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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베일을 벗기다 7 - 이슬람 테러리즘의 근원 - 국가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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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1월호>

이슬람교는 국가 종교다. 단순한 개인의 삶과 영혼과 내세와 도덕을 다루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 사회를 통제하는 종교 지배 체제다. 통치자도 “샤리아”(율법)대로 통치해야 하고, 헌법도 샤리아에 따라 제정되어야 한다. 샤리아를 어기면 범죄자로 처벌을 받으며, 모든 백성은 샤리아에 따라 통제를 받는다. 무슬림들 스스로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한국 이슬람교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자기들 종교를 홍보하는 자료에다가, “이슬람은 신앙체계만이 아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다(한국이슬람교중앙회, http://www.koreaislam.org/data/data4.jsp). 그런데 이러한 선전은 그들이 지금까지 행한 바, 이슬람교를 좋게 포장하는 모든 노력들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교의 국교화를 주장하면서, 은연중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리즘을 정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홍보 자료는 이슬람 통치자들의 강압적 통치와 테러리스트들의 그러한 행동들이 사실은 무함마드와 코란의 명령이며 이슬람의 기본정신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서든지 종교와 정치의 결합은 최악의 모습을 가져온다. 그것은 자기와 종교적 신념이 다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근거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특히 절대화된 종교일수록 그러한 면은 더하기 마련인데, 이는 비단 이슬람뿐 아니라 중세 시대 카톨릭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미개 사회의 무속 신앙이라 할지라도 그 신을 신봉하는 사회에서는 그 신앙과 이질적인 사람은 박해를 당하게 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유교를 절대화했던 조선 시대 후기에는 성리학적 질서에 어긋나기만 하면 이단시하고 박해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종교가 한 사회에서 절대화되면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카톨릭이나 이슬람은 동일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국가와 교회를 엄격히 구분하셨다. 예수님께서도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마 22:21)라고 말씀하심으로 이 둘을 엄격히 구분하셨다. 이 세상의 통치자는 사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세상은 분명 선교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것은 복음 전파를 통해서 해야 할 일이지, 국가의 강압적인 정책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은 아니다.


