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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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카페를 교회라 불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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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4월호>

그리스도의 몸으로 형성된 신약 교회의 정의를 정확히 모르는 종교인들은 아무 곳이나 십자가를 달고 “교회”라는 이름만 붙이면 교회가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술집도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면 교회가 되고, 일반인들이 자주 찾아가 커피와 음료수도 마시고 가벼운 술도 마시는 카페도 그곳에 교회 간판만 내걸면 교회가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한심한 시대가 된 것이다.
요즘 소위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 “카페 교회”가 인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오늘날 자신을 목회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성경과 영적인 일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한 단면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는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 교회이다.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 곧 지역 교회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별된 무리들이 모이는 곳인 반면, 보이지 않는 무형 교회는 한 죄인이 구원받는 즉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한 몸을 이루는 신비로운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어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영적인 교회만 있는 것이며, 그것이 이 땅의 각 지역에 수많은 지역 교회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 개념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이상한 형태의 모임을 만들어 놓고서는 그곳을 “교회”라고 이름 붙이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려고 하는데 참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기독 언론이 카페 교회에 관해 게재한 글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교회 안에 카페가 있네.’라고 놀라던 때를 지나, ‘교회가 카페네.’라고 놀랄 때가 왔다. 카페 교회를 컨설팅해 주는 업체도 있을 정도다. 교회 카페와 카페 교회 컨설팅 전문 업체 ‘나눔카페’의 박소정 실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상담 건수는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월 평균 50건 정도 된다. 이 중 카페 교회를 생각하는 목사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카페 교회를 꿈꾸는 목회자들이 늘고 있는 현상은 실제 카페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목사들이 더욱 체감하고 있다. 올해로 5년째에 접어든 한 카페 교회 목사는 ‘개인적으로 상담하러 온 목회자만 해도 400명 정도 된다. 신학교에도 강의를 많이 다녔다.’고 말했다. 강대상과 장의자가 있어야 예배당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나이 많은 목사들은 이런 현상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교계 원로는 카페 교회라는 말을 듣고 ‘교회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목사가 목회를 해야지 커피나 내리고 있으면 교회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의 진의를 모르고서 그렇게 “카페”라는 “그물”을 쳐 놓고 물고기, 즉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방식으로 잔꾀를 부려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어부가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거리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 사도들의 행적에서 분명히 나타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리설교와 복음 전파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처럼 변태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모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실로 불경스러운 일이며 참으로 비성경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큰 교회에서 건물 일부를 활용해 차린 “교회 카페”와 카페 전체를 교회로 사용하는 “카페 교회”로 분류해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이런 불편한 모습을 볼 때에 마치 카톨릭 교황이 지향한 “국가교회”와 “개신교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존 칼빈이 지향한 “교회국가”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육신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일들인데, “목사가 목회를 해야지 커피나 내리고 있으면 교회가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 말마따나 목사는 커피를 내리고 집사들은 서빙을 하는 곳이 교회라고 한다면 그 누가 그곳을 교회라고 믿겠는가? 왜 굳이 그런 것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하며, 왜 그런 곳을 교회라고 이름 붙이려고 하는가? 카페면 카페이지 교회가 아닌 것도 모르는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므로 오해하고 있도다』(마 22:29).
카페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에 3,40대 젊은 목사들은 “그런 말은 뭐라도 해주고 나서 하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들의 이러한 푸념은 대형 교회들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인상 때문에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처음 개척할 때는 상가 교회를 했다가 4년 전 카페 교회로 바꾼 한 목사는, ‘지금 전도하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거부감 때문에 아무도 안 온다. 욕은 대형 교회가 먹이고 피해는 작은 교회들이 입는다. 전도지 들고 노방전도 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전도 안 되는 걸 목사의 열심 탓으로 돌려 버리기 민망한 시대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사들에게 최우선 과제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의 접촉점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접촉점’ 때문에 카페 교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카페 교회를 운영하거나 준비하는 목사들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와 말 한마디 더 섞어 보려고 카페를 선호한다.”고 언론은 보도한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의 비성경적인 모습을 보면 그들은 진심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필연적으로 “밖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만나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만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마 13:3)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이와 같은 명백한 명령을 신실하게 실행하기는 고사하고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들이 몰려오기를 기다리려고 하는 것이다. 대형 교회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었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자신들 역시도 “카페 교회”라는 육신적인 발상으로 욕을 먹고 교회의 이미지를 완전히 구겨 놓는 것은 매일반 아닌가? 더구나 그들은 “전도지 들고 노방전도 하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못을 박고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인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거리에 나가면 전도지를 나눠 주며 수많은 혼들을 구령하고 기쁨으로 열매를 맺고 돌아와 아름다운 간증을 나누는데 그들은 도대체 어떤 전도를 말하는 것인가? 전도지 한 장 못 만드는 교회들이 교회 주보에 휴지나 커피를 끼워 주며 노방에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을 노방전도라고 하지 않던가!
심지어 그들은 “상가 교회보다는 카페가 얘기하기 훨씬 낫다. 개척 초기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카페 운영으로 돈을 버는 ‘자비량 목회’를 꿈꾸기도 한다. 물론 카페의 여유롭고 아늑한 분위기와 바리스타의 멋진 이미지도 한몫한다. 한마디로 카페 교회는 요즘 목회의 ‘트렌드’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세속적인 편법”으로 여유도 누리고 멋도 부리고 돈도 벌려면 카페 교회를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성경을 통해 전혀 배우지 못한 자연인들의 세속적인 망상이 아닐 수 없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물론 이들이 모두 다 성공적인 사업장이 되거나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언론은 전한다. “카페를 창업했을 때, 절반 이상은 3년 안에 망한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의 커피숍 밀도는 인구 895명당 1곳으로 한식집, 호프집에 이어 세 번째로 밀도가 높다. ‘과다 경쟁’ 상태다. 이는 비록 2년 전 통계이기는 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는 않는 듯하다. 사업적인 측면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교회의 공동체성도 중요하다. 비신자들과 젊은 세대와의 접촉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그들과 대화할 것이며 연대감을 형성할 것인가. 교인들이 생기더라도, 평일 내내 카페에서 노동해야 하는 목사가 언제 교인들을 돌볼 것인가가 문제이다.” 이는 그들 스스로도 엄청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고백일 뿐만 아니라, 일주일 내내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목사(?)’가 어떻게 영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카페 교회라는 발상 자체가 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인데 그러면서도 영적인 면을 논하고 있으니 이 역시 해 아래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돈을 버는 것과 영적인 일을 동시에 이루려고 하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경시하게 됨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셨다. 커피를 내리며 돈을 벌다 보면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경시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께 부름받은 목사는 평소에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성도들을 세심하게 양육해야 하는데, 카페에 들락거리며 노닥대는 손님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하기만 하다. 그들은 불가능한 일을 해 보겠다고 나선 영적 철부지들이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카페 교회는 “교회놀이”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 교회의 교회놀이가 세속적으로 더 “진화”한 것이 “카페 교회”라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이 나라의 제도권 교회들의 타락이 갈수록 더 심화되어, 외국처럼 ‘맥주 집’을 교회라고 부르거나, 보드카와 위스키 등 독주를 파는 가게에서 예배를 드려야 더 자연스러운 대화의 장이 될 수 있다며 미혹하는 자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에나 하나님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고 영적인 일을 흉내내려고 하는 자들로 인해 교회들은 타락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그들은 그들이 성경에서 도둑질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게 끝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 주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아니하리라』(출 20: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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