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자세 (에베소서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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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1월호>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125명의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다가 발각되어 1년간 정학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합격은 해야 되겠고 실력은 없으니 수능에서부터 토익(TOEIC), 토플(TOEFL), 공무원 시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부정행위가 난무한 세상입니다.
“성공하려면 노력하라,” “건강하려면 운동하라,” “알려면 공부하라,”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등 이러한 슬로건들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경 말씀의 원칙에 일치합니다.
좀더 세밀히 검토하면, 세상의 모든 부정과 부패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지위에 앉아 일하는 체했기에 야기된 것입니다. 외무부 특채, 낙하산 인사, 각종 선거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공공기관의 기관장 자리를 주고, 또 이사장 자리도 줍니다. 이들은 국민의 표로 정권을 잡는데, 당선에 대한 감사 표시를 국민들이 아닌 선거운동원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보답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이 통하지 않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기술자가 양성되는 곳들, 파일럿(항공기 조종사, 선박 기관사)은 부정행위가 이름을 내밀 수 없습니다. 각종 장인들, 연주자들, 문인들, 프로 운동선수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설교자들과 성경 교사들, 즉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부정행위로 양성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부정하게 목사가 된 자들이 진리의 영역을 더럽혔기에 천국 문을 닫아 버려서 그들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마 23:13).
세상일에 부정부패가 발각되면 지상에 사는 동안만 감옥에서 잠시 고통을 당하게 되지만, 영적인 일을 부정한 방법으로 행하게 되면 지옥의 형벌을 영원히 받아야 합니다. 그런 범법자들은 영원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계명을 수용할 영적 공간이 그들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계명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많은 교인들이 헛된 짓을 하면서 영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사는데,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심합니다.

도대체 왜 가짜 그리스도인들과 가짜 목사들이 나오는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면서 자기들의 의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롬 10:3). 말하자면 부정행위를 구원받은 것으로 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성령님에 의해 인침을 받을 수 없습니다(엡 1:13). 하나님의 승인 없이 목사에게서만 인정을 받는 것은 가짜 인증서입니다.
이 설교는 순수한 마음, 선한 양심,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온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자세에 관한 설교입니다. 이 세 가지란 앉고, 행하고, 서는 것입니다. 워치만 니(Watchman Nee) 형제가 쓴 <좌행참>(坐行站)이라는 책이 있는데, 저도 1978년 12월에 그 책을 읽고 여러 면에서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그 책대로 설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도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자세란
I. 앉는 것입니다(엡 2:6).

죄인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했으면 대략 38가지의 변화가 생기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일은 믿는 성도를 자녀로 입양해 주시어(엡 1:5) 죄들 가운데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또 함께 일으키시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신 일입니다(엡 2:4-6).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셋째 하늘로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우리의 기도에 중보하고 계시는데, 우리 개개인을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게 우리의 위상을 높여 주셨습니다. 이런 종교가 또 있나 보십시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우리의 영은 셋째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주님께서는 셋째 하늘에, 또 우리의 몸 안에 거하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어떤 죄인이라도 그가 개과천선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인터넷 매체로부터 쉽게 접할 수 있는 음란 동영상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사람들을 각종 성범죄자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 법이 맥을 추지 못하며, 사정기관들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어두컴컴하고 담배 연기로 자욱한 PC방은 범죄의 온상입니다. 술이 양심을 마비시키며, 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절제의 빗장을 풀어 버립니다. PC방과 술집들, 나이트클럽 등이 육신의 죄들의 온상이라면, 각종 기도원들은 마귀가 역사하는 영적 범죄의 온상인 것입니다.

