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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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가리는 칼빈주의 5대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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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5월호>

아무리 좋은 샘물이라 할지라도 그 원천수보다 깨끗할 수 없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 할지라도 그의 교리가 성경의 검증에서 벗어났다면 성경적 교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우주 같은데 교단 교리로 성경을 증명하려 드는 것은 마치 종이로 만든 봉투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담아 옮기려는 헛수고에 불과하다. 기독교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려고 나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더 오래된 시대의 신학자들이나 설교자들이 성경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알았을 것이라고 잘못 인식한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은 영적인 책인데, 보다 옛날에 살았다는 이유로 성경을 더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하여 해석할 수 없게 되면 그 누구에게라도 성경은 어려운 책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성경 주석을 쓴 사람들치고 한두 해 성경을 공부하고 주석을 쓰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은 성경의 어떤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머리가 명석하고 IQ가 높다고 해서 성경을 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다 아는 바와 같이 개혁주의자였다. 그는 위대한 행정 관료였으며, 위대한 정치 신학자였고, 위대한 철학적 주석가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지각과 믿음을 가진 종교 개혁자였다는 점과 한 번 거듭나면 영원히 구원이 보장된다는 점을 인식한 사람이었다는 것 외에 별로 인정할 것이 없다.
그는 헬라어 표준원문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한 올리베탄성경의 번역자이자 왈덴시안 교회 목사인 올리베탄(Robert Olivetan)과 사촌으로, 올리베탄성경의 서문을 쓸 만큼 명석했다.
성경을 읽어도 조명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그 말씀을 믿을 수 없다. 말씀을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성경은 어려운 책이 될 수밖에 없다. 성경을 모르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리가 주어졌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교단 신학교를 나와서 어찌어찌하여 교단 교회의 목사가 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제단의 뿔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해법 중 하나는 옛날 주석가들의 뒤에 줄을 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사는 길은 자기와 보조를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드는 것이고, 모임을 만들어 그 안에 끼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교단이 생겨났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간적인 결합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의 하나님이시지 어떤 단체나 조직 또는 교단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에서도 존 칼빈 뒤에 줄 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칼빈에 관한 서적은 3천 권이 넘으며 그에 대한 논문도 1만 2천 편이 넘는다고 한다.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는 조직신학이 아니라 플라토의 철학적 관점으로 신학을 기술한 것이다. 뵈트너는 루터가 성경 번역가들 중 왕자였다면 칼빈은 성경 주석가들의 왕자였다고 말했지만 그런 말을 한 뵈트너도 성경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칼빈은 성경의 열쇠인 요한계시록을 깨달을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그런 까닭에 킬빈 주석에는 요한계시록 주석이 없다.
나는 존 칼빈의 생애에 관해 이 글을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 5대 강령인 소위 TULIP, 즉 전적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된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에 관하여 성경으로 짚어 설명하려고 한다.
칼빈주의의 본질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유효하여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주의 5대 강령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보라!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는 다녀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 칼빈주의 5대 강령이다. 이런 혼란스런 교리가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교회에 의해 복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칼빈주의 교리가 아니라 이단 교리이다.

1. 전적타락(Total Depravity)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 모두라. 이는 내가 그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라 』(창 6:6-7).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지으셨을 때 각자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사람이 그들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기대하셨지만 그들은 그들의 의지로 사탄의 회유에 동의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로봇같이 만들지 아니하셨고 의지를 주시어서 그 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마귀를 섬기든지 결정할 수 있게 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창 2:7). 개역성경은 살아 있는 혼이 아니라 “생령”이 되었다고 번역했다. 고린도전서 15:45에서도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썼다. 이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칼빈의 전적타락, 즉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타락했기에 의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큰 오류가 이단 교리가 되었지만, 살아 있는 혼을 산 영으로 고친 것도 큰 오류이다. 이중 오류가 그들의 눈을 멀게 했다. 이 인간은 지성, 감정, 의지인 혼을 가진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에베소서 2:1-4은 거듭나기 이전의 인간의 상태를 말한다. 그런 죄인이기에 살리심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죄인 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일이다(요 1:12-13).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의지로 영접하지 않고는 거듭날 수 없다. 요한복음 3:36을 읽어 보라! 당신이 믿기 전에 당신 위에 있었던 진노에 대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 위에 진노를 부으시겠는가? 그런데 칼빈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진노를 부으신다고 생각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기 거부한 유대인들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행 2:23). 스테판은 예수님을 죽인유대인들을 살인자라고 불렀다(행 7:52). 어떤 사람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어 스스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거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부질없는 헛소리 아닌가! 이것이 이단 교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칼빈주의자들은 성경보다 칼빈을 더 신뢰한다.

