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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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교회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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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2월호>

1. 이 나라에는 자기가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면서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무수히 많다. 이 나라 교인들을 줄잡아 870만 명이라 하는데 그 중 95% 이상이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자기가 왜 교회의 목사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무수히 많다. 약 12만 명의 목사들이 있다는데 그 중 95% 이상이 왜 목사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점에 관해 어떻게 그처럼 단언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점은 그들이 진리의 지식에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1994년 4월 12일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이 탄생했다. 이 성경은 종교개혁 성경이다. 개역성경과는 무려 36,000군데 이상이 다르다.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 밑에서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바른 성경에 관심이 없는 것을 보면 그들의 영적 수준을 가늠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게 된다.
그동안 <한글킹제임스성경>에 근거한 서적들이 220가지 이상 나왔다. 이 책들은 어떤 교단 교리를 확산시키기 위한 책들이 아니라 성경적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책들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 책들은 영원히 사장되어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 우리는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이라는 월간지를 248호까지 출간했다. 이 96페이지의 책은 역시 어떤 교단 교리를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지식을 계도하려고 펴낸 것인데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날의 양식>이라는 소책자를 계간으로 출간하여 무료로 기독교 서점에 공급하거나 개인들에게 1년 구독료 5천 원으로 우송해 주고 있다.
우리는 <한글킹제임스성경>, <한영성경>, <큰글자성경>, <보급판성경>을 출간해서 보급하고 있으며, 그 외에 <스코필드주석성경>을 펴냈고, <스코필드한영주석성경>도 펴냈으며, 금년에는 <킹제임스성경>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신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 목사가 52년에 걸쳐 연구한 <럭크만주석성경>까지 펴냈다.
우리 성경침례교회가 <한글킹제임스성경> 신약에 근거하여 1992년 4월 12일에 출범했으니 이제 스무 살이 넘었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된 것이다. 20년의 사역 기간을 돌아볼 때 오직 바른 성경과 바른 성경적 지식에 주안점을 두었던 사역만을 펼친 것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매일같이 보급되어 참 하나님의 말씀은 끊이지 않고 보급하게 해주신다는 영속성(Perenniality)으로 증명해 주셨다. 그동안 꾸준히 보급되었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찾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늘어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출간한 책들도 그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교회들이나 목사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성경을 사달라고 판촉을 벌인 적이 없다. 이는 우리 교회 사역의 목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사역의 목표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정착, 진리의 지식의 확산, 이 민족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것 이 세 가지이다.
우리 교회는 한 달에 약 2,000명의 혼들을 주님께로 이겨오고 있다. 나는 성도들에게 거리에서 설교하고 구령하라고 강권하지 않았다. 우리 성도들은 섬기는 일이나 바치는 일이나 심지어 모이는 일까지도 간섭받지 않는다. 『나는 명령으로 말하지 않으며 다만 다른 사람들의 열성을 통하여 너희 사랑의 진지함을 증명하려는 것이라』(고후 8:8).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실 수 있나니 모든 것을 언제나 너희가 필요한 대로 가질 수 있게 하심으로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후 9:8).
나의 일념은 이 땅에 신약 교회의 본보기를 제시하는 것이다. 내가 1987년 이 땅에 와서 교회를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껏 성경적으로 운영하는 교회다운 교회를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교회 수도 많고 교인 수도 많은데 왜 이처럼 부패하고 변질되었으며 배교한 교회들만 즐비한가? 왜 교회들이 세상을 닮아 돈을 사랑하는가? 그 원인은 변개된 성경에 있었다. 변개된 성경으로 교단 교리를 가르치려다 보니 교회들이 반석이 아닌 모래 위에 세워졌고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을 벽돌로 썼기에 조그마한 비바람에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성경적 교회를 보라.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귀중한 모퉁잇돌이 되셨고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함께 알맞게 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가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라』(엡 2:20-22). 성령님께서 어떻게 운영하라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대로 우리는 우리 교회를 섬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제자가 할 일 아닌가?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또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구하리라.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버림을 받게 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나와 나의 말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누구든지 인자가 자신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리라』(눅 9:23-26).
