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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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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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12월호>

교인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필자의 교회로 전화 문의를 하거나 직접 와서 상담하는 사람들은 거의 10년 내지 20년 이상 교회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은 한결같이 진리의 지식을 모를 때에는 강단의 설교들을 그러려니 하고 들었지만 알고 난 후에는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더 이상 교회를 갈 수 없게 되었노라고 실토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갈 교회가 없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 되었다. 영어 "Intolerance"란 세상에 소개된 종교에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진리가 아닌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로마카톨릭의 미사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과자 부스러기와 발효된 포도주를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며 먹고 마시라고 했을 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성경을 영적으로 은유적으로 해석하는 교회에서 믿음과 관계없이 돈 될 만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불문하고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로 묶어 붙들어 놓고 일정액의 제직세를 받아 챙기는 것을 볼 때 정상적인 사람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방언을 하면 성령 세례를 받은 징표라며 방언하는 목사 밑에서 견디고 있다는 것은 곤욕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데서 견딜 수 있는가? 성령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이다. 성령이 내주한 사람은 비진리에 견딜 수 없어 하지만 악령이 내주한 사람은 비진리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스테판이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증거했을 때 『너희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 조상이 한 것과 같이 너희도 늘 성령을 거역하는도다... 그들은 의로우신 분의 오심에 관하여 미리 말한 그들을[선지자들]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로우신 분[예수 그리스도]을 배반한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천사들을 통해 지시하신 율법을 받고서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 7:51-53)라고 말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늘을 주시하여 우러러보니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고...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56)고 말하자 그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귀를 막고 일제히 스테판에게 달려들어 돌로 쳐서 죽였던 것이다. 그때 유대인들은 스테판이 전하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는 스테판이 지닌 진리의 영이 아닌 마귀의 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사람이 행해야 할 행위는 성별이다. 대부분의 교단 교회들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것을 전도라 이름 붙이기에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면 교적부에 등록하고 물 뿌리고 나면 교인이 되는데 이렇게 하는 교회나 이렇게 되는 교인이나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런 전통은 어거스틴(A.D. 354-430)의 교회국가(로마카톨릭), 존 칼빈(1509-1564)의 국가교회(지상의 신정 국가)에서 지금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루터란, 나사렛 은사주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반면에 성별된 교회인 독립 침례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만을 교회에 집어넣어 성별된 양우리를 조성한다. 구원받은 성도 개개인이 성령이 내주하시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단 교회들은 그야말로 누구나 들어가서 교인이 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래서 그 모임들을 우리는 동물원이라 부른다. 구원받지도 않고 성별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주관하려면 그들로 영적 지식에 무지하게 만들어야 편하다. 만약 그들 중에 누군가가 성경을 제대로 알고 목사의 설교나 실행을 성경으로 따지게 되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로마카톨릭의 실행과 전통은 마귀적이라서 그들이 실행하는 교리나 명칭들을 보면 모두 성경에 없는 것들이다. 즉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 수녀, 하느님, 천주, 성서, 미사, 연옥, 교리문답, 로사리, 마리아상에게 기도, 마리아 중보자,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 등, 로마카톨릭은 그들의 추종자들로 성경에 무지하게 만들어야만 통제가 가능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해서 루터의 독일어 성경가 나오기까지 1,200여 년 동안 교인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만약 성경을 가진 것이 발견되면 엄벌에 처해졌다. 참으로 희한한 체계가 교회라고 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종교적 권위까지 지니려 했을 때 문제가 없겠는가? 종교개혁 이후에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그들은 라틴어로 미사를 행했다. 한국 사람이 어떻게 라틴어를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방언이라고 하는 이상한 소리는 사도행전 2장의 외국 언어를 흉내냈을지도 모른다. A.D. 58년경 사도 베드로와 바나바가 안티옥에 왔을 때였다. 이 두 사람은 사도 바울과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유대인 할례자들이 들이닥치자 식탁에서 물러나 앉아 있었다. 할례자들로부터 유대인들이 이방인 개들과 함께 식사하느냐는 핀잔을 들을까 두려워서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도 바울이 베드로를 힐책했다.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올바르게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처럼 살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의 방식을 따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하느뇨?』(갈 2:14)라고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었던 것이다(갈 2:11-14).
이는 마치 오늘날 교단 교회 목사들은 사람들을 모으려고 갖가지 수단들을 동원하며 재물을 모으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인데 그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하고 살면서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처럼 살라고 했을 때 그 권위가 서겠는가?
그들 교인들에게 그런 목사들이 영적인 말을 할 때 곧이들을 사람들이 있겠는가? 어떻게 그들이 구원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교회에 다니겠는가?
목사들은 거짓되이 성경을 가르치며 사람을 많이 모아 치부하는 것이 설교라고 하는데 교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면 그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바빌론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과 빗나간 제사장들의 행패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수용했던 백성들에게 호통쳤던 경우와 흡사하다(예레미야 5:31을 읽어 보라).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흉내내고 진리의 지식을 흉내내는 곳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기에 교회로부터 발길을 돌리고 있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도 용납하기에 그대로 눌러 있는 것이다.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막상 교회를 나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지만 상황은 거기서 거기였다. 그들이 우리 성경침례교회를 알게 된 것은 <한글킹제임스성경>과 우리가 펴낸 책들과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을 통해서였다. 우리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7판째 펴냈을 때(지금은 17판) 출간한 책들은 약 90여 권에 달했다(지금은 160권). 그때 필자가 했던 말이 있었다. 우리가 150-200권의 책들을 펴내게 되면 거짓 교회들이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리히터 규모 3.5 정도의 약진일 뿐이다. 이제 곧 강진이 시작되면 자기들이 다녔던 교회들이 교회로 보이지 않게 될 때가 오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에 교인들을 붙들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다. 성도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성경을 공부하지 않기에 믿음이 생길 수 없다. 믿음이 있다 해도 진리에 뿌리내려야 하는데 믿음을 진리에 뿌리내릴 수 있는 지적 힘이 없는 것이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약한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다가 쓰러지게 되어 있다.