2.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칼빈은 택함 받았다는 단어와 에베소서 1:4의 특이한 표현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칼빈은 이 부분을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 우리가 그분 안에 있었을 때 우리를 선정하시어”라고 해석했다. 칼빈은 창세기 1:1 이전에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아담이 나타났을 때 당신은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지게 되었고, 에베소서 2:1-4에서 살림을 받았을 때 다시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인간은 의지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무조건 선택하셔야만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에베소서 1:5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셨으니 』 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조건 선택하신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그의 기쁘심을 따라 자기 안에서 계획하신 바 그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게 하셨으니 』(엡 1: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도하신 그분의 임의적인 뜻대로 구원받을 사람이 예정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베드로전서 1:2에서는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함 받은 자들에게 』 여기서 택함이란 영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다만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통하여,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로마서 8:29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 예정이 미리 아심에 의한 조건에 의하여 이루어지듯이, 택함 역시 미리 아심에 의해 조건지어진다. 예정이란 구원받는 것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성경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하기 전에 누구를 선택하신 경우는 없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 전에는 당신은 결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창세기 1:1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었는가? 말도 안 된다. 칼빈은 그의 신학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칼빈 뒤에 줄 선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메이첸, 댑니, 카이퍼, 질 톨리, 와필드, 벌콥, 아더 핑크, 청교도들도 동일한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이다.
왜 이런 오류가 생겨났을까? 인간이 자기 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능력하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조건적인 선택을 주장하려다 보니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받도록 또 어떤 사람은 저주를 받도록 창세 전에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는 이단 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3:16을 말씀하신 성경이 틀린 것인가?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그렇게 하셨다면 왜 복음을 전해야 하며 왜 선교사를 파송하는가?(롬 10:9-17) 이런 이단 교리를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단 말인가?

3.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제한된 속죄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해당되고 그렇지 않은 자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단 교리이다. 그 선택받은 자들이 누구인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한 자들인가? 그들이 선택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15: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6). 예수 그리스도만이 속죄의 제물로 합당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의 피가(행 20:28) 흘려지지 않았는데 속죄(ransom)가 가능할 수 있는가? 속죄가 치러지지 않았는데 죄의 용서가 가능하겠는가?(히 10:10-14. 출 34:7을 읽어 보라!)
칼빈이 제한된 속죄를 가르치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위해 죽으셨다는 요한복음 3:16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칼빈주의 5대 강령대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성경이 얼마나 달라져야 하는지 알겠는가? 상징적인 것은 문자적으로, 문자적인 것은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을 해석하지 못해 가증한 식인종짓을 수백 년간 해온 카톨릭을 보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그래서 칼빈주의자들은 성경을 영적으로 은유적으로 해석하기에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다.
제한된 속죄가 사실이라면 믿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지옥에 보낼 수 있겠는가? 이런 이단 교리가 지금도 장로교, 침례교인들을 진리에 눈뜨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채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있다.

4.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죄인이 무능력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고, 구원받고 안 받고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무조건 선택해 놓으셨고,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기에 죄인인 것을 알고서도 구원받으려 하는데 자기는 택함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을 때 그가 자기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창조주를 저주하고 성경을 불태워 버려야 되는 것 아닌가?
저항할 수 없는 은혜란 하나님께서 “죄인의 의지를 강제로 꺾어” 그를 구원하신다는 말이다. 이런 말은 성경에 없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믿을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부처, 크리쉬나, 마호메트, 공자, 조셉 스미스도 믿는다고 한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 23:37)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았다. 원치 않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것이다. 구원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주권이란 말을 쓴 적이 없다. 성경에 없다.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자 기뻐하며 주의 말씀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 』(행 13:48).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정해진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이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롬 2:7-8).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라 』(딤후 2:10).
사도 바울이 선택된 자들의 구원을 위해 모든 고통을 참았다고 했을 때 그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바울이 칼빈보다 성경을 모른 것인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저항할 수 없는 은혜란 마귀와의 전쟁을 전혀 모르고 하는 헛소리이다.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구원받은 후에 믿음에서 떠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치고 있다. 죄인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가 그 몸을 형성하는 세포가 되고(엡 3:5-6) 그 죄인 안에 하나님이 영으로 들어가시어 그는 성전이 된다(고전 3:16; 6:19-20). 어느 누구도 칼빈주의 5대 강령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칼빈주의 5대 강령 중 성도의 견인은 자기 구원을 끝까지 견뎌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구원을 유지하고 성결된 삶을 살기 위해선 행위가 필요하다. 거룩한 생활을 해야 선택받은 사람이라 한다. 그가 선택받은 사람이 되기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셔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강제로 믿게 하실 것이다. 그러면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는 행위를 비난하는 그들이 알미니안주의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한 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에서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면 개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고 돼지가 씻고 나서 다시 진창 속에서 뒹구는 것으로 묘사했으나(벧후 2:22)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① 구원의 기쁨(시 51:12), ② 하나님의 증거(고전 15:33-34), ③ 하나님의 치유(고전 11:30), ④ 하나님의 보상(고전 3:13-15), ⑤ 천년왕국에서의 유업(눅 19:15-26), ⑥ 자신의 지상 생명(고전 11:30), ⑦ 성도들과의 교제 등이다.
찰스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드, 윌리엄 캐리, 아도니람 저드슨 등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개신교 특히 침례교 목사, 선교사들은 알미니안주의를 배격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칼빈주의를 신봉했다고 해서 칼빈주의가 성경적일 수는 없다. 칼빈은 개혁주의자였지, 향상된 계시(Advanced Revelation)를 안 성경학자는 아니었다.
향상된 계시를 안 성경학자들은 다비(Darby), 벌링거(Bullinger), 스코필드(Scofield), 라킨(Larkin), 럭크만(Ruckman) 등이 있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이단 교리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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