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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07월호>

로마 카톨릭에 대하여 : 로마 카톨릭의 실체를 바로 알고 성별해야 한다


현대 기독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친카톨릭적인 성향과 에큐메니칼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카톨릭의 정체를 성경적, 역사적으로 확인하고, 개신교회의 친카톨릭적인 성향에 대해서 경고하고자 한다.

I. 카톨릭 교회의 역사적 기원

카톨릭이란 말의 유래는 A.D. 325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회에서 비롯되었다. “Catholic”이란 말은 “Cat에게 완전히 드려지다”는 뜻인데(알콜 중독자를 “Alcoholic”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여기서 “Cat”은 헬라어 어원을 추적하여 산스크리트어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머니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거룩한 “어머니”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카톨릭의 역사적 기원은 아다만티우스 오리겐(Adamantius Origen, A.D. 184-254)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창세기 1-3장의 기록은 실제적인 역사 기록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죄들을 씻기 위해서는 물을 뿌려야만 된다고 생각했으며, 장로를 목사 대신 “사제”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고, 혼들의 환생과 연옥과 만인 구원론을 믿었으며, 문자적인 지옥과 육체적 부활이 없다고 믿었다.
이러한 오리겐의 사상을 꽃 피운 것은 바로 그의 후예 유세비우스와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었다. 콘스탄틴은 성직 계급에 면세 혜택을 주었으며(A.D. 313), 일요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A.D. 321), 모든 개종자에게 금화 20개와 흰 옷 한 벌을 선물로 주었다(A.D. 324). 로마의 교회는 1년에 12,000명에게 침례를 주었으나, 정작 콘스탄틴 자신은 침례를 받지 않았다. 로마 제국과 로마 카톨릭은 황제는 교황, 원로원은 추기경단, 제국 총독은 대주교나 총주교, 지방 총독은 교구의 주교나 감독, 시비타스(Civitas)는 사제(Priests)로 대응되어 그 조직면에서도 아주 유사하다. A.D. 3세기경 시프리안(Cyprian, A.D. 195 -258)은 처음으로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를 만들어 냈고, 394년에는 주의 만찬이 기념이 아닌 “천상의 희생제”로, 미사에서 매일 드리는 예식으로 정착되었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A.D. 354-430)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로마 카톨릭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카톨릭 신앙으로서 “유아 세례”를 시작했고, 외경도 영감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는 비유적이라고 믿었다. 어거스틴 이후 카톨릭은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졌으며, 지상의 평화를 가져오도록 위임받았다고 믿고,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하신 약속을 카톨릭 성직 계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단정하여 그들이 자행한 모든 악행에 정당성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만행은 마틴 루터가 A.D. 1190년부터 시작되어 부패의 온상이 된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여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당 문에 카톨릭에 대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시작된 종교개혁의 물결이 밀려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II. 이단적인 카톨릭 교회의 교리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주요 교리와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를 비교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카톨릭 교회 교리 문답, 1994>, <성경대로믿는사람들> 67호 참조.)
1. 교회의 전통은 성경의 권위와 동등하다(제95, 85항). -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은 사람들의 전통으로 폐기될 수 없다(막 7:6-9,13). 2. 구원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제816, 846항). - 예수님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구원을 줄 수 없다(행 4:12). 3. 구원은 선행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제257, 129항). -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필요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9, 갈 2:16). 4. 교회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제1448, 1461항). -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죄들을 용서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 없다(요일 1:9, 막 2:7, 눅 5:21). 5.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다(제882, 891항). -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들의 경배받는 것을 거절했다(행 10:25,26). 그리스도의 대리자는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위로자 성령 하나님이시다(요 14:26). 6. 누구든지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받는다(제1263, 1265항). - 침례는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요, 죄들의 용서는 보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벧전 3:21, 엡 1:7, 골 1:14). 7. 갓난아기도 세례를 받아야 한다(제1250항). - 성경에는 갓난아기가 침례받은 기록이 전혀 없다. 8.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는다(제1376항). - 주의 만찬은 구원받아 영생을 얻은 “자녀들”이 참여하여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다(고전 11:23-24, 히 2:14). 9. 마리아는 하나님과 동등하다. ①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제508항) - 마리아는 자기 죄로 인해 정결례를 행했으며(눅 2:22), 구주가 필요한 죄인이었다(눅 1:46-47). ② 영원한 처녀성(제510항) - 마리아에게는 또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마 13:55, 막 6:3). ③ 마리아의 중보로 영생을 얻는다(제969항). -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딤전 2:5, 행 4:12, 요 14:6). ④ 복되신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요(제971항), 하늘의 여왕(제966항)이다. -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이교도들의 관습이었다(렘 7:18, 출 20:4,5). 10. 기도는 카톨릭 교회의 전통에 따라 해야 한다(제2650항) - 주기도문, 사도신경 등은 이교도들의 헛된 반복에 불과하다(마 6:7). 11. 죄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고해 성사를 해야 한다(제1493항) -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 외의 어떤 중보자도 필요없다.(딤전 2:5, 시 32:5). 12. 사제들은 독신 생활을 해야 한다(제1579항). - 모든 면에서 귀중한 혼인을 금하는 것은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이다(히 13:4, 딤전 4:1-3, 딤전 3:2)
“로마 카톨릭 교회는 카톨릭은 교리가 항상 일관되어 한결같은 가르침을 유지하지만, 프로테스탄트들은 항상 분열한다고 주장하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리를 14번이나 바꾸었으며, 지금은 매 5년마다 바꾸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지난 300년 동안 정치적 신조를 매 5년마다 바꾸었고, 교회의 교리는 600년 동안 적어도 50년에 한 번씩 바꾸어 왔다.”(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요한계시록, p.76) “오늘날 카톨릭 교회는 반박할 수 없는(nihil obatat) 공식 문서에서 휴거도 없고, 이스라엘의 회복도 없고, 천년왕국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석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실제로는 믿든지 믿지 않든지 상관없이 무엇이든 가르치고, 무엇이든 말하고, 무엇이든 실행하고, 무엇이든 믿는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맹세하고 선포하는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III. 피의 역사

