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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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은 혼인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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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2월호>

1. 왜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신부(Priest), 주교(Bishop), 대주교(Archbishop), 추기경(Cardinal), 교황(Pope)]은 혼인하지 않는가? 그들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을 억제하는 행위를 경건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자제할 수 없는 성적 욕구를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발산하면서 갖가지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의 성추행 관련 배상액은 2007년 7월 16일 자 신문에 공개된 것만 해도 6억 6천만 달러(원화 약 7,395억 원)이었으며 그 후로도 배상 액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금욕을 통해 경건을 이루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소유하지 못한 성령의 직접적인 교시를 받을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고릴라, 침팬지, 원숭이 등도 후대를 남긴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성적 욕구 충족 이전에 자기들의 짝과 결합함으로써 후대를 이어가게 하시는 창조주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수컷들은 다른 수컷들과 경쟁하며 힘을 겨룬다. 암컷들은 승자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데, 이는 더 강한 후손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고 보면 로마카톨릭의 신부들이나 불교의 중 또는 힌두교의 구루들은 침팬지보다 못한 영장동물에 불과하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서 살다가 때가 차면 죽는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시 90:10). 『네 씨가 많아지며 네 후손이 땅의 풀같이 될 것도 네가 알게 되리라』(욥 5:25). 인간은 누구나 후손을 남기는 데 있어서 공평하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내를 얻는 자는 좋은 것을 얻는 것이요 주의 은총을 받는 것이니라』(잠 18:22).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아 갔구나. 네가 한 쪽 눈과 네 목의 사슬 한 개로 내 마음을 빼앗아 갔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어여쁜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훨씬 더 낫고 네 향유 내음은 모든 향료보다 더 낫도다! 오 나의 신부야, 네 입술은 벌집의 꿀처럼 흐르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으며, 네 옷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도다』(솔 4:9-11). 신랑은 신부를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고 부른다. 신부는 아내임과 동시에 누이(sister)이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주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모두 "아담"이라고 부르셨다(창 5:2). 그들은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졌을 뿐, 여자의 자궁을 통해 태어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인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소개했다가 하마터면 파라오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했다(창 12:19). 또한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누이라고 소개했다가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혈통을 무산시킬 뻔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사이에 다른 어떤 사람도 개입하지 못하게 막아 주셨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안에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뿐 아니라 형제와 누이라는 개념도 들어 있다. 왜냐하면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와 그리스도 안의 자매가 혼인하여 한 몸이 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똑같은 영적 아버지,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심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끼리 결합했음에도 뭔가 잘못되어 있으면 태를 닫아 후대가 없게 하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혼인은 반드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2.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은 왜 혼인하지 않는가? 그들은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에 혼인하지 않는다. 혼인하지 않고 성욕을 절제하는 것을 경건한 행위라고 여기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지킨다고 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경건한 사람으로 여기셔서 우리 각 사람에게 차등 없는 자비를 베푸신 것이 아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에 의해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롬 3:23-28).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말씀 이외에 인간이 만든 어떤 규례나 전통을 지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의를 결부시켜 점수를 주지 않으신다. 예를 들어 새벽 기도를 위해 교회에 출석한다든지,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암송한다든지, 구약의 절기들을 지킨다든지, 또는 종교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미국의 필그림들이 첫해 농사를 짓고 나서 추수감사절을 지킨 것을 따라 행한다든지, 그렇게 인간이 만든 제도들을 말씀과 동등한 선상에 두고 섬기는 것을 무익한 일로 간주하시는 것이다.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행함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사람의 복에 관하여 다윗도 말하였으니 말하기를 "죄악들이 용서받고 죄들이 가려진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느니라』(롬 4:5-8).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죽었을진대 어찌하여 마치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같이 법령에 복종하느냐?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이니 사용함에 따라서 부패할 모든 것이니라.) 이것은 사람의 계명들과 교리들에 따른 것이라. 이런 것들이 의지 숭배와 겸손과 금욕에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골 2:20-23). 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성경을 주셨다!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 버리고 또 그것을 그의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셨으며 정사들과 권세들을 벗겨 내어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므로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자의적인 겸손과 천사들을 숭배함으로 너희의 상을 속여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는 보지 않은 것을 억지로 주장하고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과장하며, 머리를 붙들고 있지 아니하나, 온몸은 머리로부터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엮어져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 2:14-19). 성경에는 혼인하지 않았으니까 경건하다는 말씀이 그 어디에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교단과 교파, 천주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그리스도의 교회, 은사주의자와 같은 그 어떤 분파도 허락하신 적이 없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교제할 수 있는 장소를 제시하시면서 성막을 세워 주셨다. 『거기에서 내가 너와 만나고 또 내가 자비석 위,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로부터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계명들로 줄 모든 것들에 관해 너와 교제하리라』(출 25:22). 다시 말해 성막 밖, 곧 성막을 벗어난 어떤 교제도 허락하신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신구약성경을 주신 목적이자 의도이셨다. 『너희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교제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도다』(고전 1:9).

