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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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삶을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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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2월호>

구원받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날부터 영적 지식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부터 전에 살아 왔던 세상과 퍽이나 다른 현실을 직면해야만 합니다. 고린도후서 5:17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하는데, 그 종류야말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간단히만 살펴도 38가지 이상이 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라는 묵직한 책이 주어지고, 찬송가라는 책이 주어집니다. 또 신학이라는 과제가 앞에 놓입니다. 럭크만 목사의 조직신학은 1,040쪽이나 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공부해야 할 책들이 책장을 꽉 메우고, 부지런한 학생에게는 책장이 세 개라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제게는 9개의 책장이 있습니다. 서가(書架)를 보면 그 사람의 지식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계간 <그날의양식>을 읽어야 합니다. 국문 책들은 물론이요 영어 책들도 있고, 헬라어나 히브리어 사전으로 찾아야 하는 책들도 있습니다. 매일같이 공부해도 끝이 없는 것이 성경공부입니다. 영생을 사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가 보십시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독특한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성도에 따라 지식의 차이는 있지만,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믿음이 굳건해지지 못합니다. 시간을 아껴 쓰십시오. 성경에 더 많은 시간을 쓰십시오.

디모데후서 2:15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왜 우리가 공부하고 성경적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또는 모슬렘과 그 외 다른 종교들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영과 사탄의 진영으로 나뉘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바른 성경을 거부하는 모든 자들은 사탄의 진영입니다. 유사 기독교는 사탄의 수하에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항하는 싸움이 아니고 정사들, 권세들, 이 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들,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싸움입니다. 이 전쟁을 영적 전쟁이라 합니다. 전쟁에서 싸우게 되면 사망자가 나오고 부상자, 공포에 질려 미쳐 버린 사람, 탈영병, 적에게 항복해 버린 자들도 나옵니다(실종자).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출회당한 사람이 나왔는데, 그는 마귀에게 패배한 사람입니다. 저는 목자입니다. 제 양무리들을 악취를 풍기는 스컹크들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책무가 있습니다. 어떤 이가 주님을 사랑하면 저도 그를 사랑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도 그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곧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과 다양한 방법으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하여 우리를 군사로 뽑아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 점을 모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아닌 군번 없고 소속 없는 사람들입니다. 군사의 임무는 전투에 나가 싸워 승리하는 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I.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요일 5:4).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위치가 바뀝니다. 전에는 마귀의 종이었기에 그가 했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경을 거부하는 마귀의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내는 일들 중에는 남을 구제하고, 기부하고, 도와주는 선한 일들도 있을 수 있으나, 그가 자신과 세상을 위해 한 선한 일일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점을 모릅니다. NGO 활동, 국경 없는 의사회, 의료 선교, 난민 구제, 에이즈 환자·에볼라 환자 도우미, 지진.탄광 매몰자 구제 활동, 밥 퍼주기, 해비타트, 독거노인 목욕시켜 주기, 도시락·김치·연탄 배달 등의 일들은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이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 아닙니다.

국민은 국가와 지자체에 세금을 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각종 세금을 정직하게 냅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정직하게 세금을 쓰면 국가 재정이 모자랄 일이 없습니다. DJ 때 북한에 5조 원 이상, 노통 때는 얼마나 줬는지 모릅니다. MB 때 자원 개발에 52조 원을 날렸다고 합니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잘못 쓸 때 세수가 부족하게 됩니다. 국가 경영의 지혜는 위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위정자들은 이것을 모른 채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교회 헌금으로 자기 이름을 높이는 자들을 보십시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평양에 조용기어린이심장병원을 세웠고, 곽선희는 연변과학기술대와 평양과학기술대를 지어 주었습니다. 병원은 현재 북한 고위층들이 이용하는 병원이 되었고, 과학기술대는 핵무기 개발 연구소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소위 교회들이 적국에 헌금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이것은 영적 무지요 현실적 무지입니다. 그런 목사들은 영적 전쟁에 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왜 교회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도 없습니다. 영적 전쟁을 모르면 누가 적인지도 모르며 적의 침투와 계략과 전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들로 육성시키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교인 수를 자랑하고 헌금을 자랑합니다. 믿음이 없는 교인들이라면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다녀왔으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다고 실토했습니다(4절). 자기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기가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엄청난 경험을 하고서도, 그는 자신에 관해서는 자기가 약하다는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했습니다(5절). 우리나라 어떤 목사는 자기의 이름을 바울로 했다가, 교회가 커지자 다윗으로 바꿨다가 시들시들해지자 다시 자기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생의 자랑"에 해당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습니까? 부질없는 짓입니다. 고린도전서 1:31에서는 『기록된 바와 같이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자랑하는 자는 이것을 자랑할지니 그가 깨달아 나를 알아서 내가 이 땅에서 자애와 공의와 의를 행사하는 주임을 아는 것이라. 이는 내가 이 일들을 기뻐함이라. 주가 말하노라』(렘 9:24). 세상은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세상에다 자기를 알리려는 것은 마귀에게 인정받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도를 돕지 않으십니다.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II.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입니다(골 1:27).

