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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경적인 성직자 체제1 : 로마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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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2월호>

이번 호부터는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인 성직자 체제를 차례로 살펴볼 것입니다.<역자주>


사역의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내려주신 가장 위대한 은사 중 하나이다. 시편 기자도 이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의 승천을 예언하면서, 승천하신 후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갔고 사람들에게는 은사를 주셨다.”(엡4:8-11) 로마 교회는 그 처음 시작에 있어서는 성경적으로 사역하고 사람들을 양육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 그들의 믿음은 온 세상에 알려진 바 되었으며, 그들에게는 의로운 행위가 풍성하게 있었다.
그러나 악한 때에 바빌론 신비종교의 요소들이 그 사역 안으로 들어왔으며, 그 때부터 축복이었던 은사는 하나의 저주로 바뀌었다. 그 때부터 로마 교회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때보다 “두 배나 더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소위 “사도직을 계승”했다는 로마 카톨릭 안에 어떤 밀교적이고 신비적인 요소가 있다면, 교황과 주교 및 그밖의 성직자 계급이 바로 그것이다. 교황 이하 모든 성직자 계급은 철저하게 바빌론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교황을 수장으로 하고 있는 추기경 대학은 “폰티펙스 맥시무스” 즉 “최고 성직자”를 수장으로 한 이교도의 성직자 대학을 본딴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초기에 로마에 존재했는데, 바빌론의 최고 사제 회의를 모델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교황은 우리 주님께서 독점적으로 천국의 열쇠를 주셨다고 주장하는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자신이 마치 교회 안에서 최고의 위치를 갖는 양 행세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황에게 천 년 동안 “야누스와 키빌레의 열쇠”의 권세를 주어온 그러한 명칭이 교황에게 부여되기 전에는, 베드로가 받았다는 열쇠들을 그가 계승했다는 기반 위에서 어떠한 우월성도 그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로마의 주교들은 사실상 초기부터 자만과 야망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처음 3세기 동안 그들이 최고 권위를 주장했던 것은 단순히 그들의 주교좌가 황제의 도시, 즉 로마 제국의 수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고 콘스탄티노플이 로마를 제압할 상황에 놓이자, 로마 주교는 권위를 유지할 새로운 입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새로운 입지가 약 378년 경, 교황이 이교도 로마에서 가장 잘 알려진 두 신의 상징물(열쇠)을 물려받으면서 마련되었다. 그 신들이란 바로 야누스와 키빌레인데, 그들은 둘 다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이 두 열쇠는 교황이 그의 영적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의 팔에 장식한 것이다. 교황이 어떻게 이 열쇠의 권세를 휘두르는 것으로 여겨졌는지는 뒤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시기에 그런 권세를 가진 것으로 대중에게 인정되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교황은 이교도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야누스와 키빌레의 대리자의 자리를 차지하여 그들의 열쇠를 소유한 자로 인식되었고,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베드로만이 유일하게 그 열쇠의 권세를 가졌다는 사실과 교황이 그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 열쇠를 보여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이교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동시에 대상으로 하는) 이 “기만”을 지속시킬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도시로서 로마가 갖는 일시적인 권위는 사라질지언정 “로마 주교”로서의 교황 자신의 권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굳건하게 세워질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 하에 그는 움직였던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불법의 신비의 역사는 진행되어, 교황은 최초로 자기의 “최고 권위”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였다. 그것은 바로 베드로에게 주어진 열쇠를 그가 가졌다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약 378년 경 그는, 이교도들의 관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열쇠의 권세를 가진 자의 위치까지 부상하였고, 431년에 그는 드디어 베드로의 열쇠를 소유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교황이 이교 신들의 열쇠와 베드로의 열쇠를 동시에 소유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충격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근거없는 주장을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성경은 바로 이 주제에 대해 대단히 단호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고 있다. “모든 불의한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미혹의 역사를 보내시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살후 2:10,11).
이보다 더 심한 거짓말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거짓말은 사람들에게 널리 믿어졌다. 그리고 쥬피터 상(像)이 로마에서 버젓이 베드로 상으로 숭배되고 있듯이,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야누스와 키빌레의 열쇠 또한 베드로의 열쇠로 아무 의심 없이 믿어온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독점적으로 열쇠의 권세를 주셨고 교황이 그것을 계승하며, 열쇠가 그 상징물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이 쉽사리 믿게 한 로마 카톨릭의 방법은 신의 징벌에 대해 매우 강조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교도들은 어째서 교황이 그의 권세의 기반을 “베드로의 열쇠”에 두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기꺼이 교황 주위에 몰려들 수 있었는가?
