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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신화 분류

후기 중세 시대의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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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2월호>

우리는 일전에 마리아에 대한 헌신을 가중시키는 데 있어 동방 이교도의 교리가 어떻게 영향을 끼쳤으며, 마리아와 연관된 여러 형태의 숭배의식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를 살펴보았다. 바로 그 무렵에 마리아의 신화는 상당히 중요한 세 가지 개념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죄 없는 마리아와 카톨릭 구원교리에서의 마리아의 역할 증가, 그리고 이른바 “마리아 숭배를 위해 대중화된 거짓 경건”이 그것이다.

죄 없는 마리아
카톨릭 교도라면 대개가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죄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무염시태)를 참된 전통 교리로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분명 이후에 생겨난 것이며,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것은 결코 존재하지도 않았다. 카톨릭 사제인 카르다(J.M. Carda)가 언급했듯이, “성경은 마리아의 역사적인 기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뿐더러, 그녀의 잉태에 있어서도 어떤 특권이 있었음을 뚜렷이 언급하고 있지 않다.” J.M. Carda Pitarch, Oc, p.55.

누가복음 1:28을 펼쳐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선포했던 “케카리토메네”(ke- kharitomene)라는 단어는 단어 그 자체가 나타내듯이 은혜의 충만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적용된 “플레레스 카리토스”(pleres kharitos, 요 1:14과 비교)라는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천사가 그녀에게 전한 말은 단지 축복받은 것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Idem, p.56.

그래서 마리아는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다는 사상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에 없었다는 사실은 이상할 것이 없다. 신약성경에서 사람은『다 죄 아래 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롬 3:9,10)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제외되며 주님은『죄는 없으신』(히 4:15) 분이셨다.
13세기가 지나는 동안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 후에 로마 카톨릭의 박사로 추대되었다.)와 같은 유명한 스콜라 신학자들은 마리아에게 죄가 있음을 믿었다. 아퀴나스는 동료인 프레이 레이날도에게 헌정된 그의 마지막 작품 <브레비스 섬마 드 피데(Brevis Summa de Fide)>에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분명히 마리아는 타락한 본성 가운데 잉태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녀가 타락한 본성이 없는 가운데 태어났다면 그리스도로 인해 그녀는 구원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스도는 전인류의 구원자도 아니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위엄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Chapter CCXXXII bis. Thomas Aquinas, Compendio de Teologia, Barcelona, 1985.


그런가 하면, 둔스 스코트의 노력으로 마리아가 타락한 본성을 갖지 않고 태어났다는 교리가 13세기 말쯤 카톨릭 핵심부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수도회(Fran- ciscan Order)의 조심스러운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 교리는 대체적으로 강요되지는 않았다.
바로 그 수도회의 일원이었던 교황 씩스투스 4세조차 그 논쟁에서 신중하게 거리감을 두고 싶어서인지, “로마 카톨릭과 로마 교황청에 의해 지금껏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DS1426)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마리아가 태어난 지 근 1500년이 지났어도 그녀의 잉태로 그녀의 죄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1439년에 베이슬 공회에서는 “무염시태”(無染始胎)를 교리로 분명히 못박았다. 그 공회가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단절했다는 사실로 인해 그 교리가 그와 같이 받아들여지는 길이 막히기는 했어도 이 새로운 미신의 씨앗이 심겨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해서 미신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 교리는 반종교개혁 기간 중에 살이 붙고 자라나다가 근대에 와서 어엿한 교리가 되어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와 동시에, 그 교리의 이교도적 기원과, 명석하기 그지없는 중세 카톨릭 신학자가 그러한 이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칠흑 같은 베일에 싸여 자취를 감춰 버리고야 말았다.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
마리아는 전혀 죄가 없다고 믿는 경향과 더불어, 그녀를 현세와 내세를 잇는 길로 연결하려는 추세가 점진적으로 일어났고, 13세기 스페인의 수도승인 곤잘로 데 베르케오는 <마리아의 기적들 (Miracles of our Lady)>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구원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있음을 보여 주는 여러 이야기들을 써 놓았다.
이 책은 이후 유럽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므로, 거기에 기록된 “기적들” (Miracles)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면 제2의 기적에서는 “파렴치한 성구실 담당자”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베르케오에 따르면, “거룩한 수도승인 그는 수도원에서 살면서 마음을 다해 거룩한 마리아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그녀의 형상에 매일같이 경의를 표했다.” 이러한 특징 외에 이 수도승의 행동에서 두드러진 것은 간음을 일삼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7의 기적(Miracle VII)에서도 유사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수도승 또한 간음한 자이며, 마리아가 아닌 성 베드로를 숭배하는 자다. 그가 죽자 지옥으로 던져지고, 그곳에서 성 베드로에게 기도해 보지만 자신을 건져 달라고 그리스도를 납득시킬 힘은 없어 보인다. 결국 자신의 아들 곁에 있던 마리아의 중보로 그 수도승은 다시 살아나고, 그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
제11의 기적(Miracle XI)은 창조주를 사랑하기보다는 땅을 더 사랑한 어느 일꾼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는 가증스런 도둑으로 자기 땅의 경계를 옮겨 놓고서는 그곳을 곧잘 자기 땅이라고 우겨 뺏는데, 그에게 한 가지 “선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마리아를 매우 사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에 대한 대가로 죽은 후 마리아에게 도움을 구하여 마귀들로부터 놓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신학 체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제아무리 극악한 죄인이라도, 그가 마리아에게 헌신한 사람이라면 그는 이생에서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거나 즉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르침은 제6의 기적(Miracle VI)에서 마리아에게 무척이나 헌신된 어느 강도의 이야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살인자와 간음한 자 그리고 강도와 불의한 자들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영원한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적 견지에서는 웅장해도, 신학적 측면에서 보면 가증스러운지라 곤잘로 데 베르케오의 작품은 즉시로 이전과 이후에 나타난 셀 수 없이 많은 유사 작품들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가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1200년경 마그데부르크(Magdeburg)의 브룬 본 초넨벡에 의해 쓰여진 <데오필루스, Theophilus>의 전설에도 보이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마리아는 지옥으로 내려가서 마귀의 손아귀에서 데오필루스의 혼을 빼앗아 오는 것이다.

