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특집기사 분류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2월호>

성경에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라는 말씀은 일곱 번 나온다(마 8:12; 13:42,50; 22:13; 24:51; 25:30, 눅 13:28).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인가? 기회를 놓쳐 버린 사람들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때를 놓쳐 버린 사람에게는 남는 것이 후회밖에 없다. 바로 이런 자들이 울며 이를 갈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초청을 다음 기회로 미루는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구원 계획을 세워 주신 것은 “대단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분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해 놓으신 후,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게 하시고, 마귀의 책략으로부터 보호받게 하신 것은 대단한 사랑인 것이다.

사람들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초청 시간이 마냥 유효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 곧 문이 닫힐 시간이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문을 닫으시면 아무도 그 문을 열 사람이 없다.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중요한 일들을 제쳐 둔 채 주식 시장, 뒷골목, 게임방, 술집 등을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쓸데없는 것들을 배우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더러운 이익을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육신적인 쾌락이나 사랑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는데, 밤길에서 서성거리다가 통행금지 시간에 걸리면 경찰서로 끌려갔고, 즉결 심판에 회부되어 벌금을 문 뒤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청 시간을 어긴 사람은 그다음 날이 되어서도 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에서 울며 이를 갈고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이빨이 있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혼”이 불멸하고 우리의 몸과 똑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혼도 몸처럼 눈, 귀, 코, 입, 혀, 손, 발, 목구멍 등이 다 있다. 그래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목마름을 느끼며, 뜨겁다고 고통 속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혼은 비물질이기 때문에 썩지 않는다. 비물질이기 때문에 타지도 않는다. 사람은 죽으면 모두 땅에 묻히고, 3일이 지나면 그 육신이 썩어 버린다. 그러나 “혼”은 썩지 않는다. 요즘은 땅이 부족해서 화장을 많이 하는데, 화장하면 육신은 모두 타 버리지만 혼은 타지 않는다. 혼은 불멸이기 때문이다! 결국 구원받지 못한 혼은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고, 구원받은 혼은 천상에 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을 향유하는 것이다.

지옥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책은 성경밖에 없다. 지옥을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한다. 사후의 생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한다. 한국에 5만 개 이상의 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그들 중에서 지옥에 대해 설교하는 교회를 본 적이 있는가? 지옥에 관해 설교하는 목사들이 없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들 역시 지옥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지옥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잘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에 관한 실상을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여 계시해 주셨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즉 “하나님의 교회”에 맡기셔서 전파하게 하셨다. 지옥을 설교하는 목적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서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런데 자칭 교회라는 곳들이 복음은 전하지 않고 다른 일들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교회 건물만 크게 짓는가 하면, 방언을 한다, 병을 고친다 하면서 각종 집회들을 열어 사람들이나 끌어모으는 등의 일들을 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복음 전파”를 다음 기회로 계속 미루고 있다. 그래서 다음 기회가 마냥 주어질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들은 통행금지 예비 사이렌 소리를 듣고서도 서두르지 않는 사람과 같다. 경찰서에 끌려간 주정뱅이는 벌금을 물면 그다음 날 아침에라도 나올 수 있지만, 하나님의 초청 시간을 어긴 사람은 영원히 지옥에서 울며 이를 갈고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아예 복음을 묵살하는 불신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가짜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교회에 등록하고, 대문에는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 이름을 적은 문패를 붙여 놓고, 가끔씩 기도도 하고, 헌금도 하면서 스스로를 구원받은 사람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나니, 가증한 자요, 불순종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에 버림받은 자들이라.』(딛 1:16)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 흉내를 내고 그리스도인 행세를 한다고 해서 지옥의 형벌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돌처럼 단단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우롱하는 자들은 모두 큰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 자들을 향해 성경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히 4:7).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후 6:2). 자기가 지성인이라 생각하고 양심이 있고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초청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하리라.』(눅 13:24)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앞에는 두 개의 문이 놓여 있다. 우선 “종교의 문”이 있는데, 이 문은 넓고 외양적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는 문으로서 거듭나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으며, 자기 양심을 속여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무시하기 때문에, 그들을 올바르게 규제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법칙이 없고, 어차피 인간이 만든 규칙이기 때문에 아무것이나 갖다 붙여도 된다. 그처럼 편리한 문이기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세상으로부터도 인정받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 편리해서 좋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구원을 보장해 줄 만한 어떤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종교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죽으면 모두 지옥에 가서 울며 이를 갈고 있어야 한다.