죄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으면 그의 생애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옛날과 동일하고 아무런 변화나 반응 없이 무덤덤하다면 그는 입만 살았지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정뱅이가 구원받았다면 술병을 깨트립니다. 노름 중독자라면 화투를 불태우고 돌아섭니다. 마약 중독자는 주사기를 빼 던지고 일어섭니다. 성도착증 환자는 성경을 읽고, 기도합니다. 사기꾼은 입에 자물쇠를 채우며, 사채업자는 통곡을 하게 되고, 죄인들은 참회합니다. 그 외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은 고쳐 나가며, 조폭은 자기 몸의 문신을 지우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영적 생활은 예수님과 함께 앉으면서 시작되어야 합니다(히 1:3). 주님 곁에 앉게 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이송오, <영적 삶의 새로운 시작>, 말씀보존학회 간). 그리스도인의 삶은 앉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진리는 성경 외에는 없습니다. 거듭났는데 앉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면 붕 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방황하게 됩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으나, 정작 혼자 있게 되면 마귀의 방문이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데 빠지지 말고, 함께 일하며 교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앉는다는 것은 곧 정착을 말합니다. 나무가 심겨졌으면 땅에 뿌리를 내려야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사람도 정착해야 믿음이 진리에 뿌리내리게 됩니다. 잘못된 교회인 줄 알았다면 일어서서 나와 성별해야 합니다. 무엇을 자랑합니까? 알곡은 없고 쭉정이만 많은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까? 쭉정이를 자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일꾼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완성해 놓으신 그 일을 믿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십자가 밑에서 쉬는 것이 앉아 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앉아 있는 것이 구속 사역을 믿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데 부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자세란
II. 행하는 것입니다(엡 4:1-3).

