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 분류

순간의 제단 위에 영원을 불태워 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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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8월호>

필자를 가끔 찾아주는 올해 80세 된 은퇴한 장로교 목사가 한 분 있다. 엊그제도 또 불쑥 찾아와서 자랑을 늘어 놓았다. “중국 동부 삼성에 17번째 갔다왔지요.”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까?” “아니요. 요한계시록을 강해했지요. 나보다 요한계시록을 더 잘 아는 사람은 한국에 없습니다.” 그는 중국에 갈 때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몇 권씩 사가지고 가서 그들에게 빼앗기고 왔다고 했다. 너무 좋은 성경이라며 손에 넣으면 돌려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의 질문이 이어졌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요한계시록을 가르쳐 주면 그들이 알아듣습니까? 바위에다 소리지르는 것과 같이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먼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게 해야지요. 그리고 난 다음에 아주 쉬운 것부터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가 나의 조언에서 뭔가 집히는 것이 있었는지 나의 얼굴을 한참 응시하고 있었다. “거듭나면 그 사람에게서 증거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애가 변화됩니다. 변화되지 않은 채 교회에 다닌 사람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믿은 사람입니다.” 그가 반문한다. “구원받는 것이 그리 쉬운 일입니까?” “쉽고 말고요. 더러운 사람이 목욕하는 것만큼 쉽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습니다. 성경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하시는 분이십니까? 저도 그렇게 해서 마흔 살 되던 해 7월 23일 새벽 4시에 구원받았습니다. 다만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 10:9, 10).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존중하시는 분이시며 그 신실함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딤후 2:11-13).’라고 말해 주었다. “박목사님은 거듭났습니까? 박목사님 안에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요한계시록을 가르치면 그들이 이해할 것이라고 역사하시던가요?” 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는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그리스도인은 구령을 해야 합니다. 마귀의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복음을 믿게 해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이겨와야 합니다. 그래야 구령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자랑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고전 2:19,20).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요한계시록을 강의하며 중국천지를 다녔어도 상이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책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를 나왔다는 근거로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고 덤비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사 안수 받았다는 근거로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고 덤비는가? 하나님의 사역은 영적인 일이기에 위로부터 지혜와 영력을 받아야만이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도 않은 자연인이나 구원을 받았다 해도 성경적 원칙을 무시하는 육신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가 성경을 배제하는 마귀들의 소굴로, 아니면 재물을 모으는 강도들의 소굴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위로부터 지혜와 영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영적인 일들을 수행하려면 마치 전동차의 기관사가 내려서 자기 힘으로 그 전동차를 미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기관사가 전동차의 레버를 전진이라는 위치에 놓으면 차가 갈 수 있는 것을 내려서 미는 힘든 일을 하나님께서 시키시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셨는지를 점검해야 하며 부르심을 확인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들어쓰고 계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역자가 이 두 가지를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소개하거든 저런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어 사용하시는가를 점검하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쓰고 계심을 확인했으면 그를 존경해도 되지만 부르시고 쓰시는 증거가 없다면 존경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특징은 어떤 것들인가? 첫째,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2,33).
최근에 우리는 목사라는 사람이 우상 숭배자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한 사건을 보았다. 사람들은 사람을 외양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은 외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을 보신다. 외양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속을 보시는 하나님께는 실수가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 하면서 증거나 열매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별짓을 다 해도 하나님의 종은 못된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 증인이다. 신약성경에서 증인이란 마르투스(μάρτυς), 즉 순교자를 뜻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으며 영생을 얻었고 죽으면 부활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다. 실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복을 이미 받은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고전 1:18).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가지고 접근했을 때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배척한다. 예수님은 『내가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더니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나이다.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옵니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7:14). 세상에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이 순교자라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순교자이기는커녕 증인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은 승려를 보고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말씀(주님)을 증거하려다 하나뿐인 목숨을 잃은 수많은 순교자들을 본다. 현재 제도화 된 교회들에서 쓰고 있는 교회사는 모두 다 친카톨릭 교회사이지만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카톨릭 교회사를 쓰고 있다. 반카톨릭 교회사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피로 기록된 역사이다. <폭스의 순교사>는 그리스도인의 필독서이다(말씀보존학회 출간, 2002년 5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는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 불린다. <위클리프성경>은 최초로 번역된 영어 성경이다. 그는 1366년 왕궁의 궁전 목사가 되었고 1374년에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위클리프는 안티옥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처럼 성경을 믿음과 실행에 있어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위로 믿었다. 그는 옥스포드 출신자들로 가난한 사제단을 조직해서 영국 전역에 걸쳐 성경을 설교하도록 했다. 그는 자진해서 가난을 택했고 거리에서 설교하였다.
