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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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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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1월호>

10월 1일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김준곤 회장이 서거했다. 그분은 필자가 광주 숭일고등학교 학생이었던 1954년 그 학교의 교목으로 계셨다. 그의 동생 김담규(작고) 씨가 나의 동창이라서 더 그랬을까, 까만 두루마기를 입고 채플 시간에 설교했던 그의 자태는 조용하고 청초하게 느껴져서 성장해 오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먼저 떠오르곤 했었다.
필자가 그리스도인이 된 때는 1978년 7월 23일 새벽 4시경이었다. 당시 나는 어느 항공사의 B-747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에 나갔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한 작은 책이 눈에 들어와 사가지고 와서 읽으면서 그 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다른 책을 뒤지던 중에 아주 오래된 전도지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전도지가 지금 우리 교회 전도지처럼 선명한 구원의 복음이 기재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거기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처음으로 알고 신학적 절차나 어휘도 모르면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해서 거듭나게 되었다. 내 혼이 구원받았다는 용어를 그로부터 6개월 후에야 어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육신적인 나이는 40세였어도 영적 나이는 이제 갓 태어난 한 살배기였는데 그 아기가 무엇을 알았겠는가? 그것도 나를 지도하는 이가 없었으니 어떻게 깨달음이 있었겠는가?(행 8:31)
필자는 연세대학교 2학년 초기에 학보로 입대했었는데 어려운 순간을 잘 극복하지 못함으로 인해 장교가 되고 조종사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정작 가려고 했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정도(?)에서 벗어나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마다 누구에겐지도 모를 반항심이 격해지곤 했었다.
내가 마귀의 자식이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구원받지 못한 채 마귀의 종노릇을 하다가 죽어 지옥으로 갔을 것이다. 나만큼 자비를 많이 받은 죄인은 아마 드물 것이다. 40세가 될 때까지 인생의 여러 역정에서 여러 가지 직업을 경험하는 동안, 위기에서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분이 주님이신 것을 몰랐을 뿐이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우연은 없다고 확신하며 주님께서는 누구를 구원하실 때 동일한 방법을 쓰지 않으시고 그 죄인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들어 쓰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동네 장로교회에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암송하고 세례받았으나 영의 거듭남이나 혼의 구원이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늙은 전도사에게 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담배 피우면 건방지지 않느냐는 대답뿐이었다.

거듭난 후 나의 삶은 180°로 변해 갔다. 골초였던 나는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외국 비행을 나가면 우선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남녀 객실 승무원들에게도 전했으며, 소위 기독교 서적들을 열심히 읽어 1년 6개월 동안 200여 권의 책을 읽었다. 자주 집을 비웠기에 정한 교회가 없었지만, 구원받은 후 3일째 되던 날 알래스카 앵커리지(Alaska Anchorage)의 한 침례교회에서 침례에 순종하면서 그 교회가 나의 모 교회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주님께 헌신했고 진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성령님의 내적 역사하심에 순종하여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에 있는 한 근본주의 침례신학대학에 유학 수속을 밟고 있을 무렵이었다. 앵커리지(Anchorage)에서 서울로 돌아가려는 비행기에 올랐는데 1등석에 앉아 있는 김준곤 목사 내외분을 만났다. 그분은 나를 몰랐지만 나는 알아보았고 제복을 걸고 나서 나를 소개하며 인사를 드렸다. 그는 무척 반가워했다. 특히 죽은 그의 동생의 친구라 하자 더욱 반가워하며 우리 학교 출신들도 조종사가 있느냐고 놀라워하며 물으셨다. 나는 세 사람이나 있다고 말해 줬다. 물론 나는 그날 비번이었다. 비번을 항공용어로 “Dead Head”라 한다. 비행하는 조종사들은 살아 있고, 비행하지 않는 조종사들은 잠이나 자며 50% 수당을 받는다고 꼬집어서 누군가가 지었을 것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식사가 끝난 다음 나는 여전히 교리서적을 읽고 있었다. 그분은 내가 무척 인상적으로 보였든지 전문 직업인이 교리 서적을 읽는 것을 보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에게 이제 조종사 생활을 접고 곧 미국으로 신학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놀랐다. 그는 나에게 어떤 연유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가 물었다. 난 얼마 전에 구원을 받았는데 성경에 관한 공부를 하다 보니 국내의 책들은 혼란만 가중시키고 어떤 것이 옳은 지식인지 알 수 없어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노라고 말하면서 진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결심이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고등학교 다녔던 3년 동안에 왜 복음을 전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것이 내가 그에게 했던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의 대답은 “구원받는 데 도움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나의 반응은 “그게 무슨 말이지요? 나는 군대에서부터 비행기를 탔었는데 그때 사고가 나서 죽었더라면 난 지옥에 갔을 것 아닙니까?”