카톨릭 역사가들은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5000만 명 이상을 죽인 살인 행위에 대해서는 은폐한다. “그것은 과거사일 뿐이며, 중상 모략에 불과하다.” 이들은 일반 사람들이 교회사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카톨릭 신자라 하더라도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처럼 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97년 9월 24일 파리에서 제12회 세계 카톨릭 청소년 대회의 야외 미사를 집전하면서 4세기 전(1572년 8월 22일)에 발생한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 사건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개입됐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단지 바돌로매 대학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2000년 교회사에서 신비인 큰 바빌론이며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의 피에 취한 여자(계 17:5,6), 곧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도성(계 17:18)이 저지른 만행을 충분히 본다. 로마 카톨릭은 1208년에 프랑스에서 1만 명을 살해했고, 1237-1342년 사이에는 이태리에서 1만 명 가량 되는 왈덴스를, 1421년에는 수천 명의 후스파를, 1488년에는 역시 이태리에서 3천 명의 왈덴스를, 1546년에는 독일에서 5만 명을, 1572년에는 프랑스에서 8만 명, 1567년에는 네델란드에서 수천 명, 1631년에는 독일에서 2만 9천 명, 1641년(예수회의 창설자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축제일인 10월 23일)에는 아일랜드에서 10만 명, 1642년 아일랜드에서 4만 명, 1685년에는 프랑스에서 4만 명 등,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했다. 그 외에도 피의 메리, 샤를마뉴, 또르께마다 등의 인물들과 종교재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서의 유태인 학살 등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콜롬비아, 미국, 유고슬라비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에서 수많은 살인을 저질러 왔다. “로마는 소수일 때에는 양같이 온순하다가, 수가 같을 때에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다수가 되면 호랑이처럼 사난워진다.”(잭 T. 칙, 연막, p.35)는 말이 있다. 카톨릭은 자기들에게 불리하면 종교적 관용에 호소하며, 그것은 편협한 주장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IV. 카톨릭 교회의 정치적 음모

