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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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었던 면죄부가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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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4월호>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전 1:9).
로마 카톨릭이 잔인한 짐승의 본성을 슬며시 드러낸 일에 대해 글을 쓰자니 문득 위의 성경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초교파적, 초교리적 에큐메니즘의 조류를 타고 갑작스레 불거져 나온 ‘면죄부 문제,’ 다시 말해 로마 카톨릭이 종교 개혁 이후 최초로 면죄부 문제를 둘러싸고 개신교와 논의를 가졌던 것이다. 개신교 내에서 상당한 반발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우둔하진 않을 텐데, 마리아 숭배나 고해성사와 같은 하고 많은 논점들을 제쳐 두고 하필 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일까? 이를 미 핵잠수함이 일본 해양 실습선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일에 비유할 정도는 아니지만, 먹이감의 상태를 알아볼 겸 의도적으로 한번 툭 건드려 본 것이라는 느낌, 그리고 이렇게 해서 또 다른 거대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할 거라는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다음은 지난 3월 5일자 <크리스챤신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마틴 루터가 부패한 로마 카톨릭에 반기를 든 후 처음으로 교회일치 증진을 위한 로마 카톨릭 협의회가 지난달 9-10일 로마에서 세계‘루터’교연맹(LWF)과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소속 신학자들과 함께 면죄부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회담 후 LWF 총무인 이스마엘 노코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주역이었던 루터는 로마 카톨릭과 면죄부의 힘과 효과에 대해 논의할 것을 요청했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이후 500여 년 동안 면죄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번 회담은 루터의 요구에 대한 첫 번째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논평했다. 현재 면죄부는 로마 카톨릭 신자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못하나, 교황청은 지난 1998년, 신자들에게 로마 카톨릭이 선포한 2000년 희년을 통해 완전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문서를 출판했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위스 등지의 개신교에서 강력한 반발을 일으켰으며 WARC도 이에 동조하여 카톨릭 희년을 위한 에큐메니칼 위원회에서 탈퇴했다. 그러나 LWF 등을 포함한 다른 교회 단체들은 희년 행사에 참여했다.

과거에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를 부르짖으며 종교개혁을 일으켜 시작된 개신교(Protestant)는 현재 그 이름만이 남아 있을 뿐,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그들 위로는 성령의 바람도 불지 않는다(겔 37:9). 그들을 대변해 주던 ‘오직 믿음으로!’라는 서슬 퍼렇던 구호는 녹슬고 무디어진 장검처럼 그 명분이 사라진 지 오래고 온갖 거짓 교리들이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이며 활개치고 있다. 암암리에 전개된 로마 카톨릭의 음모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거짓으로 옷입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00년을 훨씬 웃도는 지금, 마지막 한 방이면 넉아웃시킬 수 있다는 일념으로 두 주먹 불끈 쥐고 찾아 온 로마 카톨릭을 그들은 대면하고 있다. 그렇다. ‘면죄부’ 한 방만 잘 들어가면 모든 것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으로 원상복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집 나간 자식을 ‘어머니’에게로 다시 데려올 수만 있다면, 그 동안에 있어 온 ‘가정의 불화’를 깡그리 잊어버리고서 ‘연합과 일치’의 웃음꽃 피는 적그리스도 세상을 일구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그 한 방을 어떻게 날리냐는 것이다. Bible Believers / 79

보다시피 로마 카톨릭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거의 지워져 가는 그 문제를 끄집어냈다.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비를 얻고 죽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전에 연옥에서의 정화 기간을 견뎌야 한다. 면죄부는 연옥에서의 불확실한 기간을 완전히 탕감해 주거나 기간을 감면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중세 시대에는 카톨릭 신부들과 은행 중개인들이 이 면죄부를 무지한 신도들에게 팔아서 돈을 긁어 모아 부를 누렸다. 이러는 와중에 성경에서 믿음의 교리를 발견한 카톨릭 수도자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즉 개신교가 생기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은 이들을 ‘어머니 교회’에서 뛰쳐 나간 ‘아들 루터’의 후손들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이들의 ‘첫 조상’ 루터와 있었던 ‘면죄부 갈등’을 그의 후손들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며, 그 일환으로 가장 적극적인 접근 자세를 취하는 대상이 바로 ‘루터교’이다. 이유인즉, 만일 이들과 화해한다면, 종교개혁이란 단지 철없는 루터가 인생의 뒤안길에 서 계신 어머니에게 보인 반항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게아니라 위의 신문 기사에서도 보아 알 수 있듯이, 로마 카톨릭은 이 문제를 두고서 우선 루터의 직계 후손인 ‘세계루터교연맹’과 자유주의적 성향의 ‘세계개혁교회연맹’과 논의의 첫 단추를 꿰었는데, 다른 데는 몰라도 이 세계루터교연맹만큼은 이 움직임에 대해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스텝을 조절하면서 조금만 더 잽싸게 들어가면 기가 막힌 루터 컷을 날릴 수 있을 텐데.’
어쨌든 한 방 멋들어지게 들어가서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참된 연합을 위해 한 발짝씩 양보하고 타협할 때 그들의 신(고후 4:4)이 오는 길을 예비할 수 있을 것인즉, 그들은 ‘연합과 일치’를 위해 건설적인 논의를 계속해 나가다가 결국 떠나 왔던 어머니의 품에서 해결을 볼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추단은 그리 섣부르지 않은 듯싶다. 동일 관련 기사에 따르면, ‘이번 회담 참석자들은 면죄부 문제에 대해 대립된 의견을 가지고 있는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가 계속적인 연구를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그녀의 죄들에 동참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도 받지 말라.』(계 18:4)는 하나님의 경고를 안중에도 두지 않은 처사이기에, 우리가 만약 이 말씀, 즉『악인은 자기 자신의 악들에 걸리며 자기 죄들의 줄들에 매이리라. 그는 훈계 없이 죽을 것이요, 큰 어리석음으로 그릇되이 갈 것이니라.』(잠 5:22,23)는 말씀을 믿는다면, 그들의 ‘계속적인 연구’가 궁극적으로 도달할 곳이 어딘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들은 “큰 어리석음으로 그릇되이 갈 것이다.”
근 500년을 묻어 두었던 묵은 ‘김치’를 밥상에 올려 놓았으니 비위가 약한 이들의 외면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한두 번 냄새 맡다 보면 금세 익숙해져 ‘계속적인 연구를 함께 해나가며’ 그냥 먹기도 하고 다른 교리와 섞어 먹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가 바로 그들이 그들의 주가 올 때까지 지켜야 할 만찬이며(고전 11:26), 비단 이 면죄부 문제뿐 아니라 세상적 종교에 관련된 모든 일들이『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그 짐승에게 권세를 준 용』과『그 짐승에게도』 경배하는 날을 향해 발맞춰 나갈 것이다(계 13:3,4).

‘이미 있었던 면죄부가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면죄부가 없도다.’ 그렇다. 로마 카톨릭이 들고 나온 건 새 면죄부가 아니라 이미 있었던 면죄부였으며, 그들은 지금 그것에 대해 논의하자고 접근해 오고 있다. 개신교 측도 면죄부를 팔며 돈을 긁어 모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이유인즉, 그런 건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개신교가 면죄부를 팔지는 않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는 날이 온다면 우린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한번 이렇게 말해 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그래, 바로 그거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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