내 말을 듣고 있던 그는 얼굴색이 변하면서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후에 그는 나에게 서울에 있는 동안 시간이 있으면 꼭 한 번 자기 사무실에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하고 읽던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얼마 후에 나는 정동에 있는 CCC 건물로 그를 찾아갔고 그는 몇 사람의 측근들을 나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81년 11월에 나는 정식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갔고 나의 학교 생활은 다음해 1월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신학대학에서는 여름방학이 3개월이어서 Summer 과정에서 8~11학점까지 딸 수 있었고, 연세대학교에서 취득한 영어 학점 8학점을 인정받아 2년 반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대학원에서도 학칙에 따라 학교의 승인을 받아 독자적 연구를 하여 합격하면 학점을 딸 수 있어 “The Translational Errors of Korean Bible as Compared with The Greek Textus Receptus" 즉 ”헬라어 표준원문과 비교해 본 한국 성경의 번역상의 오류“라는 논문(285페이지)과 절과 절을 비교한 Research(424페이지) 등을 준비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족히 5년은 더 걸려야 될 과정을 3년 반 동안에 끝냈던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의 덕분이었다. 1984년쯤으로 기억된다. 김목사님이 LA에 있는 동양선교교회에서 설교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가 설교 전에 잠시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그 일이 인상적이었든지 설교 중에 나에 관한 이야기를 좀 길게 하셨다.

달라스신학대학원(Dallas Theological Seminary)의 신학과장이었던 제인 하지스(Zane C. Hodges) 교수와 사복음서 번역을 토론하고 감수받아 그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 주님은 나에게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1년 6개월간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참으로 기적적인 방법으로 1987년 10월 한국에 왔고 곧이어 미국 영주권도 받았다(성경침례교회를 시작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1988년 초 동대문에 있는 성결교회(이만신 목사)에서 개신교 목사들을 위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김목사님이 자기가 강사인 두 시간을 나에게 주며 강의하게 해주셨기에 처음으로 한국 목사들 앞에서 개역성경이 얼마나 많이 삭제, 변개, 오역되었는지를 강의했다. 강의가 끝나자 이만신 목사가 그의 사무실에서 차 한 잔 하자고 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도 놀랐었는지 새로운 성경이 나오면 한국 목사들이 다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인 줄 알았지만 극동방송 송용필 목사와 마찬가지로 그는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1988년 12월과 89년 3월, 두 번에 걸쳐 사복음서를 출간했었다. 1988년 어느 날 김성영 목사(전 안양성결대 총장)가 그때 CCC 순출판사를 맡고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합정동 집으로 찾아와서 김준곤 목사의 심부름으로 왔다고 했다. 김준곤 목사가 CCC 사역 25년을 회고해 보니 결산할 것이 없어 우리가 펴낸 신약성경을(그때는 새성경) 보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석에서 그렇게 하라고 승인해 줬다. 그래서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신약성경 초판이 김준곤 목사가 서문을 쓰고 순출판사 명의로 3천 부가 출간되어 서점들로 발송되었다. 그런데 김성영 목사가 하는 말이, 팔리지 않으면 나 보고 다 회수해 가라는 것이었다. 불쾌하기도 했지만 김준곤 목사의 결심을 존중해서 나는 이 땅의 출판문화와 거래 상황을 전혀 모르는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합의가 있느냐고 묻고, 미국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 일주일간 갔다 와야 되니 와서 다시 상의하자고 제안했다. 일주일 후에 와서 김성영 목사와 대면했더니 그는 동일한 조건을 고집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이 일을 하자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당신들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순출판사는 서점에 나가 있는 새성경을 회수하기 시작했었다. 이 얼마나 큰 마귀의 장난인가!
