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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베일을 벗기다 6 - 이슬람은 평등의 종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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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2월호>

이슬람은 자기 종교가 평등의 종교라는 것을 항상 강조한다. 이슬람의 공식 주장이나, 이슬람을 역사․문화적으로 소개하는 모든 서적들에서도 이슬람의 평등주의를 강조한다. 이슬람교가 오늘날 세계 종교가 된 가장 큰 원인도 평등주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슬람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치고 그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할 사람이 있을까? 이슬람 국가들에서 보여지는 그들 사회의 모습들, 서구 사회에 자리잡은 이슬람 가정의 모습들을 보노라면 누구라도 그들은 차별의 종교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소개하는 모든 주장들은 그들이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대중들은 그들이 보는 바대로 믿지 않고, 듣는 선전에 따라 믿는다. 참으로 맹목적 믿음이다.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대단한 믿음(?)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슬람의 평등주의에 대해서 그들은 세 가지 경우에서 거짓말을 한다. 이 세 가지는 이슬람을 믿는 사회나 국가뿐 아니라, 그들 종교 자체가 결코 평등한 종교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1. 종교 계급의 평등
무슬림들은 자기들 종교를 기독교와 비교하면서, 기독교에는 성직자 계급이 있지만 이슬람에는 성직자 계급이 없기에 평등한 종교라 말한다. 물론 성직자 계급이 없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의 예를 들어 하나님과 신자 간의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성직자 계급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기독교가 아니다. 카톨릭의 경우 사제 그룹이 있어서 그들이 평신도를 지배하는 체제가 형성되었지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개신교도들도 카톨릭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목자들을 제사장화하려 하지만 이것은 잘못이다. 성경은 모든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 말씀한다(벧전 2:9). 다만 지역 교회를 이끌기 위해 목자를 두셨으나, 이 목자들은 양들을 지배하지 않고 모범으로 인도해야 한다(벧전 5:3). 그러므로 오히려 정상적 기독교 신앙이 종교적
이슬람은 평등의 종교인가?
평등성이 있다.
이슬람에서는 어떠한가? 그들에게는 “이맘”과 “울라마”가 있다. 이맘은 종교예식의 인도자이고, 울라마는 샤리아(율법) 학자이다. 그리고 그들의 꼭대기에는 칼리파(칼리프)가 있다. 이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무슬림들은, 이들은 결코 계급적으로 평신도 위에 서는 자들이 아니라 말한다. 누구나 이맘이 될 수 있으며, 특별한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울라마도 단지 학자로서의 존경을 받는 자들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목사”라는 직책이 종교적 계급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말일 뿐이다. 성경적으로 목사는 사제 계급이 아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잘못된 기독교 전통에서 그들이 계급화되었듯이, 이슬람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는 계급이 아니라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들 종교 내에서 지도층에 포함된 사람들이다.

특히 칼리프는 모든 이슬람 세계의 총수다. 무슬림들은 칼리프 역시 샤리아에 어긋나면 안 되며, 샤리아의 준수자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는 종교가 어디 있던가? 모두가 말로는 신 앞에서 평등하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는 아니지 않는가? 칼리프는 카톨릭의 교황과 같은 존재이다. 칼리프가 말하면 모두가 복종해야 한다. 물론 칼리프가 코란에 따라 말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은 카톨릭 교황들도 하는 말이다.

