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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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과 “가난한 자들” (시편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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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09월호>

시편 10편은 “가난한 자들”을 박해하는 “악인”에 관한 시로, ① 고난의 때에 구원하시지 않는 주님께 드리는 간구(1절) ② 악인(2-11절) ③ 심판을 위해 일어서 주시라는 간구(12,13절) ④ 주님의 심판을 믿고 신뢰함(14,15절) ⑤ 왕이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그분의 응답에 대한 확신(16-18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난한 자”가 처한 상황은 매우 급박하나 주님의 구원은 아득히 먼 듯하다. 『오 주여, 어찌하여 주께서는 멀리 서 계시며, 어찌하여 고난의 때에 숨으시나이까?』(1절) 여기서 『고난의 때』는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인 『대환란』(마 24:21)이다. 1절은 대환란 때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드리는 기도이다. “주께서 멀리 서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며, 고난 중에 나타나시는 도움이시라.』(시 46:1)는 말씀과 대조된다. 자기 백성의 고난을 멀리 서서 보고만 계실 분이 아닌데 당장 손을 쓰지 않으신다면, 거기엔 분명 어떤 목적이 있고, 그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찌하여 주께서는 멀리 서 계시나이까?” 그러나 주님은 초림 때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서 계셨고,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셨다. 『그 명절의 가장 큰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씀한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르리라』(요 7:37,38). 그러나 그들은 이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곧 『임마누엘』(마 1:23)로서 그들과 함께 서 계실 때 그들은 그분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스테판이 『그 의로우신 분』(행 7:52)에 관하여 증거할 때에도,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는 말에 귀를 막고 그를 죽여 주님을 민족적으로 다시 거부하고 말았다. 그들 가운데 서 계셨던 주님과, 그들에게 다시 오시려고 셋째 하늘에 서신 주님을 거부한 그들이, 대환란 때 “어찌하여 주께서는 멀리 서 계십니까?”라고 애원한다.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 계실 때 찾고 또 찾았어야 했다.

성도의 고난은 자신이 멀리했던 하나님을 가까이 계시게 하고픈 열망을 낳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찾을 만한 때에 주를 구하고 가까이 계실 때 부르지 않는다면(사 55:6), 우리의 죄로 인해 멀리 서 계실 때 “어찌하여 주께서는 멀리 서 계시나이까?”라고 말해야 할 때가 오게 된다. 가까이 계실 때 주님을 찾으라!

『악인이 그의 교만함 가운데 가난한 자를 박해하오니 그들로 자기들이 고안한 꾀에 빠지게 하소서. 이는 악인이 자기 마음의 욕망을 자랑하며 주께서 미워하시는 욕심 많은 자를 축복함이니이다』(2,3절). 2-11절은 “악인”과 “가난한 자들”의 대립이 전개된다. “악인”은 적그리스도이며, “가난한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 매매를 할 수 없기에 가난하게 사는 환란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게 하더라』(계 13:16,17). 대환란 때의 “가난한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기에 박해와 죽임을 당하게 된다(계 13:15). 적그리스도는 짐승의 표를 받아 부유하게 된 『욕심 많은 자』는 『축복』할 것이나(시 10:3), 표를 받지 않고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가난한 자들”은 저주하고 죽이려고 『그의 강한 자들』을 보낼 것이다(10절). 『그의 강한 자들』은 『잠복』하고 있다가 “가난한 자들”을 생포한 뒤, 환란성전의 제단에서 칼로 “목베어” 적그리스도에게 제물로 바칠 것이다(8-10절, 계 6:9,10; 20:4 참조). 따라서 대환란 때 부유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는 저주받은 사람들의 전형이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의인으로 간주되어 영원한 생명과 함께 주님과 천 년을 통치하는 복을 향유하게 된다. 대환란 때의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다루는 야고보서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택하시어 믿음 안에서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그 왕국의 상속자들로 삼으신 것이 아니냐?』(약 2:5)라며 이 점을 분명히 계시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딤전 6:6-8)고 말씀하신다. 부유하게 되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이 교회 시대나 대환란 때나 분명 저주의 대상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이며, 이것을 욕심내는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찌르게 된다(딤전 6:10). 대환란 때에는 짐승의 표를 받고 지옥으로 간다. 하나님의 사람은 불확실한 재물을 신뢰하지 말아야 하며, 오직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딤전 6:11,12,17).

