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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같은 설교를 대여섯 번 하는 목사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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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1월호>

하루에 같은 설교를 대여섯 번 하는 목사들, 왜?

주일 하루에 똑같은 설교를 대여섯 번 반복하는 목사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봐 주어야 하며 평가해야겠는가? 그렇게 설교하는 자들이 자기들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고 회중에게 말하고 있다니 이 더욱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은 한국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식 기독교 안에서 배양되었고 거기서 나온 열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 교단 교회들의 잃어버린 특성
어떤 교단이 만들어졌을 때는 분명히 성경적 근거 위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때로는 지도자를 추종하다 보니 그 지도자가 성경에서 먼저 깨달은 교리와 신념에 동조함으로써 가세했을 경우도 있었을 것이요, 또 어떤 경우는 뭔가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집안 어른들, 즉 할아버지나 아버지 혹은 어머니, 형제들이 일찍부터 다녔던 교단 교회라서 그 교단에 속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교단이란 정치적 정당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나 신념에 동조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 유대교 안에도 바리새파, 사두개파, 셀롯(Zealots)열성파, 에세네(Essenesses)파 등이 있었다. "우리는 더 성경대로 믿겠다"는 기치 아래서 만들어지지 않은 교단이 있다면 그 교단의 출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교단을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 교단 교리들이 성경에 위배되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 드러났다면 가차없이 버렸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기존 교단에서 또 다른 교단이 만들어졌다면 잘 만들었을 경우에 그것은 성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예수교장로회합동 교단처럼 교단총회에 반감을 품은 자들이 육신적인 분리를 획책하여 200여 개 교단으로 쪼개졌다면 그것이야말로 난장판이 아닐 수 없다. 교단들은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그들 교단들이 교회협의회(KNCC)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가입함으로써 교단의 특성을 스스로 없애 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교단의 특성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라면 구태여 교단의 이름을 들고 나와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2. 루터란 교회는 마틴 루터의 뜻을 따르겠다고 해서 만들어졌는데 그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받들어 바른 성경대로 실행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루터교란 간판을 내려야 마틴 루터를 덜 욕되게 하지 않겠는가? 장로교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뜻을 따르겠다며 만들어진 것 아닌가? 다른 것은 다 덮어 두고라도 존 칼빈이 로마카톨릭과 손에 손잡고 카톨릭 성경(개역성경)을 사용했으며 카톨릭의 권위와 전통을 존중했는가? 존 칼빈의 뜻을 실행하지 못하여 개혁장로교의 근본 취지를 망각했다면 장로교의 간판을 내려야 되지 않겠는가? 감리교, 성결교는 왜 갈라섰는지 납득이 잘 안 된다. 서로가 존 웨슬리, 조지 휫필드, 애쉬벨리의 신앙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을 본받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끝까지 견디어야 구원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겠는가?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는 대서양을 오가면서 적어도 2백만 명 이상의 혼들을 주님께로 이겨왔다. 감리교와 성결교가 이들을 본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은 교단의 간판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감리교와 성결교는 그들의 지도자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웨슬리와 휫필드가 사용했던 성경은 <킹제임스성경>이었다.
부산에는 장로교 고신파 교단이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선배들이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는 것을 내세워 교단을 만들었다. 그때 신사 참배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거의 다 죽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신파 교회들은 선배들의 후광이나 자랑하고 있다. 우리 하나님은 산 자들의 하나님 되심을 알아야 한다.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얼마나 자기와 친한 사람들이 믿었다 해도 그 믿음은 전수되지 않는다. 오늘의 내가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만이 인정을 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믿음은 과거의 믿음도 아니고 미래의 것도 아닌 현재의 성경을 믿는 믿음을 말한다.
교단 교회들은 대부분 성경 해석의 차이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그들이 지키려 하는 교리는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교회에서 알미니안주의 교리를 채택하거나 수용해야 할 경우는 그들을 비판하는 경우 외에는 전무할 것이며, 알미니안주의자들도 칼빈주의 교리에 대한 인식 또한 동일할 것이다. 따라서 교단 교회들은 성경의 일부분만을 수용하고 강조할 뿐 성경 전체를 보는 안목도 없고 이를 수용할 수도 없게 된다. 은사주의자들은 은사들을 중요시하다 보니 그런 교단이 생겨났다. 그들은 성령의 열매는 무시하면서도 성령 세례만 강조한다. 성령에 관해 가장 무지한 사람들이 성령을 말하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 우습지 않는가?
