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바른 섬김은 희생을 요구한다[사무엘하 24: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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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3월호>

사무엘하 24:18-25


돈과 연계시키는 현대의 교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장 비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라는 분이 자기에게 경배하러 오는 사람들의 돈에 관심을 쏟는 것처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들은 교인들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고 갖가지 편법을 동원하여 교인들로부터 각종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갈취함으로 인해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물질을 드리려고 하는 성도들의 열정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보화를 다 지니신 분을 가난한 과부의 두 렙타를 탐내는 분으로 만드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순수한 양심과 사랑으로 주님께 드리고자 하는 성도의 마음을 더럽히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교회를 출석인원이나 자랑하고 헌금액수나 자랑하는 곳으로 만드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부인하고 목자 자신의 역량인 양 자랑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성경에서는 그러한 의도로 말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 성경 구절이나 가져와서 자기들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엉뚱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자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성경 구절들을 자기들을 위해 써먹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한국의 토속신앙을 교회 안으로 가져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편이라고 속이고 있으며, 성경을 모르는 교인들은 그런 목사들이 옳으려니 하고 용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성경의 순서도 모르는 자들이 집사, 장로, 주일학교 교사, 선교사, 부흥사, 목사를 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 교회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희생이 없는 섬김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희생은 물질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두려워함과 순종이 없다면 아무리 물질을 정성스럽게 바쳤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사무엘상 15:22에서도 『복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경청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선한 양심으로 바치는 물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무도 내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말지니라.』고 여러 번에 걸쳐서 말씀하셨습니다(출 23:15; 34:20, 신 16:16). 주님을 바로 섬기는 데는 희생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제단이 아닌 곳에서, 제물이 못되는 것들을, 제사장이 아닌 자들이 다루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십니다.
본문은 다윗의 우쭐됨이 재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의 정복과 평정의 성취를 자신의 위대함으로 간주하여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을 계수하게 했습니다. 9개월 20여 일 동안에 걸쳐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의 인구조사를 다 마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일이 주님을 심히 불쾌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에 대하여 3가지 심판을 제시하시면서 그 중에 하나를 택하게 하셨습니다(삼하 24:10,12). 7년간의 기근을 당할 것인지, 3개월 동안 원수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을 다닐 것인지 아니면 삼 일 동안 전국에 전염병이 있게 하는 것 중 어떤 심판을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배제하고 인간의 능력으로 무엇을 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것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자랑하려면 주님을 자랑해야지 인간을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하는 일들을 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 판단해서 실패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실수이기 때문에 그 실수의 대가를 감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3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아침부터 정해진 때까지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보내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칠만 명이 죽으니라』(삼하 24: 15). 왕이 한번 판단을 잘못함으로 인해서 7만 명의 백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I. 주께 제단을 쌓으라(18-21절).
제단이란 하나님 앞에 죄 문제를 해결보는 곳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단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는 갈보리의 십자가와 주님의 보혈이 있어야 하며, 솔직하게 양심에서 우러나온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설교, 십자가 없는 기도는 주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보혈 앞에는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고백은 종교 행위일 뿐이지 주님과의 교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분 앞에 성도의 땀도 피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성도가 얼마만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가치를 아는가에서 성도의 믿음을 측정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자기의 죄들을 고백하면 용서받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땀으로 주님의 제단에 나오려고 하는데 땀은 제물이 아닙니다. 일찍이 카인이 드렸던 제물은 땀의 소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를 요구하셨는데 카인은 피 대신 땀을 가져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신들은 피를 요구하지 않고 인간의 땀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그 신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종교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것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적 가르침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오려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주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육신을 입고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알게 모르게 죄들을 짓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제단 앞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그 죄들을 고백함으로써 주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백이 없이 죄들을 감추면 어떻게 됩니까? 스스로 죄를 덮고 용인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요일 1:7-10).
우리의 혼은 비록 구원을 받았어도 몸은 아직 구원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성경적 기준 이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믿지 않고, 성경을 모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이 점을 모르고 살게 되는데 이 점을 덮어놓고 살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서 쭉정이가 되고,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주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II. 자기 희생이 없으면 바른 섬김이 없습니다(21-24절).
아라우나는 자기의 제물을 가지고 다윗왕으로 하여금 주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했으나 다윗은 『아니라, 내가 반드시 값을 치르고 네게서 그것을 사리라. 내가 값을 치르지 않고는 주 나의 하나님께 번제 희생을 드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24절). 다윗은 희생이 없이는 바른 섬김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갈보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린 제단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히 9:11,12).
갈보리에서 주님이 흘리신 피는 영원한 효력을 지녔기 때문에 하늘의 성소에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혼만 구원을 받았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우리의 몸도 구속을 받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과 땅의 구속도 그때 이루어집니다. 땅은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서 피로 물들었고, 산업폐기물과 각종 질병들로 죽은 수많은 짐승들이 묻히고 있습니다. 땅이 구속을 받지 않는다면 천년왕국은 거짓말입니다. 성경은 너무나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유대인들도 대환란의 심판이 끝난 후 천년왕국에서 새 언약을 맺게 됩니다.
성도에게는 갈보리 이후 개인의 제단이 있어야 하고, 가정의 제단이 있어야 하고, 교회의 제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지도 아니한 사람들에게서 야기되는 문제들은 개인과 가정의 평안을 깨뜨리고, 교회 안으로 마귀의 끄나풀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 섬김은 성도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할 때 반대자들이 생기며 그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이 있게 됩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딤후 3:12). 반면에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경건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박해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 성도가 바르게 주님을 섬기려면 죄와 단절되어야 하고 나쁜 습관으로부터 단절해야 합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한 성도는 제자리에서 맴돌며 성장이 없고 간증도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성도는 늘 주님이 오늘 오신다 해도 내가 주님을 영접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진리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도들에게 먼저 헌신하라고 강권하십니다(롬 12:1, 고전 6:19,20). 그러나 세상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교회가 맥없는 장소로 바뀌어지고, 마귀는 그런 교회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제단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남의 것으로 한다는 것은 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었기 때문에 물질이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물질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렙타를 바친 과부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가진 것 중에서 그 일부를 바쳤지만 두 렙타를 바친 과부는 자기의 생계비 전부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치는 사람의 선한 양심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시고 그 사람의 사랑을 점검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반드시 값을 치르고 네게서 그것을 사리라』(24절). 자기 희생이 없이는 섬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바르게 섬기지 못합니다.