2. 여성 평등
이슬람에서 여성이 평등한가? 아마 이 말은 이슬람교도들도 그렇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양심이 있으면 말이다. 이것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여성이 억압당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여성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코란에서 여성은 참으로 열등한 존재로 나타난다. 코란은 아내를 구타하는 것을 허용한다(4:34). 마호메트는 “나는 지옥불에 거하는 대부분이 너희들 여자들임을 보았기 때문이라... 나는 지식과 종교에 있어서 너희들보다 부족한 자를 보지 못하였느니라.”고 말했다(하디스 부카리편, 제1권, no.301).
이슬람에서 여성들은 남자들을 타락시키는 존재이다. 그래서 히잡을 쓴다. 외갓 남자에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며, 아프간 같은 좀 극단적인 곳에서는 몸의 형체도 보이지 않도록 몸 전체를 감싼다. 물론 여성들이 필요 이상으로 몸을 드러내는 것은 남자들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남자들이 몸을 드러내는 것도 여성들로 죄를 짓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죄는 한쪽만 짓는 게 아니다.
히잡도 종류가 많다. 좁은 의미로는 얼굴만 내놓고 머리와 목까지 완전히 가리는 것을 “히잡”이라 하며, 스카프처럼 머리만 살짝 가리는 것을 “룻싸리”라 하고, 히잡 중에서도 눈만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을 “니카브,” 얼굴 전체를 덮고 눈부분도 망사로 처리한 것을 “부르카”(질밥), 그리고 전신을 감싸는 여성 복장을 “차도르”라고 한다. 이슬람에서는 이러한 복장을 오히려 여성을 보호하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주는 좋은 제도라고 말한다. 누구로부터 여성을 보호한다는 말인가? 남자들이 음란한 눈으로 힐끗힐끗 보는 것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말인가? 차도르를 입지 않은 여자가 죄를 짓는 것인가, 아니면 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가 죄를 짓는 것인가?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한 답을 주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그의 마음에 그녀와 더불어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이란에서는 1930년대 후반 무함마드 레자샤 왕의 개혁정책으로 여성들의 차도르 자유화가 주어졌었다. 그러다가 1979년 호메이니 옹의 이슬람 혁명 때,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모토 아래 다시금 차도르는 의무화가 되었다. 아프간에서는 탈레반 시절 여자들은 남자 가족 구성원이 함께하지 않으면 외출도 함부로 못했다. 아프간 전쟁으로 탈레반이 물러갔다지만, 아프간에서 여성의 지위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이슬람 세력 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터키같이 서구화된 이슬람 국가에서는 룻싸리 정도의 히잡을 착용하며, 여성들에게 많은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것은 그 나라에 비이슬람 교도들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슬람 교도들로 가득 차 있는 나라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슬람에서는 한 남자당 4명의 아내를 허용한다. 물론 마호메트는 더 많은 여인들과 결혼했고, 그의 신부 중 가장 어린 여자는 9살이었다. 마호메트가 여러 아내를 두었다는 것 자체는 그렇다고 치자. 고대에는 어차피 일부다처제가 행해지던 사회였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이 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슬람에서는 4명의 아내를 두는 것에 대해서, 과거 전쟁이 많던 시절에 남자들의 숫자가 너무 부족했기에 여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은 사실 여성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법이었다고 말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무슬림들이 이렇게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는 사실이다. 아니, 많은 책이나 선전물들을 통해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평등의 종교인가?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과거 전쟁의 시대에만 해당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많은 아내를 두는 것이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도 과거 전쟁을 많이 치렀던 민족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성을 보호하는 의미로 일부다처제를 시행하겠는가? 유럽의 그리스도인들도 전쟁을 많이 했었다. 그렇다고 일부다처제를 하는 곳은 없다. 구약성경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어느 정도 허용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법 자체는 “한 남자와 한 아내”이다(창 2:21-24). 신약 시대에는 이것이 확실히 지켜졌다. 신약 이후에도 여러 여자를 취하는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죄”라고 정의되었다. 그러므로 전쟁의 상황을 운운하는 것은 그들의 핑계일 뿐이다.

3. 타종교와의 평등

7세기에 마호메트에 의해서 이슬람교가 창시되고 칼리프들이 뒤를 이어 통치하던 시절, 이슬람교는 곧 아랍인들을 의미했다. 그래서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중동지역과 북아프리카를 점령했을 때도 아랍 이슬람 교도들은 타민족에게 이슬람을 강요했으면서도 타민족 위에 아랍인 우월 정책을 폈었다. 그러다가 8세기 후반에 아바스 왕조가 시작되었는데, 그때에는 타민족을 어느정도 평등하게 대했다. 타민족에게도 관료와 군인의 신분을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랍인에 비해 타민족에게 관용을 베푼 것이지, 타종교에게 관용을 베푼 것이 아니다. 타종교는 여전히 금지였다.
이슬람의 종교차별은 “지즈야”(인두세)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전 글에서도 몇 번 말한 바 있지만, 이슬람은 정복전쟁을 벌일 때 코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인다. 하지만 그것은 통치자들을 죽이는 것이지 그 민족 전체를 죽일 수 없다. 그래서 대신한 것이 그들에게 인두세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비무슬림에게는 모두 걷는 세금이다. 시대에 따라 또 장소에 따라 그 금액에는 경중이 있었지만, 이것은 명백한 종교차별이다. 도대체 왜 이슬람이 관용의 종교인가? 비이슬람 교도에게 세금을 거두면서 그래도 죽이지는 않으니까 “관용”이라는 말인가?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바, 이슬람 교도들은 우리 학생들의 교과서까지 왜곡해시키면서 “이슬람 제국이 팽창할 수 있었던 이유”가 “철저한 평등주의”라고 말한다. 도대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그 평등주의 때문에 이슬람이 포교될 수 있었는가? 추측하건대, 오직 한 곳이 그럴 수 있었다. 그곳은 인도였다. 인도는 힌두교의 철저한 카스트 제도 속에서 사회계급적 불평등이 존재한 사회였다. 이러한 인도를 이슬람 국가들이 정복했을 때 일부 힌두교도들은 이슬람의 “평등주의”에 매료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카스트 제도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도 역시 “정복”당했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가 되었지, 사회제도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슬람 국가로 변화된 것은 아니다. 또한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고 해서 힌두교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정부만 이슬람 정부였지, 대부분의 백성들은 여전히 힌두교를 믿었다. 그래서 일부 이슬람 교도들은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로 분리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이슬람 제국에는 노예 제도가 없었는가? 있었다. 과거 전근대 사회에서는 어느 종교에서도 노예 제도가 있었다. 이슬람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카스트 제도와는 다르지만 여성의 노예화를 가져왔다. 또 공식적 성직자 계급이 없다고는 하나,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국가가 곧 종교단체이고 샤리아가 곧 국법이기에, 국가의 통치자는 곧 종교적 지배자이다. 계급이 없을 리가 없다. 거기다가 타종교의 차별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이슬람에서 평등주의라는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과격파 원리주의 무슬림, 그들이 곧 이슬람교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이슬람 자체는 건전하다고 말하나, 아니다. 그 원리주의자들이 이슬람의 본색이다. 우리에게 비친 이슬람의 모습이 그들이라면, 그들이 곧 이슬람인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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