하나님께서는 성경 밖에서 무엇인가를 가져다가 그것을 지키면서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것처럼 드러내는 인간적인 전통이나 의식은 절대로 허용하시지 않는다(<신약교회사> 296,297페이지 참고). 혼인을 하지 않아야 경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불완전한 분으로 여겨 인간의 지혜를 더하시라고 하나님께 권면하려 하는 가증스러운 행위일 뿐이다.

3.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은 수녀들만 자매라고 부를 뿐, 소위 카톨릭 교회에 다니는 여성들을 자매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이 자작해서 만든 전통에는 별 희한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일일이 다 말할 틈도 없고 짬도 없다. 그들이 자기들의 종교로 만든 억지스런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경을 잘 믿는 척하며 허세를 부린다. 그중 하나로 사도 베드로가 초대 성직자였다면서 로마카톨릭 교회는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고 자랑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모으신 후 산 위에서 마태복음 5-7장을 설교하셨다. 곧 산상설교라고 하는 천년왕국의 헌법을 설교하신 것이다. 사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에서는 "천국"(Kingdom of Heaven)을 언급하셨고 다른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언급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오셔서 그의 아내의 모친이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그 여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 그들을 섬기더라』(마 8:14,15). 로마카톨릭은 베드로가 장가간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며 그를 초대 교황으로 삼은 것인지, 아니면 성경에 너무나 무지하여 그를 교황으로 섬긴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들은 이미 2세기경부터 교회사를 멋대로 날조했고 숱한 문서를 위조했다. 일례로 잘 알려진 사람의 이름을 거짓 교리에 갖다 붙이고는 소위 성자가 가르친 것이니 그것을 진리로 인정하라면서 유포하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로마카톨릭 백과사전에는 이러한 일탈이 아무런 수치심도 없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사도들의 통치자"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카톨릭 교회의 통치자들이 저지른 부도덕과 계략들은 실로 경멸적인 것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0세기경 유럽의 학자들은 누가 교황이고 그가 무슨 신앙고백을 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후에 마틴 루터가 말했던 것처럼, 기독교로 위장한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영향과 행실로 인해 평범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카톨릭)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돼지가 되겠다.'라고 생각할 판이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5에서 『우리에게 다른 사도들이나 주의 형제들이나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동반할 권리가 없겠느냐?』라고 말했다. 여기서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사도는 베드로이다. 만일 베드로가 로마카톨릭을 세운 사도였다면, 카톨릭으로 시작하지 않은 신약 교회들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10:4) 위에 세워진 반면, 카톨릭은 사탄 위에 세워진 것이 된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말하느냐?』(15절) 이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라고 대답했다. 그의 답변은 100점짜리였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18절). 교회라는 말은 불러냄을 받은(called out) 사람들의 모임(assembly)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에베소의 이교도 신전이나 이집트에서 불러냄을 받은 광야의 이스라엘도 교회였다. 하지만 "신약 교회"는 아니었다. 신약 교회는 거듭난 성도들의 모임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또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결행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21절), 그때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말리면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런 일이 결코 주께 있어서는 아니되옵니다.』(22절)라고 말했고, 주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이 되는도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함이라.』(23절)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는 평생에 단 한 번도 로마에 간 적이 없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우리가 휴거되면 셋째 하늘에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 믿음의 영웅들, 구원받은 성도들을 만나 교제하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면류관들을 받게 되는데 그 기간이 7년이다. 또한 신부로서 어린양의 혼인식에 참예한다. 신부의 공적들은 불로 태워지고 정제되어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정결케 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리세. 이는 어린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의 아내도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계 19:7). 피로연은 지상으로 내려오는 재림 때 이 땅에서 베풀어질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권유하노라.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타내어졌으며, 나는 또 너희 양심에도 나타내어졌으리라고 믿노라』(고후 5:10,11). 로마카톨릭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소위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 그 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자들은 절대로 그 자리에 참예할 수 없기에 어둠 속에서 이를 갈고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마리아라는 하늘의 여왕과 교황, 이 두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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