주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III. 물질로 섬겨야 합니다(25절).
다윗은 타작마당과 소들을 사는 데 은 오십 세켈을 지불했습니다만 그 타작마당이 들어 있는 장소를 사는 데는 금 육백 세켈을 지불하였습니다(대상 21:24,26). 우주의 모든 보화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왜 성도들이 바치는 물질을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재물을 모으려고 땀을 흘립니다. 생활인에게 재물은 매우 중요합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인간의 마음도 가 있기 때문입니다(마 6:21). 그 재물이 신실한 손길에 의해서 하나님께 바쳐질 때 그 마음도 하나님께 가 있는 것이고, 그 일을 성취시키려는 성도의 기도가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재물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질문하셨습니다(마 23:16-22; 6:2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물질을 공급하실 때 하늘에서 떨어지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워주시는데, 정직하게 바치는 손길들에게 보상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너희가 자원하고 순종하면 땅의 풍요함을 먹을 것이나 너희가 거절하고 반역하면 칼에 삼키우리니 이는 주의 입이 그것을 말하였음이라』(사 1:19, 20). 그래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에 대해서 공개적이고 엄숙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번성케 해주시지 않았는데 남의 것으로나 은행이나 개인에게 빌려서 무리하게 억지로 바치라고 권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성케 해주신 데서 십분의 일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말라키에서는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말 3:10). 그러므로 신실한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합니다. 성도는 성경적인 원칙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바치는 물질에 시험을 받지 않지만 자기가 번 것을 주님이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평을 하게 되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아무런 자기 희생도 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은 갈보리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얻으시기 위해 얼마만큼 큰 시험을 치르셨는가를 아셔야 합니다. 일을 하십시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것이 성경적인 원칙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건강과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직장과 주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재물을 얻었다면 그 중에 십분의 일은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바른 섬김에는 자기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치면 주님으로부터 돌려 받는다는 것을 기대하고 바친다면 그것은 헌금이 아니라 장사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바친다면 주님을 시험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장사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정직하게 바치는 손길을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룩된 많은 사역들은 바로 정직한 손길들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은 이룩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신실한 손길들이 많을 때 하나님의 일은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성경을 16판이나 냈고, 진리의 책들을 160가지 이상 냈으며, 학회지인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지금 144호가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 작은 교회에서 15명의 직원(파트타임 일꾼까지 포함하면 20명)과 많은 사역을 이루어간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실천 목회입니다. 여러분들은 직접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들을 어떻게 수행하고 계신가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청지기이고 그분의 종들입니다. 주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주님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 없이는 바른 섬김이 없습니다. 땀으로 번 소중한 물질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바칠 것이 없으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일들을 수행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왕은 원칙을 배우고 원칙대로 주님을 섬긴 사람입니다. 그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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