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락교회 분류

마귀들의 교리로 무장된 베뢰아 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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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5월호>

성경의 다른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마귀론에 대한 부분도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진영과 마귀의 진영이 싸우는 영적 전쟁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던 마귀는 역사 이래로 수많은 세력들을 일으켜 하나님의 진영에 지속적인 공격을 해 왔다. 때로는 마귀가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그의 수하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또는 그가 부리는 마귀들 혹은 악령들을 통해서 공격한다. 따라서 마귀의 세력에 관한 부분들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쉽사리 당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마귀의 편에 서서 싸우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마귀들” 또는 “악령들”에 관한 부분은 민감하면서도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제이다. 그도 그럴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나 구원받지 못한 자연인들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하여, 그의 정신 상태를 혼미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육체에도 압력을 가하여 특별한 현상들을 연출하고, 또 그러한 마귀들이 물러나는 것도 매우 특별한 신비적 현상을 동반하기에 아무래도 두드러지게 관찰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비성경적인 이론들과 신비적·무속적 체험들을 바탕으로 거짓 교리를 전파하는 자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마귀가 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자가 바로 김기동 목사(성락교회, 베뢰아 아카데미)이다. 방언과 치유와 “축사”(소위 귀신을 쫓는다는 것)는 은사주의자들에게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었지만, 특별히 김기동 목사는 귀신에 대해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은 불신자의 사후”라고 해석함으로, 우리 나라 전통 무속신앙과 밀접한, 그야말로 토속신앙의 형태로 귀신론을 정립시켰다.
그가 이렇게 가르치는 데에는 한글개역성경도 한 몫을 했다. 일단 개역성경에서는 “마귀들”에 해당하는 “devils”를 모두 “귀신”으로 번역했다. 이를 “귀신”으로 번역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에 대한 헬라어는 ‘다이몬’인데, 이는 사탄 마귀를 뜻하는 헬라어 ‘디아블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이면 ‘다이몬’을 “귀신들”이라고 번역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말의 “귀신”이란 용어는 분명히 “죽은 자의 사후 존재, 죽은 자의 혼백”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헬라어 ‘다이몬’은 수많은 군소 악령들로서의 마귀들을 뜻한다. 다시 말해 ‘다이몬’은 분명히 “귀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김기동 목사가 가르치는 마귀론, 또는 귀신론의 핵심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귀신들린” 8,000명을 대상으로 축사를 한 결과를 데이타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다섯 명을 제외한 7,995명에게서 “나는 죽은 ○○의 영혼이다.”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김기동, 마귀론, 베뢰아, 1988, p.216.
“어떻게 귀신이 되었지?” “예수 안 믿어 그렇지.” / “왜 사람에게 들어왔나?” “얻어먹으려고 왔다.” / “이 사람과 무슨 관계인가?” “친척이다.” /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을 했나?” “죽이려고 했다. 병들게 하고 고생시키려고 했다.” / “어떻게 죽은 귀신이냐?” “병들어 죽었다.” “자살했다.” “사고로 죽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일련의 체계(?)를 잡을 수 있는데, 그것은 귀신은 반드시 수명을 다해 죽지 않고 사고로 죽었다는 것, 귀신은 주로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들어간다는 것, 귀신은 그 사람을 죽이거나 괴롭힌다는 것 등이다.
수명을 다하지 않고 죽었다는 것은, 창세기 6:3에서『그래도 그의 날들이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는 말씀을 증거로 드는데, 즉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은 평균잡아 120년인데,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그 수명을 다 채우기까지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다가 흑암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120살까지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노아 홍수 이후의 인간의 수명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하고, 모세의 시에 따르면 인간의 기본 연수는 70-80살이다(시 90:10). 현대에도 의학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50-60살이 정상적으로 늙어 죽는 연수였다. 120살이 인간의 연수라 하는 것은 “평균치”를 말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너무 차이가 난다. 그러면 그들이 모두 120살이 될 때까지 귀신이 되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 늙어 죽은 사람은 말고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만 귀신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창세기 6:3에서 “일백이십 년”이라는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홍수의 심판을 계획하신 후부터 홍수를 내릴 때까지의 기간, 즉 홍수 때까지의 유예 기간이다. 김기동 목사는, 창세기 5:32에서 노아가 500세가 되어 아들들을 낳았고, 홍수가 난 것이 노아가 600세 때니까, 방주를 짓는 것이 120년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하지만, 어디 성경에 노아가 500세 때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다고 말씀하셨는가? 창세기 6:3은 연대기적으로 5:32의 다음 사건이 아니다. 5장은 단순히 족장들의 연대와 족보를 기록해 놓은 것이고, 6장은 그 중 노아 때의 한 사건을 크게 기록해 놓으신 것뿐이다. 창세기 6:3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심판을 구체화시키시고, 120년 동안 유예 기간을 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귀신론에서 이처럼 처음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김기동 목사는, 그 귀신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질병을 야기시키는 것, 죽게 하는 것 등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성경에도 악령들의 역사로 질병에 걸린 경우들을 말씀한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닌데, 김목사는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도 질병이 있었으니 귀신 들린 것이고(고후 12:7), 디모데도 위장병이 있었으니까 귀신이 들린 것이 된다(딤전 5:23). 그러면 귀신을 쫓아야지 왜 포도주를 권했는가? 포도주에 귀신을 제압할 만한 어떤 신비적인 힘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또한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그 질병에 대해서 “사탄의 사자”라고 말했으니 그것을 귀신이라 할 텐가? 그렇다면, 바울은 그 병에 대해서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바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지 않으신 것인가? 바울에게는 은혜가 충분하니 그 정도 귀신은 달고 다녀도 된다는 말인가?

