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락교회 분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부정하는 김기동 목사의 거짓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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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7월호>

1997년 3월 어느 날 나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을 알고 그분을 구세주로 영접했다. 구원받은 이후 나의 생활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하루하루의 삶을 성경에 비추어 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연약한 육신이기에 죄를 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구원은 영원하다고 말씀하셨기에 죄에서 돌이켜 말씀의 물로 씻고 다시금 주님께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셔서 나를 데려가시리라는 소망을 확신하며 살고 있다.
이런 소망 가운데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데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의 <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이라는 책에는 구원의 확신에 관해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거짓 교리가 버젓이 가르쳐지고 있기에 성경으로 조명하여 바로잡고자 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는 완전한 속죄에 대한 약속을 가진 자로 그 날에야 우리가 받은 속죄가 완전한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스스로 타락해 버린다면 어찌할 수 없습니다.”(p.73)

완전한 속죄 완전한 효력
어찌할 수 없다니 무얼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의 말은 완전한 효력을 갖기 전에 스스로 타락하면 효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는 완전한 속죄를 다른 곳에서 구속, 구원, 영접 등 여러 가지 말로 복음을 믿고 구원받는 것처럼 곳곳에서 말하지만 정작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위 자신이 말한 ‘완전한 속죄’를 무효로 만들고 마는 것이다. 그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김목사가 ‘완전한 속죄’나 ‘완전한 효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성경이 말하는 속죄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죄로 인해 해마다 황소들과 염소들을 잡아 희생제물로 드려야 했다. 그래서 죄는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죄 자체를 없앨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는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히 10:4)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구속은 단지 죄를 가리는 구약에서의 죄의 용서함(출 34:7)과는 같지 않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해 놓으신 구속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단번에 이루신 속죄인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의 피(행 20:28)이므로 영원히 이뤄진 속죄로써 완전한 구속인 것이다.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히 10:12,14).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로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려주신 보혈에 근거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개인의 구원은 그가 믿을 때 그 즉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보혈을 거부하면 그는 지옥에 가는 것이다(요 3:18). 그리고 그가 구원받았다면 이제 더 이상 사망에 매여 있지 않게 된다. 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한 번 죽는 것은 인간에게 정해진 것이다(히 9:27). 그러나 설령 그가 죽는다 할지라도 사망에 매여 있지 않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고전 15:22).

그날 김목사가 말하는 그 날을 성경적으로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날은 복된 소망이다(딛 2:13).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마지막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어느 한 날 하나님께서 큰 호령으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한 순간에 변화된 몸을 입게 될 것이다.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 3:21).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은 그분이 부활하셨을 때의 몸으로서 빛나는 몸이며 벽을 뚫고 지나가는 능력을 가졌고(요 20:19)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셋째 하늘에 갔다가 다시 올 수 있는 몸(요 20:17)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와 공중에서 만나기 위해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 구원 티켓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을 만나러 올라가는 것이다. 절대로 구원 티켓은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타락
김목사는 타락을 어떤 의미로 쓴 것인가?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에게 말하는 타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빌 3:14)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이 단어는 믿음을 저버린 신실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용되며 타락은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날 때 시작된다.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다. 또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나...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요,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첫째,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며(요일 1:9), 둘째, 유업과 상이 없어지고(고전 6장), 셋째, 이 땅에서의 수명이 짧아진다(고전 5:5). 그러하기에 우리는 즉시로 주님 앞에 자백하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편 김목사는 그의 저서에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짓 교리를 정당화시키는 데 인용구절로 히브리서 6:1-6을 들고 나왔다(p.106).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의 기초를 떠나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하리니, 죽은 행실들에서 회개함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침례들과 안수함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리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실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만약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
성경 해석에 있어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 세 곳이 있는데 마태복음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이다. 각각 구약에서 신약으로, 유대인에서 교회로, 교회 시대에서 환란 시대로 넘어가는 경륜을 다룬, 즉 과도기적인 책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세 책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경륜이 복합되어 나온다. 그래서 위 본문 히브리서에서는 교회에 적용되는 구절이 있는 반면 대환란 시대, 즉 그리스도인들이 휴거되고 난 이후 지상에서 벌어지게 될 전무후무한 대환란에 적용되는 구절이 나오게 된다.
본문을 살펴보면 젖을 먹는 상태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 사람들이 나온다(1절). 그는 이미 기초를 놓았던 사람으로 다시는 그 기초를 놓지 말라고 명령받는다(2절). 그는 이 일을 진행해 나아갈 수도 있고 나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3절). 만약 그가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막을 수 없는 어떤 일이 생긴다(6절). 그때 그는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도 없고, 오히려 버림을 당할 것이다.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서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기 때문이라』(8절). 이 사람들은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데 본문의 내용은 분명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말하는 바울 서신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이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김기동 목사가 주장하듯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칼빈주의자 및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은 바울 서신과 대치되는 이러한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영적으로 해석해 버리고 만다. 본문을 잘 본다면 이 서신서의 대상은 구원받은 히브리인들이고, 구원은 받았지만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비록 “성령의 동참자”가 되었을지라도 끝까지 견딤으로써만이 “그리스도의 동참자”(히 3:14)가 될 수 있다. 그는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보았는데 그 세상은 사도들의 표적과 이적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는 멸망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 그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고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을 되찾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불타는 심판이 그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를 향한 영적 적용이 아무리 많아도 본문은 교리적으로 교회 시대를 뛰어넘은 다음 경륜 즉 대환란 시대에 적용되는 것이다. 환란 시대에는 모든 것이 유대인을 중심으로 다루어진다. [히브리서에는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히 3:6,14; 4:1; 6:1-6; 10:26; 12:14)는 구절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는 김기동 목사에게는 너무나 소화시키기 어려운 “단단한 음식”이다. 히브리서 저자가 왜 6장을 기술하기 전에 5장 마지막 부분에서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사람을 다루고 있겠는가? 성경적 교리는 확고한 진리이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군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게 만든다. 거짓 교리는 마귀의 교리이다. 마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처하는 김기동 목사는 마귀에게 속아 마귀의 교리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김기동 목사는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바르고 확실한 진리의 말씀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말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수 없느니라』(요 10:28,2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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