시편 10편에는 “악인” 곧 적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 두 번 제시된다. 첫째는 6절이다. 『나는 요동치 않을 것이며 나는 결코 불행에 처하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의 『나는 요동치 않을 것이며』라는 말은 “번영 가운데”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내가 번영 가운데 말하기를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시 30:6). 그렇다면 시편 10:6은 이스라엘을 박해함으로써 “번영”을 누릴 적그리스도의 말이 된다. 또 『나는 결코 불행에 처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와 연합한 로마카톨릭의 호언장담과 직결된다. 『나는 여왕으로 앉아 있고 과부가 아니로다. 그러므로 내가 결코 슬픔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계 18:7). 이로써, “막대한 부”로 “자만”에 빠져 있는 적그리스도의 말은 결국 로마카톨릭과 연합한 한 “번영한 교회”를 보여 준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이 “라오디케아 교회”의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는 말은 적그리스도의 『나는 요동치 않을 것이며 나는 결코 불행에 처하지 아니하리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배교한 교회들과 적그리스도의 마음은 한 마음이다. 그들은 교만하고(시 10:2,4), 육신적인 땅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3절), 부자들을 축복하고(3절), 하나님을 찾지 않고 모든 생각에 하나님이 아닌 쾌락이 있으며(4절), 그 입에는 저주와 기만과 사기가 가득하고 혀 아래에는 해악과 허영이 있다(7절).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모함하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5). 성경에 따르면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교회들은 “적그리스도의 교회들”이다!

둘째는 11절이다. 『그가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숨기시나니 결코 그것을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적그리스도의 이 말은 본문 1절의 남은 자들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오 주여, 어찌하여 주께서는 멀리 서 계시며, 어찌하여 고난의 때에 숨으시나이까?』 이 본문 1절은 그들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남은 자들의 기도인 반면, 11절은 이스라엘을 박해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으셨기에 그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적그리스도의 말이다. 13절에서 그는 『주는 그것을 문책하지 않으시리라.』고 말하고 있다. 적그리스도의 이 말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관계를 끊으셨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배교한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고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로서 그들의 자리를 취했다는 신학을 따르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은 그들의 버림받음으로 인해 교회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구약의 약속들을 영적으로 교회에 적용시키고,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만을 가르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믿지 않는다(렘 23:3, 롬 11:2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관계를 끊으셨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 신학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신학”이다. 오늘날 교회들의 강단과 신학교에서, 또 기독교 출판물들에서 유대인을 위한 천국은 없고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만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배교한”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신학”을 배움으로써 이스라엘을 박해할 “그들의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살후 2:3,4).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믿고 그들의 화평을 위해 기도한다(시 122:6). 주님께서는 『이 나중 집의 영광이 먼저 집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곳에 내가 화평을 주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학 2:9)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화평”에 관한 한 가지 사실에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를 두 번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에 임할 화평은 확정된 사실이다. 참된 교회는 이스라엘을 박해할 적그리스도를 기다리지 않고 예루살렘에 화평을 가져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오 주여, 일어나소서. 오 하나님이여, 주의 손을 드소서. 겸손한 자를 잊지 마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경멸하나이까? 그가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주는 그것을 문책하지 않으시리라.” 하였나이다』(12,13절). 이제 남은 자들은 기도한다. 주께서는 악인이 이스라엘을 박해하는 것을 분명히 보셨으며, 그 해악과 악의에 대해 주의 손으로 직접 갚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14절). 그들은 『악인과 사악한 자의 팔을 꺾으소서. 그의 악을 남김없이 찾아내소서.』(15절)라는 분명한 바람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은 스카랴 11:17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양떼를 버려 둔 우상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칼이 그의 팔과 그의 오른눈에 임하리니, 그의 팔은 바싹 마르고 그의 오른눈은 완전히 어둡게 되리라.』 적그리스도는 팔 불구자가 될 것이고, 그의 오른눈은 완전히 멀어 버릴 것이다. 『팔』은 군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겔 30:21,24), 주님께서 “영원하신 왕”으로서 “재림”하실 때 적그리스도의 군대 역시 팔이 꺾이듯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재림” 문맥인 본문 15,16절이 분명히 밝혀 준다. 『악인과 사악한 자의 팔을 꺾으소서. 그의 악을 남김없이 찾아내소서. 주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며, 이방이 그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그의 땅』은 『주의 땅』(왕상 8:36)이다. 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방이 멸망하는 것은 대환란 끝에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께서 “재림”하실 때이다. 이방은 아직도 팔레스타인 땅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을 대적해 싸우고 있다. 주께서 셋째 하늘의 보좌에서 일어나 그 땅에 재림하시면 거기서 이방을 멸하시고 그분의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주여, 주께서 겸손한 자들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주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예비하시고 주의 귀를 기울이시리이다. 아비 없는 자와 압제당하는 자에게 공의를 행하셔서 땅의 사람이 다시는 압제하지 못하게 하소서』(17,18절). 남은 자들의 기도의 요지는 『땅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가 다시는 그들을 압제하지 못하게 해 주시라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주님은 그렇게 해주실 것이다. 『그 악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께서 그를 자기 입에서 나오는 영으로 소멸하시고 그의 찬란한 오심으로 제거하시리라』(살후 2:8).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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