하지만 우리의 반석이시요 요새이신 주님께서는(시 31:3) 회수할 것이 없도록 다 팔게 하셨고 남은 것이라곤 순출판사 창고에 있는 64권뿐이었다. 김준곤 목사는 가장 현명한 판단을 했다가 사탄의 계략을 감지하지 못한 채 아쉽게도 호기를 놓쳐 버렸다. 만일 CCC가 그 일을 했더라면 김준곤 목사는 이 나라 교회사 130년 동안 가장 소중한 사역의 일환을 담당하여 바른 성경을 보급하는 데 그의 역량을 발휘했을 것이며 그의 사역은 재정적으로도 어려움 겪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그가 받을 상도 컸을 것인데, 실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누구라도 멸망할 것이나,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보상을 받으리라』(잠 13:13). 하지만 그들은 지혜가 없었던 것이다.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면 지식이 네 혼을 즐겁게 할 것이며, 분별이 너를 보호할 것이요, 명철이 너를 지켜 악인의 길과 비뚤어진 것들을 말하는 자로부터 너를 구해 내리라』(잠 2:10-12).
나의 고향 선배이신 김양수 목사(장로교 합동 측 원로)는 우리 교회에 가끔 들르시는 분인데 하루는 나에게 와서 원로 목사들 모임에 갔는데 누군가가 “내가 이송오 목사를 만났다고 이야기했더니 김준곤 목사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이송오 목사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동대문 성결교회에서 목사들을 위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자기 시간 두 시간을 나에게 줬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전했다. 나는 옛날 성경 보급 일이 생각나서 내가 식사를 한 번 대접하고 싶은데 나오실 수 있는지 물어 달라고 했다. 즉시 답이 와서 몇 분이 오시냐고 했더니 세 사람이라고 했다. 서울 프라자호텔 22층에서 그분들을 만나 식사 대접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 28판인 한글킹제임스 스코필드 주석성경에 “사랑하는 김준곤 목사님께. 제자 이송오”라고 쓰고 서명해서 드렸다. 식사를 마친 후 김준곤 목사에게 또 한 번 질문을 했다.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시면 무슨 상을 받으실 것 같습니까?”(고후 5:10)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질문이었다.

그는 당황하고 주저하더니 답변을 못했다. 나는 그를 응시하며 “제가 알기로는 목사님은 받을 상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불쾌했을 것이다. 나는 준비하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말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이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그에게 몇 번 기회를 주셨고, 많은 젊은 대학생들을 모아 주셨으나 그는 성경대로 하지 않고 자기 영달을 위해 그 기회를 잘못 써먹어 버렸던 것이다.
그들은 선교를 부르짖으면서도 복음전도지 한 장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미국의 배교자 빌 브라이트(Bill Bright)가 평생 동안 써먹은 사영리(Four Spiritual Laws)만을 한글로 번역하여 마르고 닳도록 써먹었던 것이다. 우리 교회 복음 전도지는 14가지이고, 우리 교회가 미국에 의뢰해서 만든 한글판 Chick 만화전도지도 14가지나 된다. 나는 그에게 요즘 학생들은 한 달에 몇 명이나 구령하느냐고 물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우리 교회는 매달 최소 1,000명에서 최고 1,500명까지 구령한다고 말하면서 그런 교회를 봤느냐고 물었다. 김양수 목사가 이송오 목사는 서서 설교할 걸상을 가지고 다니면서 연세대 앞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에 설교한다고 거들었다. 그가 말하기를 구경가야 되겠다고 했다.
여의도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에게 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대학생들을 시켜 포대로 돈이나 거뒀는가? 왜 직접 거리에서 설교하지 않고 설교하는 일을 구경가겠다고 하는가? 왜 이 땅에는 D.L 무디, 윌리엄 부스, 찰스 피니,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를 자랑만 하고 흉내내는 사람도 없는가?
김목사 일행은 그날 장장 2시간에 걸쳐 나로부터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천년왕국의 수립과 통치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날 강의는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헤어지면서 김목사에게 아직도 여력이 있으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보급하라고 권면했다. 그랬더라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다섯 가지 면류관을 못받더라도 금, 은, 보석 중에서 어느 한 가지는 받게 되었을 것이나 그의 사역은 교단 눈치나 보는 것들이어서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뿐이고, 불에 태워 보면 남는 것이 전무할 것이다(고전 3:12-15).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첫째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착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세상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성경대로 믿고 가르쳤더라면 그 많은 젊은이들을 데리고 이 땅을 복음화시키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를 했겠는가? 그분이 떠났는데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의 질문에 얼마나 난감해 했겠는가? “너는 왜 그 일을 안 했느냐? 너는 왜 그 일을 했느냐?” 주님께서 그에게 하실 질문도 두 가지 일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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