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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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목사가 행하는 가짜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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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8월호>

지난 호에서는 김기동 목사의 비성경적인 신유론을 살펴보았다. 계속해서 김기동 목사가 “복음중재”에 있어서 “이적”과 “언어”의 위치에 대해서 가르친 부분들을 살펴볼 것이다. 오류에 빗대어 성경을 살펴봄으로써 실제적인 연구가 되길 바라며, 거짓 교리를 판별하는 독자들의 영적인 판단력이 한층 더 향상되기를 바란다.
I. 김기동 목사의 ‘복음 전파’ 수단 - 가짜 이적
『기독교는 이적의 신앙입니다(p.985). 성경에 있는 모든 이적은 지금도 똑같이 일어납니다(p.987).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직접 듣지 못했지만, 이적을 통해 그의 말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때 하신 말씀을 믿는 사람은 그때 듣는 것과 동일한 이적을 경험하게 된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히 13:8). 하나님의 현재성을 증명하는 것이 이적이다. 이적의 시대는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p.988).1)
은사주의자들처럼 김기동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일하시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현재에도 이적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우 단순하며, 단순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그러면 왜 이런 이적이 나타나야 하는가?
『반면에 참 이적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다(베아 18.43)(p.986). 이적이 없는 전도는 하나의 이론 전개에 불과하지만 이적이 따른다면 하나님의 사심을 보여 줄 수 있다(베아 16.20)(p.985).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이적과 능력이 따른다. ... 그러므로 복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표적이 따라야 한다(p.995. 주 295). 만약 내게 이적이 따른다면 이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신의 것이다. 이적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하신 것이다』(베아 17.44)(p.987. 주 278).
김기동 목사는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로 이적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동 목사는 왜 5초도 못버티고 거짓으로 드러날 말을 버젓이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사역을 보라. 김기동 목사는 한 번도 성경의 이적들을 일으키며 복음을 전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5,000명과 4,000명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먹이셨고,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셨으며, 물 위를 걸으셨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 또한 예수님은 문둥병자들과 중풍병자들과 소경들을 고치셨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 김목사에게 묻는다. 김기동 목사는 물 위를 걸어 보았는가? 문둥병자를 고치며 복음을 전한 적이 있는가? 죽은 자를 살리며 복음을 전했는가? 단 한 번도 없다. 만약 확실히 있다고 대답한다면 다음에는 될 수 있으면 많은 죄인들이 지켜볼 수 있는 야외에서 공개적으로 이적들을 일으키며 복음을 전파해 보라!
김기동 목사가 실제로는 이적들을 행할 수 없으면서 이적들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교회가 예수의 큰 능력을 전해 주었더라면 오늘날 더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적은 현실에서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현실에서 이적을 만들어내기 위함입니다(pp.986,987). 교회에 이적이 풍성하면 사람이 몰려오고 구원받는 자가 폭발적으로 능가할 것이다. 모든 교회가 능력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도 두려워할 것이다』(베아 16.20)(p.986. 주 275).
실제로 김기동 목사가 이적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교회 회원수를 증가시키기 위해서이다. 또한 교인들의 현실에서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안으로 이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에 일어났던 이적들을 김기동 목사를 비롯하여 그 어떤 은사주의 목사들과 부흥사들도 행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적들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여야 교회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이적과 기적
성경에서 “이적”(wonder)은 놀라운 일, 기이한 일, 초자연적인 일, 혹은 기적을 일컫는 용어이며, 주로 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그들을 위한 그분의 말씀과 뜻에 대한 증명, 곧 표적으로 주시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이적과 기적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속하시는 하나님, 바로 그분의 뜻과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서 처음으로 성경에 쓰였다(출 3:20; 7:9, 신 11:3). 이집트의 파라오왕과 그의 백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의 손길을 보이신 것이 바로 이 이적들과 기적들이다(출 15:11).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은 그 시작부터 모세의 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적들과 기적들을 보고 시작하였으며(출 4:8,9; 7:3; 8:23; 10:1,2),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에는 마땅히 이적들과 기적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고전 1:22).
