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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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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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6월호>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역자라면 주님을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요(잠 1:7),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잠 9:10, 욥 28:28, 시 111:10). 하나님께서 지식과 지혜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님은 물론이요 지식 또한 세상의 책과 교육으로 얻어지는 지식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없다.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명철을 없애리라.』(사 29:14, 고전 1:19) 하셨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학자가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노니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고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니라』(고전 1:20-25, 여기서 헬라인이란 이방인들을 말한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으려면 십자가를 통해 전해지는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영이 거듭나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속 사람이 탄생하는 것은 복음을 믿음으로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데도 거듭남을 교회 출석으로, 새벽 기도로 대체하는 현대 교회들의 행태는 거짓 구원으로 교회를 망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심각성을 모르기는 목사나 교인들이나 매한가지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인가? 거듭나지 않은 자가 목사 안수받은 것을 거듭난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들 목사들은 소경인데도 볼 수 있다고 거짓말하면서 구원받지 않은 다른 소경들을 인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둘의 운명의 끝은 지옥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주님께서 일러 주셨다.
스코틀랜드의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목사는 거듭나지 않은 채 10년간 설교했다고 실토했다. 또 하스람(Haslam) 목사는 자기 설교로 거듭났다고 실토했다.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사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우리 나라의 제도화된 교단 목사들과 비슷한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교단 교회에 다니다가, 교단 신학교로, - 교단 신학교들은 교단 신학을 가르치는 데 치중할 뿐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게 되면 자기네 교단 교리가 비성경적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 교단 신학교를 졸업하면 그 다음에는 직업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전도사로 일하다가 강도사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된다. 목사가 되었기에 목사 짓을 하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도 없기에 주님께서 들어쓰셨다는 증거가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야말로 영적 할례도 받지 않은 자가 하나님의 사역에 손을 댄 셈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시하여 시리아 안티옥, 로마, 갈라디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골로새, 고린도와 소아시아 일곱 교회와 심지어 바빌론과(벧전 5:13) 크레테 같은 섬들의 교회들에도 장로들(목사들)이 세워졌다. 사도 요한과 사도 베드로도 장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 안의 사역자는 첫째 사도요, 둘째 선지자요, 셋째 교사를 주셨다(고전 12:28-31). 이들은 모두 영적 은사를 주님으로부터 받은 일꾼들이었다.
집사는 목사(감독, 장로)를 돕기 위해 지역 교회가 선임했는데 역시 영적으로 적합해야 했다. 집사는 목사의 자격과 마찬가지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신의 집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한다(딤전 3:12). 집사가 되는 자격으로는 『신중하고, 일구이언하지 아니하며,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순수한 양심 안에 믿음의 신비를 가진 사람이어야』(딤전 3:8,9)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런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먼저 관찰해 보고 그 후에 비난받을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딤전 3:8-10).
성경은 『그들의 아내들도 이와 같이 신중하고 중상하지 아니하며 절제하고 모든 일에 신실해야 하리라.』(딤전 3:11)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변개된 성경들은 『그들의 아내들도』를 “여자들”로 고쳐서 여자 집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한 단어를 바꿈으로써 거짓 교리를 만들어 여자 집사들을 두다 못해 여자 목사까지 두고 있다. 『여자는 온전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게 하라.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 2:11,12). 그들은 변개된 성경을 선호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무시하고 배격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진리의 주님께서 그런 자들을 들어쓰시겠는가?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요 1:1).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말은 성경을 믿는다는 말이다. 최초의 원본이 아니라 최초의 원본을 전수한 “삭제되고 변개되지 않은 자기 나라 언어로 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혼인했는데 그녀에게서 어떤 불결함이 발견되었거나 남편의 눈에 들지 않았으면 이혼증서를 줘서 내보냈던 것인데(신 24:1) 이 이혼증서를 신약에서는 배교한 성경(βιβλον ἀποστασου)이라 부른다(마 5:31; 19:7, 막 10:4).
주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목사들은 그리스도의 대사들이 아니고(고후 5:20) 그들 스스로가 대사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마귀의 종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인 마귀의 자녀들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불순종의 자녀들이기에 악령이 그들 안에서 역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고 그 대신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여 육신과 마음의 욕망을 실현하는 진노의 자녀들인 것이다(엡 2:2,3). 그들의 특징은 첫째, 바른 성경을 배격한다.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부르심(Divine calling)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면 어떻게 바른 성경을 배격하고 불순종할 수 있겠는가? 왜 그런 자들이 하필이면 하나님의 종을 가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둘째, 그들의 관심은 마귀에게 속한 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겨오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무슨 수로든지 사람들을 끌어 모아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데 있다. 거듭나지 않은 쭉정이들은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여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 그들은 그런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 줄 알고 교회 놀이에 열중하지만 단 한 명의 혼도 이겨오지 못한다. 그들 교회들에서 나눠 주는 교회 주보나 전도지에는 복음이 없다. 그들 교회의 목사들은 복음 전도지 한 장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이것은 전혀 과장도 허위도 아닌 사실이다. 그들은 거리에서 교회 주보와 함께 휴지를 나눠 주고 있다.
