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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에 나타난 성도의 전형적인 세 가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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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10월호>

요한삼서에 나타난 성도의 전형적인 세 가지 유형


요한삼서에서 우리는 사도 요한의 메시지가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일서에서 사도는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진 믿음을 옹호하고, 요한이서에서는 배교 가운데 성도의 개인적인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한다. 요한삼서에서 사도는 분명하고 축약된 방식으로 세 가지 유형의 교회 회원을 제시한다.
거의 백 세에 다달은 늙은 사도로서 요한은 먼저 교리에 있어서, 둘째로, 교회 사역에 있어서 배교가 점점 심해져 갈 것임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이 두 부분은 결코 나눠지지 않는다. 곧 사람들이 단번에 전해진 믿음에서 떠나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신약 교회의 자치적 교회 운영을 반대하고 오직 지역 교회인 믿는 성도들의 모임에게만 주어진 권세와 권위를 더욱더 자신의 것인 양 가로채려 한다.
요한삼서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은 참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인데, 왜냐하면 여기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성도들은 20세기의 모든 교회 안에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 당대처럼 지금도 이러한 유형의 성도들은 작은 교회일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큰 교회 또한 상당수의 그러한 유형의 전형적인 회원들이 있겠지만, 작은 교회는 대개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꼭 한 명씩 있게 마련이어서, 이들이 모여서 그 지역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 세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I. 사랑받는 제자, 가이오
사도 요한은 바로 이 제자에게 서신을 썼다.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요한이 자신의 사도직을 근거로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교회 위에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거나 통치하려 하지 않는다. 지배하고 치리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믿음의 근본 사항들을 부인하는 것이요, 신약성경의 원리에서 벗어나 신약성경의 실행에서 이탈한 분명한 배교이다. 요한은 그 자신을 단지 "장로"라고 일컬었으며, 분명 그는 그의 연수와 직분 둘 다에 있어 그러했으며, 그는 가이오에게 "지극히 사랑하고"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1) 가이오는 요한의 애정어린 찬사를 받았다. 요한일서에는 요한이 그의 사역의 좀더 젊은 구성원들과 진심어린 교제를 가졌으며 일반적으로 청년들과도 그러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증거를 볼 수 있다(요일 2:14). 나는 청년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그것을 유지하는 능력보다 더 큰 사도의 진정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사귀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사도 요한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달콤한 교제를 나눴다. 어떤 회원들이 그를 시험하고 그의 인내심을 한계에 이르기까지 시험했을지라도, 참으로 형제 되고 자매 된 성도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그는 이 서신들을 쓴 것이다. 그는 요한이서를 {사랑하는, 택함받은 부인과 그녀의 자녀들에게} 썼으며, 요한삼서는 그가 깊은 애정을 품은 가이오에게 쓴 것이다. 구주의 보혈로 구속받은 이들은 형제가 된 것이며, 이러한 관계에서 나오는 힘과 화목은 가족 간의 유대보다 더 강했다. 지상에 있는 제자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표식은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다(요 13:35).
(2) 가이오는 요한의 가장 큰 축복을 자아냈다.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잘됨같이 네가 번성하고 강건하기를 바라노라}(요삼 2). 성도들의 기도를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실행하는 교회사역, 학교사역, 복음 전파, 성경 교육, 문서 사역, 이 모든 사역에 있어서 성도들의 많은 기도로 인해 측량할 수 없는 유익을 얻어 왔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전적으로 헌신하며 사역을 수행하고 수고함에 있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지원은 없다. 주께서 계시는 가운데 베드로가 물 위를 걸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두려움으로 그의 믿음이 움츠러들었고 그는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여, 나를 구해 주소서"라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은 그분의 팔을 뻗어서 그를 건져서 안전하게 다시 배로 올려 주셨다.
그때 베드로는 선생 되신 주님께 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 자체는 참으로 큰 빚이었지만 훗날 더 큰 위험에서 받게 되는 도움에는 비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도움은 베드로의 몸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가 다시 받을 도움은 그의 혼과 관계된 것이었고,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키질하려고 찾았느니라. 그러나 네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네가 회심하게 되면 네 형제들을 굳게 하라}(눅 22:31,32).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큰 유혹들을 피해 왔는지 누가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성도들의 기도로 혼을 파괴시키는 죄들이 얼마나 많이 잉태되지도 못하고 분쇄되었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오직 영원만이 우리가 성도들의 중보로 받은 유익을 다 밝혀 줄 수 있을 것이다. 장로이며, 예수님의 제자요,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사도요,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사람인 요한의 기도제목 명단에 들어 있었던 가이오는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었다.
(3) 가이오는 그의 동료들 가운데 좋은 평판을 얻었다(요삼 3,4). 이 서신에 나타난 사랑이 발전하는 것을 주목하라. 처음 요한은 그를 "지극히 사랑하는" 친구로 불렀지만, 이제는 그를 자신의 "자녀"라 말하며, 복음으로 인해 그는 자녀가 되었다. 사역자는 자신이 구령한 회심자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그들을 자신의 가족인 것처럼 생각한다. 출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연적인 출생과 영적인 출생이 그것이다. 전자는 땅에 속한 것이며, 후자는 하늘로부터 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의 시민일 동안은 자연적인 출생이 더 가깝고 밀접해 보이지만, 우리가 하늘로 들림받게 되면 천상의 관계가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며 이 땅에서의 출생은 하찮게 여겨질 것이다.
선한 일로 형제들 가운데 평판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선한 일뿐만 아니라 진리의 지식과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그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평판을 가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의 종에게 더 큰 보상은 없다. 그래서 요한은 가이오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요삼 5-8).

