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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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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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6월호>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시리라』(빌 3:20,21).
이 글은 부활에 관한 것이며, 특히 <킹제임스성경>의 사도행전 1:3에 있는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은 그 부활이 『많은 무오한 증거들』(행 1:3)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여기서 “무오한”이라는 말은 “결코 오류가 없는, 틀릴 수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들에 대해 어떤 합법적인 반론이 있을 수 없으며, 그 증거들은 절대 진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소위 새로운 “성경들”은 “무오한”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들의 성서에서 제거해 버렸다. 즉 현대 번역본들에 따르면 우리 구주의 부활에 관한 한 타당한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킹제임스성경>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부활의 증거가 “무오하기” 때문이다.
“증거들”이 “무오할” 뿐만 아니라 “많다”고 하였다. 혹자는 그 증거들이 얼마나 많으냐고 물을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500명의 목격자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500명의 목격자는 그야말로 “많은” 증거들이다! 필자가 예전에 녹음한 “즉석 주석”(Ad-lib Commentary)에서, 필자는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 도마가 십자가 사건 이후에 변절하여 바리새인들에게 다시 돌아간 것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필자는 그들의 대화를 이렇게 가정해 보았다.
바리새인들이 돌아온 도마에게 말한다. “우리는 네가 예수의 제자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랬었죠.” 도마가 대답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잘 왔어, 도마. 그런데 예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믿지 않습니다.” 도마가 말했다. “그분은 죽었고 계속 죽은 채로 계실 겁니다. 그분을 그후로 뵌 적이 없거든요.” (독자들도 기억하듯이 도마는 주께서 부활하신 첫째 주일 “저녁 예배”를 빠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 못했다.)
“도마야, 그럼 대답해 보라! 너는 책도 많이 읽었지 않은가? 어떻게 예수의 몸이 무덤 밖으로 나갈 수 있지?” 바리새인들이 물었다.
“당신들 스스로 병사들이 잠자는 동안 제자들이 와서 훔쳐갔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도마가 대답했다.
“그런데 도마야, 만일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어야 할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다면 왜 빌라도가 그들을 죽이지 않았지? 제자들이 예수의 몸을 가져갔다면 왜 그들은 세마포를 풀고 붕대도 다 풀어 놓고 그곳에 시체가 있었다는 표시를 남겨두고 간 거지?” 바리새인들이 물었다.
도마가 말했다. “제자들이 그분이 부활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런 것 아닐까요?!” “병사들은 어쩌고?” 도마는 우물쭈물 하면서 대답을 못한다. 그는 좌절하여 생각을 바꾸어 말한다. “글쎄요, 병사들이 잠들지 않았었는지도 모르죠. 제자들이 경비병들을 제압했겠죠.”
“도마야, 그러면 열 명의 제자들이 달랑 칼 두 자루만 들고 고도로 훈련받은 로마 경비병들을 이기고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도망갔단 말이냐?”
도마는 다시 주저하다가 말한다. “제자들이 그분을 데려가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그냥 십자가에서 기절했다가 시원한 무덤에서 정신을 차리고 나가신 거겠죠!”
“그런데 말이야,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병사들이 예수가 죽은 것을 보았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를 모두 빼서 확인까지 했잖아? 우리도 그걸 봤어. 그런데 어떻게 피를 다 흘린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또 어떻게 삼 일 밤낮 동안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은 사람이 무덤을 막은 돌을 옮길 수 있었을까?”
도마는 다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많은 무오한 증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모슬렘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루는 줄 아는가?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십자가 곁에 있었고, 주님의 모친도 거기에 있었다. 주님을 따랐던 여인들도 3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았고, 창이 주님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도 보았고, 주님께서 장사되시는 것도 보았다.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요한은 자신이 목격자로서 본 것을 기록했으며, 마태도 자신과 다른 증인들이 본 것을 기록했다. 마가와 누가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을 본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했다(눅 1:1,2).
마호메트의 추종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는다. 힌두교도들도, 불교도들도, 인본주의자들도, 무신론자들도, 회의론자들도 믿지 않는다. 유대인들도 믿지 않았고, 예수님 당시의 산헤드린도 믿지 않았고, 제자들도 한동안 믿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직접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 것을 들었지만(마 16:21; 17:23; 20:19), 요한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날 제자들이 이러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주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을 아직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요 20:9).
그러면 누가 믿었는가?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나서야 믿었다(고전 15:5). 그후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이 주님을 직접 보았을 때 믿었다(고전 15:6).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던 유대인 랍비도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믿었다(고전 15:8). 의사인 누가 또한 믿었는데, 그는 고린도전서 15:6에 나와 있듯이 그때까지 세상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사건에 대해서 당대의 살아 있는 증인들과 인터뷰를 했다(눅 1:1-3).
그러면 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음을 믿지 않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그 이면의 질문도 생각해 봐야 한다. 곧 “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고 믿는가?”이다. 그 이유는 동일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언젠가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그 사람을 통하여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어 모든 사람에게 확증해 주셨음이라』(행 17:31).
