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가장 잘 사는 인생이란 [전도서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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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9월호>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애정은 자식들이 갚을 수도 없고 흉내를 낼 수도 없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녀들은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듯이 자식을 기르고 있는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에게만 관심과 열정을 쏟을 뿐 자기 부모에게는 보은할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라는 말일 것입니다. 부모에게 베푼 사랑과 자기 자식들에게 쏟아 붓는 사랑을 비교한다면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모가 자식들이 원하는 것들을 하도록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기준을 떠나게 되면 모든 세상의 일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 우세하여 진리가 없는 벨리알의 자식으로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아이가 원하는 대로 허락하는 것이 자식 사랑입니까? 그리스도인 부모가 자식을 진리에서 내몰아 세상 지향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까? 교회는 세상에서는 배울래야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는 곳입니다. 이 교회에서 잘 배우는 아이들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유행입니다. 남자들이 머리를 길러 여자처럼 보이게 하고 심지어 귀걸이, 코걸이를 하기도 합니다. 일부러 찢어서 허벅지가 보이는 청바지를 입고, 야한 영어 욕으로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영화배우 흉내를 내며, 남자 아이,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서 몸을 흔들며 춤추는 세상에 자식을 내보내는 부모들이 있는데, 그것이 자식 사랑입니까?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유명한 영화감독입니다. 그는 구원받지 않은 유대인인데 그가 이티(E.T.)라는 영화를 만들어서 소위 가족오락이라는 미명 아래 극장과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스필버그는 이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세상에 전하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티처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를 가리는 또 하나의 마귀의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해리 포터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리 포터를 읽은 많은 청소년들을 완전히 환각 상태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가리는 마귀의 장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원하는 대로 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망쳐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황폐화시킨 요인은 첫째, 사탄이 만들어낸 반 쪽짜리 진리를 수용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사탄은 사람들을 눈멀게 만드는 괴수인데 그에게 속아 스스로 소경이 되기를 자청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진리를 떠나 세상으로 다가가면서도 자기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탄이 쳐 놓은 덫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황폐화시킨 주역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는 교회 내의 위선자들입니다. 스스로 믿음을 잃어버리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믿음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나는 주니 그것이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양을 새긴 형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자식을 진리에서 돌이켜 세상으로 내모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그 자식을 망치는 일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육신에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에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갈 6:7,8).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기 원하면 지금 자식에게 진리를 알게 해야 합니다.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I. 이생은 인간의 계획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1절).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도 있습니다(잠 14:12). 인생은 이 시대뿐만 아니라 아담의 타락 이래로 줄곧 부정적이었습니다. 전쟁, 재앙, 사고,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이생에 집착하고 살면서 창조주를 버렸습니다. 이 세상 방식대로 살면 성경은 필요없습니다. 그들은 육신에다 썩은 것을 심으며 살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일지라도 인생 문제에 있어서 정답을 얻지 못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왜 의인이 고난을 받느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악인의 장막이 번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데 왜 교통사고가 나고, 병들고 가난으로 고통을 당하느냐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도 믿지 않고 교회도 안 다니며 진리도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잘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애에 개입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현 세상만, 그것도 자기가 사는 동안까지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현 세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후의 생과 부활의 생까지도 보십니다. 우리가 이 현 세상만 살려면 구원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잠 9:10,11)과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엡 6:1-3)에게 지상 생명을 늘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지상 생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이 오래 삽니다. 자식을 진리로 양육하지 않고 세상으로 내몰아 세상에서 인정받는 아이로 키우려는 부모가 있다면 장수의 두 가지 요건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입니다. 한때는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피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왔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것을 하나님의 일처럼 자랑하는 것은 무식한 것입니다.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어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입니다. 구원이 뭔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삶의 자세로부터 주님께서 받으실 영광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여 자식들을 더 즐겁게 해주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더 좋은 것을 보여 주려는 강한 열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휴가철이나 주말이면 고속도로가 메어지고 휴양지는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지난 6월 25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로 13명의 한국인 희생자가 났습니다. 승무원들과 승객들이 그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함께 찍은 기념사진들이 공개되었는데, 청명한 날씨와 펼쳐진 들녘과 수림들을 보고 즐거워했을 뿐 30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뿐입니까? 이 땅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하루에 30명 이상입니다. 강도에게 당하여 죽고, 자살로 죽고, 병원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불감증에 걸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부정적이라고 가르쳐 주셨고, 살아 있는 동안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1,2절).