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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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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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9월호>


복음 전파의 열기가 식어, 죽은 교회들이 생겨난 것은 비단 이 나라에서 일어난 일만은 아니다. 1500-1930년경까지 복음의 열기는 뜨거웠다. 미국에서는 D.L. 무디, 찰스 피니, 빌리 선데이, 피터 카트라이트, 빌리 브레이, 에이비 얼, 크리스마스 에반즈 등 그 수가 하도 많아 헤아릴 수도 없다. 영국에서는 요한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 등이 대서양을 오가며 복음을 전파하여 수많은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왔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유형에서 유일하게 주님으로부터 꾸중을 듣지 않았던 교회였다.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계 3:8). 반면에 1930년부터 지금에 이르는 라오디케아 교회는 책망들을 것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5-17). 많은 얼간이들이 건물만 세워 십자가를 달고 교회 간판에 "대한예수교"니 "기독교대한"이니 교회 이름만 써서 달아 놓으면 예수란 사람이 멍청하게 들어와 그들의 주가 되어 주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영적 분별력을 잃고 바른 성경을 버리고 성경적 교리 대신 교단 교리로 세뇌시키고,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만담가 장경동 같은 사람들을 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그런 자리에 일찍이 계신 적이 없으시기에 교회 문 밖으로 나와 계신 것이다(계 3:20). 그러한 행위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성령님을 슬프게 하기 때문에(엡 4:30) 거룩하신 영께서 소멸되어 버리신다(살전 5:19). 그러면 냉랭한 분위기에 열기를 더하려고 그들은 찬송을 크게 부르고 소리소리 지르며 성령을 달라고 외치기도 한다.
교회로 밀려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죽은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많은데도 죽어 싸늘한 교회가 되는 원인이 어디 있는가?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 사람들을 제도(System) 속으로 집어넣어 치차로 돌게 했기에 기름칠하지 않은 치차들이(성령의 충만이 없음) 원료를(진리의 말씀) 집어넣지 못한 공장에서 계속 헛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들에서 구령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교회들을 세상을 닮은 교회라고 한다.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2). 두 가지 일, 즉 세상을 닮은 교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교회가 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상의 취향에 맞는 설교를 해야 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 믿음의 생활을 통해 그들의 양심이 진리에 반응할 수 없을 만큼 더러움으로 두껍게 오염되어 있어 하나님께서는 화인맞은 양심이라고 부르셨다(딤전 4:2). 이런 양심은 마귀의 교리를 따르게 하고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게 된다(딤전 4:1,2). 그래서 그런 교회들이 온갖 마귀의 교리들의 온상이 되는데도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의 회중 속에는 진리의 말씀이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튕겨져 나오게 되어 있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들의 설교자들이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 확연히 드러나 버렸는데 새삼스럽게 진리의 지식 비슷한 것을 말하게 될 때 너무 멀리 간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아예 수용하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 회중의 마음을 수년간 아니 수십년간 방치한 결과였다. 그들의 회중이
1. 말씀을 듣고서도 깨닫지 못한 것은 그 씨가 제대로 마음밭에 뿌려진 것이 아니라 길가에 뿌려졌기 때문에 마귀가 와서 그 씨를 빼앗아 가 버렸기 때문이다.
2. 어떤 씨는 돌짝밭에 뿌려졌기에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쁘기도 했지만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견디기는 해도 말씀으로 인해 환난이나 박해가 닥쳐오면 즉시 실족해 버리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3. 세 번째 부류는 말씀을 듣기는 잘하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미혹이 말씀을 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4. 하지만 그 중에는 종종 그 말씀을 듣고 깨달아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다. 다만 문제는 설교자가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가이다.
대부분의 교단 교회들은 교단 교리를 전한다. 어떤 교단 교리들은 여러 부면에서 성경과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는 것들도 있다. 그 중에서 열매맺는 자들이 간혹 나올 수도 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설교자 밑에서 양육받은 교인은 영적 성장이 둔화되어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한 감리교회 장로가 있었는데 그는 수년간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럭크만의 주석서와 우리가 펴낸 진리의 서적들로 공부하고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을 정기구독한 지도 7년이 넘었다. 그가 가끔 우리 교회 서점에 왔다가 나와 조우하면 나는 그에게 차를 대접하며 언제쯤 그 교회에서 나올 것인가 묻는다. 그는 말한다. 이번 목사만 변화시키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심한 말을 할 때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데서 빠져 나오라고 명령하셨는데(롬 16:17,18, 딤전 6:3 -5) 어떻게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가? 소위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겠다고 나선 설교자가 담대하고 정직하게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고 교단의 눈치, 회중의 눈치, 제직의 눈치, 다른 설교자의 눈치를 봐야 되겠는가?"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금년 여름, 친구와 청평에 놀러간 적이 있다. 친구는 일이 있어 전에 교직에 있을 때 함께 일했던 후배 한 사람을 그 자리에 불러 일을 마무리하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날 그는 거기서 거듭나게 되었다. 그가 말하기를 교회 다닌 지 십수 년이 되었지만 오늘같이 기쁜 날이 없었다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새벽기도로 많이 모인다는 서울의 한 교회의 집사라고 했다. 교회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자기 교회를 자랑했다. 사람 수가 많고, 건물들이 많고, 주차장이 넓고, 그 주위가 거의 교회 땅이라 했다. 그러면서 사람 수가 많은 것은 설교에 동조한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자랑했다. 나의 친구는 그 후배에게 바른 성경의 중요성과 바른 교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 그리스도인의 삶,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 구령, 거리설교, 휴거와 재림, 부활, 천년왕국들에 관해 얼마간 설명해 줬다. 이를 듣고 있던 그의 반응은 자기는 이런 것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으며 하루에 얼마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느냐고 했더니 아직 한 번도 안 읽었고 매일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내가 볼 때 당신은 진리의 지식을 전혀 모르는데 그 교회에서 집사까지 시킨 것이다. 성경을 당신처럼 모르는 사람의 수가 천 명, 만 명, 십만 명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했더니 그도 씩 웃으며 그렇겠다고 동의했다.