여기에 한 술 더 떠, 귀신들리는 과정까지 살펴보면 성경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귀신은 어떤 사람에게 들어와서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의 중간, 신경 계통에 들어와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일을 합니다...” Ibid. p.169

이 말은 마귀 들려 눈먼 자, 벙어리 된 자 같은 현상을 보고 하는 말 같다. 즉 어떤 사람이 눈 멀고 벙어리가 되었다면, 눈먼 귀신이 들어오고 벙어리 된 귀신이 들어온 것인데, 그들이 들어와서 눈을 멀게 하고 벙어리를 만드는 것이므로, 그들이 신경 계통에 작용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구조를 이렇게 본다는 것 자체가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성경에서 인간의 구조는 3중적 구조, 즉 영과 혼과 몸이다(살전 5:23). 구원받은 사람의 경우 죽었던 영이 살아나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며, 혼은 자의식으로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며, 몸은 실제로 세상과 접하여 움직이는 부분이다. 그 외에 관절과 골수(히 4:12)니, 피와 살(히 2:14)이니, 살과 뼈(눅 24:39)라는 말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몸을 이루는 부분일 뿐이다. 이 구분에 따르면 신경 계통도 몸에 해당되는 것이지, 그의 말처럼 “영혼과 육체의 중간”이 아니다. 그런 말은 성경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이며, 오직 마귀들의 교리에 미혹된 자들에게서 나온 이상한 이론일 뿐이다.
성경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정신적이고 영적인 활동이 모두 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뇌는 사람을 통제하는 주요 기관이고, 이 뇌에서 나오는 신경 계통이 모든 인간 행동들을 지배하는데, 이 뇌도 결국은 단백질 같은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결국은 신경 계통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영적인 모든 현상들을 부인하고 물질적으로만 설명하려고 하는데, 김목사도 어느덧 성경을 거부하는 과학자들에 발맞춰 영적인 현상을 물리적 현상과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단 귀신이 들어오면, 귀신은 그 사람의 신경 계통에 작용하여 그 사람을 병신으로 만든 다음 그 질병으로 죽게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명이 다해 죽은 것이 아니므로 귀신으로 떠돌게 되는데(어쩌면 이렇게 우리 나라 무속신앙과 똑같을까?), 그 귀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들어가면 자기가 죽은 상태, 즉 벙어리면 벙어리로, 소경이면 소경으로, 자살한 사람이면 자살하는 습관으로 그 사람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이쯤되면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 들어가면 물에 빠져 죽고 싶고, 불타 죽은 귀신이 들어가면 불에 들어가고 싶고, 맞아 죽은 귀신이 어떤 부인에게 들어가면 밤낮 남편한테 얻어맞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귀신이 들린 사람은 또 하나의 인격이 들어온 것이므로 그에게는 원래의 자아와 더불어 둘 이상의 인격이 공존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둘 이상의 인격으로 인해 생각이 복잡해지고 갈등이 일게 되는데, 예를들면 원래의 자기 영혼은 “교회에 가자”라고 하지만 이 귀신은 “교회에 가지 말자”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영혼은 선을 행하려 하여도 이 귀신은 죄를 지으려고 한다는 말인데, 여기에 또한 엄청난 오류가 있다.