물론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국가와 교회가 연결되는 사회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사회는 통제되었으며, 왕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했고(신 17:18,19), 그 뜻을 백성에게 펼치는 신정국가를 이뤄야 했다. 이스라엘 신정국가의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올바로 인도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여겨야 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완전한 정교일치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정치와 종교에 해당하는 일들은 각각의 직분이 맡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정치를 위해서는 왕과 재판관들을, 신앙을 위해서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주셨다. 이 둘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야 하나, 서로의 역할을 침범해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왕은 유다 지파를 통해서, 제사장은 레위 지파를 통해서 엄격히 구분해 놓으셨으며, 이 구분을 깨뜨리는 것은 불경한 것으로 여겨졌다. 일례로 사울왕은 제사를 직접 드리다가 하나님께 버림받기도 했다(삼상 13장).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둘이 힘을 합해 악을 획책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세아 5:1은 『오 제사장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으라. 너희 이스라엘 집아, 경청하라. 오 왕의 집아, 너희는 귀를 기울이라. 심판이 너희를 향해 있나니, 이는 너희가 미스파에 올무가 되었으며 타볼 위에 친 그물이 되었음이라.』고 제사장들과 왕들에게 경고하고 있는데, 이는 이 둘이 죄를 위해 야합했기 때문이다.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반드시 부패한다. 그것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종교 체제는 철저하게 정교일치 체제이다. 마호메트 자신이 정치와 종교의 수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위해서 쿠라이쉬 족과 결탁했고, 그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 보호하기 위해 전쟁한 것이 아니라 전파하기 위해 전쟁을 한 것이다. 그가 만든 “움마”라는 공동체는 신앙 공동체였는데, 그는 그 공동체의 정치적, 종교적 수장이었던 것이다. 그의 뒤를 이은 칼리프들도 역시 종교와 정치의 공동 수장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슬람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정복전쟁을 했다.
그들의 샤리아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알라의 뜻에 따라야 한다. 물론 이 알라의 뜻이란 마호메트를 통해 계시된 알라의 뜻, 즉 이슬람 신앙을 말한다. 그들의 움마 안에는 절대로 다른 신앙을 가진 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사회에 여러 계층이 있고, 여러 역할들이 있을지라도, 그 모든 것든 코란 안에서 이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칼리프는 바로 그러한 일들을 이행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이것에 충실할수록 신실한 무슬림이다. 그 “신실한 무슬림”들은 코란에 신실치 못한 자들을 볼 때 그들의 힘을 다해 바로잡아야 한다. 그들의 코란에도 제시된 바와 같으니, 곧 “너희들 중 누구든지 악행을 보는 자는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바꿔 놓아야만 하고,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혀로라도 시도해야만 하고, 만약 그렇게도 할 수 없다면 그때는 신앙의 가장 약한 표현인 마음속으로라도 그것을 행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악행”이란 단지 도적적 죄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코란에 어긋나는 모든 행위이다. 여기에는 기독교 신앙도 포함된다. 코란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신앙은 그들에게 분명히 “악행”이다. 이러한 악행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슬림들은 “자신의 손으로 바꿔 놓아야” 한다. 즉 형벌을 주거나 전쟁이나 테러를 해서라도 바꿔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 국가 내에서 코란에 신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마구 형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가족 중 누가 코란을 떠나 기독교로 개종하면 가족의 명예를 위해 죽일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여자가 머리에 히잡을 쓰지 않으면 염산을 뿌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알라의 영광”을 위해서 그 사회의 정치가들이나, 혹은 열성있는 개인이라도 그 “정의”를 실행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세력을 잡지 못한 상황이라면, 예를 들어 비이슬람 국가에 사는 무슬림이라면 “혀로라도 시도해야” 한다. 이슬람 신앙을 비평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이슬람 신앙을 변호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 반이슬람 정책들을 친이슬람 정책으로 바꿔 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모든 교과서들, 혹은 교육 관련 책들에서는 이슬람이 평화로운 종교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력을 얻지 못했을 때 하는 말이고, 세력을 얻게 되면 즉시로 무력을 통해 그 일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 정교일치 체제에서 코란에 신실한 무슬림은 언제라도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은, 기독교 신앙과 비교하여 이슬람이 정교일치 체제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정교분리 정책을 취한 것이 마치 잘못된 교리인 것처럼 힐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기독교 신앙이 정교일치 체제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로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국가들이 정교일치 체제를 극단적으로 강조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두 국가가 무력으로 충돌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실제로 있었다. 예컨대 십자군 전쟁이 그것이다(11-13세기).
중세 카톨릭은 국가종교 체제였다. 그리고 교황을 통해 계시되는(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복음 전파라는 선교의 방법이 아닌 세력 확장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똑같은 방법을 추구하는 세력, 즉 이슬람 제국과 충돌한 것이었다.
이슬람의 움마 공동체처럼 중세 카톨릭 체제도 교황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국가가 형을 집행했다. (혹은 교회가 국가의 인준 아래 직접 형을 집행했다.) 종교개혁 시대에도 개혁주의를 국가교회로 채택한 국가들은 비슷하게 행했다. 여기에서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성경은 세속 권력과 영적 권위를 분명히 구분한다. 죄에 대해서도 국가 사회적인 범죄와 하나님께 대한 죄가 구분된다. 국가의 법을 어기는 범죄는 세속 행정관들이 다룬다. 반명 하나님께 대한 죄는 세상이 다룰 수 없다. 그러한 죄들은 하나님 앞에서만 심판받게 된다. 그러한 죄들은 죽을 때까지 심판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분명히 심판받을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하나님을 모독한다 치자. 우리는 그 모독을 참을 수 없어 그를 권면하거나 말로 책망할 수 있어도 물리적으로, 혹은 국가의 권력을 빌어 형벌을 가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생에서나 그분의 심판석에서 다루실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 세계에서 누군가가 코란이나 마호메트를 모독한다면 그는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자기 국가에서 그러한 모독이 행해지면 사형이라는 처벌을 할 것이요, 타국에서 그러한 모독이 행해지면 테러가 자행될 것이다.
성경은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가르친다. 한편으로 말해서 교회사는 정교일치를 주장하는 교회가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교회를 박해한 역사이다. 침례교도들은 카톨릭과 개신교도들에게 박해를 받으면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켜나갔다. 지금 대부분의 개신교 국가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킨다. 이것은 그들이 그동안 박해해온 침례교도들이 남긴 믿음의 유산이다.

성경에도 진정한 정교일치의 국가가 제시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미래에 속한 나라이다. 그 나라의 왕은 정치권과 종교권을 함께 갖고 있는데, 모든 이슬람 칼리프들은 바로 이 나라의 왕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는 다름 아니라 천년왕국이다. 그 나라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초림 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왕 되시기를 거절하셨으나, 재림 때 그분은 이 세상의 통치자(사탄)를 멸하시고 친히 이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이다. 그때에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들을 극심한 형벌로 멸하실 것이다. 그분은 철장으로 다스릴 것이며(시 2:9), 그분을 경배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크게 노하실 것이다(시 2:12).


모든 교황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을 흉내냈다. 마찬가지로 마호메트와 모든 칼리프들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을 흉내낸다. 그러나 그 일은 분명 재림 때에 있을 것이다. 그 전에는 불완전한 인간 왕들이 다스리기 때문에 그 이상은 실현될 수 없으며, 그분이 직접 왕이 되셔야만 한다. 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다. 즉 완벽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때에만 완전한 신정국가가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신정국가(천년왕국)에서는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형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종교적 독재는 그 자체로 죄악이다. 그러한 신정국가체제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고, 한 국가를 멸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테러를 행하는 데에 뒷받침이 될 수도 있다.
이슬람은 평등의 종교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왕국을 세우시기 전에 그와 비슷한 왕국을 세우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혼란만 야기시키게 된다. 마호메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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