주님의 사역자라면 첫째 계명은 지켜야 되는 것 아닌가?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막 12:30).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겼다면 신비들을 가르쳤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95%에 해당하는 목사들과 95%에 해당하는 교인들이 하나님의 신비들을 알기는커녕, 그런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감히 그런 교인들과 목사들이 95%가 넘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나아와 주께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하니,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는 천국의 신비들이 너희에게는 알도록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받게 되어 더 풍성히 가질 것이나, 누구든지 갖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노니, 이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또 깨닫지도 못함이라』(마 13:10-13).
이 신비들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다 해도 목사를 아무리 오래 했다고 해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채 공부하지 않고 종교 생활을 했으면 당연히 모르게 되어 있다. 교회 안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은 설교를 알아듣지 못한다. 만일 어떤 목사가 거듭나지 않은 채 뭔가 자기 견해를 말했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성경에는 네 번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는 데 둔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눈을 감았으니, 이는 그들이 어느 때라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회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마 13:15). 『이 백성의 마음으로 살찌게 하고, 그들의 귀로 둔해지게 하며, 그들의 눈으로 감기게 하라. 그리하여 그들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회심하지도 못하고, 치유받지도 못하게 하라』(사 6:10). 『그가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나니,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며, 회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요 12:40).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는 데 둔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회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행 28:27). 이런 교회가 첫 번째 부류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진리의 지식을 이해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설교자가 거듭났다면 복음부터 전하여 거듭나게 한 후 젖, 꿀, 사과, 빵, 고기 등을 먹여 자라게 했겠지만, 자기 자신도 거듭나지 않았기에 그의 농사는 이미 버려 버린 것이다. 그래서 늘 하던 말을 또 하고 하던 말을 또 하며 회중을 멍청이로 만들든지, 아니면 앉은뱅이로 만들어 매주 쓸데없는 짓이나 한다. 아니면 TV 연속방송극이나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장경동과 같은 코미디언을 데려다 웃기며 설교를 대신하게 된다. 그들의 수준이 그 정도임을 증명한 셈이다. 그 목사 입에서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다면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종이 아니며 그런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특히 칼빈주의 5대 강령이나 주물럭거리고 있는 목사라면 그 교인들의 지식은 빵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은 말이 안되는 이론이다. 장로교회나 남침례교회에 다니기에 자신을 택함 받은 자라고 알았다가 죽으면 그의 혼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칼빈은 영원한 정죄에 대한 법령을 만들어 놓고(Decree of Reprobation) 한 번 버림받은 자들(reprobate)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자기도 회개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은데 영원한 정죄를 걷어낼 수 없다면 예수님의 보혈이 온 인류가 아니라 칼빈주의자들에게만 한정되었다는 것인가? 그런 이단 교리가 있을 수 있는가? “제한된 속죄”가 바로 그렇다.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롬 3:10).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 3:23).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막 2:17).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받고 싶은데 선택받은 자가 아니기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교리인 칼빈주의이다.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명의 스승을 가졌을지라도 아비들은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사도 바울은 택함받은 자들이 복음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칼빈주의(TULIP)는 모든 성경 구절을 무력화시키게 된다. 그들의 무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그들 교회만 다니다가 지옥으로 가게 만들었는가 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회심자(오네시모)를 낳았다고 말했다(몬 1:10). 그리스도의 복음이 먼저인가, 칼빈주의가 먼저인가?

둘째 부류에 속한 교회들은 모일 때마다 복음을 전하는 부류이다. 불특정 다수가 모였을 것이라고 여겨진 복음전도집회(Evangelizing Rally), 청소년 수련회, 감옥집회 같은 곳에서는 복음 전파가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교회의 주일예배에서도 동일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구원받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초청하는 일은 회중을 맥빠지게 만들어 그들을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전락시키는 일임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복음 전파의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교회에 초청된 설교자는 자기 설교로 그 자리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나와야만 좋은 설교자(?)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쩌면 난센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풍조는 마치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낡은 전통처럼 교회들 속에 자리잡고 있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매끼마다 똑같은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교회가 그런 곳인가? 신약 교리가 구원 한 가지뿐인가?