“1564년 이래로 모든 사제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과 교황들은 저주의 위협 아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와 땅과 정부는 카톨릭 교회의 소유이며, 따라서 이런 것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합법적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교황들은 카톨릭 교회만이 자유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모든 국가들은 세금으로 이 교회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있어 인권이란 그들의 교회에 복종할 때에만 허락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국제적인 정치 조직으로서 전체주의적인 체제를 가지고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구와 정부를 사기, 살인, 고문, 추방, 투옥, 공갈, 전쟁 등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무너뜨리고자 최선을 다하는 종교적 정치적 조직체였다. 카톨릭은 필요하다면 그 누구와도 타협한다. 최종 목표인 세계 지배를 달성하기 위해사라면 무신론자, 유대인, 모슬렘을 가리지 않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A.D. 32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양 정치사의 핵심은 로마 카톨릭 교회였다. 따라서 이 사악한 종교 조직의 사상, 전략, 음모, 전쟁, 박해, 목표, 사악한 행동 등에 무지하다면, 그 어떤 사람도 미래 역사에 대해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들에 무지한 신문 기자나 뉴스 보도자들은 20세기 국내외 정치에 대한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처음부터 예수회와 동맹 관계에 있었고, 독일의 홀렌조레른즈 왕가는 비스마르크가 반카톨릭적이라고 해서 그를 사장시켜 버렸으며, 이들 두 왕가는 그리스 정교회의 러시아에 대항하여 카톨릭과 동맹을 맺고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 역시 줄곧 로마와 동맹 관계를 유지했으며, 나폴레옹은 베니토 뭇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로마 교황과 협약을 맺었다. 콘스탄틴, 샤를 마뉴, 나폴레옹(프랑스), 교황 보니파스, 히틀러(독일), 카스트로(쿠바), 바티스트, 프랑코(스페인), 뭇솔리니(이탈리아) 등 서방 세계의 모든 독재자들은 로마 카톨릭 교도였다. “마르크스, 엥겔스, 스탈린, 레닌, 피델 카스트로, 이들은 모두 예수회에서 훈련받았고 교육받았다.”(잭 T. 칙, 연막, p.38)
카톨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있는 모든 학교와 교회를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30년 전쟁(1618-1648)을 일으켜 독일 국민의 3분의 1(600만 명 이상)을 살해했다. 1970-1982년 사이에 일어난 런던데리와 벨파스트의 폭동, 1789년 6월 20일 프랑스 혁명(“자유, 평등, 박애”란 미명 아래),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1914년 볼셰비키 혁명 등 카톨릭은 인류 역사상 크고 작은 전쟁에 개입해 왔고,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로 기독교를 탄압하고 세계를 정복해 보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카톨릭은 이러한 모든 일을 비밀 결사인 예수회를 통해 배후에서 조정해 왔다. 예수회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원칙 아래 움직이는 사교 집단이다. 이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명하다고 알려진 철학자들인 라이프니쯔, 흄, 데카르트도 예수회에 의해서 발굴되었던 것이다.

V. 카톨릭과 교회의 배교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로마 카톨릭을 반대해서 세워졌다. 이러한 개신 교회의 반카톨릭적 입장은 그들의 신조나 고백에 잘 나타나 있다. [영국 성공회 - 신앙개조 제7항(1615년), 장로교회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4-6항(1647년), 회중교회 - 사보이 선언서 26장 4-5항, 침례교회 - 침례교회 신앙고백 26장 4항(1688년)] 감리교회의 터전을 마련한 존 웨슬리(1754년)는 “교황은 이중적인 사람으로 교황인 동시에 ‘죄의 사람’이며, 그는 날마다 ‘죄의 사람’의 특징을 쌓아 가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파와 교회들의 신앙은 원래 입장에서 벗어나 변질되었다.
우리는 빌리 그래함의 결말을 통해 오늘날 배교한 개신 교회의 실상을 엿볼 수가 있다. [카톨릭은 예수회를 그의 집회에 동원시켰으며, 자기들의 언론망을 통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1967년 카톨릭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결국 그를 따르던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이 시대의 “도덕적인 영적 지도자”(?)인 교황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잭 T. 칙, 연막, 제8장 타락한 우상 참조)]
“우리는 사랑과 화합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큰 호소력을 갖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단어들이 문맥에서 벗어났을 때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하기가 너무 어렵다. 진리가 결여된 사랑은 우상 숭배와 같다. 타협이란 복음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복음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화합과 진리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화합이 진리에게 양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류 속에서 하나가 되느니 진리에 의해서 나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잭 T. 칙, 연막, pp.46,47.) 이 말은 우리에게 성경적 성별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VI. 결론