마리아 숭배를 위해 대중화된 거짓 경건
중세 시대가 마리아의 숭고함(죄 없이 잉태함)과 그녀의 권능(믿는 자들의 변호자,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인 요소 등)으로 대표된다면, 그 중에서도 아마 신화적인 마리아에 대해 당여한듯 행해진 숭배와 관련된 것이 가장 큰 공헌을 했을 것이다. 사실상 서구 역사상 처음으로 그녀의 추종자들이 마리아의 성지를 향해 몰려 가기 시작했으며, 가끔씩 아주 먼 나라로부터 온 여행자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노래와 종교 의식들이 성찬식에 사용되었고, 처음으로 “십자가의 길”(Via Crucis)이 상연되기 시작했으며,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성모는 일어서셨도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에 대한 마리아의 슬픔을 기념하기 위해 13세기에 작곡된 라틴어 성가 - 역자주)와 같은 찬송이 권위자들에 의해 인정받기 시작했다. 마리아에게 드리는 삼종기도는 1456년에 시작해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매일같이 반복되면서 그 기반을 잡아갔다.
연옥과 같은 새로운 교리들, 면제를 보장받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관행들, 그리고 신앙이 독실한 자들이 초자연적인 세계와 접촉하기 위해 사용했던 물건들(유품들, 초, 목걸이, 형상, 성수 등)은 카톨릭 성도들의 숫적 팽창이 조롱을 받던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특징들이었다.

결 론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마리아라는 인물은 중세 시대가 끝나 가는 수세기 동안 점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 당시 “무염시태”는 이교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아직은 정식 교리화되지 않은 상태로 논쟁의 도마에 올랐는데, 이러는 가운데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특별한 권능이 그녀에게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실은 이런 식으로 그녀의 이름이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매우 뛰어난 변호인으로 여겨져 하나님의 심판을 뒤집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또다시 범하는 죄성을 지닌 존재인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었다.

마리아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하늘 나라로 올라가기 위한 하나님의 사다리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성소와 목걸이 그리고 형상에 그녀가 나타나면 안락한 죽음을 보장받을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어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따라서, 후기 중세 기간 동안 마리아와 연관된 여러 특징들과 능력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그 인물적인 특징이라는 것이 성경상의 그리스도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을 지속적으로 흡수해 왔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으며, 이는 카톨릭과 동방 교회들의 핵심부에서 암암리에 마리아를 하나님으로 대체시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리아를 죄인의 범주에 넣지 않기 위해 마리아의 이름을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었는데, 분명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지지하던 입장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례로 유대의 권세자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던 베드로를 보더라도 그는 구원의 유일한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입증했기 때문이다(행 4:11-12).

그런가 하면,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를 “변호인”이요 “거룩한 사다리”로 언급하지만, 성경은 그 이름이 마리아가 아닌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있는 한 변호인이 있으니, 곧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이 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리라』(요 1:51).
앞서 언급된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후기 중세 기간 동안 마리아 신화의 발전은 근본적으로 마리아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 믿음에 근거를 둔 또 다른 구원의 복음과 그녀와 관련된 의식 행위들을 만들어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산 제물로 드려지셨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신약성경의 교리(롬 5:1, 갈 2:16,17; 3:11-14, 엡 2:8,9 등)가 마리아에 대한 종교적인 신실함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주장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세 시대의 영적 성향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분석해 보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즉 그리스도 신앙이라며 버젓이 제시된 것이 사실은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신화와 관련해서 후기 중세 시대에 내려진 정의를 보면 미세한 부분이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의 메시지가 마리아의 신화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후의 사건들이 증명한 것처럼 이들의 대립은 불가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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