성경도 물론 내 안에 두 사람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갈등, 또는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갈등이다. 겉 사람은 육신으로서, 나를 죄와 육신의 정욕으로 이끌려고 하고, 속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영으로서, 나를 하나님께 이끌려고 한다. 로마서 7:21-23에서는 이 갈등을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으로 설명한다. 죄의 법은 육신의 지체들 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법은 속 사람을 통해 따르게 된다. 이것을 또한 갈라디아서 5:17에서는 육신과 성령의 갈등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선한 것과 악한 것이 내 안에서 싸운다면 그것은 새 사람과 옛 사람이 싸우는 것이지, 내 영혼과 귀신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귀신으로 적용할 경우, 귀신이 나중에 들어온 것이므로 내 영혼이 옛 사람이고 귀신이 새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러면 새 사람이 악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가? 로마서 7장은 사도 바울이 자기 안에 있는 싸움을 설명하는 것인데, 그러면 바울은 귀신과 내적 싸움을 싸우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싸운 것은 육신과의 전쟁이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이라 하면 주로 마귀와 싸우는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죄의 소욕을 이루고자 하는 육신과 싸우는 것이 우리 안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수없이 육신의 죄악된 요소를 지적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귀신에게만 돌린다면 영적으로 상당히 허점을 보이는 것이며, 바로 그 허점 때문에 악령들이 자기들의 존재를 감춘 채 “귀신”이라고만 속이는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김기동 목사는 “천사의 가변성”이라는 희한한 교리를 전파한다. 즉 사람에게는 돕는 천사가 있는데, 그 사람이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천사가 변해서 미혹의 영이 된다는 것이다. 그 예를 열왕기상 22:19-23에서 하나님께서 한 미혹의 영을 시켜서 아합을 속이는 장면으로 들고 있다. 그의 주장은, 원래 그 미혹의 영은 아합을 돕는 천사였다가 아합이 돌이키지 않자 아합을 속이는 미혹의 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한 영이 자원했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만 하셨을 뿐, 그 영이 원래는 천사였다가 악령이 되었다는 말씀은 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마다 일정한 수호 천사들이 붙어다닌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다. 히브리서 1:14에서는 천사를 가리켜 “구원의 상속자들을 섬기는 영”이라고 제시하지만, 그것이 각 사람에게 해당하는 수호 천사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천사는 필요에 따라 성도들을 도울 뿐이다.
더욱이 한 사람에게 붙어 있는 천사가, 그 사람의 범죄의 정도에 따라 하늘의 영에서 지옥의 영으로 바뀐다는 것이 정상적인 설명인가?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치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셨고, 그에 따라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시어 아합을 속이셨다. 그 뿐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속이신다는 말씀은 에스겔 14:9에도 있지만, 그것은 백성들이 마음에 죄를 품고 선지자에게 나올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자들은 계속해서 죄를 짓게 내버려 두신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죄를 지으면 그렇게 된다(롬 1:28). 하지만 그것이 그를 돕는 천사가 변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이처럼 베뢰아 일파는 귀신론의 근거를 철저히 그들의 경험에 둔다. 8,000명이 아니라 몇 만명을 통해 데이타를 얻었다 해도 마귀가 그 사람들을 속이지 못할 것 같은가? 귀신들이 솔직하게 자기들의 입장을 밝히니 그것을 믿어도 좋다고 누가 말했는가? 이에 대해 그들은 예수님께서 “군대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그 마귀들을 쫓아 버린 사례를 제시한다(막 5:2-13).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앞에 마귀들이 떠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외에 다른 사도들이 마귀들을 쫓을 때 마귀들과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언제 누구에게라도 마귀와 대화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오히려 마귀들과 대화하려는 자들, 초혼하여 대화하려는 마법사들에 대해서는 가증히 여겨, 죽여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귀신을 쫓는다고 하는 자들은 일종의 영매들이다. 영매들이 귀신을 쫓는 장면을 보았는가? 그들도 귀신에게 누구냐고 물어보고 주문이나 어떤 의식을 통해 귀신들을 쫓아 버린다. 지금 베뢰아 일파가 하는 일들은 그 마법사들과 똑같다. 단지 외치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일 뿐인데, 모든 방법이 마법사들과 같으면서 이름만 달리 외쳤다고 해서 그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행 19:13-15)
그들이 “귀신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상은 죽은 자의 혼백이 아니라 “마귀들”이다. “더러운 영들,” “악령들”이라 말해도 좋다. 마가복음 5:12,13은 그 더러운 영들을 곧 마귀들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마귀들은 유일한 존재인 사탄 마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귀의 수하에 있는 존재들로서, 그 마귀의 일을 행한다. 그래서 그들을 마귀들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귀는 분명 능력있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처럼 무소부재하지 않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마귀가 여러 곳에서 역사하는 것과 같은 것은 마귀들이 바로 그 마귀의 일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마귀들려 벙어리가 됐다 하면 어떤 마귀가 그를 벙어리 되게 한 것이다. 미혹의 영이라 하면 어떤 마귀가 그를 미혹했다는 것이며, 점치는 영(행 16:16)이라 하면 점치다 죽은 귀신이 아니라 어떤 마귀가 그 소녀를 점치게 했다는 것이다. 음행의 영이라 하면 간음하다 죽은 자의 귀신이 아니라 사람들을 우상 숭배와 음행으로 이끄는 더러운 영일 뿐이다. 심지어 마귀들은 거짓 교리(“마귀들의 교리”)를 퍼뜨리기도 한다(딤전 4:1). 그러나 이러한 마귀들은 귀신들이 아니다. 이들 마귀들은 어느 사람에게나 들어갈 수 있기에, 또한 그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나은 지식을 가질 수도 있기에 그와 대화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왜 김목사는 그 마귀들에게 속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그에게도 마귀들이 들어 있어 마귀들의 교리로 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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