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길입니다. 10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살기 때문에 인간은 사후를 대비하고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 서지 않을 인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잠 27:1).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II. 창조주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합니다(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시켰느냐? 네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생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식과 집, 건강, 지혜,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 등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대답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요 5:24).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을 행사했을 때 힘들었습니까? 구원파처럼 집이나 재물을 바치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그냥 받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정말 하늘 나라에 가는가?” 구원받았으면 가는 것입니다. 의심할 것을 의심해야지 하나님과 관계된 것, 진리와 관계된 것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음성입니다. 저는 말씀이 아니고 소리지만 제가 성경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 주님의 구원받은 양무리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반 쪽 진리를 말하는지 아니면 진리만을 말하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거짓 교회에 앉아 있는 자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보통 일입니까? 이생에서 무슨 일을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절대로 안 일어납니다. 오직 그분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 3:20,21).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만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거짓 성도에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믿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를 믿는 이 나라의 98% 이상의 개신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안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짓되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고 입발림하는 거짓 성도는 예수님이 오실 때에 그분의 몸으로 변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지녔고 그분을 섬겼다면 우리 성도들도 에녹처럼 들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III. 위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라(골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은혜를 입고서도 쉬 망각해 버립니다.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입은 은혜가 있다면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갚으려고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다 갚겠습니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번영과 안녕이 6․25 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 참전국들의 희생자들과 무관한 것입니까? 그들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처, 자식들은 사랑도 모르는 사람들입니까? 왜 자기와 무관한 사람들을 위해 수만 리 떨어진 한국 땅에 와서 죽어야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받고 영생을 얻어 진리로 그분을 섬기겠다고 고백한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과연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알며, 주님의 은혜를 알고서 사는 것입니까? 그런 자들이 믿는다고 입벌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삽니까? 어떤 예수님을 증거할까요?
그들은 성경보다 영상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보다 신문을 더 오래 읽고, 텔레비전, 인터넷, 영화에 시간을 더 많이 빼앗긴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둘 마음의 여백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부패가 시작되었고, 주님께 맡겼던 자아를 다시 찾아와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에서의 성취와 인정을 바라는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적이 없습니다. 죽지 않았기에 다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질 수 없었습니다. 거짓으로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믿지도 않고, 그분께서 오실 때 동참할 수도 없습니다. 거짓말의 대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으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 목사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자기의 뜻을 실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좀비처럼 살아야 합니다. 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을 좀비(zombi)라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 2:20).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결론적으로
가장 잘 사는 인생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해결하고 답변해야 할 숙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며 사는데, 그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볼 때 가소로울 뿐입니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었다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면 주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모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 그들 대대에 걸쳐 그들의 옷단에 술을 만들고 그 옷단의 술에는 청색 끈을 붙이도록 명하라. 이 술에 단 끈은 너희로 그것을 보고 주의 모든 계명들을 기억하여 그것들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는 너희로 음란하게 숭배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눈을 따라 추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 너희로 기억하고 나의 모든 계명들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께 거룩해지게 하려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하시니라』(민 15:37-4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옷단에 술을 만들고 술에는 청색 끈을 붙이라고 하셨는데, 청색 끈을 볼 때마다 하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그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아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아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좋은 집들과 좋은 기회들을 다 놔두고 아프리카나 미얀마, 인도, 남태평양 등 오지로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그 선교사들의 고귀한 헌신들을 자랑합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숙제에 대한 답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너는 이제 너의 젊은 날에 곧 재앙의 날이 이르지 않고 “나에게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해가 가까워 오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해나 빛, 달이나 별들이 어두워지지 않은 때, 비 뒤에 구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 때에 그리하라』(전 12:1,2).
죽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고, 갑작스럽게 재앙이 닥치기 전, 즉 살아서 호흡하는 동안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일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인생을 가장 잘 사는 사람입니다. BB

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와 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www.biblepower.co.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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