필자는 1990년 초에 미국 서부에서 동부까지 성경핵심강연회를 하러 다녔는데 주로 그 시에서 크다는 한국 교회들에서 했다. 휴식 시간이면 이 교회는 무슨 전도지를 사용하는지 보려고 찾아 보았으나 단 한 장의 복음 전도지도 없었고 갖가지 헌금 봉투만 즐비했다. 셋째, 그들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과 사역에는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들은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시작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믿을 수 없는가? 거듭나지 않았기에, 다시 말하면 속 사람이 태어나지 않았기에, 주님과의 교제를 할 없게 된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전파하거나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흉내내는 데는 귀재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왕초인 마귀를 그대로 닮았다는 증거이다.

나는 뉴스 외에는 TV를 잘 안 보는데 병원에 며칠 요양하는 중에 TV를 켰더니 마침 기독교 채널이었다. 어떤 설교자가 나와서 떠드는데 성경 말씀은 없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두어 군데를 더 보았는데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성경을 인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설교란 성경의 신비들을 파헤치는 것이다. 자연인들이나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설교를 믿기가 어렵기에 성경을 인용하여 그 사실을 확인시켜 줘야 한다. 그러기에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설교할 수 없는데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성경도 없이 나서서 설교라며 허튼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설교라고 듣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엉터리 각설을 진리로 알고 오염되고, 세뇌되고, 미혹되어 진리의 지식으로 자라갈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그런 자들을 불법자라고 단정한다. 주님께서는 그런 설교자들이나 그런 것들을 진리이거니 하고 듣는 자들을 싸잡아 질책하고 계신다. 『그 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어 거짓말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9-12).

1. 마귀의 종들은 구원받지 않은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온다.
2. 그들은 구원받지 않았기에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3.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어 거짓을 믿게 하신다.
4. 그 이유는 그들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기에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하게 밝혀 주고 계신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모아 교회라고 하면서 진리의 지식과 무관한 일을 진리로 가장하여 내보내는데 이것이야말로 더러운 구정물을 생수라며 마시게 하여, 철저하게 영적 병에 걸린 영적 노숙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기에 재림을 가르치지 않는다(무천년, 후천년주의자들). 그들은 천국(Kingdom of Heaven),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낙원인 하늘 나라(Heavenly Kingdom), 천년왕국(Millennial Kingdom)을 구별할 줄도, 정의할 줄도 모르며 성경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안수 집사직을 5백만 원에서 1천만 원에 팔고 장로직은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에 팔아먹는다. 돈을 주고 산 제직이라서 그들은 지옥을 면제받는 양 여기고 봉사하려 하지만 그들의 제직으로는 지옥을 피할 수 없다. 로마카톨릭의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가 지옥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 그들은 교회를 그처럼 오래 다니며 봉사했는데도 죽으면 지옥에 가는가? 하나님(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그들은 영향력이 있고 돈 많이 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을 가장 겁낸다. 쭉정이라도 줄어들면 자랑거리가 줄고 헌금 액수가 줄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성공이라고 자랑한다. 어떤 재산가들에게 돈은 신이다. 돈이 줄어들면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경유착이라도 해서 부를 거머쥐어야만 하는 것이다. 요즘 시끄러운 박연폭포, 천신만고 등은 거기서 불거진 것들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검은 돈 때문에 국가를 망신시킨 일은 이 나라 국민 전체의 체면에 먹칠을 한 것이다. 목사는 거짓을 행하여 돈을 움켜쥐어도 괜찮고 정경유착한 자들은 안 되는가? 그 어떤 재벌도 죽을 때는 단 1원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뿐이다. 이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했을 때에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요일 5:12). 주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이 점을 인간에게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교회를 지상에 허락하신 것은 이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성경도 거부하고, 복음 전파도 형식적으로 하고, 성도들에게 진리의 지식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사람들만 모아 교회 성장이나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들이 행하는 가짜 사역인 것이다. 당신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손뼘만큼 받았으나 곧 소진되어 버릴 이생에서의 삶인가 아니면 주님과 영원히 사는 영생인가? 이 점을 알려면 먼저 교회에 가서 돈부터 내려 하지 말고 복음을 믿고 거듭나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잠 15:33).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사망의 덫에서 벗어나게 하는 생명의 샘이니라』(잠 14:27).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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