반면에 또 다른 문은 “진리의 문”으로서 하나님과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문이다. 이 문은 진리에 갈급하고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찾는 문이다. 또한 이 문은 협소하다. 그렇다고 해서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이 문은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협소할 뿐이다. 그래서 그 문을 찾는 사람들이 적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의 가치가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구원의 확실한 보장이 있고, 영원히 썩지 않는 유업도 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교회사를 통관해 볼 때 항상 “소수의 무리”가 이 진리의 문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넓은 문을 찾아 멸망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지옥의 불길 속에서 울부짖고 있다. 진리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과 진리와 생명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넓은 문은 들어가자마자 어떤 보장도 없는 천 길 낭떠러지 같은 멸망의 길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종교가 제시한 문이다. 멸망의 문에는 아무런 보장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무수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성경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쓰라.』(눅 13:24)라고 말씀하시는데, 현 교회 시대에는 오직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으면 된다. 다만 자신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들어가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특성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주 내에서 물질적인 복을 받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재물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문이 저절로 사람들을 끌어당기지는 않는다. 자기 스스로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의 문으로 들어오라고 죄인들을 초청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초청을 무시하는 자는 누구인가? 믿지 않고 믿음을 흉내 내는 자들이다. 즉 기준이 미달된 자들인 것이다. 『일단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으리니, 그러면 너희는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며 말하기를 ‘주여,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소서.’라고 하면 그가 너희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들인지 모르노라.’고 하리라. 그러면 너희가 말하기 시작하기를 ‘우리가 주의 면전에서 먹고 마셨으며, 또 주께서도 우리의 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하리라』(눅 13:25,26). 그들이 구원받지도 않은 채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서 각종 종교 행사에 열심히 참석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초청하시는 시간이 마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통행금지 시간이 되어서 문을 닫으시게 되면 은혜의 복음은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사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아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들은 영원히 울면서 이를 갈아야 하는 것이다.