따라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시는 유대인 메시아 또한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예언하셨기 때문에(신 18:15-18), 예수님은 마땅히 이적들과 기적들로 그들에게 찾아오셔야만 하는 것이다(마 12:28, 요 4:48). 또한 예수님의 유대인 사도들이 유대인의 경륜 속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할 때 그 말씀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적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막 16:17,20, 행 2:22,43, 고후 12:12, 히 2:4). 쉽게 말해서 이적들과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한 역사를 일으키실 때 사용하는 표적이다. 2) 그러면 유대인의 경륜이 끝난 이후의 교회 시대를 사는 이방인들인 우리에게 이적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기동 목사와 같은 자는 어떤 자인가? 성경이 예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미혹하는 자요 거짓 선지자이고 마귀의 일꾼이며 장차 적그리스도의 사역을 예비하는 자일 뿐이다(마 24:24, 살후 2:9, 계 13:3).
II. 김기동 목사의 ‘복음 전파’ 수단 - 적극적인 언어
이제 김기동 목사가 말하는 “복음중재”에 있어서 언어에 대해서 다뤄 보자.
『복음중재로서 언어는 중요합니다. 언어는 사람들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복음을 운반하는 최고의 수단입니다』(p.1042).
복음이 언어로 전파되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가 되는 점은 김기동 목사가 말하는 “복음중재로서의 언어”는 단순히 언어 사용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다음을 보라.
『신앙의 언어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베아 14.48)(p.1049. 주 380). 우리는 믿음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신앙의 언어는 항상 적극적이어야 합니다(행 4:19). 믿음의 언어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합니다』(p.1049).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김기동 목사가 말하는 “복음중재로서의 언어”는 쉽게 말해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따른 복음 전파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진리는 부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 반드시 설명되어야 할 진리 중 부정적인 부분들이다.
1. 당신은 죄인입니다(롬 3:23; 5:12).
2. 당신은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롬 6:23, 히 9:27).
3. 사망 다음에는 불타는 지옥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막 9:44, 마 25:41).
4. 인간적인 노력이나 행위나 종교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행 4:12, 롬 4:5, 갈 2:16, 딛 3:5).
5.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 때문에 피흘려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셨습니다(히 9:22, 고전 15:3,4).
위의 1,2,3,4항의 부정적인 진리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5항의 긍정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혹자가 적극적인 사고 방식과 긍정적인 언어에 근거하여 1항에서 4항까지의 진리들을 말하지 않고 5항의 진리만을 말한다면, 죄인이 심판과 지옥으로부터의 실제적인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김기동 목사처럼 복음 전파에 있어서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죄인을 잠시 교회로 끌어들일 수는 있어도 종국에는 그를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다. 김기동 목사가 적극적인 언어에 대해서 무엇이라 주장하는지 살펴보자.
『믿음의 언어는 훌륭한 신앙을 만든다. 사람의 말을 듣고 그의 믿음을 진단할 수 있다. 부정적인 말을 쓰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신다. 하나님의 관심을 끌자.’는 믿음의 언어만을 사용해야 한다(베아 14.48)(p.1047). 적극적인 언어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언어를 사용하라는 말은 축복하라는 말입니다』(p.1049).
김기동 목사가 이렇게 적극적인 언어 사용을 가르치는 것은 대개의 은사주의자들이 그러하듯이 그 또한 “적극적인 사고 방식”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이 적극적인 사고 방식은 노만 빈센트 필, 로버트 슐러, 조용기 등에 의해서 널리 유포되었으며,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축복 신학”(Prosperity Theology)으로 변질시켰으며, 죄와 악과 거짓 교리들과 이 악한 현 세상에 대해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최근에 출간된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 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성>,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등이 같은 신학사조의 책들이다. “긍정”과 “축복”과 “성공”의 신학을 전파하는 것은 사람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어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다. 악과 거짓과 부정을 다루지 않고서 긍정과 하나 됨을 말하는 것은 일종의 뉴에이지 사상이다. 이 “긍정의 신학”에 중독되면 영화와 온라인 게임과 환타지 소설 등에 중독된 사람처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생의 험난한 길을 성경적인 믿음으로 헤쳐 나갈 수 없다. 차갑고 무섭고 괴로운 현실을 잊게 해줄 긍정과 축복과 성공을 전하는 설교와 예배만을 중독적으로 찾게 되며, 더욱 교회 의존적으로 살게 되지만 후에는 더 큰 두려움과 패배의식과 공허함이 찾아올 뿐이다. 김기동 목사와 조용기 등과 같은 은사주의 목사들의 “긍정의 신학”은 나약한 교인들의 헌금을 받고 파는 “회중의 아편”인 것이다.3)
