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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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않으려면 성경을 공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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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3월호>

흔히 “올리브 산 설교”(올리브 산이 감람산이라 불리지만, ‘감람’이란 한문식 표기이지 성경의 사전적 의미는 아니다.)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신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해석이 올바로 되지 않는다. 성경이기 때문에 한 자라도 빼놓지 않고 지키려는 마음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성경을 무조건 다 지키려 하면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성경의 앞뒤를 단절해서 읽으면 어느 곳에서는 “하나님은 없다”라는 구절에도 부딛이게 된다. “살인하라”는 말도 있으며, 어느 곳에서는 술을 먹는 것이 몸에 좋다고 되어 있으나, 또 술을 먹으면 안 좋다고 한 곳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딤후2:15) 공부하라고 하셨다. 엉뚱하게 나누면 안 된다. 성경을 세대적으로 올바로 구분할 줄 알게 되면 성경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할 수 있고, 교회와 왕국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며, 천국복음과 은혜의 복음을 구별할 줄 알고, 율법과 은혜를 구별할 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휴거, 대환란, 재림, 천년왕국, 영원세계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적 경영계획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잘 나누어 정확한 지식을 알게 되면 믿음이 진리에 뿌리 내리게 되어 어떤 설교와 가르침이 성경적인가를 알게 되며, 영적 분별력을 갖게 됨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첫 번째 질문은 그 시기가 언제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마태복음 24:4- 14에서 밝혀 주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과 곳곳에서 기근과 전염병과 지진이 있을 것이며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질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표적이 어떤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마태복음 24:15-22에서 밝혔듯이 적그리스도가 유대인 성전에 서는 것인데, 이것은 다니엘 11:31, 8: 13과 계시록 11:1-4과 일치하고 있다.
세 번째 질문은 시대의 종말의 징조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마태복음 24:23-25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성경 본문이 밝혀주고 있는 것에서 다른 것에 대해 눈을 돌리거나 어떤 자의적인 주장을 빌어 와서 해석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여기서 설교를 듣는 대상은 유대인이다. 16절에서 『그때에 유대에 살고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유대라는 지명으로 유대인 제자들이 그 대상이다. 그 다음에는 장소 또한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유대(Judea)이다. 또 한 가지는 안식일(24:20)에 대한 언급이다. 『너희는 피난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안식일과 그리스도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맺은 규례이지 신약교회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점은 골로새서 2:16 -17에서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명절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모세의 율법은 안식일을 어긴 사람을 돌로 쳐 죽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임을 밝히시고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쳐 주셨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유대인)은 돼지고기도 먹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개신교회들 중에 안식일을 주일과 구분하지 못하고 성일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교회가 경배 드리기 위해 모이는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지 안식일, 즉 유대인이 쉬는 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 한 가지 언급한 것은 다니엘의 예언인데, “멸망의 가증한 것이 유대인 성전에서 있는 것을 볼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앉아 있는 때는 대환란의 3년 반이 지난 뒤에 이스라엘과의 약속을 폐기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교회의 휴거에 관해서는 여기에서 밝히지 않았다. 교회의 휴거는 에베소서 3:1- 12에서 밝힌 대로 또 하나의 신비이다. 교회의 휴거는 고린도전서 15:51과 데살로니가전서 4:13-18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이루어져서, 교회는 환란 중에 지상에 없게 된다. 이 환란은 “야곱의 고난”, 곧 이스라엘의 환란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 된 것은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교회 건물을 지어놓고 마치 구약 유대인들의 성전처럼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하나님께서 성도의 몸에 거처를 정하신 이 세대에는 건물이 하나님을 모시는 곳이 아니다. 『그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는 계시지 않으며』(행17:24), 하나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나 성전이라 부를 수 있다(암5:5, 7:10-13; 렘48:13). 만일 하나님께서 버리시게 되면 그것이 아무리 잘 지어졌다 할지라도 쓰레기 더미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예레미야 52장). 하나님이 성전(그 사람) 안에 계시지 않으시면 그 사람의 몸은 황폐하게 되어 버린다.