이 나라 중ㆍ대형 교회들은 교인수를 자랑하고, 헌금 액수를 자랑하고, 교회 건물과 주차장 크기를 자랑하고 교회 차량을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랑해야 할 덕목인 구령을 얼마나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지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라오디케아 유형의 교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그로 인하여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박히고 나도 세상에게 그러하니라』(갈 6:14).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복음 전파를 소홀히 하거나 아예 배제하고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만 모든 정신을 쏟는 교회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런 교회를 세우셨겠는가? 생산적이지 못한 종이 받아야 할 대우는 칭찬이 아니라 저주임을 알아야 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희는 그 쓸모없는 종을 바깥 흑암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마 25:26-30).
주님께서는 복음을 소홀히 한 종들을 왜 이렇게 혹독하게 다루시는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홀히 하면서 어떻게 교회를 시작할 생각을 했을까?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살기 위해 신학교를 다녔고 부르심의 증거도 없이 교단의 관례대로 강도사 시험을 봤고 목사 안수를 받아 교단교세 확장이라는 십자가를 받은 것이다. 그것은 교단의 십자가이지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눅 9:23). 여기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도 나는 매일 죽노라고 했다(고전 15:31).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겠다고 나선 사람이 설교자이건 선교사이건 성경 교사이건 자기의 부르심과 은사에 따라 섬기려 할 때 바른 성경대로 가르치고 설교하면 그 누구에게서도 핀잔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비성경적인 교리를 마치 성경적인 양 가르치게 되면 그것은 진리가 비방을 받고 모독을 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런 오류들을 바로잡고 또 지켜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라면 무엇을 자랑하겠는가? 성경은 아무 육체라도 그분의 면전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고전 1:29).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몸이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분으로부터 지혜와 영력을 받아 사역하고 있으며 입을 것, 먹을 것은 물론이요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받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록된 바와 같이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고 권면하신다(고전 1:31).

나는 16년간 사역해 오고 있다. 맨 처음 교회를 시작했을 때 마포구 서교동의 한 건물 지하에서 어떤 사람이 세든 25평에서 다시 세를 얻어 시작했다. 의자 하나도 없었고 전화기 한 대도 없었다. 창립 예배 전에 첫 예배를 드렸는데 헌금이 4만 원이었다. 어떤 형제에게 재정을 맡으라고 했더니 난색을 표했었다. 주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생성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영적으로 어린 나에게 알게 해주셨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1천여 평이 넘는 공간과 수백 개의 의자와 많은 성도들, 능력있는 일꾼들, 27판째 펴낸 <한글킹제임스성경>, 220여 가지 진리의 서적들,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통권197호, 『킹제임스성경신학대학』,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 인터넷 뉴스 『바이블파워』, 『말씀보존학회』 등의 사역들을 포함해서 성경침례교회는 주님의 것임을 자랑한다. 지금껏 나는 한 번도 출석과 헌금에 관해 설교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섬김의 부담도 주지 않는다. 모든 일을 자원함으로 하게 한다. 우리 성도들은 한 달에 1,000-1,500명의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고 있다. 거리 설교팀만 17개에 달한다.
우리가 지원하는 영어성경과 교리 서적들, 복음 전도지들을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잠비아, 에디오피아, 인도, 티베트, 사모아 아일랜드, 파푸아뉴기니 등에 보내고 있으며 잠비아, 월남, 파푸아뉴기니, 말라위, 인도, 우크라이나, 페루, 이스라엘 등지에 나가 있는 미국 선교사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우리 교회는 국내 재소자들이 무슨 책을 원하든 모두 무상으로 공급해 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능력, 사랑, 돌보심, 들어쓰심,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들을 자랑하고 싶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 것을 자랑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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