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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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개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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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2월호>

『주여,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적으니이까?』(눅 13:23)

십자가 이전의 구원과 십자가 이후의 구원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십자가 이전이다. 십자가 이전의 구원은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고,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시다. 십자가 이전의 구원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준행한 것이다. 예수님이 전하신 구원의 요지는 회개에 있었다.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태어난 침례인 요한은 광야에서 살면서 메뚜기와 야생꿀을 먹으며 사역하였다. 그가 외친 일성은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마 3:2).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셨기에 침례인 요한과 동일한 복음을 전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이것을 천국복음이라 한다.

천국복음은 십자가 이후에 나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르다. 천국복음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어 이 땅에 천국, 즉 Kingdom of Heaven을 수립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종으로, 누가복음에는 인자(Son of Man)로,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 이 나라 교단 교회 목사들은 이 점을 구분할 수 없기에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하다고 가르친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성경 해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해석이 안 되니까 영적으로나 비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들의 밑에서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한 교인이라도 아는 것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서 14:17에 정의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 천국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에 해당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다. 유대인들은 천국 백성으로 태어났기에 거듭나지 않아도 구약의 율법만 준수하면 천국 백성이 되지만, 이방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여 할례받고 구약의 규례대로 실행해야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복음을 전했던 침례인 요한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침례인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일어난 적이 없었느니라.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그보다 더 크니라』(마 11:11).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일지라도 요한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어떤 기회를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만일 여기서 천국 대신 하나님의 나라라고 되어 있다면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듭나는 것은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요 1:13).

침례인 요한은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회개의 침례를 주었다(막 1:4).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라는 말씀은 여기뿐 아니라 마태복음 26:28, 누가복음 3:3, 사도행전 2:38에도 쓰였다. 침례로 죄들을 용서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죄들을 사함받았기에 침례에 순종하는 것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구원받은 성도가 침례에 순종함으로써 자기가 구원받았음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는 의식이다. 여기에다 성경에 없는 세례까지 실행하는 것은 성경에 무지함을 드러내는 극치이다. 왜 그들은 성경에 없는 세례를 주는가? 세례는 콘스탄틴이 자기 군대에게 물 뿌려 억지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던 편리한(?) 방법인데 교황들이 세례를 죄사함 받는 표상으로 써먹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회개를 강조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너희가 무슨 감사가 있으리요? 죄인들도 자기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느니라』(눅 6:32). 마가복음에서는 보다 자세하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니라.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불러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고 하시니라』(막 2:17).

유대인의 사도로 알려진 베드로는 우선적으로 "회개하라."고 말했다. 사도행전 2:38은 36절에서 유대인인 너희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인데 그분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분이라고 알려 주었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는가!(『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온 집이 분명히 알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이라.』) 그때 유대인들의 반응은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찌하여야 하리이까?"였다. 이 말은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찌하여야 합니까?"가 아니라, "우리가 메시아를 죽였으니 어찌해야 됩니까?"였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 이 말은 교리가 아니다. 그때까지 신약 교리는 아직 정립되지도 않았다. 신약 교리는 사도 바울에 의해 정립되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등. 극단적 세대주의자들과 소위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점을 몰라 침례를 받으면 죄사함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 후 사도 베드로는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세 번이나 정정해서 유대인들에게 설교했다. 사도행전 10:43; 13:39; 15:11을 읽어 보라! "십자가 이후로 복음이 완성되었는데 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적으니이까?"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어 있다.

첫째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들에게 회개가 무엇인지 가르치지 않은 채 교회 회원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학습받고 세례받으면 택함받은 것으로 간주했기에 그들이 구원받지 않은 채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교회 강단은 교회 예배 외에도 새벽기도와 철야금식을 강요했으며, 십일조와 헌금 등을 많이 내면 신실하게 되는 양 전통(?)을 만들었기에 그들은 교회의 전통을 성경보다 더 중시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받는 데서 일탈해 버린 것이다. 십자가 이전에도 침례인 요한은 회개를 요구했다(행 13:24; 19:4). 사도 바울의 사역을 보라! 『유대인과 또한 헬라인에게도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노라』(행 20:21).