우리나라에 성령을 외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은 여의도 조용기 목사의 교회를 흉내 내려고 성령화운동이나 성시화운동, 교회 성장론, 기도와 평화, 사랑 등을 내걸고 있다. 이 성령을 외치는 사람들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도 모르며 소란을 피운다. 그들은 성령님이 자신을 위해 증거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도 모른다. 성령님은 삼위 중의 한 분이시지만 자신을 위해 증거 하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하신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 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 분은 스스로를 말씀하시지 않으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며 또 너희에게 일어날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요16:13). 성령을 외치는 사람들은 심지어 적극적 사고방식까지 도입하여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왕국이 세워지는 것을 강력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지, 70년도 못되는 현 세상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주님께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해 기도하나이다.”라고 하셨다(요17:9). 주님은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신다. 다가올 세대에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이 세대에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그 사람들의 가르침이성경과 상반된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성령께서 성도들을 진리로 인도하시는데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인도하지 않는 영은 어떤 영인가?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주님이 주셨던 것은 “경고”였다. (1)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21절), (2)또 많은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11절). (3)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과 이적들을 보여 주어... 미혹하리라(24절).
첫 번째 속임수는 표적과 속임수이다. (1) 이 속이는 자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으며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는 세월과 더불어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다. 성경대로 하면 교회 성장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특징은 성경이 형식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령을 마치 병을 낫게 해 주는 분으로, 방언을 터지게 하는 분으로, 화평과 사랑을 실천하는 분으로만 알고 있다. 성령께서 이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병원에 갈 필요도 없고, 실업자도 없고, 사업도 잘 되고, 교통사고도 없고, 입시도 문제도 없고, 기도만 하면 통일도 되고, 수출도 늘리고, 정권도 바뀌고, 낙동강, 한강, 섬진강도 깨끗해지고, 공기도 맑아지고, 예수님은 없어도 성경은 몰라도 오직 기도만 있으면 만사형통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만 있으면 만사는 오케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다.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거듭난 사람이 먼저 자기 몸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롬12:1 -2). 그 다음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성장하지 않겠다는 사람과 같다. 헌신이란 나의 직업, 재능, 은사, 사업보다 주 예수님을 최우선에 두고 섬기겠다는 결의이다.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부분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이 헌신이 없으면 주님의 뜻을 밝히 알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지 내 마음대로 해 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운운하는 삶이 아니다.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비난과 박해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뜻 가운데서 구하는 것이지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니다. 특히 거듭나지도 않았고, 거듭났더라도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기도하면 다 된다고 알고 며칠간씩 기도원에서 기도만 하게 되면 악령이 침입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냉정히 따지면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영적교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을 드러내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을 먼저 드러내지 않는다. 그 무엇을 하더라도 말씀에 따라 행하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한다. 주의하라! 성경을 배제한 한국식 기독교를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속이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 속지 않는다(벧후 2:1-4; 딤전4:1-5; 딤후 3:1-6 참조).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은 하나님의 말씀(바른 성경)에서 벗어나 행동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순절 교회의 교리는 신약교회의 교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은 고린도전서 15:1-6에 명시된 은혜의 복음이다. 이 은혜의 복음 외에 천국복음을 이 시대에 전하려 한다면 갈라디아서 1:1-9에 따라 저주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순복음이란 성경에 없는 용어이다. 카톨릭에서 쓰는 대부분의 용어가 - 고해, 성사, 연옥, 묵주 등도 - 성경에 없는 용어들인 것과 같다. 방언을 말하며, 병이나 낫고, ‘귀신’이나 쫓아내고, 기도하면 만사형통한다는 것을 순복음이라 한다면 갈라디아서 1장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에 없는 것을 도입해서 쓰는 그들의 발상부터 비성경적이다.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란으로 넘겨주며 죽이리라. 또 너희는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4장에서도 9절은 더욱 어려운 구절이며, 자기나름대로 성경주석을 쓴 사람들 때문에 잘못된 교리들이 확산되어 있다. 이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7:17- 20, 마가복음13:9-11, 마태복음 10:23과 대조해 봐야 한다. 첫째 이 사건은 열두 제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은 그 당시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지 않았다. 둘째 “끝”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어떤 사람들의 생애의 끝을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의 시대의 종말을 말한다. 만일 이 끝이 A.D. 70년에 있던 시대의 끝이었다면 끝까지 기다렸던 사람들도 구원받지 못했으며,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A.D. 70년도 체 살지 못하고 A.D. 50년경에 죽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따라서 이 구절을 적절하게 해석하려면 그 당시가 아닌 미래의 환란 때에 유대인 복음전파자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마태복음 10:21-23은 미래를 보는 예언적 구절이기에 교회시대를 뛰어 넘어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 단12:1-3)를 겨냥하여 예언할 수 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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