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욥의 세 가지 질문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7월호>

욥의 세 가지 질문

욥기 14:1-15


욥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전 재산을 사탄에게 넘겨주었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건강마저 넘겨주고 겨우 생명만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욥의 입장에서 본다면 까닭없는 벌이었습니다. 욥에게 일어난 일보다 더 무서운 일이 인생에서 그리 흔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5:5에서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해치는 누룩 같은 존재들이 있으면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멸망을 당해도 그의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5에서는 뚜렷한 죄악이 드러났지만, 욥의 경우는 자신이 받는 처벌의 원인을 스스로 수긍할 수 없었기에 어찌 보면 억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이유없이 당하는 벌만큼 억울한 것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죽을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의롭겠느냐? 사람이 자기의 창조주보다 더 순결하겠느냐?』는 것입니다(욥 4:17). 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옳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신 분도 주시요, 빼앗아 가신 분도 주시니 주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욥 1:21). 욥은 자기가 당하는 형벌과 시련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죄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다루심에 있어서 죄를 묵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지은 죄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당화시키거나 용서해 주시지 않습니다. 죄인이 선행을 했다고 해서 의롭다고 받아 주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가볍게 다루시지 않습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그 구속 사역을 믿으면 그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해주십니다.
욥은 자기의 판단으로는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살을 생각했겠지만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받지 않겠느냐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욥 2:10). 그는 죽음을 떠올리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욥 7:17-20).
물질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은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인생의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욥이 갑작스럽게 겪은 이 역경은 그의 인생을 원점에서부터 생각하게 했습니다. 『내가 내 어미의 태에서 맨몸으로 나왔으니 내가 맨몸으로 그리 돌아가리이다』(욥 1:21). 『그가 모태에서 나올 때 벌거벗었으니 그가 왔던 그대로 돌아가며 수고하여 얻은 것은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전 5:15).
떠날 때 빈손으로 가야 할 사람이 현재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을 헤아려 본다면 받은 복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명이 살아 있고, 구원받아서 부활을 보장받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고 있는 현재를 감사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있겠습니까? 현재 살아 있다는 이 사실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 더 값진 인생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우리 모두를 대변하여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들은 저와 여러분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I. 나 같은 인간을 주와 더불어 심판으로 데려올 가치가 있습니까?(1-6절)
인간은 손 한 뼘만한 날 수를 받았는데 그것도 고통으로 가득 찼고(욥 5:7), 꽃같이 나와서 잘려져 버리고(벧전 1:24,25), 인간은 먼지이고 바람이며 안개요 벌레이고, 베어져 버린 풀이고 길 잃은 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권세와 쾌락과 부를 누렸던 솔로몬왕이 내린 인생의 결론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인생의 정도에 들어온 사람입니다(전 8:2,3).
보잘것없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더불어 심판으로 데리고 올 가치가 있겠습니까? 전혀 가치가 없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보잘것없는 인간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있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여자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그분이 죄를 위해서 흘리신 피로 양심을 씻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서 교제하며 사는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실을 기록한 말씀을 믿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입니다(요일 5:13).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자기들의 두뇌로 이 문제를 풀 수 없기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 양 가장했고 성경 말씀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인한다고 해서 성경이 부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제시하고 증명할 수 있는 책은 이 세상에서 성경밖에 없습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을 붙들고 있다가 죽은 사람들은 모두 지옥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서 심판하실 심판주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비참하게 되어 버렸습니까? 에베소서 4:17-19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 마음의 완고함과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리 떨어졌고 명철이 어두워졌으며 모든 감각을 상실하여서 자신을 방탕에 내주었고 욕심 때문에 모든 불결한 일을 행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으로 인간의 사악함을 예견하시고 인간들의 삶의 범위를 지구로 한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덴에서 내리셨던 그 저주들을 거두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28). 새 세대 곧 천년왕국에서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셋째 하늘로 먼저 모으시고(휴거) 그 다음에 그들을 땅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 곧 세워질 천년왕국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에덴 같은 완벽한 환경을 조성하셔서 거듭난 성도들과 같이 사시는 것입니다.
나 같은 인간을 주와 더불어 심판으로 데리고 오실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필요로 한 만큼 주님도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입니다(롬 8:17). 주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왕국을 받으실 때에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의 동의도 필요한 것입니다. 참으로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계속해서 손해만 보는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II. 사람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에 있는가?(7-10절)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질문이기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질문에 답변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죽으면 어디에 있습니까?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며 그 많은 책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세월은 줄어들고, 건강은 나빠지고, 없었던 병들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진화입니까, 퇴화입니까? 그런데 계속 진화라고 우깁니다. 잘살았든 못살았든, 사랑했든 미워했든, 진리를 위해 살았든 거짓말하며 살았든 누구나 하나님이 부르시면 떠나야 합니다.