위클리프는 로마카톨릭의 평신도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유아세례를 거부했다. 그는 마리아 숭배, 연옥,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묵주, 유품숭배와 외경을 거부했고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가르쳤다. 한마디로 그는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인이었다. 그는 런던의 성 바오로 성당의 주교 앞에서 재판을 받았다. 교황은 위클리프의 모든 저작을 정죄했고 라틴어에서 최초로 번역한 그의 영어 성경을 금지시켰다. 1415년 콘스탄스 교회는 그의 책들을 불태우도록 명했으며 후일 그의 무덤에서 유해를 파헤쳐서 불에 태웠다. 위클리프를 따르다가 보헤미아의 존 후스가 46세의 나이에 화형에 처해졌고 사보나롤라도 46세의 나이에 두 달 동안이나 고문당한 끝에 화형에 처해졌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인하지 않는 증인으로 남기 위해 이 지상 생명을 주님께 바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자기들 생명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구하리라.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버림을 받게 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나와 나의 말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누구든지 인자가 자신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리라』(눅 9:23-26).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요 3:36; 5:24, 요일 5:12), 죽으면 부활하게 될 것을 확신한 사람들이(고전 15:12- 19, 51-54, 살전 4:13-18) 지상에서 우상 숭배자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가 복음을 통해 영이 거듭난 사람이라면 말이다.
금년 6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33세의 한 청년이 모슬렘 테러분자들에게 희생된 사건이 있었다. 온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 이유는 무고한 생명이 불법자들에 의해 희생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산신학교를 졸업했고 한세신학대학원 선교학과를 2년이나 다녔다. 그는 온누리교회에 출석했던 교인이었다. 만일 그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었더라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떳떳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히 9:27).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니라 사고, 재앙, 질병, 전쟁으로도 죽는다. 1년에 우리 나라에서 돌연사로 죽은 사람이 5만 명이나 된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도 8천 명이 넘는다. “나는 죽기 싫다.”고 소리소리 질러도 죽고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 그는 모슬렘 테러분자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거하다가 죽었더라면 순교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 누군가가 그의 증거를 통해 거듭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사례는 너무도 많다. 그랬더라면 그는 순교자가 받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계 2:10). 최초의 영국의 순교자였던 알반(Alban)은 화형대에서 자신을 채찍질했던 사형 집행관을 회심시켰고, 그리스도인을 고문했던 중국의 한 공산당원은 고문당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던 그 성도들로 인해 회심되었고, 회심한 후에 사형되었던 일도 있었다. 그는 처절하게 육신의 생명을 사랑한다고 외쳤지만 그들 테러분자들은 끝내 마귀의 하수인으로 행세하고 말았다. 그 젊은이는 거의 순교자가 될 뻔하다가 말았다. 그가 부산신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웠으며 한세신학대학원에서는 무엇을 배웠을까? 온누리교회에서는 무엇을 배웠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으려면 왜 신학을 공부했을까?
우리가 이 지상 삶을 사는 기간은 기껏해야 70-80년이다. 성경은 인생을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도 하며(약 4:14), 모든 인간의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다. 풀은 마르고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으며 이것이 우리 인간들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벧전 1:24,25).
영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지상 삶에 가치관을 두고 산다. 영생을 얻었고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면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고 믿는 사람들이(살전 4:13-17, 고전 15:12-19, 51-53) 구원받고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서 왜 그리 슬피 우는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장례식에서 슬피 우는 이유를 모르는가? 그 죽은 사람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게 될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며 자기들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알기에 슬피 울며 또 우는 것이다. 필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다. 누님이 죽었을 때도 울지 않고 일가친척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여기 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믿음으로 알 수 있다. 어떤 순복음 목사처럼 그리스도인은 지상에서 병도 없고 부자여야 하며 마귀도 물리쳐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심지어 긍정적 사고방식까지 들먹거리며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전하여 오는 천년왕국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리고 있다. 그의 가르침은 성경과 정반대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 이렇게 지상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헛되이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순간의 제단에다 영원을 불사르는 자들이다. 그러한 자들은 가짜 그리스도인이며 가짜 사역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엄격하게 외치신다. 『나에게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하리니,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리라』(마 7:21-23).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뿐인 아들을 제물로 내놓으신 분께서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 앞에 거짓말하시려고 성경을 기록하셨겠는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헛소리하며 치부하는 자들에게서 어떤 경배를 받으시겠는가? 그런 쭉정이들 앞에서 인정받는 하나님이시라면 그런 신은 싸구려 신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자들이라고 하셨다(롬 16:18, 빌 3:19). 『속지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갈 6:7). 순간의 제단 위에 영원을 불사르는 자들은 모두 성경을 믿지 않는 가짜 증인들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