1987년 4월 10일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서 AP통신이 버밍햄 뉴스에 난 기사를 인용했다. 지구의 중심 온도가 태양의 표면 온도보다 더 높다는 것이었는데, 지구 중심의 온도는 화씨 12,420도(섭씨 6,882도)나 된다. 이것은 미국의 남가주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와 캘리포니아 기술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발표한 내용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성경보다 2,000-3,000년이나 더 늦는데, 이미 성경은 이곳을 가리켜 “불이 타오르는 장소”라고 말씀했다. 화산에서 용암이 솟구쳐 나오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아마 뉴스를 통해서라도 보았을 것이다. 화산에서 용암이 솟구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땅 밑에 뜨거운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한다. 온천을 보더라도 땅 밑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A.D. 79년 이탈리아 나폴리 남동부에 있었던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약 16,000명의 시민이 몰사했다.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 왜 하나님께서 카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는가? 카나안 땅의 거민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도덕과 양심에서 벗어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소돔과 고모라(창 19:24,25), 바빌론(사 13:19), 니느웨(나 2:10)를 심판하신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기준에 관한 한 오늘날도 변함이 없으시다. 5만 개의 교회와 1천만 명의 교인들이 있는 한국 교회는 총체적인 배교의 길로 들어섰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열 명만 있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 나라에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실로 대단한 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을 가리켜 『땅의 심장』(마 12:40)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구의 지각은 대륙의 경우 약 30km 정도 된다. 말하자면 땅 밑으로 30km 이상을 뚫고 내려가면 뜨거운 용암의 불길을 만나는 것이다. 해양 지각의 경우는 더 얇아서 10km 이내의 두께를 갖는다. 조셉 월리스(Joseph Wallace)가 저술한 책 <깊은 바다>에 보면, 바다 생물 중에서 가장 이상하게 생긴 지렁이가 나오는데 그 몸길이가 2.8m이다. 필자의 키가 179cm이니까 얼마만큼 긴 것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이 괴이한 지렁이는 해저의 틈이 갈라진 곳에서 나왔는데, 그러한 사실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소개되었고 텔레비전에서도 몇 번 방영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가복음 9:44,46,48에서 지옥에 대해 세 번 강조하셨는데, 변개된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이 중에서 “두 번”(44,46절)을 삭제해 버렸다.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욥기 25:6에서는 『하물며 벌레인 사람은 어떠하며 벌레인 사람의 아들은 어떠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벌레”라고 말씀하셨는데, 백보좌 심판에서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이 나타나게 될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말하자면 “구더기” 또는 해저 틈에서 나온 “지렁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핀란드의 <암메누사스티아> 신문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러시아의 지질학자 드미트리 아자코프(Dmitri Azzacov)가 다음과 같이 실토했다. “나는 하늘나라도, 성경도 믿지 않는 공산주의자였다. 하지만 나는 과학자로서 이제 지옥의 실체를 믿게 되었다. 우리 시추팀이 땅 밑을 약 15km 정도 뚫고 내려갔을 때, 갑자기 시추봉이 헛도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공간이 굉장히 넓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곳 뻥 뚫린 공간에서 시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도 감지기는 갑작스럽게 화씨 2,000도(섭씨 약 1,093도)까지 올라갔다. 우리는 너무 놀라서 시추봉을 들어 올렸는데, 바로 그때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그 구멍으로부터 이빨을 가진 큰 괴물이 아주 흉측한 눈을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솟구쳐 나와 날아갔다. 그 장면을 목격한 몇몇 기술자들은 무서워서 도망쳤지만 우리 몇 사람은 좀 더 알아보기로 했고, 시추봉을 내렸던 그 구멍으로 마이크를 내려보냈다. 그러자 거기에서 고통으로 울부짖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그 소리를 녹음할 수 있었는데, 분명 우리는 시추를 하다가 지옥의 문까지 다가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보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또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는데, 그것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였다. 즉 지옥에서 구원받지 못한 혼들이 울며 이를 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상 “현저한 차이”를 알겠는가?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것과 너희 자신은 쫓겨나는 것을 볼 것이니 그때에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눅 13:28).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과 그곳에서 쫓겨나는 것, 이 둘 사이의 차이는 그야말로 비교할 수 없는 “현저한 차이”이다. 지옥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장소와도 비교가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옥을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마 25:41) 장소라고 말씀하셨다. 이 지옥과 비교될 만한 장소가 지상에는 없다. 감옥도, 포로수용소도,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도, 북한의 아오지 탄광이나 정치범 수용소도 비교가 안 된다. 지옥은 어둡고(마 25:30), 불길이 타오르며(눅 16:24), 고통스럽고(눅 16:23), 울며 이를 갈고 소리를 지르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절대로 사람이 가면 안 되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곳에 가지 말라고 거듭 경고하셨는데, 눈을 하나 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손을 하나 잘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옥에는 가지 말라고 경고하셨다(마 5:29,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넓은 종교의 문으로만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가? 죄인들을 지옥에 보내시지 않기 위해서이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그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을 죄인들에게 믿으라고 제시하셨고, 또한 그 복음 전파의 과업을 하나님의 교회에 맡겨 주셨다. 그런데 자칭 교회라는 곳들이 나서서 복음을 갖가지로 변질시키더니 사람들을 속이고 지옥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코라신아, 너에게 화 있으리라! 벳새다야, 너에게 화 있으리라! 만일 너희 가운데서 행한 능력 있는 일들을 투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그러나 심판 때에는 투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눅 10:13,14). 투로와 시돈은 완전히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도시였다. 『카퍼나움아, 하늘까지 높아진 너는 지옥까지 끌어내려지리라. 너희에게 듣는 자는 내게 듣는 것이요, 너희를 멸시하는 자는 나를 멸시하는 것이라. 또 나를 멸시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멸시함이라.”고 하시니라』(눅 10:15,16).

하나님께서는 종교 행위를 하는 자들을 전혀 인정하시지 않는다.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도 외면하게 되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의 나라들보다 더 큰 벌을 받게 된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목사들은 지옥을 믿었고 과학자들은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과학자들이 지옥을 믿고 있고, 오히려 목사들이 지옥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 교회들이 많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지옥의 비참함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가짜 교회들이다. 지옥을 전하는 교회야말로 참된 교회인 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인가? 울며 이를 갈게 될 사람들은 누구인가? 왜 교회들은 설교에서 지옥을 치워 버린 것인가? 어떤 기독교 방송국에서도 지옥을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어떤 기독교 서적에서도 본 적이 없고, 어떤 설교에서도, 어떤 기독교 신문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는가? 당신의 가족과 친척들은 구원을 받았는가? 구원받지 못했다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말 그대로 영원히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한편 당신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책임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는 그 가치를 알아줄 사람이 없다. 하나님만이 그 가치를 알아주신다. 성경을 아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그 가치를 알아준다. 그 소중한 가치를 아는 참된 성도들만이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BB

특집기사 18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