자신이 죄성을 지니고 태어난 죄인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죄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성경대로 죽으셨으며, 죽은 후에 3일 밤낮을 무덤에 계시다가 성경대로 살아나셨는지에 관해 알 길이 없다(고전 15:3-6). 그런 상태에 있었다면 비록 그가 어떤 교회에 다녔다 해도 그는 한갓 부초처럼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의 큰 사랑으로 인하여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엡 2:1-5). 이와 같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는 사람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어야만 하는지 모르게 된다. 이런 사람은 회개의 필요성을 자인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다 해도 그의 죄성도 죄들도 씻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교회는 다녀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회개하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태어나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을 살아 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삶은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을 자기가 내리며 자기가 좋을 대로 하고 사는 것이다. 그가 세상에서 자기의 뜻을 이루었다 해도 그는 언제 자기 생이 끝날지, 어떤 모습으로 끝날지 모르고 산다. 그가 죽으면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면 그는 결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죽으면 어떻게 되며 어디로 가는지 알게 해주는 지침서는 성경뿐이다. 따라서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사후의 생에 관해 전혀 모른다. 그가 세상에서 어떤 성취를 하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몰라도 이 점을 모르면 결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자기의 구원간증이 있으나 그런 사람들은 간증이 없다. 한 번 시켜 보라!

그 누구라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결코 인생의 정도를 걸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죄인 된 인간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가? 회개를 통해서이다. 자신이 결정해서 살아 온 인생 노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성경에서 제시한 생명의 길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이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성령님께서 베드로를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에게 보내셨을 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다면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그들이 이런 말을 듣고 잠잠하더라.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하니라』(행 11:17,18). 이 일 이후로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웠으니 너는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라.’ 하였음이라." 하더라.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자 기뻐하며 주의 말씀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 그리하여 주의 말씀이 온 지역에 퍼지니라』(행 13:47-49).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단순히 악으로부터 멀리한다는 구약적인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타나시기 전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자기가 죄를 지은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후회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조폭으로 살았는가? 그간에 지은 죄들로 인해 괴로웠는가? 창녀로 살았는가? 마약 중독자로 살았는가? 절도나 강도로 살았는가? 카바레에서 만나 바람피웠는가? 그렇게 살았던 길에서 유턴을 해서 성경적 기준으로 돌이켜 사는 것이 회개이다.

회개에 대한 표식은 죄들의 고백이 아니고 후회도 아니다. 죄를 지은 것은 과거의 일인데 후회한다고 해서 원상복구가 되겠는가? 죄에서 떠나 예수님께로 돌이켜서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회개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 개조가 이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이 점을 모르고 회개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원수들로 살고 있는 것이다(빌 3:18). 『실로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지었는데도 우리는 그가 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사 53:4,5).

회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은 구원을 위한 회개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세상의 슬픔은 사망에 이르느니라』(고후 7:10). 구원받기 위한 회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이기에 후회가 없지만, 당신이 행한 어리석음과 무지와 욕구의 충족을 위해 했던 죄들을 후회하고 사제가 되고 수녀가 되고 중이 되고 비구니가 되었다 해도, 또 산으로 들어가고 교회로 들어가고 절간으로 들어갔다 해도 그것은 세상의 슬픔이기에 결국 사망에 이르며 지옥으로 가게 된다. 인류의 달력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피로 우리를 죄들에서 씻어 주셨다(계 1:5). 그 후에 우리도 빛 가운데서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7,9).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행 17:29-31). 교회는 다니는데 왜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이 적은가? 가던 길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만나 믿어야 했는데, 가던 길을 계속 가면서 예수님께로 돌이키는 것인 것처럼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 성경의 진리도 모르는 사람이 자기 생각과 방식으로 교회 다니는 것은 절간에 다니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4:12).

진정한 회개 없이 죄인은 구원받을 수 없다. 주님께서 지상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셨음을 기억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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