인간과 세상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
성경에 나타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교리는 부정적이다. 하나님의 경륜들에 있어서 창세기 3장부터 계시록 20장까지는 인간 실패의 역사이다. 이때부터 사탄이 이 세상의 신으로 재림 때까지 통치한다(고후 4:4). 죄인인 인간은 영이 죽은 채로 불순종과 진노의 자녀로 곧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요 8:44, 엡 2:1-3). 이 땅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인간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창 3:18). 인간은 영생을 잃어버리고 죄의 대가로 저주받은 땅의 흙으로 돌아간다(창 3:17,19).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인간의 인생은 수고로 가득 찼으며, 그러므로 인간은 고생하려고 태어난다(욥 5:7). 인간은 그의 마음, 생각, 상상, 행동, 입, 혀, 발, 손 모든 것이 악하다고 말씀한다(창 6:5, 롬 3:10-18).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없으며(롬 7:18), 그 육신의 몸은 죽고 썩을 것이다(롬 7:24).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셔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데려가시면 이 세상의 국가들은 모두 적그리스도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며(계 17:15-18), 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UN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2억의 군대를 준비할 것이다(계 9:16; 16:13-16; 19:19). 천년왕국이 지나서도 곡과 마곡은 풀려난 사탄과 함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예루살렘을 둘러쌀 것이다(계 20:8).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백보좌 심판에서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계 20:9-15).

인간 언어의 한계
인간의 언어는 발화자의 인격과 의지와 능력과 생명에 따라 그 성취의 여부가 결정되며, 또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제재를 받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자.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을 가지셨다(출 34:6). 그러므로 그분께는 거짓이 없으시다(민 23:19). 또한 하나님의 의지는 확고하시며(사 46:10, 겔 12:25,28), 그분의 능력은 무한하며(렘 32:27) 그분의 권위는 모든 물리적, 영적 세계들을 주관하고(시 89:6-9, 사 43:10-13),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하시다(시 90: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나 진리로 믿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는 말씀이 성립하는 것이다(창 1:3).
반면에 “긍정의 신학”에서 가르치는 긍정적인 언어 사용은 사실은 인간의 내면의 힘에 근거를 둔다. “긍정적인 언어” 아래에는 “정신 마법”이 있고, 그 기저에는 “자아 신격화”가 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의 인격은 불경건하다. 인간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그 생명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 즉 인간의 말의 능력은 인간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제한받는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사도요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도 바울조차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고후 12:11, 고전 15:10)라고 고백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언가 되는 줄로 생각하면 그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갈 6:3).

결론적으로 김기동 목사의 이적과 긍정적인 언어를 통한 “복음중재”는 죄인들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저주받게 하는 거짓 교리들이다. 또한 김기동 목사가 가르치는 이적과 긍정의 신학은 그의 추종자들이 성경적인 지식과 믿음으로 현실의 문제들을 타개하지 못하게 하고, 단지 기만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허상과 허위의 순간적인 위로만을 줄 뿐이며, 그의 추종자들을 성락교회에 붙들어 매는 것 이상의 가치가 없다. 냉정히 평가할 때, 김기동 목사는 신약 교회의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성경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들을 일으키며 자신의 말로 축복을 가져온다 하는 현대의 샤만(Shaman)이다. BB
주석)------------------
1)본 연재에서 제시되는 김기동 목사의 주장은 다음 책에서 인용된 것이다. 김기동, <하나님의 의도 베뢰아 원강> 본강, (서울: 베뢰아, 2005)
2)성경에서 “이적”(wonder)이라는 용어는 출애굽기 3:20부터 요한계시록 13:13까지 총 65회 사용되며, 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신 일들이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48회,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일으키는 이적으로서 8회, 이방인 개인 혹은 이방 민족과 관련하여 3회, 나머지는 자연과 우주, 예언, 개인과 관련한 하나님의 역사의 의미로 쓰였다.
3) 기독교계 내의 “성공의 복음,” “축복 신학,” “긍정적인 사고 방식”의 거짓 교리들에 대해서는 도서출판 포도원에서 출간한 데이브 헌트의 <기독교 속의 미혹>을 참조하라. 제1장 성공과 마법, 제2장 현대의 위장된 이교주의, 제6장 미혹의 뿌리, 제8장 능력에 대한 미혹, 제9장 샤머니즘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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