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기원 및 역사 분류

“다른복음”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5월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계시록의 창녀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카톨릭을 표현하는 데 너무나 거칠고 사랑이 없다고 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제가 비성경적입니까? 살펴보기로 합시다.
성경의 기독교와 로마 카톨릭은 동이 서에서 먼 것만큼이나 교리적으로 다릅니다. 전자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후자는 사람들의 전통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이 타협하지 않고서 어떻게 함께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프로테스탄트들과 은사주의 카톨릭은 성령께서 이들을 함께 끌어 모으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입니까, 아니면 다른 영입니까? 은사주의 카톨릭이 계시록의 창녀를 떠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프로테스탄트를 로마로 끌어들이기 위한 계략입니까?

일부 은사주의 카톨릭에서는 그들이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이후 마리아와 더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로사리오 기도를 방언으로 암송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성경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사람의 고안물입니다.
고린도후서 11:2-4은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키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 나는 뱀이 그의 간계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너희의 마음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부패하여 그같이 떨어져 나갈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또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너희가 받지 않은 또 다른 영을 너희가 받거나 너희가 영접치 않은 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너희가 잘 용납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또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 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에로 인도하시리라. 그 분은 스스로를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일어날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성령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어떻게 그 분이 더 큰 오류로 사람을 인도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이들이여,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다른 영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아닙니다. 사탄은 속임수의 거장이며, 이것은 프로테스탄트들을 창녀의 통제하에 두려는 사탄의 교활한 종교적 게임입니다.
로마가 변했습니까? 사랑하는 이들이여, 계시록의 창녀가 마리아 숭배인 미사를 던져버릴 때, 그들이 로사리오를 던지고 마리아가 예수님처럼 원죄가 없다는 주장에서 돌이켜 회개할 때, 연옥이 엉터리로 꾸며낸 이야기임을 인정할 때, 로마의 사제들(제사장)이 모든 성도가 제사장임을 인정할 때, 계시록의 창녀가 이 모든 일을 할 때에야 비로소 저는 그녀가 변하고 있다고 믿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변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이여, 창녀는 자신의 전술만을 바꾸고 있을 뿐입니다.
그 창녀가 어떻게 자신의 희생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까? 잠언 7:6-10이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내가...우매한 자들 가운데, 내가 보아 젊은이들 가운데 명철이 없는 한 청년을 찾아 냈는데, 그가 거리를 지나 그녀의 모퉁이 가까이 이르러 그녀의 집을 향해 길을 가더라. 땅거미가 지는 저녁 무렵, 어둡고 캄캄한 밤이었는데 보라, 창녀의 옷을 입고 간교한 마음을 지닌 한 여자가 그를 맞으니』 그리고 21,22절, 24-27절을 보십시오. 『그녀가 여러 가지 달콤한 말로 그를 홀리고 아첨하는 입술로 그를 꾀므로 그가 곧장 그녀를 따라가니 수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고... 그러므로, 오 너희 자녀들아, 이제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들을 경청하라. 네 마음이 그녀의 길들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며 그녀의 행로들로 그릇되이 가지 않게 하라. 이는 그녀가 많은 사람들을 상처내어 쓰러뜨렸음이니, 정녕, 많은 강한 자들이 그녀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느니라. 그녀의 집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며 죽음의 방들로 내려가는 길이니라.』

성경은 창녀들의 어미가 왕들과 나라들을 자신의 간교함으로 미혹할 것이며,나라들은 술에 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나라들이 혼란스러우며, 안정이 없고, 방향을 잃고, 창녀에게 쉽게 속아서 정복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그 창녀는 우리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을 속이고 아첨을 해서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며 단지 타락하고 배교한 교회일 뿐이라고 믿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형제들을 이간질한다는 비난을 받고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절의 중간은 왜 생략하는 것일까요?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 구절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의 구원에 관한 가장 위대한 책인 로마서 끝 부분에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피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단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단은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이 충분치 않다고 가르칩니다.
제가 분열을 일으킨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형제들 사이에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분열에 대해서 특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은 믿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성경적 복음을 고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거짓 교리, 즉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서 분리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34-39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그 어머니와,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서로 대적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의 원수들은 그의 가족 중에 있으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찾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로 인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라.』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분리에 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복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한 형제의 말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올바른 관점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사랑과 화합이라는 말이 너무도 큰 호소력을 갖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단어들이 문맥을 벗어났을 때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하기가 너무 어렵다. 진리가 결여된 사랑은 우상숭배와 같다. 타협이란 복음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복음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화합과 진리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화합이 진리에게 양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류 속에서 하나가 되느니 진리에 의해 나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가 가장 중요하며 진리를 붙들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선한 것을 붙잡고 악한 것을 거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 프로테스탄트 시대의 끝이며 곧 초대형 교회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항상 있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우리들은 그 교회를 반대해야 하며, 로마 카톨릭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거기서 나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성경은 에베소서 5:1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관여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책망하라.』 책망이란 그것을 부인하고 견책하고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계시록 18장 6,7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녀가 너희에게 준 만큼 그녀에게 되돌려 주라. 그리고 그녀가 행한 것을 따라 두 배로 갚아 주라. 그녀가 채운 잔에도 두 배로 채워 주라. 그녀가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사치스럽게 산 만큼 고통과 슬픔으로 갚아 주라.』 이 구절은 창녀들의 어미에 관한 구절입니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반격하라고 말하는 곳이 이 곳입니다. 반격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 창녀는 카톨릭에 속한 사람들을 배신해 왔고, 또한 프로테스탄트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창녀가 자기 의로 내세우는 옷을 벗기고 그녀의 더러운 상처와 거짓말과 범죄와 그녀의 손에 묻은 피와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살인적인 의도들을 알려야 합니다. 그 모습이 드러나면 카톨릭에 속한 사람들과 세계는 그녀가 행해온 일들을 보게 될 것이며, 거기서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이킬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전쟁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는 무기를 들고 카톨릭을 뒤쫓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이 어떤 것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혼을 놓고 영적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엡 6:12).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공격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결코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기도를 미워합니다. 우리 주의 이름으로 어둠 속의 세력들에게 권위를 행사해야 합니다. 지옥의 문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사탄이 패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권위를 허락하실 때에만 그는 우리에게 해악을 가하며, 속이고 거짓말하고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온갖 미혹으로 혼란을 가중시킬지라도 주 예수께서 드높여지시면 사탄은 손해를 입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어설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전투에 임하기 전에 항상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창녀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제가 잘못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입장이 인기를 얻지 못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1:10은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BB

전체 108 / 5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