나무는 살다가 태풍에 쓰러지거나 불에 타거나 또는 사람들이 베어 버릴지라도 다시 자라날 수 있지만 사람은 한 번 꺾이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교육, 즉 철학이나 과학은 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줄 수가 있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면 뭘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으로 끝을 내야 한다면 살아 있는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후의 생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받고 죽으면 나무처럼 다시 자라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람이 죽어 무덤으로 들어가면 끝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성경을 들먹이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까? 구원 없는 종교입니다. 카톨릭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자기들이 만들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것을 (아기들이 가는 림보, 연옥) 자기들이 만든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고통을 받습니다(눅 16:19- 24). 민수기 16:30에서는 코라와 그의 자손들이 땅이 갈라져서 산 채로 땅 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지옥은 사람을 보내기 위해서 만든 곳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보내기 위해서 만든 곳입니다(마 25:41). 이 일은 확인해 보고 결심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시고 기록하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 살도록 결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아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사고나 재앙으로 갑작스럽게 죽는 경우도 있지만 타이타닉호나 다른 침몰하는 배에서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죽든지 간에 가는 곳은 똑같습니다. 그가 구원받지 못하고 죽었으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다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자기 생명에 대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눈곱만큼의 도움도 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능하신 분에게 자기를 의탁하는 것이고, 그 일을 보다 확실하게 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잘산 인생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인간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일입니다. 단 1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를 배양함으로써 난치병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난치병을 치유받으면 얼마나 오래 삽니까? 환자가 살아났다고 합시다. 그는 다른 병에도 안 걸리고, 사고도 안 당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가 자기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난치병을 치유해 준 사람과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외치고 가르치는 사람 중 누가 더 유명해야 합니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III.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나리이까? (12-15절)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축복인데 이것을 저주로 바꾸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이성이 생기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믿고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채 무조건 교회만 다니거나, 세례나 침례에 의존하거나, 헌금이나 봉사를 신뢰하는 것은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 야이로의 딸, 도르카, 유두코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다시 죽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죽으셨다가 살아나셔서 다시 죽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12제자들과 사도들, 스테판은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지금 셋째 하늘에서 신실한 주님의 사역자들과 순교자들과 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고후 12:1-3). 성경은 그들이 새로운 몸을 입기 위해서 알파 드라코니스(Alpha Draconis)를 건너 태양계로 올 때에 굉장한 폭발음이 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살전 4:11- 13). 우리 앞서 잠들었던 우리 교회 성도들도 그들과 함께 와서 무덤을 열고 살아나서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눈깜짝할 순간에 부활한 몸을 입는 것입니다(고전 15:51- 53). 이것은 성경을 믿는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산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나리이까?』(14절) 이것은 욥만의 질문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의 질문입니다. 욥은 이어서 『나의 변화가 올 때까지 나의 정해진 때의 모든 날들을 나는 기다리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선포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거짓 교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선포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욥은 다시 말합니다. 『주께서 나를 부르시리니 내가 주께 대답하리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의 지으신 것에 애착을 가지시리이다』(욥 14:15). 하나님께서 얼마만큼 인간이 구원받고 부활한 생명을 받기를 원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욥아, 이리 올라오라.” “사도 요한아, 이리 올라오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주님께서는 양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요 10:3). 자기 이름을 부를 때 그대로 솟구쳐 올라갑니다.
인생의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훌륭합니까? 세상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그대신 대중의 의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좁은 문을 버리고 넓은 문을 선호하나 그 문으로 들어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갑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나리이까?』(14절) 물론 다시 살아납니다. 욥은 이 질문에 『나의 변화가 올 때까지 나의 정해진 때의 모든 날들을 나는 기다리나이다.』(14절)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썩지 않고 영광스런 몸으로 바뀌어지고(고전 15:42-48), 죄 없는 몸으로 태어나고(빌 3:21) 33세의 남성의 몸으로 변화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날 변모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알라고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일하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멸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들이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은 더 이상 상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에 대한 기억이 잊혀짐이라』(전 9:4,5).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고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계명들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인생의 정도를 사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근거도 없이, 자기 감정으로 이 엄청난 진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살아 있는 이 시간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사서 얻으라고 했습니다(엡 5:1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자백한 사람은 욥의 세 가지 질문에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제대로 믿음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여러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여러분들의 생을 쓰셔야 합니다. BB

전체 95 / 3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