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경이롭고 무서운 일[예레미야 5: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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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2월호>

예레미야 5:30,31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이적들을 행하셨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흔히 말하는 종교의 창시자로 알고 따랐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무산되고 모든 일들이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종교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인간을 죄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던 무리들을 보시고 가장 안타깝게 여기신 일은 그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 즉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더 큰 이적 행하시기만을 바랐을 뿐, 진리의 근본을 이해하고 깨달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제시하시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던 사람들은 다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면 영원히 산다고 가르치시면서 육신의 생명과 영적 생명을 대조해서 설명해 주셨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따라서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주의 제자 중 많은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기를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그것을 들을 수 있겠느냐?”고 하니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이 일에 관하여 수군거리는 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너희에게 거침이 되느냐? 그렇다면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너희가 본다면 어찌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0-63).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것인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이해하지 못한 무리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애써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부 다 떠나 버렸습니다(요 6:66). 예수님께서 지금 위기에 봉착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더 많이 얻으려고 열심히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떠나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단 교회들은 예수님 없는 교회에서 교회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교회만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그들을 모아서 세력화시켜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시켜 영원한 생명을 소유케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들은 진리를 거역하고 멸망의 길로 돌아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기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요 6:67). 그런데 그때 베드로의 대답이 예수님의 질문에 정곡을 찌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대답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무리들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또 확신하나이다.”라고 하니라』(요 6:68,69).
나중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기는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때 베드로가 누구인지 아셨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베드로가 “우리”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요 6:70)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마귀도 변화시킬 수 있는 권세가 있으셨지만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거부하고 마귀로 계속 남아 있는 것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도 위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떨 때가 그런 위기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 영생에 이르는 것을 도외시하고 가짜 이적을 보고 거기에 기대를 갖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짓을 하는 거짓 목자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행세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종이 나서서 하나님의 종을 자처하고 비성경적인 일들을 할 때 하나님께 위기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쭉정이들이 제각기 자기 종교를 가지고 교회라는 곳으로 들어와서 포진하고 성경에 없는 종교행위를 할 때입니다. 은사주의 교회에 가 보십시오. 네 번째는 그러한 것들을 방조함으로써 쭉정이들을 자랑하며 교회성장이라고 내세울 때 하나님께 위기인 것입니다. 복음도 전하지 않고 진리와는 무관한 교회들이 새벽기도회니 금식이니 하며 방언하고 병 고친다고 사람들을 모아 이것을 교회성장이라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교회가 치부할 때입니다. 성도들이 헌금과 십일조를 내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가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섯 번째는 복음이 퇴색되고 멸시를 당할 때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 믿음이 실종되고 진리가 빛을 잃을 때이며, 인간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대신할 때가 하나님의 위기인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위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위기가 닥치면
I. 하나님은 자기의 종을 예비하십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죽는데, 이때 사람들은 전쟁과 죽는 사람들만 생각하지 아기들이 태어난다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1809년 트라팔가와 워털루 전쟁이 한창일 때 영국 리버풀에서는 윌리암 글래드스톤이 태어났고, 영국 섬머스바이에서는 알프레드 테니슨 경이 태어났습니다. 또 미국 보스톤에서는 올리버 웬델홈즈가 태어났고 캔터키에서는 아브라함 링컨이 태어났습니다. 독일의 함부르크에서는 펠릭스 멘델스존이 태어난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두 가지가 생겨납니다. 하나는 종교이고 또 하나는 쓰레기입니다. 잘못된 종교, 잘못된 신앙은 인간을 구원하기는커녕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고 많은 주들이 있으며 그들이 섬기는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진리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행 4:1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또 진리가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마귀의 방해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좋고 맛있는 것은 입 속으로 넣고 쓸모없는 것은 버리기 때문에 쓰레기더미가 태산을 이룹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를 거역하는 종교쓰레기들도 세상의 모든 국면을 파고들어서 오염을 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종교쓰레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오래전에 예비하신 그분의 종들을 하나둘씩 세워서 복음과 진리를 전파함으로써 종교쓰레기의 오염을 방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출생이 그렇습니다. 예레미야 1:4-8을 보십시오. 『“내가 뱃속에서 너를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거룩하게 하였고 너를 민족들의 선지자로 정하였노라.” 하시기에... 너는 내가 너를 보내는 모든 자에게 갈 것이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네가 말할 것임이라.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내리라. 주가 말하노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사야 선지자가 죽은 지 60년이 지난 뒤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21세 정도로 추정됩니다. 당시 세계는 앗시리아가 제패하고 있었지만 이집트와 바빌론이 세력을 얻었고, 바빌론이 B.C. 607년에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키고 나서 그 다음 해인 606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습니다. 당시 유대 위정자들은 이집트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왕을 압박하였습니다. 세계의 역사는 예정대로 되어져 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상황을 얼마든지 반전시키고 변혁시킬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이 위기를 대처하시려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세웠으나 사람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다가 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이었으나 백성은 주님께로부터 돌아서 버렸고 참 선지자를 거역했던 것입니다. 