 공회”의 수장들로서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신랄하게 정죄하신, 소위 정통주의를 표방한다고 하는 긴 “성직복”을 입은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것으로, 가죽 성구함을 크게 만들어 지니고 옷단을 넓혀 입느니라』(마 23:5). 『서기관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며』(눅 20:46). 그렇다면 이들의 실상에 대해 먼저 요한복음 11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에 선임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소집하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많은 기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찌하랴?』(47절)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오늘날 인플레이션과 높은 세금 그리고 미국이 부도 직전의 상황에 놓이게 된 원인은 경제 체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이것은 멕시코와 남미가 망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제일의 권력을 자랑하던 미국이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원인은 “죄” 때문이지 경제와는 무관하다.

이 구절에서 “공회”를 소집한 장본인은 “제사장들”(priests)이었다. 정말 성경은 놀라운 책이지 않은가? 오늘날도 “제사장들”로 자처하는 자들이 문제다(일례로 로마카톨릭 신부들). 『이 사람이 많은 기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찌하랴?』 답은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된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나사로를 살리셨고, 자신이 “메시아”라고 선포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메시아로서의 표적들,”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모세의 표적들”도 보여 주셨다. 도대체 『우리가 어찌하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된다! 이것이 바로 정답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

『만일 우리가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48절 a). 도대체 모든 사람이 그분을 믿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그들의 “은행 잔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처소와 민족을 다 빼앗아 가리라』(48절 b). 성경은 절대로 죄를 미화하지 않는다. 절대로 위선자들을 회칠해 주지 않는다. 오직 위선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 줄 뿐이다. 이 “종교인들”은 당대에 권력을 거머쥔 “종교 지도자들”로서 오늘날로 보면 “바티칸의 지도자들”에 해당한다. 당시 그런 자들이 했던 말에 따르면, 그들에게는 “진리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정치적인 이익”뿐이었다. 그냥 놔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그들의 처소를 빼앗고 그다음에는 그들의 민족도 빼앗아 갈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민족보다 자신의 직업과 이익이 더 중요한 자들이다. 자기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자들인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딤전 6:10).

이런 말이 오가고 있을 때, 그해의 대제사장 “카야파”는 동료들을 향해 그들이 너무 멍청하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49절). 『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멸망치 않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줄을 너희가 생각지 못하는도다』(50절).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요소”인데, “과연 무엇이 그들에게 유익하냐”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에 현재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로마인들이 와서 그들을 짓밟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길”은 “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을 죽여서 자기들의 목숨을 부지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제사장으로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라. 그 민족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멀리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함께 모으려 함이었더라』(51,52절). 비록 카야파가 자기 생각을 말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했던 말의 진의와 상관없이 그의 말을 사용하고 계신다! 『그가...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라』(51절). 실로 놀랍지 않은가? 분명 대제사장이자 종교적 살인자인 그는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그를 죽이자! 그래야 우리 민족이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의 말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죽으실 것이라는 예언이 된 것이다.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마 1:21).

『그 날부터 그들이 주를 죽이려고 함께 모의하더라』(53절). 이들은 “살인자들”이다! 어떤 이들은 “그래도 그들은 기다란 제의를 입는 사람들이잖아요!”라고 대꾸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살인자들”이다! 또 어떤 이들은 “그래도 그들은 제사장들이잖아요!”라고 항변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인자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성경은 분명 그들을 가리켜 “살인자들”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이들은 “그래도 이들은 과부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도 아주 오래 하는걸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살인자들”일 뿐이다! 성경이 로마카톨릭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이 땅에서 살해된 모든 사람의 피가 그녀 안에서 보였느니라』(계 18:24).



한복음 18장에서 “카야파”는 다시 등장한다(13,14절). “재판”은 19절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 재판은 비공개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예수님을 변호해 줄 변호사도 없었다. 특히 검사 쪽에서 고용한 거짓 증인들 외에는 다른 증인들이 없었다. 심의 자체가 불법이었고, 판사도 불법적이었다. 재판 과정도 불법적이었으니, 그야말로 재판 자체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불법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법정 안에서 폭력이 난무하기까지 했다.

