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마리아 신화 분류

지옥의 여왕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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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2월호>

우리는 종종 카톨릭 교인들이 “마리아”의 형상 아래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 모습이 가장 경건한 카톨릭인 교인의 믿음(?)의 모습으로까지 미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카톨릭 교인들에게 성경 말씀을 들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임을(딤전 2:5) 지적하면, 그들은 자신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으며, 마리아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마리아에게 주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마리아”는 결코 카톨릭에서 말하고 있는 그 “마리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소유하시는 신성을 부여하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그들의 교리는 이것을 충분히 증명한다. 첫째로 그들은 마리아의 무염시태(죄 없는 탄생)를 주장한다. 둘째로 그들은 마리아의 죄 없는 삶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에 대한 주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셋째로 그들은 마리아의 부활(성모몽소승천)을 주장하여 마리아의 영혼과 육신이 그대로 승천하였으며, 현재 하늘의 “여왕”으로 있다고 말한다. 넷째로는 마리아의 무소부재성이다.
이 무소부재성에 대해서는 그들이 혹 부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세계 카톨릭 국가들, 즉 11만 킬로 이상이나 떨어진 나라들(스페인, 멕시코, 브라질, 이탈리아 등)에 서 동시에 행해지고 있다. 그들은 마리아가 9억만 명 이상의 카톨릭 교인들의 기도를 동시에 다 들을 수 있다고 믿으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분명히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 중 하나인 무소부재성을 동일하게 마리아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로마 카톨릭의 마리아는 바로 바알 종교의 “아스타롯 여신”(렘 44:15-19, 판 2:13)임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비너스, 로렐라이, 다이아나, 미네르바와 같은 하나의 “여신”으로, 즉 “하늘의 여왕”으로서 마리아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리아”는 흉악한 “여자 마귀”일 뿐(슼 5:8, 렘 44:20-25), 성경의 마리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 성경으로 이 사실을 검증해 보자. 분명 성경에서는 마리아가 “영원한 처녀”가 아닐 뿐 아니라, 정결례가 필요한(레 12장) 더러운 죄인(눅 2:22)이며, 다른 죄인들처럼 구주가 필요했다(눅 1:47)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 자신의 탄생을 위해 마리아를 사용하신(눅 1:35)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기록된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도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셨으며, 다만 “여인”으로만 언급하셨을 뿐이다(요 2:4; 19:26). 이로써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더 자비로운 모습으로 기도를 더 잘 들어줄 수 있을 것
이라는 카톨릭의 순진무구한(?) 생각은 여지없이 깨지는 것이다.
또 누가복음 11:27-28에서『당신을 낳은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한 여인이 목청을 높여 주께 말씀드릴 때『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느니라.』고 하시며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말을 정정하셨다. 이 마리아야말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마리아”이며, 모든 교황, 추기경, 신부, 주교, 대주교, 수녀, 예수회, 수도사, 카톨릭 교인들에게는 생소한 “마리아”인 것이다.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에 대해서 성경이 지적하시는 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성경은 분명히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과 누이들이라고 불린 자녀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막 6:3). 분명히 이들은 예수님의 “친척”이나 “사촌”으로는 불려지지 않았다. “사촌”이라는 단어는 누가복음 1:36에서 누가가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가복음 6:3처럼 “형제”나 “누이”를 의미하는 것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주님에게는 네 명의 형제들이 있었고, 이들 중 한 명인 야고보는 열두 사도들과는 별도로 주님의 부활 후 특별한 계시를 받기도 했다(고전 15:7). 그는 갈라디아서 1:19에 “주의 아우”로 언급되어져 있다. 이 사람이 주의 형제였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로마 카톨릭뿐만 아니라 모든 배도한 보수주의와 근본주의 학자들(1801-1900)이 사람들에게 “주의 사촌”이었다고 믿게끔 고군분투하고 있는 바로 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세 명의 “야고보”가 등장하는데 주의 형제 야고보(갈 1:19)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1-4)가 그들이다. 주님께서 “형제”를 가지셨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카톨릭은 갈라디아서 1:19의 야고보는 주의 사촌 야고보이며 진짜 형제가 아니라고 주장을 한다. 그들은 “형제”도 “사촌”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형제”라는 단어는 통칭적인 단어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같은 것이 아닌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주의 형제인 이 야고보는 그의 다른 형제들처럼 그리스도를 거절하다가(요 7:5) 후에 성도가 되었다(고전 15:7). 고린도전서 15:7의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고, 그 후에는 모든 사도에게”에서 야고보는 바로 주의 형제인 야고보이며, 사도(사도 야고보 두 명을 포함해서)들은 따로 언급되고 있다. 로마 카톨릭은 이 사실을 숨기고자 주의 형제 야고보를 사도들 중에 있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동일시하여 그를 사촌으로 만들고 있는데, “위대한 근본주의자”인 C.I. 스코필드까지도 카톨릭의 이러한 누룩에 물들고 말았다.
시편 69:8은 “내 형제들”이 곧 “내 모친의 자녀들”, 즉 사촌이나 친척이 아니라 친형제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성경은 로마 카톨릭의 교리가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변개된 교리이며,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신약(막 6장)과 구약(시 69편)에서 함께 증명하고 계신다. 그들의 망상에 펀치를 가하는 명쾌한 하나님의 답을 보라.『그녀가 첫아들을 낳기까지 그녀를 알지 아니하였다가 낳으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더라』(마 1:25). ‘첫아들’은 이후에 마리아가 다른 자녀들을 낳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마리아의 처녀성을 주장하며 “하늘의 여왕”으로 마리아를 숭배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바울 사도는 로마서 16:17-18과 빌립보서 3:17-20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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