구원받은 성도 안에는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내주하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성령의 열매들을 낼 수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하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열매가 없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들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방언(언어)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 없는 소리는 악령의 역사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방언하는 그들을 향하여 그런 헛된 소리를 낼 때 악령들린 것이라고 지적하면 그들은 우리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고 예수님 앞에서 마귀의 능력으로 행했다고 말했을 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셋째 하늘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시어 우리를 중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그리스도께서 흘린 보혈에 의지하여 기도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는 것이다(요일 1:7-10). 은사주의자들이 성경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보라! 은사주의자들이 교회를 하려면 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전서 14장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두 장도 그들의 해석 방법이 틀린 채 붙들고 있기 때문에 은사주의자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교회라는 교단은 어떤가? 사도행전 2:38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교단 교리를 주장하려면 이 구절 외의 성경의 모든 부분을 던져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왜 성경 전체를 믿지 않는지 이제 그 원인을 알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침례교회는 다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 남침례교회는 교단(Convention)이었고 성서침례교회는 교단 명칭을 친교회(Fellowship)로 바꾸었다. 그들은 성경에서 금하는 여자 집사들을 두고 있으며, 수원의 김장환 목사 교회는 성경에서 금하는 개신 교회의 장로직제를 두고 있으며, 귀신 쫓는 성락침례교회, 죄사함의 비밀이나 우려먹는 기쁜소식선교회도 침례교회라고 한다. 침례교회 종류도 줄잡아 36가지나 된다고 한다. 침례교회이면 모두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면 장로교회든 감리교회든 침례교회든 바른 교회가 될 수 있어도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지 않게 되면 그 무슨 교회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실격이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데(고전 2:15) 그 이유는 영적인 사람은 바른 성경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성전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 개개인을 말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인 건물이라면 그것을 교회라고 불러도 무방하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다면 그것은 교회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마귀는 "창녀의 교회"라고 성경에 명시한 로마카톨릭도 교회라고 부르게 만들어 놓았고 방언하는 자들의 모임들도 교회라고 부르게 하여 선과 악, 참과 거짓의 구분을 없애 버렸다(사 5:20). 그렇다면 하루에 같은 설교를 대여섯 번 하는 목사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맡은 하나님의 청지기들인가 아니면 마귀에게 쓰임받는 우상 목자들인가?(슼 11:17) 만약 그들이 복음의 열정이 있어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할 의도로 목소리를 높여 하루에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복음을 외쳤다면,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람들로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세상적인 삶의 기준에서 성경적 기준으로 돌아섰다면 그는 매우 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일(요 6:29)을 수행했고 하나님의 뜻(요 6:39)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약 그가 헌금을 더 거두기 위해 대여섯 번 같은 설교를 반복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자기 장사를 한 사람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마 6:24). 하나님께서도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다고 말씀하셨는데(딤전 6: 10) 이 말씀을 부인할 생각인가?