죄인을 복음으로 이겨오는 구령 사역(soul winning)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성장을 위한 영적 양식이다. 헌신, 공부, 성장, 기도의 역군,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은사대로 섬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중대형 교회들이 교회 건물, 교인 수, 헌금 액수, 자동차, 재직 수 등을 자랑하지만 구령하고 진리의 지식을 확산시키는 일을 단 한 가지도 할 수 없는 원인이 어디 있는가? 지혜와 은사와 재능을 가진 일꾼들을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일꾼들을 길러내려면 거듭난 성도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야만 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필자가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원인은 설교자들이 복음전도집회(Evangelizing Meeting)와 부흥회(Revival Meeting)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여진다.

세 번째 교회의 유형은, 교단이나 교파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종(Divinely called servant)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중함을 알고 세상에 나가 일대일로 대면하며 복음 상담을 하여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결행하셨던 일이 인류의 구속사역임을 알고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죽었던 영이 거듭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몇 사람이 태어났으면 그들 각인의 형편에 따라 일주일에 단 15분이라도 성경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서 그들의 믿음이 진리에 뿌리 내리게 하고 그들에게 경배의 중요성을 알게 하여 어떤 모임의 장소에서 경배를 드린다. 그 수가 열두 가정 이상 될 때까지 예배를 드리며 공부를 계속한다. 그런 후에 구성원이 차면 교회를 시작함이 어떠냐고 회중에게 물어 만장일치가 되면 교회 명칭도 정하고, 목사도 천거하고, 교회 장소도 마련하여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교회가 주님의 몸이고, 그 머리가 주님이시라면 누구의 조언과 지배가 필요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묶일 수 있는가? 교회 운영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한다. 그 모임의 성실성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주님의 사역들을 조금씩 위탁하시고 해내는가를 보시고 더 늘려주신다. 일꾼들은 교회 안에서 길러져야 하며 필요한 물질은 주님의 방법으로 성도들의 손을 통해 마련해 주신다(고후 9:8).
이 교회의 성도들에겐 의무가 있다. 출석과 십일조의 의무이다. 교회가 유지되기 위해 열두 가정이 필요한 것이다. 연보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자원함으로 내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넉넉하게 심는 자는 넉넉하게 거둔다는 것이라. 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고후 9:6,7). 주님께서도 처음 사역하셨을 때 열두 제자들을 택하신 점을 상기하면 이해하기 쉽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증거들(witnesses)이 있다.
1. 세상 사람들을 데려오는 데 신중해야 한다. 방문 첫날에 구령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성경공부를 시켜야 한다(우리 교회는 16주간 기초성경공부를 공부한다).
2. 십일조와 섬김은 모두 자원함으로 하게 해야 한다.
3. 주님은 우리가 해내지 못할 사역들을 위탁하지 않으시며, 일을 시키시고 일꾼과 필요한 지혜와 소요되는 물질을 공급해 주신다.
4. 교회가 맡은 일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어야 하며 세상을 기쁘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하나님의 교회와 이런 성도들의 가정과 일꾼을 양성하는 그리스도인의 학교만이 변질되고 악한 세상에서 낙원을 약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양우리이다. 그렇지 못한 곳은 동물원과 같다.
이렇게 섬기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이 신약 교회이다. 이 교회는 어떤 교단에 속하지 않으며 속할 필요도 없다. 우리 교회 반경 500m 이내에 무려 12개의 교회가 있는데 한 감리교회가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이렇게 광고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교회는 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해 있기에 이단이 아닙니다.” 그러나 KNCC에 가입해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기구에 가입했기에 이단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님과 대면할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을 치워 버리고 자기 멋대로 믿는 체한다. 그것은 자유이나 그가 받을 면류관은 깡통뿐이다(고전 3:12-17).
그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려면 먼저 휴거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믿어서야 어떻게 휴거될 수 있겠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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