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부활의 소망을 지녔는가?[요한복음 5:24-29]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7월호>

요한복음 5:24-29


오늘은 54회 현충일이며 제2차 세계대전의 피크였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은 지 60년째 되는 날입니다. 연합군은 1944년 5월 1일을 D-Day로 잡았다가 6월 5일로 연기했는데 그 날 다시 폭풍우가 불어서 그 다음 날인 6월 6일로 연기했습니다. 6월 6일 새벽 5시 30분 군함에서 함포가 발사되었고, 6시 20분에 상륙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군을 주력으로 하는 연합군이 독일군을 상대로 공격을 개시한 것입니다. 연합군은 이 전투에 5천 척의 함정, 15만 5천 명의 지상군, 1만 3천 대의 비행기, 1,500대의 탱크와 5천 대의 장갑차를 투입시켰고, 총 지휘는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이 했습니다. 6월 6일 새벽 6시 20분에 공격을 개시하여 저녁 6시까지 약 1만 명의 연합군이 전사하거나 실종됐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8백만 명이 죽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5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죽음은 피를 땅에 쏟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땅은 산업폐기물로도 오염이 되었지만 인간의 피로 오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불가피하게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보다 더 정확한 명제는 없습니다.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심판이 정해져 있습니다(히 9:27).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을 안 믿기 때문에 심판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습니다. 30년 동안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해서 나머지 30년간 일하는데, 일하는 30년 세월이 길다면 길지만 살기에는 짧은 시간입니다. 얼마나 하찮은 인생입니까!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에 갈등과 불화와 싸움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사람이 있다 해도 그도 조금 있으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용서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70-80년이라는 한정된 생애는 누가 정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행 17:26,27). 그런 인생에게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부활의 확신을 주셨습니다(행 17:30,31). 이 소망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갖는 소망입니다. 제한된 생애를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무엇입니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비웃습니다(행 17:32). 이 사실을 기록해 놓은 하나님의 약속과 보장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활의 확신을 가졌는가?
I. 구원받은 사람들의 지혜입니다(24절).
사람은 무슨 짓을 하고 살아도 결국은 죽습니다. 현명하게 살았건 어리석게 살았건, 부자로 살았건 가난하게 살았건, 떵떵거리며 권세를 휘두르고 살았건 아니면 저 밑바닥 인생을 살았건 모두 다 죽는 것입니다(전 2:12-14; 3:19-21).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생을 얻는 길을 찾기 때문입니다.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 가운데... 살아 있는 모든 자에게 참여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나니, 이는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들이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은 더 이상 상도 받지 못하나니...』(전 9:3-5).
살아 있는 사람이 생애 동안 성취해야 할 일은 세상에 있는 재물을 움켜쥐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것이 아니며, 술에 취하고 향락에 젖어 죄의 수렁 속으로 깊이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는 유일한 지혜란 인간이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그 절차와 조건을 보십시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요 5:24). 주님께서 지상에 살아 계실 때에는 이 점을 직접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뒤에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죄인들을 죽음에서 살릴 수 있으며 이 생명은 영적 생명이기 때문에 다시 죽지 않습니다. 이 생명을 지닌 사람은 정죄함이 없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롬 8:1).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요 12:48).
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채 교회에만 다닙니까? 로마카톨릭과 친카톨릭교회들, 또 은사주의교회들이 자기들 교회 안에 구원이 있다고 속였고, 은사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지상 삶을 잘사는 것이라고 그들을 유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서 복음이 변질되었고,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확신 없이 전했기 때문에 진리가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부활의 확신을 가졌는가?
II.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 바로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25절).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나오라고 하시니까 그 음성을 듣고 살아났습니다(요 11:43).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눅 11:14),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눅 8:54)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 잠에서 깨어나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살전 4:16,17).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깨어납니다. 그분의 음성은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영적 생명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생명을 지니신 것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시어 아들 안에 지니게 하심이라』(요 5:26). 성경을 통하여 세상에 전파되는 복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기에 이 음성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죄 가운데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의 영이 살아나고 그 혼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6에서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되고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2-24을 보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첫열매들과 추수, 그리고 이삭줍기의 세 가지 구분을 봅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그후에는 끝이 오리니 주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폐하시고 그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바칠 때라.』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부활한 구약 성도들이 첫열매입니다. 그 다음 추수는 그분이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 곧 교회 시대의 끝에 휴거되는 신약 성도들, 곧 우리들이 그 추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줍기는 재림 직전에 휴거되는 환란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 부분이 신명기 16:16에서는 세 절기, 즉 무교절, 칠칠절, 장막절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환란 성도의 휴거를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나는 큰 음성을 들었는데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리 올라오라.” 하므로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계 11:12).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그 다음에 또 천 년 기간 중에 행위로 구원받은 성도들도 백보좌 심판에서 생명의 부활로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계 20:12).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행위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모두 다 백보좌 심판에 서게 됩니다. 『민족들이 분노하나 주의 진노가 임하였고 죽은 자들의 때가 임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심판받으며, 주께서 주의 종들인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크고 작은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며, 땅을 훼손한 자들을 멸망시키려 하심이니이다.”라고 하더라』(계 11:18).
대환란 때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고, 천년왕국 때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고 해서 타락한 성품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면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종교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으로 구원받지 않고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자들입니다. 많은 이단 교리를 따라 다닌 자들입니다. 마귀의 교리를 따르는 로마카톨릭과 은사주의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려고 하는 지상왕국 건설자들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릅니까? 성경적 지식과 믿음이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없습니다. 또 성경을 아는 지식도 다릅니다.

부활의 확신을 가졌는가?
III. 자신의 구원받은 사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은 구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26-29절).
구원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을 알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서 순교하지 않았습니까? 부러운 것은 오래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생을 얻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러운 것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구원이 잘못된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지닌 사람이 가장 소중히 다뤄야 할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소망을 지니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니, 즉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요 6:39). 그런데 무수한 사람들이 이 말을 안 믿기 때문에 부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그분이 보내신 분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요 6:79).
인간은 종교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행 4:12)고 하셨습니다. 이 일들이 그리스도인들, 즉 구원받고 부활의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구령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르는 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잘못 믿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부활할 것을 믿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잘못 믿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만나서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물어 보아야 합니다.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 사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확신하고 기다리느냐?” 이 두 가지만 물어 보면 압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부활할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고동치는 것을 느낍니다. 므두셀라의 삶의 연수인 969년이 부럽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생은 소진되지 않는 생명입니다. 모든 것은 다 끝이 있지만 우리가 받은 생명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휴거되면 셋째 하늘 낙원에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하고 7년간 머물다가 천 년 동안 이 지상에서 삽니다. 그 다음에는 영원으로 넘어가서 새 예루살렘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 새 예루살렘이 얼마만큼 아름답고 어떻게 생겼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계 21:10-21).
부활은 교회의 기초석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복음도 믿음도 헛것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활동의 주요 동기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후 5:15).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기입니다. 부활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의 지렛대이며 성도들이 신실해야 할 원인이고 이유인 것입니다.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연결시키는 연결고리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짓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문란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게 하는 그 힘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성경이나 복음이나 구원이나 진리에 대해서 떠드는 소리는 빈 깡통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와 가짜를 식별하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너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BB



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전체 95 / 5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