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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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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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11월호>

느헤미야는 바빌론에 잡혀 간 유대인의 2세로 페르시아 왕 아탁세르세스의 술잔을 받쳐 드는 일을 하였다. 왕에게 술잔을 받쳐 들고 시중을 드는 것은 그에게 맡겨진 일일 뿐 그가 자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요 애국자요 유대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자였다. 그가 예루살렘의 성벽이 불타고 무너져 내렸다는 말을 듣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민족의 안녕을 위해 각별한 관심과 연민을 가졌다(느1:3,4). 그가 그 일을 위하여 금식하고 기도할 때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 자손의 죄들을 자백하였다. 그가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하고 기도했던 것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성벽이 복원되어야만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유대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 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자기들의 정욕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실 때 그 분의 계획과 섭리로 하시지만 늘 살피시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즉 하나님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것인가를 살피는 것이다. 유대민족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70년간의 바빌론 포로 생활을 자초하였다. 이 70년이란 기간이 단순한 형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정하신 기간이 어떤 방법으로 끝나게 될 것인가가 관심사가 된 것이다. 세상의 변화가 때로는 하나님의 섭리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시대를 사는 인간의 짧은 관조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언은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늘 유효하였다.

유대민족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들어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누구를 어떻게 쓰시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어떤 특정한 일을 맡겨 책임감 있게 이행할 수 있는 일꾼이 누구인가를 선정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성경의 주요 인물들은 하나님이 뽑아서 하나님의 일을 맡겼던 사람들이다. 인간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 방법을 잘 알 길이 없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첫째, 맡겨진 일을 할 뿐 자기를 드러 내지 않는다. 둘째, 성경의 교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혼동하지 않는다. 넷째, 그 일로 인하여 생기는 어떠한 영광도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택하신 사람을 그 분의 도구로 쓰실 뿐이다. 그 사람이 유능하고 지식이 있어서 쓰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로 산 뱀도 만드셨고, 물이 피가 되게도 하셨고, 바위를 치면 물이 나오게도 하셨으며, 심지어 홍해를 치니 갈라져서 마른 땅같이 되게도 하셨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도구일 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그 사람은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보수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도성이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벽이 무너지면 성읍이 쉽게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됨은 뻔한 일이다. 전에 성벽을 쌓았던 목적은 적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었는데 적들이 성벽을 없앴다는 것은 그 성읍으로 하여금 지켜야 할 것이 없게 만들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성읍이 아무리 아름답고 견고하게 건축되었다 해도 성벽이 없으면 그 소유가 탈취자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허물어진 성벽을 방치한 자들은 성벽보다는 침입자들을 위해 다리를 놓으려는 자들이다.
황폐해져 버린 예루살렘 성읍에 느헤미야는 성벽을 개수하려 했던 것이며, 하나님의 성벽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개수하려 했을 때 호론인 산발랏과 암몬인 토비야와 아라비아인 게셈 등이 와서 조롱하며 성벽을 개수하지 못하게 방해했었다(느4:7). 그러나 그러한 방해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될 수 없었다. 성벽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반으로 나뉘어 반은 일을 하고 반은 경비를 서기도 했고,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공사를 하기도 했다(느4:16,17). 그들은 파수꾼을 세움과 동시에 기도로 영적 무장을 하였던 것이다(느4:9).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성벽을 쌓는 일꾼들과 그 성벽을 쌓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을 목격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벽을 쌓는 일꾼들이 쌓고 있는 성벽이 필요 없는 것처럼 매도하는 자들을 본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인 성벽 안에 살게 되면 감옥에 갇힌 자를 만들기에 성벽은 필요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나님의 영적 성벽이 필요 없다고 한 자들이야 말로 자유를 향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예가 된다.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다니는 구름이니 이들을 위하여 흑암의 안개가 영원히 간직되어 있느니라. 그들은 헛된 말로 자랑하며 잘못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온전히 피해 나온 자들을 방탕함과 육체의 정욕으로 유혹하며 그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나 자기들 자신은 타락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정복을 당하면 그 사람은 정복한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라. 만일 그들이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인하여 세상의 오염에서 피했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고 패배하면 그들의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나니 의의 길을 알고 난 뒤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는 알지 못하는 편이 오히려 그들에게 나으리라.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가 스스로 토해 낸 것에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진창 속에 뒹군다.” 하였도다』(벧후2:17-22).

하나님의 성벽이 없으면 성도는 진정한 자유를 향유할 수 없게 된다(갈5:1, 롬8:21). 하나님의 성벽을 거부하는 자들은 ① 말씀으로 양육되기를 거부한다. ② 세상과 분리되는 생활을 거부한다. ③ 바른 성경을 거부한다. ④ 성경적 가르침을 배격한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 권위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사는 거짓 자유로 자신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에 성벽을 쌓는 일이 성읍 안에 좋은 건물을 짓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마음속에 보석을 간직했으면 그 다음은 성벽을 쌓아야 한다. 이제 보석을 간직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성벽을 쌓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신약교회 성도는 자신의 성벽을 튼튼히 쌓아야 한다. 그것이 곧 주님의 성읍을 견고케 하는 길이다. 자신이 무너지면 그리스도의 성읍이 침략을 당한다. 성읍을 쌓는 데 방해하는 산발랏, 토비야, 게셈 등이 지금도 거짓 교리들과 악령들의 사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손으로 성벽을 쌓고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으면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게 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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