우리가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들과 교제할 수 없듯이, 주님께서도 진리의 성경을 모르는 자녀들이 너무 어리면 교제하실 수 없습니다. 먼저 거듭난 성도도 공부하는 데 게으르면 나중 되고, 나중에 거듭난 성도라도 열심히 공부했으면 먼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식이 늘어나면 믿음도 늘어납니다. 성경에 무지하다면 그 성도에게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옵니다. 옛날에는 각자가 성경을 가질 수 없었기에 선지자, 사도, 목사나 교사, 선교사가 읽어 주면 듣고 그 말씀을 믿었을 때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각자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새벽부터 밤중까지 그 어느 때라도 시간을 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읽기 전에 잘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읽어야 합니다. TV 앞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성경을 읽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했을 때 주님과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한 것입니다. 이 점을 침례받을 때 침례를 집례한 목사뿐 아니라 이를 지켜본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간증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자신들 안에 예수님을 소유한 것을 믿는다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활 속에 거하지 않고 우리의 몸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 속에 모셔 들였다고 간증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그런 책을 봤다면 즉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십니다. 『또 너희는 우리가 섬긴 그리스도의 편지임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이는 잉크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그러한 확신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졌노라』(고후 3:3,4).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에 성경은 그리스도를 소유한 우리를 『우리 마음에 기록된 우리의 편지라.』(고후 3:2) 하시고,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판에 하나님의 영으로 쓴 편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의 몸 안에 거하십니다.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라』(골 1:27). 여러분 중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게 되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알게 된다면 고린도후서 4:7대로 『우리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런 성도의 가치를 이 세상의 누가 알아 주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육신적인 일을 성취했을 때 칭찬하지 않으시고 영적인 열매를 냈을 때 칭찬하십니다. 어떤 여인이 평생 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대학에 기부했더니, 총장과 함께 사진 찍고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그게 보람입니까?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의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게 자랑거리입니까? 무지하면 그렇게 됩니다. 성경을 알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까? 아무리 현명하고 힘센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시련과 고난들을 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하나 되면 그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흔히 닥치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셔서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전 10:13).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롬 8:37).

예수님 믿고 생의 문제를 해결보려고 찾아온 사람에게 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없는 상담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마귀의 종들인데 하나님의 종으로 가장한 자들입니다(고후 11:13-15).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III.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게 됨이라(고후 12:7-10).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계시들을 받았고, 또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의 목적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신학자로, 셋째 하늘에까지 다녀온 사도로 알려지려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한 하나님의 종에게 "육체의 한 가시" 즉 "사탄의 사자"를 주님께서 주셨는데,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했지만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 주셨습니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게 됨이니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매우 기쁘게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거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육신이 강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권면과 명령이 무시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강한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능력, 지혜, 재산, 건강까지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눈이 나빴습니다. 그 외에 또 다른 육신적인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0절에서 그 가시를 박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내가 강하기 때문이라』(고후 12:10).

사도 바울의 약함을 다른 사람들이 알았을 터인데 그것이 그에게는 치욕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병 하나도 못 고치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다니느냐고 수군대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한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손수건과 앞치마로 다른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었는데(행 19:12), 정작 자신의 병은 나을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치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원칙을 알았습니다(7-9절).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의사 누가와 대동하였습니다. 죽을 때까지도 누가가 그와 함께했습니다(딤후 4:11). 그리스도인이 얻는 승리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결코 우리가 실행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하는 것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앞이 캄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갈릴리 호수를 건너려 했던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허나 그들은 아직 주님을 잘 몰랐습니다.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자, 유령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셨는데도 주님께 우리가 풍랑 속에서 죽는 것을 개의치 않으시냐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어 잠잠해진 후에야 그들은 놀랐습니다. 그때도 그들은 "이분이 도대체 누구신가! 그가 명령하시니 바람과 파도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도다."라고 했을 뿐입니다(눅 8:25).

주님께서 누구이신지도 모르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어떤 분인지 아십니까? 그 사람의 믿음 자체가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도록 하는 도구입니다. 트럼불스 박사가 말했듯이,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 갖춰야 할 자격 조건은 부러진 날개와 깨진 본성, 자신의 위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과의 고통의 교제를 알 때까지는 부활의 능력을 알 수 없었습니다(빌 3:10). 우리도 이 점을 배워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문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친구, 친척, 지인들을 찾아 나섭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 있는 한 안심합니다. 돈이 줄어들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없었던 병이 하나 더 늘어난 것입니다. 술로 달래고, 범죄를 생각하고, 자살을 계획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정답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 2:20).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터지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BB

여기에 실린 "이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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