II. 디오트레페, 지배하기 좋아하는 제자
시대는 바뀌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요한삼서로 증명이 된다. 거의 2,000년 전에 디오트레페는 가이오와 데메트리오가 속한 교제권을 혼란스럽게 했으며, 오늘날도 수많은 그의 계승자들이 그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도에 대한 설명은 9절에서 11절까지 조목조목 제시되어 있어서 오늘 아침에 쓰여진 것인 양 신선하고 우리에게 쉽게 다가온다. 몇 가지 사실들을 주목해 보자.
(1) 그는 으뜸이 되려고 시도했다(요삼 9).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흔하기는 하지만, 신앙생활에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곧 고집센 직장상사 같은 사람들이 이들보다 훨씬 더 많다. 교회 사역과 기독교 교단의 행정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많이 분열을 야기한 원인이 무엇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면, 나는 즉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디오트레페와 같은 성도들을 관찰해 보노라면, 사탄의 타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직위에 대한 이러한 야욕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구쳐 올라, 아침의 아들이자 창조된 지적 존재들 중에서 가장 탁월했던 최고의 그룹까지도 타락하게 만들고 천사들을 미혹했던 것이다(사 14:13). 천상의 천사들 중 삼분의 일을 쫓겨나게 만들었던 그 야욕이 오늘날 지상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역 교회 또한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니다.
(2) 디오트레페는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사도들을 영접하길 거부했다. 그는 악의적인 말로 그들을 헐뜯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요한을 따르던 형제들 또한 거부하려 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 사역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이 독단적인 방식으로 행하는 것을 보고 종종 놀라기도 한다. 또한 교회 내에서 직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요 임무가 설교자를 반대하고 다른 직분자의 일을 어렵게 만들며, 회중의 의견을 통제하는 것인 양 행세하고 있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이상한 것은 이러한 사람은 평소에 자신이 교회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이 그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가 절대적으로 지배하게 놔두면, 모든 일이 놀라울 정도로 원만하게 처리될 것이라 여긴다는 점이다.
(3) 디오트레페는 형제들을 교제권에서 내쫓으려 했다. 몇 차례 은밀하게 모임을 가진 후에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친구들을 충분히 모아서 자신의 대적들을 몰아내려고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오늘날도 디오트레페의 계승자에 의해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수십 년 전 미국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무리 가운데서 자신이 으뜸인 양 행세하려 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거부하려 했던 자들이 있었다. 그중 몇몇은 그들의 배교로 인해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 중 누구도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았는데, 이는 근본주의자들이 이 일들을 너무나 감성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회중들이 하나님께 경배드리려고 지은 교회들을 스스로 상전이기를 자처하는 이들이 그들의 손에서 앗아가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사실 지금도 지배하기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교회 위에 군림하여 소수의 사람들이 회중 교회와 침례 교회들 내의 다수의 회중을 무시하고 지역 교회 회중들이 헌금을 내어 지은 건물들을 자신에게 바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디오트레페는 아직도 살아 있다. 그의 영은 아직도 역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지배할 영역들을 바라보고 있고, 그가 지나간 곳에는 목사들의 명예가 훼손당하고, 교회들이 망가져 있으며, 회중들은 실의에 빠진다. 시대는 변했으나, 참으로 사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디오트레페가 그 예이다.

III. 데메트리오, 바람직한 제자
(1)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데메트리오는 모든 사람과, 진리 그 자체로 좋은 평판을 받았으니 실로 그러하도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희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요삼 12). 쉽게 받을 수 없는 평가다.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그의 친구들과 그가 아는 일반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쉐프츠베리 경은 위대한 그리스도인 자선가였다.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그의 장례 행렬이 트라팔갈 광장에 이르렀을 때, 약 4,000명의 공장 직원들과 재봉사들과 꽃파는 여자들과 노동자들이 이스트엔드로부터 와서 그의 관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장례 행렬은 약 1마일이 넘게 늘어선 조문객들을 통과해서 지나갔는데, 이런 일은 런던에서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거리마다 주일학교 학생들과 고아원과 학교에서 나온 학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그들을 사랑해 주었고 그들 또한 사랑한 그 사람을 위해 조의를 표하려 나와 있었다. 영구차가 과일과 야채를 파는 사람들을 지나갈 때, 그들 중의 어떤 이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대접하였고"라고 쓰인 깃발을 높였다. 영구차가 학생들을 지나갈 때 한 소년은 "내가 병들었을 때에 문안해 주었고"라고 쓰인 배너를 들었다. 일하는 소녀들 중의 한 명은 "내 형제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는 구절이 새겨진 비단 깃발을 높이 들었다. 훌륭한 사람에게 걸맞는 훌륭한 찬사였다. 데메트리오는 그와 같은 사람이었다.
(2) 그는 진리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리 그 자체로 좋은 평판을 받}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진리를 허위로 퍼뜨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나와서 진리를 부정하기는 꺼려하지만 사람들은 개인이 무엇을 믿고 어떤 사상을 품더라도 그것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차이가 없다는 식의 생각을 확고히 하고 있다. 곧 진리의 본질적인 가치를 폄하하는 철학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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