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부르심을 보라! (요한복음 1: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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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10월호>

지상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수행하려면 일꾼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세상 교육, 세상 지혜, 세상 방법으로 준비된 사람들을 들어쓰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또 지역 교회에서 양육되지 않는다면 어디서 사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들은 영적인 일이기에, 크든 작든 간에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영력으로 수행됩니다. 거듭났고, 말씀으로 양육받고, 기도할 수 있고, 성령의 열매를 내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생활 습성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만이 육신적으로 되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릇이 되고,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에게는 지지 않지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패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도 이스라엘 백성이 대적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판단하고 사람들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래야 육신적이 되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고 군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준비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길러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을 자랑하는 교단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이 우리 교회가 하는 일을 따라하지 못하는 원인은 그들 안에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이 길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무익하고 낭비적이며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자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무익한 교회들을 세우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로 사람들을 회유하여 돈이나 갈취하라고 세우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한패가 되어 제직을 만들어 팔아먹고, 사람 수만 많으면 성공적인 목회라고 부추기셨겠습니까?
교회가 아무리 좋은 일을 계획하고, 장소, 물질, 성도들이 다 채워져 있다 할지라도 일꾼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은 단 한 가지도 실행될 수 없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한 복음은 단 1mm도 진전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지으셨고, 그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 우주를 운행하고 계시며, 그분이 성경에 기록하신 대로 인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이 직접 일하실 수 없으시기에 그분의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훈련시켜 길러진 유능한 일꾼들을 적재적소에 넣으시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보냄을 받은 성도들은 그 누구라도 중요한 부품들이 되어서 교회라는 유기체가 활발히 작동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몸의 기관 중에 필요없는 기관이 없듯이 지역 교회의 일원들은 모두가 필요한 기관들입니다. 당장 쓰임받지 못한 듯해도 고장난 부품이 생길 경우 대체할 수 있는 부품들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롬 11:29).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일은 세상에서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쓰신 경우들에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개개인은 우리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자신들을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을 보라
I. "너희가 무엇을 찾느냐?"(35-39절)
주님께서는 주님과 주님의 일에 관심을 표명한 사람들을 알고 계시기에 그들을 찾고 계십니다. 침례인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 즉 사도 요한과 안드레와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화목제물을 말합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그 말은 처음 들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자기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평생 동안 고행하고, 금욕하고, 명상하고, 남을 돕고 구제했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자신의 죄 문제입니다. 수천, 수만 명의 적들을 죽이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해도 자기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만두고라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없이도 자기 노력과 희생으로 자기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왜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피를 쏟고 죽으실 필요가 있으셨겠습니까?
사람이 타고난 죄인의 상태로 죽게 되면, 그의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의 숨결이기에 그분께로 돌아가지만, 혼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사람의 혼은 육신의 몸(fleshly body) 안에 있는 영적 몸으로(눅 16:23,24의 지옥에 간 부자를 기억하십니까?), 볼 수 있고, 혀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혼은 타지도 않고 썩지도 않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혼은 "둘째 사망"을 위해 준비된 장소에 묶여 있습니다. 지옥은 사람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마 25:41).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계 12:9). 뱀, 곧 사탄을 위한 장소인 불못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뱀같이 되셨습니다(요 3:14,15).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혼은 지옥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은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44,46,48). 이 벌레는 히브리어로 "붉은 굼벵이"입니다. 마귀의 이름 중 하나인 "비엘세붑"의 뜻은 "파리의 주"인데, "파리의 유충"은 굼벵이입니다. 시편 22:6에서는 십자가 위에 달려 있는 그리스도를 "사람이 아닌 벌레"로 보여 주십니다. 구원받지 않은 죄인이 지옥에 가면 정확히 그의 아비 마귀와 같이 됩니다(요 8:44). 이는 그리스도인이 하늘 나라에 가면 그의 아버지와 같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요일 3:1,2). 죄인의 혼은 사람의 몸의 형태를 잃은 굼벵이같이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죄를 그분 위에(사 53:4,6)만 지우신 것이 아니고, 또 그분 안에만 두신 것이 아니라(벧전 2:24) 죄의 화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이것이 대속의 온전한 의미입니다. 성경을 배제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였기에 주께서 그를 고난에 두셨도다.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주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하리라』(사 53:10).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막 8:36)
침례인 요한은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찾느냐?"고 반문하셨고, 사도 요한과 안드레는 "어디에 거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우리를 주님이 계신 곳으로 데리고 가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의중을 아신 주님의 답변은 "와서 보라."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어떻게 사시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을 보라
II. "나를 따라오라"(40-46절)
복음의 소중함을 알고, 진리를 아는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라고 부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Lord)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습니다. 주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지도 않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부른다고 해서 주님께서 그들의 구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저 부른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성경적 삶을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른다 해서 그 사람들의 주님이 되어 주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마음으로 믿어야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단순한 것 같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이라 부르는 것은 영화배우를 천사라고 부르는 자들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십니다(롬 11:29). 실수가 없고 정확하십니다. 안드레는 구원받고 나서 그의 동생 베드로를 만나자 즉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메시야를 만났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말라키 선지자를 끝으로 무려 389년 동안이나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은 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갑갑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메시야가 오시려나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그 메시야를 만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가 어떠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주님께로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그의 이름을 게바, 즉 돌이라고 이름지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계획을 다 마치신 뒤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이 오시어 우리를 휴거시키실 것을 진작 알게 해주셨습니다(살전 4:13-18, 계 19:11-13). 주님께서는 누가 올 것도 알고 계셨고, 그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누가 성경을 믿고 거듭났는지, 거듭나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지 알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그의 형제 안드레로부터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가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었더라면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 했거나 "말도 안되는 소리 작작해, 왜 요셉의 아들이 메시야냐?" 하며 부인했을 것이지만,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따라나섰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이 신비는 여러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졌다가 이제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이 어떠한지를 알리고자 하셨으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고, 각 사람을 훈계하며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하게 제시하려는 것이라』(골 1:25-28).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은 듣고서도 무시했기에 더 이상 믿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알고, 잘못 믿는 사람들 때문에 복음이 훼손되고, 복음의 능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것이 없기에 사람 수나 자랑하고, 헌금 액수나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다음 날도 빌립을 만나시어 "나를 따라오라."(Follow me)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과 안드레와 베드로는 벳새다 출신입니다. 벳새다는 고집이 세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였던 곳입니다(마 11:20-22, 눅 10:13,14). 잘 믿지 않는 지역의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이들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또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사람을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말하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의심했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과 안드레에게 하셨던 대로 "와서 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요 1:43-46).