행하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 즉 함께 걷는 것을 말합니다(walk).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암 3:3) 아기는 젖을 먹고 자라지만 다 큰 아이에게 젖은 이미 음식이 아닙니다. 소년에게는 빵과 야채, 지방, 고기가 필요합니다. 말씀의 빵과 적절한 음식을 먹어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면 튼튼한 몸을 형성하여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있는 체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육체가 튼튼해지면 정신력도 자라게 되며, 동시에 말씀을 골고루 먹으면 영적으로도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을 통해 건장한 영적 몸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 영적 장애인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년기에 배워야 하는 것은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엡 4:17,23; 5:8,10).
그리스도인이 영적 체력을 갖추지 못하면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행동에 옮기지 못합니다. 골고다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그날의 제자들처럼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주님의 명령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삽니다.
걷는 일은 건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걸으면 건강해집니다. 우리의 걷는 일은 세상 사람들의 걷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는 혼자 걷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을 수 있으려면 먼저 혼자 걷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걸을 수 있는데도 앉아 있으면 퇴화되어 장애인같이 됩니다. 건각(健脚), 즉 다리를 튼튼히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주일에 세 번 개화산-치현산을 걷습니다. 족저근막염을 앓다가 2010년 가을 낫게 된 이래 지난 주까지 308회 걸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길이신 주님으로부터 이탈했다면 잘못된 행보입니다. 잘못된 길은 아무리 멀리 갔다 하더라도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목사들은 길이 아닌 길을 너무 멀리 가 버렸습니다. 그들의 복음이 잘못된 길을 제시하였기에 너무나도 멀리 가 버린 것입니다. 돌아와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너무 늦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쌓인 쓰레기를 치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4:12; 16:25). 한국 개신교가 가는 길은 다 망해 버린 길이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주님을 증거하고, 강건하고 담대하게 주님과 동행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은 열매를 낼 수 없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저주의 대상이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사람은 위선자에 불과합니다.
목표가 없는 행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는 행보, 진리와 무관한 행보는 무익한 일이기에 아무리 열심히 행했다 해도 인생의 낭비요 방황일 뿐입니다. 낭패인 것입니다. 그런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처럼 살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의 행보를 기억하십시오!(고전 9:23-27)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좇아갈 뿐이라』(빌 3:14). 성경대로 믿는 길이 바로 주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성도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자세란
III. 일어서십시오(엡 6:10,11).
우리 찬송가 <영광을 주께> 375장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의 영어 원제목은 "Stand Up, Stand Up for Jesus," 곧 주님을 위해 일어서라는 말입니다. 383장 “일어나 일어나라”의 창작 배경이 된 구절은 『깨어 있으라. 믿음 안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처신하라. 강건하라.』(고전 16:13)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마귀를 대항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됩니다. 그러한 군인이 되려면 훈련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싸움은 놀이가 아닙니다. 적을 무찌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나의 부대가 패배하게 되며, 심하면 국가가 위태롭게 됩니다(저는 제대로 군인 정신을 갖춘 장교들을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훈련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체력을 단련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적과 아군을 식별할 수 없는 한국 교회들은 적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 적과 동침해 버렸습니다. 영적 분별 능력이 없는 교인들은 무용합니다.
그 결과 적이 아군 같고, 아군이 적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누가 이단인지를 차마 말할 수 없기에 그들은 이단들을 아군으로 수용했고, 그래서 틀린 것도 없고 안 틀린 것도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방언하는 은사주의자들을 이단이라고 했다가 국민일보가 생기자 순복음교회 밑으로 들어가 같이 방언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순복음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순복음이 복음주의라고 떠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부패한 교회가 한국 교회입니다. 다른 나라는 소수가 이단들이지만, 이 나라는 다수가 이단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새벽기도회를 하는 교회들은 모두 이단입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새벽기도회를 하는 국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들과 싸우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는데,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면 그게 어디 교회입니까? 더군다나 마귀의 진영에서 마귀 짓을 하고 있었다면 그게 교회이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아군 진영으로 들어와 아군에게 총을 쏘고 있다면 그게 그리스도인이겠습니까? 정동수, 김영균, 이재명, 윤여성 등이 그런 자들이며 그들 밑에서 하수인 노릇 하는 자들이 마귀의 군사들입니다.
『너희는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엡 6:11). 그리스도인이 일어서는 목적은 적과 싸우기 위해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영적 전투에 투입된 군사가 일어서 있지 않고 앉아 있다면 그는 무익한 군인입니다. 그는 전신갑옷을 입을 필요도 없습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그가 나서면, 성경의 모든 명령이 그에게서 멈춰 버리거나 그가 다른 사람을 오도(誤導)하게 됩니다.
6.25 전쟁에서 가장 불운한 미군은 미 24사단장이었던 윌리엄 딘(William Dean) 소장이었습니다. 그때 한국 정부는 부산으로 내려간 뒤였으나, 그가 받은 명령은 대전 지구에서 남하하는 인민군을 최대한 저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세가 너무 불리해지자 1950년 7월 20일 그는 대전에서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부상병을 자기 지프차에 태우고 후퇴하는데 병사가 물을 달라고 애원하자 물을 구하러 산을 내려가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실신했습니다. 36일간 산속을 헤매다 전북 진안에서 인민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이질을 앓으면서 하루에 36회나 설사를 했습니다. 그는 모진 포로 생활을 겪고 1953년 9월 포로 교환 1호로 풀려났습니다. 후에 그의 회고록에 “기나긴 세월을 앉아서만 사는 경우,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를 알게 된다.”고 기록했습니다.
포로가 된 그에게 인민군은 의자에만 앉아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바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군인에게 “싸울 수 없다”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잘 믿어도 그만, 잘못 믿어도 그만이라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잔뜩 써서 믿으라고 인간에게 성경을 제시했다는 말입니까?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게 되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죄를 짓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미치지 않았기에 870만 명이나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상 생명을 지닌 자들에게 영원을 대비하라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가정도 우연도 아닌 사실이며 진리입니다.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딛 1:2). 주님께서는 믿으려면 제대로 믿으라고 우리에게 이 권면을 주셨습니다.
성도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자세는 십자가 밑에서 쉬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일어서서 마귀를 대적해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믿음의 생활을 하면 성도로서 잘하는 것입니다. BB


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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