죽은 보수주의, 배교한 근본주의, 이교도화된 은사주의자들이 지금은 재정적으로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비참하고 가련하며 눈멀고 헐벗은 존재들인데 그들은 그것마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계 3:17).

그렇다면 보수주의라고 떠벌리는 개혁주의자들의 신앙은 어떤 것인가 상자를 한번 열어 보도록 하자. 그들이 가르친 것들은 성경이 말씀하신 것과 다른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의 다윗의 보좌에서 영원한 의로 열두 지파를 치리하여 오고 있다. A.D. 70년 이래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무리들에게서 나온 형편없는 거짓말이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A.D. 70년에 올리브 산에 돌아오셨다. 따라서 교회의 휴거는 과거에 있었으며 멸망의 아들 적그리스도는 진작 이 땅에 와서 짐승의 표를 주고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휴거, 대환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적으로 간주하여 무천년주의 종말론을 신봉한 것이다. 그들이 성경을 믿는 것인가?
3. 자연은 1900년 전에 부패로부터 해방되었다(마 19:28, 롬 8:19-23, 사 11장)
4.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과거에 있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3:9-15, 고린도후서 5:10, 로마서 14:10을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5.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1:1-8,10-25; 22:1-6은 영적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6. 구약에서 UN과 이방 나라들(Nations)의 미래를 다룬 부정적인 예언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모두 은유적으로 해석한다.
7. 민족들의 심판은 이미 이루어졌다.
① 예수님은 그분의 종들을 이미 심판하셨고
② 어린 양의 혼인식은 이미 치러졌으며(시 45편, 계 19장)
③ 아마겟돈 전쟁도 끝났다(계 14장, 욜 3장, 사 63장, 렘 25장).
④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믿는 자들이 교회를 차려놓고 있다면 그 교회 안에 앉아 있는 교인들이 어떤 종류의 믿음을 지닐 수 있겠는가? 성경을 믿을 수 없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이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믿지 못한 사람이 교회는 다녀서 무엇 하겠는가? 이런 무익한 교회가 이 땅에 5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는 자들이 목사며, 선교사며, 성경교사며, 부흥사겠는가? 구원의 복음이 가려진 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서이다(고후 4:3, 살후 2: 10).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마귀의 종들임을 드러내고 있다.

마귀의 종들의 특색은 구원을 내세워 사람들을 불러다가 돈을 가져오게 만드는 것이다. 믿음 없는 교인들은 돈만 많이 내면 뭔지는 몰라도 마음이 든든하다고 느끼며 그렇게 행하고 있다. 이들은 둘 다 하나님을 거지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성경 어느 구절에 하나님이 돈을 탐내는 분이라고 쓰여 있던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딤전 6:10).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마 6:24). 또 더러운 이익을 탐내는 자는 목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딤전 3:3). <개역성경>은 이 말씀을 삭제시켰다.
그들은 세상에 알려지기를 좋아한다. 그래야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이 교회인 줄 알고 또 훌륭한 목사인 줄 알고 찾아와서 돈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교단이란 성경에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단을 만들어 그들은 그들의 교회를 교단에 가져다 바치고 교단의 종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처한 자가 교단의 종이 되기를 자원한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신데 그들은 그들의 머리를 교단으로 대치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교인들이 진리에 눈뜨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진리의 지식에 눈뜨면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 들어가시면 그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요 16:13). 어떤 거짓말이나 거짓 교리도 그의 눈이 불꽃 같은 분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의 당부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2,200단어가 삭제되고 3만 6천 군데가 틀린 <개역성경>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며 말씀보존학회의 책들을 읽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단 서적이라고 하면서 연막을 치고 있다.
당신이 지금 어떤 교회에 있는지 점검해 보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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