새벽부터 일어나 첫 번째 설교에는 돈이 얼마나 들어왔고 두 번째는 얼마,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머리로는 돈을 계산하며 같은 설교를 반복하는 그가 복음의 전령인가 아니면 돈을 탐내는 거렁뱅이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를 어떻게 볼 것이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러한 목사를 신뢰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겠는가? 이런 짓을 하는 교회들을 찾아가서 1부, 2부... 7부 예배에 가서 앉아 있는 교인들이 정상적이겠는가? 유다 민족이 바빌론 포로되기 직전의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경이롭고 무서운 일이 땅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개탄하셨다. 『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란 말씀은 이를 두고 하신 것이다(렘 5:30,31). 목사라는 자들은 하루에 대여섯 번 같은 설교를 하고서도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성경적으로 정상적인 교회에는 새벽기도회도 없다. 주일 오전 10시에 모여 성경을 한 시간 공부하며, 11시에 오전 예배, 오후 6시경에 다시 모여 저녁 예배를 드린다. 오후 예배는 교회의 형편에 따라 시간을 신축적이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수요일에는 저녁 7시에 기도회로 모인다. 예배가 아니라 성도들이 모여 성도들의 문제와 교회 사역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여 응답받아 해결 본다. 사역은 인간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모였는가가 중요하다. 그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복음이 전해져서 모두 성령으로 거듭났으며 거듭난 사람들이 모두 진리의 지식으로 양육받아(딤전 2:4) 주님께 자기들의 몸과 영을 드려 세상 기준을 버리고 성경적 기준을 택하여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거짓 은사를 행하는 자들에게 현혹되어 불치의 병을 치유받고, 귀신을 쫓고, 물질적인 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낙원처럼 살기 위해 모여든 것인가? 왜 그런 교회들이 돈을 요구하여 마치 교회가 돈버는 날강도들의 소굴같이 되어 버렸는가? 모두 여의도에서 불어온 바람탓일 것임이 분명하다. 그들을 흉내내는 성락교회,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박옥수파, 구원파가 그의 동료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흉내내는 대형 제도 교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참 교회상이 어떤 것인 줄 모르기에 성경대로 지킬 필요가 없는 그런 곳에 가서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려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소위 대형 교회라는 곳에 바른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몇 사람이라도 있는가 보라. 필자는 여기에서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할 수 있는 증거를 몇 가지 제시할 필요를 느낀다.
(1) 참된 교회는 헬라어 <표준원문>과 거기서 나온 <킹제임스성경>을 가지고 있는 반면 거짓 교회는 네슬-알란드 헬라어성경과 거기서 나온 <개역성경>이 있다. 따라서 이 두 교회는 최종권위에 대한 기원을 달리하고 있다.
(2) 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신 구원 계획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거듭남을 가르치는 반면, 거짓 교회는 유아에게 물을 뿌려 중생이라고 믿게 한다.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
(3) 참된 교회는 구원의 확신을 가르치는 반면 거짓 교회는 죽기까지 구원받는 여부를 알 수 없다고 가르치거나 택함을 받은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두 교회는 성경적으로 다르다.
(4) 참된 교회는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바른 성경으로 삼는 반면 거짓 교회는 교황과 학자들의 말, 전통과 공회와 신조들을 그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두 교회는 도덕과 행위의 기준이 다르다.
(5) 참된 교회는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분명히 구원받았다는 고백이 있을 경우에만 침례를 주지만 거짓 교회는 구원받은 고백이 없어도 신조나 주기도문을 외우면 세례를 주어 교회 회원을 삼는다.
(6) 참된 교회의 주요 사역은 구령하는 목사와 성경 교사와 신실한 성도들에 의해 수행되지만 거짓 교회의 주요 사업은 정치활동, 세상에서 인정받는 단체들, 교단의 벽이 없는 교회통합운동 내지는 종교통합운동의 지도자들에 의해 수행된다.
(7) 참된 교회는 모든 사역을 교회가 수행하는 반면 거짓 교회는 교단이나 선교 단체들의 이름으로 교회의 사역을 대신하고 있다.
(8) 참된 교회는 어느 때라도 세상으로부터 환대를 받아 본 적이 없지만 거짓 교회는 세상에서 인정받으며 세상 속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세상을 위해 일한다.
(9) 참된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고 구령하여 그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시켜 마귀의 계략에 대비하게 하는 반면 거짓 교회는 성경을 가르치거나 그 어떤 부흥과도 연관된 적이 없다.
(10) 참된 교회는 성경대로 믿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년왕국을 통치하실 것을 믿고 고대하는 반면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무시하고 이 땅에 인간의 힘으로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

성경을 믿는 교회는 성경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지옥의 엄중함을 강조하는 반면 거짓 교회들은 성경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지옥의 엄중함도 가르치지 않는다. 하루에 같은 설교를 수차례씩 반복하는 교회일수록 성경대로 실행하는 교회가 없다.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찾는 자가 적으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도 광대하여서 그 길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씀하셨다(마 7:13,14).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 대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우상 목자들은 주일이면 지금도 같은 설교를 대여섯 번씩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