제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을 보라
III. "네가 이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 (47-51절)
빌립이 한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즉시 반응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주님은 이의를 제기한 그를 좋은 사람으로 보셨습니다. 자기 스스로 규명하지 못하면서 믿겠다고 거짓 고백하기보다는, 너무나 심오한 영적인 일들을 온전히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반응은 건전한 것입니다. "내가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면 믿겠습니다."라는 태도는 좋은 것입니다. 다만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는데도 부인하고 거부하는 것은 저주받을 일입니다(요 3:36).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의 그런 자세를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보라,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에게는 간사함이 없도다." 나다나엘은 자기를 보신 주님의 예리한 관조에 즉시로 자기의 혼을 쏟아부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집약시킨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주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이 말은 보통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심오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나 그 안에 아버지, 아들, 성령, 이 세 분의 위(位)가 함께 공존하시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이신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요일 5:7). 이 삼위일체에서 아들 되신 분이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인류를 위한 십자가의 제물이 되시고자 인자(人子)가 되셔야 했습니다. 여자에게서 나셔서 제물로 드려지셨고,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삼 일 후에 살아나시어 40일 후에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딛 1:2).
"주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어떤 왕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천년왕국의 왕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로마카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기에, 예수님 없이 지상에 인간의 노력으로 된 천년왕국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무지의 극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왕국 건설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왕국 건설자들, 곧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 종말론자들은 성경의 80% 이상을 부인합니다. 그 사람들이 나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그들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쓰기에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그들 자신은 종말론만 부인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성경 전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계 22:7,12,20). 나다나엘의 고백은 이 두 가지 가장 중요한 진리를 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 고백을 들은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내가 너를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하니 네가 믿느냐? 네가 이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이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나다나엘이 성령님의 역사로 믿었을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면" 누군가가 올라가거나 누군가가 내려옵니다(계 4:1; 19:11, 눅 3:21, 행 10:11). 주님의 방법은 처음부터 크고 난해한 진리를 알게 하지 않으시고, 작은 성경적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좀더 심오한 것들을 깨우쳐 주십니다. "네가 이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 그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재림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받은 성도들이 밟고 오르내리는 사다리가 되심을 말합니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에서를 피해 시리아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져서 그곳에서 밤을 보내려고 돌들을 취하여 베개를 삼고 누웠습니다. 그가 꿈을 꾸었는데 사다리가 땅에 서 있어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천사들이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창 28:12).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장면이 재연될 것입니다. "스타"라고 알려진 영화배우들은 근처에도 못 옵니다. 나다나엘의 고백이 주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성경의 심오한 진리는 아무나 깨닫고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잘 가르쳐 주는 스승이 없다면 누구에게서 배우겠습니까? 스승이 엉터리면 제자들도 엉터리입니다. 교단 신학교들의 교수들을 보십시오. 교단의 종들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배울 제자들이 없다면 아무리 유능한 스승이 있다 한들 어디에 써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제자들은 주님 안에서 특별한 관계입니다. 아무리 잘 가르친다 해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배우려는 사람은 많은데 잘못 가르치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 거짓되이 가르치게 되면 독소를 뿌리게 되고, 이단 교리는 종창처럼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독소를 퍼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바라듯이 주님께서도 참된 제자들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은 잘 가르치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배울 사람이 없다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지역 교회에서는 바른 말씀을 전하고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제도교회들이 망한 것은 바른 말씀을 전하지 않고, 말씀에 따라 양육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먹고살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영적 지식을 습득해야 영과 진리로 주님을 섬기게 되고 주님과 교제가 있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을 알게 되어 기도도 응답됩니다.
성도들이 진리로 무장해야 하나님의 일들이 수행되어 많은 열매를 내게 되고, 그래야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임명하였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남아 있어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니라.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노니 이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6,17).
지역 교회 내에서 자기가 어떤 용도에 쓰임받을 수 있는지 스스로 알고 쓰임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부르셔서 왔고, 주님의 몸을 구성하는 유기체입니다. 혹시 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님의 사역에서 멀리 떨어지려는 것은 아닌지, 또 나는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준비하지 않은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제자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유용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BB




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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