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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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은 “언제,” “누구”에게 적용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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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2월호>

신약성경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 중에서 마태복음 25장을 지난 2회에 걸쳐 해석하였다. 이번호에서는 마태복음 24장을 다루려고 한다. 마태복음 24장 다음에는 사도행전 2:38과 히브리서 6:4-6을 차례로 다룰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방법이 다양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은 여러 성경 주석가들의 서투른 주석들로 증명되고 있다. 24장의 해석을 잘못한 결과로 인해 미국에서만도 무려 15개의 이단 교리가 생겨났었다. 지금도 많은 신학교와 대학원 등이 이 장을 현세에 적용하기도하고 A.D.7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또한 우리 나라의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 종말론을 고집하고 있는 신학교에서는 갈수록 헛소리만하고 있고 스스로 성경해석을 포기해 버리기도 하며, 전천년주의 입장을 취한다고 하면서도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고 믿기도 한다. 이 두 부류의 신학교들의 이러한 양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려고 하는 열의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고명하다고 믿어지는 학자들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즉 스트롱(Strong), 핫지(hodge), 칼빈(Calvin), 댑니(Dabney), 질(Gill), 매튜 헨리(Matthew Henry), 드웨트(De Wette), 로버트슨(A.T.Robertson), 메이첸(Machen), 와필드(Warfield), 심슨(Simpson), 휘티(Whithy), 덤멜로우(Dummelow), 벌콥(Ber- khof) 등이 취한 성경해석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가르쳤기 때문에 점점 혼미한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고, 종국에는 다른 성경 구절들과 조화를 이룰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은유적 해석방법을 궁여지책으로 도입하게 되어 성경해석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성경을 모르면서도 성경을 가르쳐야 하고 설교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요, 하나님께는 불경스러운 일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요16: 13)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학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학자인지는 분별할 수 있어야 바른 진리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나눌 줄 알고 기록된 그대로 믿고, 다른 성경구절과 비교하여 이해 할 수 있다면 크게 어려운 귀절이 아니다.
그러나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 성경해석 방법으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다. 여기의 사건은 A.D.70년 로마의 티투스(Titus)에 의해 정복당한 예루살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또 너희는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들을 것이라.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이는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겠지만 아직 끝은 아니기 때문이라』(24:6),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며 일어나겠으며,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여러 곳에서 있을 것이니』(24:7), 『이 모든 것이 고통의 시작이라』(24:8).
이 구절도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17장, 계시록 11장의 기록들과 함께 7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렇지 않다.
첫째, A.D.70년에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대적한 일이 없었다. 나라가 다른 나라를 대적하는 일도 없었으며 전염병이나 지진도 없었다. 마태복음 24:9절에서 말한 환란에 넘겨진 제자도 없었고 예수의 이름으로 인하여 미움을 받은 제자도 없었다.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AD.70년에 살고 있던 제자들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 24:29에서 『그날의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또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는 말씀과 24:30의 『하늘에서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볼때, A.D.70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고 그에 견줄 만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계시록 11:2에서 『성전밖에 있는 뜰은 남겨 두고 측량하지 말라. 이는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이 마흔 두 달 동안 그 거룩한 도성을 짓밟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A.D.70년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예루살렘의 거룩한 도성이 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 그곳은 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였다(11:8).
거룩한 도성이라고 불리우려면 대환란 끝에 이스라엘이 회복되었을 경우에라야 가능하다. A.D.70년에 티투스(Titus)가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는 그 성을 42개월이란 ‘기간’ 동안 짓밟지 않았다. 또 그때 파괴된 헤롯 성전은 4개의 궁전인데 계시록 성전은 한 개의 궁전이다. 마태복음 24장과 계시록 11장을 70년의 예루살렘 파괴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미래의 계시를 거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역사적 형식주의자들이라고 한다. 즉 성경의 모든 귀절은 역사적인 사건들일 뿐, 미래에는 아무런 적용도 안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우선 마태복음 24장을 공부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이 A.D.70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기 바란다.
그럼 이제 한 구절씩 살펴 보기로 한다.