마지막 부분을 잘 보았는가?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어』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들의 부활은 믿는다. 로마카톨릭도 마지막 심판 때 모든 사람들이 부활할 것을 믿는다. 모슬렘들도, 유대인들도 그렇게 믿는다. 문제는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 문제인 것이다. 즉 이 말은 누군가가 마지막 날의 심판 이전에 부활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 이 말은 또한 주님께서 다른 모든 사람을 살리실 분이라는 뜻이다(고전 15:12, 요 5:26-29). 그것이 사도들이 전파한 바이며, 그것이 그 유대인 랍비들이 견딜 수 없어 했던 부분이다(행 4:1,2).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은 먼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구성원들을 일으키실 것이며(살전 4:13-16), 또한 지상에 권능으로 내려오시기 바로 직전에 환란 성도들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실 것이다(사 26:19-21).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20:5이 말씀하는 『첫 번째 부활』이다. 이 구절의 나머지 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 즉 천년왕국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부활』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첫열매들, 추수, 이삭줍기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첫열매들』이시며(고전 15:20), 교회 시대의 휴거가 추수이다(고전 15:23).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계 11:11,12)와 144,000명의 유대인 성도들(계 14:1)의 환란 후 휴거가 이삭줍기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적은 무엇인가? 먼저 부활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한다.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롬 1:4). 어떻게 예수님이 마호메트나 부처나 공자나 교황들이나 조로아스터나 메리 베이커 에디나 엘렌 G. 화이트나 찰스 T. 러셀이나 조셉 스미스와 같은 종교 사기꾼이 아니신 줄 알 수 있는가? 우리 주님은 죽은 채로 무덤에 누워 계시지 않았다. 모든 종교 창시자들과 지도자들은 지금도 죽은 상태 그대로 있고, 그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주님 앞에 불려 나와서 그들 모두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빌 2:8-11).
대중매체가 “신들”과 “여신들”의 수준으로 치켜세운 자들에게 이런 일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 될 것이다. 지상에서 그들은 교만해져 있고 대중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죽어서 지옥에 간다. 그런 후 미래의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께 불림을 받는다. 그들은 자기 의의 더러운 걸레를 입고(사 64:6)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들이 자기 발아래를 쳐다본다면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 서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계 20:11). 하늘과 땅이 『맹렬한 불로』 분해되고 녹아 버린 것이다(벧후 3:10,11). 난생 처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을 붙들고 계신 이가 바로 창조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히 1:3, 골 1:16,17).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이심을 고백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빌 2:11). 그런 후 그들은 죄인들이 좋아하는 “온유하시고 부드러우시고 온화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될 것이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41). 그런 후 그들 모두는 불못으로 떨어질 것이다. 밥 존스 시니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소리는 구원받지 못한 혼이 아래로, 지옥으로 떨어지며 소리치는 소리다.” 즉 그것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멘!”이다. 무엇에다 “아멘” 하는 것인가? 자기 자신의 저주에다 “아멘!”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활이 그들의 운명을 영원히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죄와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선정하신 유일하신 중보자를 믿든지(딤전 2:5), 아니면 그분을 심판주로서 마주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선택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옥에 보내실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선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행위들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활은 지난 6천 년간 인류가 성취하고자 애썼던 모든 목표를 단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모두 성취해 버린다. “죽음이라는 패배”? 부활이 해결해 준다. “질병과 연약함의 세상”은 어떤가? 부활이 해결해 준다.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당신의 “천한 몸”은 변하여 당신의 구주의 몸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빌 3:20,21, 요일 3:2). 결코 죽지도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몸이 될 것이다.
부활은 미국과 국제 연맹, 유럽 연합, 무슬림 형제단, 유엔 등이 결코 가져올 수 없는 것을 가져올 것이다. 곧 지상의 평화다! 『화평의 통치자』는 로마에서 긴 옷을 입고 돌아다니며 “지상의 화평”을 위해 기도하며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 전쟁이 일어나게 만드는 살찐 포도주 중독자(교황)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화평의 통치자』(사 9:6)는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갖도록 하신 바로 그분이다(롬 5:1-10, 히 13:20). 그분이야말로 그분의 왕국으로 오실 때 이 땅에 화평을 가져오실 분이시다. 주님께서 화평을 가져오실 때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휴전”이 있다가 또 다른 전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화평은 “영원한 화평”이 될 것이다(사 9:7).
또한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준다.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으로 인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바울은 말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모든 죽은 그리스도인들은 『멸망』한 것이며(고전 15:18),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다고 말했다(고전 15:19).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께서 언젠가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다시 오실 것임을 증명한다. 그래서 이 소망은 『복된 소망』(딛 2:13)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주님께서 오실 때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을 것이다. 또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는 말씀이 이뤄질 것이다(고전 15:53,54).
형제들이여, 우리의 『소망』은 헛된 바람이 아니다. 그것은 『간절한 기대』이다(롬 8:19). 나는 죽어서든 살아서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나를 이곳에서 데려가실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단지 그때가 언제냐는 것이다. M.R. 디한의 묘비명에 썼듯이 “어쩌면 오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구원받았는가? 당신은 이 복된 소망을 지니고 있는가? 나는 “구원받았기를 바라느냐?”고 묻지 않았다.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요일 5:13). 그 소망은 우리의 구주를 고대하는 것이며,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고, 이제 곧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이며, 우리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살전 4:1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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