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주 없인 살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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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3월호>

주님께서는 “의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세상에 보여 주시기 위해 B.C. 4000년경부터 B.C. 550년까지 약 3,500년 동안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세 사람을 거명하셨는데, 이들은 노아, 다니엘, 욥입니다. 1,200년에 한 사람 꼴로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았던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을 내리려 하셨을 때 아브라함의 항의를 들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항의가 무엇이었습니까? “의인을 악인과 함께 취급하시어 멸망시키시겠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 성읍에서 50명의 의인을 찾는다면 그들을 위하여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모든 곳을 남겨 두리라.』(창 18:26)고 단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여섯 번 양해를 받아냈지만, 의인 10명이 없었기에 두 성읍은 유황불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했습니다. 소돔은 이스라엘의 사해 밑에 있는 지역입니다.
유다가 배교로 인해 민족 전체가 바빌론으로 사로잡혀가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단 한 명의 의인만 있다면” 내가 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고 단언하셨습니다. 『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그때도 유다 민족 전체에 단 한 사람의 의인이 없었기에 그들은 성경대로 바빌론으로 잡혀가 70년간 종살이해야 했던 것입니다.
욥기는 인류가 가진 최초의 문제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룬 책입니다. 욥기의 주요 내용은 “왜 의인이 고난을 받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의 해답을 인류에게 제시하시기 위해 욥을 등장시키셨습니다. 나름대로 양심적이고 신실하게 주님을 두려워하고 섬겼던 욥에게서 자식들과 전 재산, 건강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하셨습니다. 혼인 서약했던 아내마저도 돌아서 버렸습니다. 명예와 권위도 상실했고, 병든 몸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친구라는 자들이 세 명이나 찾아와 위로는커녕, 죄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치시겠느냐고 염장을 질러댔습니다. 욥의 의문은 당연했습니다. “자신의 양심으로 창조주께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이처럼 혹독한 시련을 주시는가?”
욥은 세상의 신인 사탄과 대적시키려고 세우신 하나님의 챔피언이었는데, 욥은 이 점을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능력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욥은 1년이란 기간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변할 수 없으시다는 신념을 지녀 결국 “공의와 진리”가 승리를 거둡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추구한다”며 종교를 찾고, 교회를 찾고 있으나 스스로 답이 없는 길에 서 있습니다. 그들이 종착역에 도달해 보면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를 버리고 나름대로 옳다고 여겨 행했기 때문입니다. 욥이 겪은 1년의 시련은 우리들의 지상 삶의 기간에 해당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신의 신념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구원주가 되시기 위해 육신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면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안에 거하신 분”을 믿어야 합니다. 제대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인간은 예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현재도, 미래도 살 수 없습니다.
I. 오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14-17절)
『 오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언제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언제까지 내가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마 14:17)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들을 데리고 변형산에 가셔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주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빛처럼 희어졌습니다”(마 17:2).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3절). 구름 속에서는 한 음성이 말씀하시기를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5절). 이 광경을 보고 들은 세 제자는 너무 기이하고 무섭기도 한지라 얼굴을 땅에 박고 있었고, 베드로는 땅에 장막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또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겠다고 헛소리까지 했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듣고서도 믿지 않는다면 무가치한 자가 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썼던 사도로서, 사도행전 12장에서 최초로 목베임을 당해 죽은 순교자였습니다.
이 변형산 사건 바로 뒤에 있었던 일이 본문입니다. 한 아버지가 미친 아이를 데리고 주님께 와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면서, 먼저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 오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언제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언제까지 내가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17절)고 하시면서 그 아이에게서 악령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일대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든 문제들을 해결봤습니다. 그 중에는 배고픔, 미친병, 마귀들림, 소경, 간질, 팔이 마르는 병, 중풍, 유출병, 열병, 귀머거리, 농아, 38년 된 병자, 문둥병자, 죽은 사람들,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악취나는 송장 나사로까지도 살려주셨습니다.
주님은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신 분”이셨습니다(요 1:1, 요일 1:1, 계 19:13). 성육신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거듭남이 있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 경전들이 흉내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변형산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하늘로부터 내리신 음성을 들은 증인으로 그의 서신 베드로후서 1:15-21에 그의 느낀 것들을 썼습니다.
하지만 무식한 자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신들을 알리고, 세상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여 돈을 챙깁니다. 거짓 은사를 자랑하면서 병들을 고치고, 악령을 쫓아내며 방언을 한다고 사기쳐서 돈을 챙기며, 마치 하나님의 능력을 행한 것처럼 혼란을 야기시킵니다. 참으로 그런 자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입니까? 그런 사기꾼 푼수들에게 당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교회들을 하며 세상에다 엉뚱한 것을 교회인 양 제시하며 점잖게 사기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예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현재도, 미래도 살 수 없습니다.