24:1,2 『예수께서 나가서 성전에서 떠나시니 제자들이 성전의 건물들을 주께 보여드리려고 나아오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시더라.』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다. 그리스도인도 없고 교회도 없다. 예수님은 앞서 23:38에서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하셨고 39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제부터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시더라.』
집이란 “하나님의 집”이나 이스라엘의 집을 말한다.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의 집이 되며(렘48:13; 암7:10- 13), 반면에 하나님이 그 집을 버리시게 되면 잿더미가 된다(렘7:11,14, 렘 52).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그 성전에 계시지 않는데 그 성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황폐하게 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고 십자가에 처형한 그들에게 성전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과연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귀히 여기시겠는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상태도 이와 같다. 그 사람의 몸은 성령의 전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령의 전인 것이다(엡2:2). 만일 여러분이 성령의 전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을 부르짖는 행위가 얼마나 가소로운 일임을 알고, 성령의 전이 아닌 사람들을 모아 놓고 방언이나 성령세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불경스런 일이며, 오히려 더러운 영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것이 참 교회인가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을 건축하신 분이요, 복주시는 분을 거역하면서 아무리 큰 성전을 지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지 아니하시나니』(행7:48). 성경대로 믿지 않으면서 성전 건축을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로부터 즉 AD.70년부터 그 분의 재림시까지 “성전”이 황폐하게 돼 버리고, 하나님의 돌보심이 예루살렘 성전에 없었던 것이다. 훗날 예수님이 돌아오시게 되면 그때 다시 성전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누군가가 그 성전을 7년이나 점유하게 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로마가 임시로 그 황폐한 집의 건축자가 될 것이다. 물론 교회는 이미 지상을 떠나 버린 후이다. 성령의 전인 주님의 몸이 이 지상에 남아 환란을 겪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23:39절에서 왕이 왕국과 함께 오시는데 그 왕국은 다윗의 왕국이요, 그 왕은 다윗의 아들이다(마1:1). 다윗은 유대인의 선조이기에 이 왕국은 다윗의 아들인 “주의 이름으로” 오는 것이다. 여기서 무천년주의자들이나 후천년주의자들은 그들의 방식에 따른 성경해석 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각자 강한 목소리로 성경을 은유적으로 해석한다면 무엇이 최종권위가 되겠는가? 아마도 세상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인가난 학교의 박사 학위 소지자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겠는가? 인간의 종교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실상이다.
마태복음 24:1을 마가복음 13:1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이 얼마나 거대한 돌이며 건물인지 보소서.”라고 하니』 여기서 예수님께 질문한 자는 유다 이스카리웃이 분명한데 그는 습관적으로 주님을 선생이라고 불렀다(마26:25,49; 요13:13). 유다의 관심은 성전 건축에 쓰인 시간과 돈에만 있었고(호8:14), 마지막 때의 큰 예언적 사건에 관해서는 어두웠다.

24:2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시더라.』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남김 없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돌의 크기는 65자x8자x10자나 됐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 제국이 지은 것이었고, 티투스(Titus)장군은 온유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로마 군인들은 성전의 돌들을 헐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성전터에 금이 묻혀 있을 것이라는 소문에 따라 그 터전을 쟁기질 하듯 갈아 버렸다는 것이다.

24:3 『언제 이런 일이 있겠으며』

이에 대한 답변을 4절부터 시작된다. 주님의 경고는 아무에게도 속지 말라는 것이다.
1.『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리라』(24:5).
2.『또 많은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리라』(24:11).
3.『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과 이적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함 받은 자들도 미혹하리
라』(24:24).
4. 이 귀절들을 보충해 주는 구절들은 베드로후서 2:1-4, 디모데전서 4:1-5, 디모데후서 3:1-6이니 꼭 찾아 읽어보시오.
5.누가 속이는가? 정신만 차리면 속지 않을 수 있다. - 신부, 성경주석가, 목사, 감독, 교황, 집사, 장로, 교사, 과학자, 철학자, 비평가, 교수 등.
6.미혹하는 자는 머리에 뿔 달리고 혀가 빨간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는 자이다. 사탄은 멍청한 인물이 아니다. 다니엘보다 영리하다고 했다. 성도들이 경계한다면 그 경계를 초월하는 수법을 동원함을 알아야 한다. 드러나게 이단시 되는 문선명이나 박태선같이 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교회를 가장하고 이적을 행한다며 사람을 모으는 수법으로 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는 이다. 누가 속는가? 말로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가짜 성도가 먼저 속는 것이다.
7.자신의 믿음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속이었는가 아니면 어느 목사가 행한 이적이었는가? 그들이 가르친 방언으로 성경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아니면 그저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아버지(神父=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곳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점검해 봐야 한다.
8.어떤 사람이 속는가? 어리석은 사람이 속는 것이다. 목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지 말고 직접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으면 자연히 목사와 교회에 신실하게 된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마6:33)하셨다. 너무나 많은 목사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역에 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유명하게 되려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높아지고 싶은 사람은 낮아지라는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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