『그때에 대제사장이 예수께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리에 관하여 묻더라.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나는 세상에 드러나게 말하였고 또 유대인들이 항상 다니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으며, 아무것도 비밀리에 말하지 아니하였노라』(19,20절). 예수님의 교리 중에는 감추어진 것이 전혀 없었다.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항상 공개적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에, 원한다면 누구든지 주님의 가르침에 관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말한 것을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 보라, 그들은 내가 말한 것을 알고 있노라』(21절). 말하자면 “너희의 증인이 어디 있느냐? 왜 증인도 없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묶음 개체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옆에 서 있던 관원들 중 하나가 손바닥으로 예수를 때리며 말하기를 “네가 대제사장께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느냐?”고 하니』(22절). 그들은 주님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종교인들은 누군가가 그들을 대적해서 말하면 그러한 말투조차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폭발하기 일쑤다. 그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목격자들이 제시한 “문서로 된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부른 증인들조차 말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마 26:59-61, 막 14:55-59).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자가 “신성한 법정”에서 주님의 얼굴을 쳤다(22,23절).

『그러자 안나스가 주를 묶은 채로 대제사장 카야파에게 보내니라... 그후 그들은 예수를 카야파에게서 재판정으로 끌고 가니 때가 새벽이더라. 그 사람들이 재판정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은 자기들이 더럽혀지지 않아야 유월절 양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더라』(24,28절). 실로 충격적인 구절이다! 이 죄 많은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체포했고 그분의 얼굴을 때렸으며 그분을 재판정으로 끌고 갔다. 이렇듯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계략을 꾸미고 실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자기들이 “더럽혀질까 봐” 이방인들의 재판정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 종교 지도자들은 함께 모여 지금까지 태어난 사람 중에 유일하게 죄 없는 한 분을 죽일 계획을 꾸몄다. 그들은 불법적인 재판을 속행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그분을 죽이려 했다. 그러면서도 이 더럽고 거짓말하기 좋아하는 이중적인 위선자들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규범을 위반하는 것과 관련하여 양심에찔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무척 싫어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인 죄인들의 속성이다. 이런 종교인들은 도박은 해도 되지만 복음 전도지는 절대로 받지 말라고 말한다. 흡연 정도는 가볍게 해도 되지만 성경대로 설교하는 교회에는 절대로 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종교 집단이 바로 “로마카톨릭”이다! 묶음 개체입니다.


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들이 주님의 부활 이후에는 이런 짓을 중단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 주님을 죽이려고 계획했던 이들이 주님께서 직접 죽은 자들로부터살아나신 후에는 그동안 해 왔던 짓을 중단한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도행전 4장을 보라. 대제사장 안나스와 카야파가 다시 등장한다. 이들은 요한복음 11장과 18장을 끝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도 여전히 진리를 짓밟는 자들로 등장한다. 마리아나 요셉 혹은 다른 어떤 종교 창시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12절) 이 소중한 진리를 짓밟은 것이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했다. 『그때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자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로 알았다가 놀라며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더라』(13절).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 있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담대함”이지, 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얼마나 사람을 잘 사귀고,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잘 끼치는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그 내용과 방식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나 모든 인간의 형제 됨 따위는 가르치시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공격하실 때 매우 담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사자도 무서워하지 않으셨다!

“베드로”와 “요한”은 증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모두 그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진리를 확실하게 믿는 “믿는 자”가 되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진리라고 믿는 것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 외 나머지 것들은 이 두 가지 항목에 수반될 뿐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면서도 자기가 믿고 확신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그저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어울려서 자기 배를 불리는 법만 알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백성 가운데 확산되지 못하게 그들을 엄히 위협하여 이후로는 아무에게도 이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게 하자』(17절). 결국 그들은 사도들을 위협하고 풀어 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의 공회는 또다시 사도들을 붙잡아서 죽이기 위해 가두었고(행 5장), 이후에도 또다시 붙잡았으며(행 6장), 종국에는 “스테판”을 살해했다(행 7장). 그뿐만 아니라 헤롯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야고보”를 죽이게 했다(행 12장). 사도 바울 역시 구원받기 전에는 이 공회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행 8,9장).

앞서 언급한 대로 성경에서 “종교적인 공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와 사역에 있어서 항상 진리를 억압하고 진리를 증거하는 증인들의 마지막 흔적까지 지워버리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는 자는 그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역사에서 배우는 유일한 진리는 인간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안나스와 카야파에 관해 배운 내용이 귀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 교훈이 되길 바란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 11:1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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