II. 어찌하여 우리는 그를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18-20절a)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라.』(20절)고 답변하십니다. 이것은 비단 악령을 쫓아내지 못한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교회를 한다고 설쳤기에 교회가 안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들은 건물을 크게 짓고, 또는 건물을 안 짓고, 별별 세상일들에다 하나님, 예수님, 선교, 구제 같은 말들을 갖다붙여 교회라고 하지만, 성경도 없고, 복음 전파도 없이 공의와 진리를 실행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제시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로 믿음 없이도 교회만 잘 다니면 예수님을 믿는 것인 양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 전, 모 일간 신문에도 어떤 목사가 소개되었는데 그는 교회를 짓지 않고 학교 강단을 빌려 교회를 하면서 그들이 한다는 일이란 복음 전파나 구령이나 성경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바쳐진 헌금으로 탈북자 지원, 취약계층 지원, 아프리카 나라들에 모기장 보급, 말라리아 퇴치 활동 등을 벌이고, 마을회관과 옥수수 저장 창고를 지어 주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런 교회를 네 개로 “프랜차이즈” 하면서 자신들의 교회 이름이 “높은뜻숭의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교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사무소나 시, 또는 정부가 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 하나님께서 『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라.』(눅 19:17) 하시겠습니까? 그런 영적 환경 속에서 믿음이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당시 욥에게는 내주하시는 성령도 없었고, 완성된 구원의 보장도 없었습니다. 욥이 가지고 있던 것은 경각에 달린 목숨에 앞서 오직 구두(口頭)로 하신 몇 마디 명령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는 성령님이 내주하시어 우리의 생각과 의도까지도 알고 계시며, 완성된 구원이 있습니다. 또한 온전한 말씀(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누가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롬 8:35-39, 시 44:22). 이 세상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는가는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먹고 배설해 버린 것에 무슨 점수를 주신단 말입니까? 진리를 소유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했으면 모두 불에 타고 맙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하고 교회를 다녀도 이 신앙 때문에 죽음의 위협을 받는 성도들의 고난을 결코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교회에 맡겨 주신 일들을 담대히 수행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프리카에 모기장을 보내라 하셨겠습니까? 일을 맡기신 주님께서는 필요한 손길과 물질과 지혜를 주시어 수행케 하십니다. 믿음이 부족한 우리들은 주님의 뜻을 저버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는데, 그때 우리를 참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포장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1천km도 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무자격자들입니다. 세상을 현혹하는 또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인간은 예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현재도, 미래도 살 수 없습니다.
III. 믿음은 기도와 금식으로 자랍니다(20b,21절)
하찮은 우리들이 무엇으로 우주의 창조주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는가를 숙고해 보십시오! 성경도 모르는 날라리 허풍쟁이들이 세운 교회를 다닌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쓰잘데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에 세상 만물을 지으셨다는 창세기 1,2,3장을 믿는 믿음, 요나가 고래 뱃속에 삼 일 낮과 삼 일 밤을 있었듯이 인자도 그러하시리라는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 5:10). 『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자신의 육신에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에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쓰러지지 아니하면 때가 되어 거두리라』(갈 6:7-9). 그날에 잘 믿었는지, 못 믿었는지 판단 받게 됩니다.
빌립보서 2:12에서는 『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특정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 성도가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위 없이 믿음으로 받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주에서 가장 귀한 독생자의 생명과 우리의 구원을 교환하신 것입니다. 『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후 13:5).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상하고, 제품 가치가 없는 작은 과일을 골라내는 컨베이어 벨트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썩은 것들은 상자에 들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커다란 믿음이라 하지 않으시고,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 같은 죄인도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구원받아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했더니, 성경도 번역하고,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은혜, 자비, 구속, 구원의 보장, 절대 진리, 우리 안에 거하시는 말씀 등의 용어들은 인간의 용어가 아닙니다. 욥은 산 채로 죽음을 경험했고, 주님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욥은 죽음만큼이나 엄청난 어두움을 경험했습니다(욥 3:11,13).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보지 않으십니다(롬 2:11). 욥은 인간이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그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 또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단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다면 너희의 이곳 나그네 시절을 두려움 속에서 지내라』(벧전 1:17).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고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또 다른 사기꾼들입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은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표적의 하나는 “병 고침”과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마 4:23,24; 8:16). 특히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천국이 임하기 전에 유대인들이 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와 관계가 있습니다(마 6:33; 12: 28).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면서 이스라엘을 회심시키려 하셨습니다. 다른 이적들을 행하신 것도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기도와 금식이 필수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두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자녀들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자인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에 참여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며 또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주시려 함이니라』(히 2:14-15).
이 시대에 믿음도 없는 자들의 돈벌이를 위해 기도와 금식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악령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들을 회복시키는 예표로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주님의 능력을 행하라고 하는 대목은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지 교리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은 어느 시대에나 지상생명을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쓰는 종들을 원하십니다. 말하자면 믿음의 챔피언들입니다. 욥은 잘 나가다가 당했기에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가 인간의 성향으로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의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마담 구이욘(Madam Guyon, 1648 -1717)은 69세를 살았는데, 신앙 때문에 15년간이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자매가 실토했던 간증은 체포된 5년 동안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묵묵부답하셨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5년이 지난 후 주님께서는 비로소 그녀에게 위로를 주셨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배를 찾았던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위로자,” 지상 생명에 가치를 두지 않으시는 그분, 구이욘 자매는 비로소 완성된 속죄의 의미를 터득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을 것을 알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사랑했습니다. 『 그러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내게 힘을 주신 것은 나를 통하여 복음 전파가 온전히 수행되어 모든 이방인들로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려 하심이며, 또 내가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느니라』(딤후 4:17).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삶을 말합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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