그 대신 거짓 선지자를 따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예레미야를 가리켜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자기 나라의 멸망을 보고 울지 않을 선지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의 배교한 교회의 실상을 보고 가슴아파하며 우는 하나님의 종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간 종 노릇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왕은 바빌론에게 빨리 항복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는데 그로 인해 예레미야는 반역자로 몰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넣어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참된 것인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는 오히려 반역자가 되었고 그 대신 사람들은 자기들의 귀를 간지럽게 해주고 기분 좋게 해줄 가짜 선지자들을 따랐던 것입니다. 가짜 선지자들을 따르는 것은 파선한 배에 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 다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위기가 닥치면 
II. 경이롭고 무서운 일이 그 땅에서 행해진다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렘 5:31). 이것이야말로 파멸의 3박자인 것입니다.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넣어 주신 그 말씀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주께서 또 내게 말씀하시니라.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되이 예언하는도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너희에게 거짓 환상과 점치는 것과 허망한 것과 그들 마음의 속임수로 예언하는도다』(렘 14:14). 『주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꿈들을 예언하고 그들에게 말하여 그들의 거짓말들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그릇되게 하는 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도,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아니하였으니...』(렘 23:32).
제사장들은 어떻습니까?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서 우로나 좌로나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버리고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으로 하나님의 법을 대신했을 때 그는 이미 제사장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는 선지자가 한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다른 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른 선지자여야만이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제사장이라는 사람이 거짓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해했다면 그 사람은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지금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거짓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인간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가르치는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같았던 것입니다. 거기에 동조한 자들이 진리가 필요 없는 무리들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계의 실상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필요 없는 사람들은 늘 이적과 표적을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기며 추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백성들은 그런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하는 행위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그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 5:31) 이런 상황을 연출한 자들이 받을 벌이 얼마나 중한지를 그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위기 때에 자신의 사람을 내세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예레미야 선지자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예수님의 선지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예레미야 선지자와 유사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둘 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고향에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빌론의 위협 아래서, 예수님은 로마의 위협 아래서 사역을 하였고, 둘 다 백성들에게 반역자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끈질긴 비난을 받았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둘 다 예루살렘 도성을 위하여 우셨고,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강조하며 외양적인 경건의 모양을 꾸짖으셨습니다. 참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은 말씀에서 이탈한 백성들을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 교회에서 하고 있는 사역, 곧 세상의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고 교회만 다니는 교인들로 진리에 눈뜨게 하는 일, 이 두 가지는 결국 죄인들을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위기가 닥치면
III.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만이 진리를 외칩니다.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저질적인 교회 형태가 실행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복을 받겠다고 가는 곳이 교회이며 그들을 받아 주는 것이 또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겠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마음에 깔린 생각은 지성이면 감천이고, 절에 가느니 교회에 간다 하고, 누가 유명한 목사인가를 찾으며, 어떤 교회의 건물이 유명한가 하고 인간들이 자기의 기준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소속되면 동질로 취급을 받는 가치 의식이 작용을 합니다.
매년 각종 신학교에서 배출된 자들이 전문직의 하나로 목사가 되고 있습니다.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약사가 되듯이 전문직의 하나로 목사를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는 전혀 관계 없이 영적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이 영적인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이 진리를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서 나온 결과가 바로 사람을 모으는 수단을 교회 성장의 노하우로 삼는 것입니다.
최근 한 장로교 목사는 자기의 연봉이 5,700만 원이라고 인터넷에 공개했는데(우리 교회 목사의 5배) 그것을 세상 신문이 대서특필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교회의 돈을 착복했으면 교회의 재정을 인터넷에다 공개하고, 한 달에 500만 원 받는 것을 적게 받는다고 찬사를 하는 것입니까? 대체 이런 교회들은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합니까? 그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끼? 우리처럼 성경과 책들을 펴내고 신학생들을 가르치며 월간지를 만들어서 잘못된 교리와 신학을 비평하고 복음을 전하러 다니며 사이버신학대학을 만들어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로 공부하게 하고 크리스찬중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게 합니까? 아닙니다. 가짜 목사들이 거짓 은사를 자랑하고, 가짜 설교자들이 성경을 치워 버리고 구수한 예화나 들먹이면서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하는 그런 만담 같은 설교를 교인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때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위기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마저 거리에 나가서 설교하지 아니하고 구령하지 않으며, 교리와 신학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도 방관만 하고 있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나라는 위기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받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쓰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막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사람입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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