마지막 때인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 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사이비와 갖가지 이단들의 극성이다. 이단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며 점차로 그 교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극단적인 광신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킴으로써 건전한 믿음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 이단 중의 이단인 카톨릭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이 카톨릭을 그들의 종교로 선택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데, 바로 쉽고 편하게 믿을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유를 억압하는 구속은 딱 질색이며, 세상으로부터의 질시는 더 더욱이나 싫어한다. 카톨릭은 그들이 교리나 신조와는 상관없이 세상에서 세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기에 금했던 조상 숭배와 제사를 교황의 한국 방문과 더불어 공식적으로 합법화하기 시작했다. 우상 숭배가 하루 아침에 미풍양속으로 뒤바뀐 것이다. 술마시고 담배 피는 것 등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 인정해 주고 대신 그들의 호주머니를 갈취하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깊이 생각한다거나 따져보는 것을 싫어한다. 옳고 그른 것보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이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카톨릭은 사람들의 생리와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것을 이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카톨릭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하면, 귀찮다는 식으로 “우리는 성당 다녀요,” “우리는 성모님을 숭배해요,” “우리는 교리가 달라요,” “오랜만에 쉬려고 집에 있는데, 왜 이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피곤하게 강요하느냐? 신앙은 자유 아니냐?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개신교라면 신물이 난다.” 구교인 성모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 분열만 일삼는 개신교 무리들이 누구를 가르치려드느냐는 식으로 경멸의 눈길을 보내는, 세상에 대해서는 열려 있지만, 성경에 대해서는 가장 편협한 무리들이다.
카톨릭은 한국 선교 초기에 죽은 순교자들을 앞세워 그들의 신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믿음은 맹신과 광신에 불과할 따름이다. 기독교가 선교 초기에 존 로스 목사의 마가복음 전서를 필두로 하여 성경 번역에 힘을 쏟은 반면, 카톨릭은 교리서나 기도서 같은 비경전류만을 번역하는 데 치중했다. 그나마 개신교에서 번역된 성경들은 부패한 알렉산드리아 원문에서 온 카톨릭 성서들이었다. 이러던 중 카톨릭은 개신교와 함께 1977년 공동번역 성경전서를 내놓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마침내 한국 땅에서도 본격적인 배교가 시작되었다. 믿음을 제대로 싹 튀우기도 전에 짓밟혀 버리고 만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과학과 철학과 이성과 미신과 인본주의 교육을 앞세운 변개된 성서에 의해 성도들의 믿음은 파괴되고 교회는 타락과 세속화를 맞게 되었다.
사실상 한국은 1992년 이전에는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올바른 말씀이 제시되자 이 말씀은 배격한 채 자신들의 “배”(롬 16:18, 빌 3:18,19)를 위해 카톨릭 성서를 놓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실상이다. 우리는 배교한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말기를 살고 있다.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는 음녀 교회인 카톨릭과의 분리이다.
『“나의 백성들아, 그녀에게서 나오라. 그리하여 그녀의 죄들에 동참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도 받지 말라』(계 18:4).
만일 한국 교회가 카톨릭 성서를 내던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올바른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진노의 날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계시될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을 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마 23:14b, 롬 2:5, 살후 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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