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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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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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0월호>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이에 대한 지식은 명철이니라』(잠 9:10).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예의범절이 인격을 형성하며 더 나아가 국민의 수준을 드러낸다. 이것이 곧 민족성으로 드러내게 된다. 선진국, 그것이 GDP의 상승에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층이 있다면 그의 식견은 한참 모자란 것이다. 부잣집 자식이면 가난한 집 자식보다 인격도야에 앞서갈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가려면 20년은 더 걸려야 하고, 미국이나 영국을 따라가려면 30년 이상 노력해야 한다. 우리와 일본과의 재판 건수를 보면 우리가 100배 이상 많다고 한다. 더욱 수치스러운 것은 위증이다. 위증 건수는 그보다 몇 배가 더 많다고 한다. 위증이 무엇인가? 거짓말로 진실을 호도하는 행위이다. 그런 자들은 양심이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미친 자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점에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 대다수가 국격을 갖추는 데 책임의식을 가지고 동참해야 한다.

미국 법원은 고소나 소송을 접수하려면 맨 먼저 묻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지금까지 몇 건이나 고소한 적이 있느냐?”라고 묻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고소하는 버릇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야말로 별것 아닌데도 고소한다. 특히 중년을 넘은 여인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런 미국인들이 변호사들을 먹여 살린다. 까닥하면 “나의 변호사”란 말을 쓴다. 세계에서 변호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이다.

<한국논단> 9월호는 한국인이 바로잡지 않으면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는 102가지 버릇들을 다루었다. 필자는 100% 공감한다. 그중 몇 가지만 보면, “1. 전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도 전에 서둘러 타는 버릇, 3. 좁은 골목길에서 양보하지 않는 버릇, 5. 걷는 사람 비키라고 클랙슨 울리는 버릇, 10. 길가다가 마주 오는 사람을 툭 치고도 미안하다든가 죄송하다고 인사할 줄 모르는 버릇, 11. 상대를 배려해서 문을 열어 줘도 고맙다는 인사할 줄 모르는 버릇, 14. 횡단보도 위에 버젓이 차 세우는 버릇, 15.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졌는데도 불복한다며 데모하는 버릇, 16. 전찻간에서 휴대전화 하는 버릇, 18. 비행기나 기차가 연ㆍ발착 한다고 카운터에 몰려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항의하는 버릇, 25. 집단적으로 떼쓰는 버릇, 28. 툭하면 대통령 만나자고 요구하는 버릇, 32. 극장에서 공연 끝나고 나갈 때 줄짓지 않고 우- 몰려 나가는 버릇, 53. 경찰관들이 폭력데모대에게 매 맞고 도망치는 나라, 54. 예식장에서 꽃값, 음식값 바가지 씌우는 버릇, 56. 행락장에서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는 버릇, 67. 병역기피 하는 버릇, 68. 탈세하는 버릇, 80. 동료 국회의원이 발언할 때 욕설이나 조롱하는 천박한 버릇, 81. 입후보 때는 큰절하며 돌아다니다가 당선되면 만나 주지도 않는 버릇, 99. 인ㆍ허가 도장 갖고 돈벌이 하는 일부 공무원들의 버릇”이 있다. (한번 <한국논단>을 사서 읽어 보기 바란다.)

거기다 필자가 덧붙이자면 “샤워하지 않고 공중탕에 들어오는 버릇, 차 깜빡이 켜지 않고 운전하는 버릇, 길가면서 담배 피우는 버릇, 술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버릇, 도대체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버릇, 차 끼어드는 버릇”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이런 버릇들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운동경기에서는 국민들이 밤새우면서 응원하기도 하면서 자기의 쓰레기는 그대로 두고 자리를 뜨는 버릇은 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응원한 사람들인가 하고 의아해진다.

특권의식을 갖는 버릇은 어데서 왔을까? 왜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고 자기만 잘난 체하는 것일까? 그런 버릇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미 초등학교부터 공교육은 실패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교육부장관이 되었다 해도, 누가 교육감이 되었다 해도 교육으로는 개선할 수 없다. 이 나라에서 학교들은 대학 가기 위한 절차일 뿐이다.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는 한 교육의 할아버지라도 무용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인가? 교회가 있다. 하지만 신앙심이 없는 아이들을 강제로 교회에 넣을 수는 없다. 설령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그러한 버릇들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양육받으면 그것이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교회들은 디모데전서 2:4,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는다. 성경도 가짜고, 목사들도 무자격자들이 대부분이고 성경도 잘 알지 못하는 교단의 종들이다.

그래도 바른 교회를 찾아 만나면 가능할 수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그 일이 가능하게 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늘어나면 그 나라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어(렘 5:1) 세계인들 중에서 으뜸이 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명령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명령, 규례, 율례를 무시했기에 나라를 두 번이나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세계의 역사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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