교황이 지니고 있는 열쇠는 바로 “베드로”의 열쇠였는데, 이는 갈대아 신비종교를 믿는 이교도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름이었다. 사도 베드로가 로마의 주교였다는 사실은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임이 계속해서 입증되고 있다. 그가 도대체 로마에 발을 들여놓기라도 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가 로마에 들렀다는 증거는 겨우 2세기 말 또는 3세기 초의 저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바로 인데, 이 책의 저자는 베드로가 로마에 들렀을 때 그 곳에서 시몬 마구스를 만났다고 한다. 베드로가 이 마술사에게 그의 마술의 능력을 시험해 보이라고 도전하자 그가 공중을 날았는데, 그가 날아오르자마자 베드로가 그를 당장 아래로 끌어내려 그만 그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쓰고 있다. 하지만 권위있는 역사가들은 이 사건에 관한 당대의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가 마술사를 만났다는 이 이야기를 단번에 부인해 왔다. 베드로의 로마 방문은 바로 이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방문의 사실 여부는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에 달려있다. 따라서 그의 로마 방문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사도”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 두고, 여기 “또 다른” 베드로에 관한 의심할 여지 없는 이야기가 있다. 기독교가 시작되기 이전 로마에 한 베드로가 있었는데, 그는 이교도 성직자 체제에서 최고 위치를 차지했다. 신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던 그 사제는 종종 헬라 말로 “신비 종교의 해설자”(The Hierophant)라 불렸다. 그런데 고대 갈대아 말, 즉 신비 종교 본래의 말로 그 직분의 이름은 “베드로” 즉 “해설자”(the interpreter)였던 것이다. 숨겨진 것을 밝혀주는 자라는 의미이다. 또한 신비 종교의 심원한 교리들을 풀어 주는 그는 자연히 두 신의 숨겨진 신비를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떻게 야누스와 키빌레의 열쇠가 “해설자” 베드로의 열쇠로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한편 지리적으로 떨어진, 특히 로마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나라들에서, 신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 열쇠를 단순히 “베드로의 열쇠”가 아니라 “로마의 베드로의 열쇠”와 동일한 것으로 알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그리스의 옛 도시 엘류시스의 신비 종교에서는 입교 지원자가 교리를 배울 때 읽혀지는 책이 있다. 이 교리 해설서를 일반 저자들은 “페트로마書”(Book Petroma)라 불렀는데, 이것은 “돌로 만들어진 책”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교주의가 늘 그러듯이 속인들을 만족시키려는 단순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과 신비 종교의 역사가 동시에 보여주는 사실은, 이 책이 바로 “페트-로마書”(Book Pet-Roma) 즉 “위대한 해설자의 책”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투스의 책”, 즉 “신들의 해설자”의 책이다.
그리스인들의 종교는 이집트를 그 기원으로 하는데, 이집트에서 “헤르메스”는 신비 종교의 모든 참 지식이 솟아나는 신성한 분수로 여겨졌고, 위대한 계시자, 즉 “페테르-로마”(Peter-Roma)로 여겨졌다. 따라서 헤르메스는 아테네에서도 동일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신성한 언어로 동일한 명칭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헤르메스의 이름으로 신비 종교를 설명하는 사제는 베드로의 열쇠들뿐 아니라 “페테르-로마”의 열쇠들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유명한 “돌의 책”(Book of Stone)은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되기 시작할 뿐 아니라, 새로운 역사 또한 보여 준다. 진지하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4세기부터 그 이후로 베드로라는 이름이 로마와 연결되었는지, 또 어떻게 “할례의 사도”였던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과하신 과업을 저버리고 “이방인”의 교회의 감독이 되었는지, 또 그가 로마에 살았다는 만족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로마의 영적인 지도자였음을 어떻게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는지 참으로 기괴한 일이 되어 왔다.
그러나 “페테르-로마”書는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그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준다. 그러한 제목의 책을 로마 카톨릭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카톨릭의 통상적인 전략에 따라 그들은 그것을 교세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바꿔서 이용하였다. 카톨릭은 이방 종교와 기독교의 혼합을 추구할 뿐 아니라, 이교도의 “페테르-로마”와 그 열쇠가 마치 “로마의 베드로”를 의미하는 것처럼, 또 그 “로마의 베드로”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열쇠들을 주신” 바로 그 사도인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말의 동음(同音)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상이한 것들과 상이한 인물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또 이방 종교와 기독교가 혼합되어 사악한 카톨릭 성직자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야망이 충족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배교를 좇아가는 눈 먼 신도들에게는 교황이 사도 베드로의 계승자로 나타나는 한편, 이교도들에게는 신비 종교의 교리를 설명해 주는 베드로의 계승자로 보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교황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카톨릭 교회 정부에서 교황을 보좌하는 “최고 국가 의회”가 어떻게 해서 “추기경 대학”(College of Cardinals)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다. 추기경(Car- dinal)이라는 단어는 카르도, 즉 돌쩌귀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교황이 가졌다는 열쇠의 주인공인 야누스는 문과 돌쩌귀의 신이었고, 파툴키우스, 그리고 클루시우스, 즉 “여는 자, 또 닫는 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인 것은 로마에서 그가 “위대한 중재자”로 숭배되었기 때문이다. 신도는 어떠한 중대한 문제가 있든지, 어떠한 신에게 간청하든지 간에 먼저 야누스에게 간청을 올려야만 했다.
“신 중의 신”으로 여겨졌던 야누스의 신비스러운 신성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그에게 먼저 기원을 올리지 않고는 어떠한 기원도 응답될 수 없으며, “하늘의 문”은 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야누스는 우리 주님께서 그의 종 요한을 통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예언의 메시지들을 보내셨을 때 그 지역에서 가장 널리 숭배되었던 신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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