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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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성별한 후 다녀온 순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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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11월호>

나는 불과 3년여 전만 해도, 불순종의 자녀요, 진노의 자녀로서(엡 2:2,3), 아무런 소망도 없이 지옥으로,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지옥으로 달려가는 그 멸망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오히려 그 멸망의 길로 걸어가는 이들을 구해 내는 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어, 그 기적적인 사실에 놀랍고 감사하기만 하다. 나의 성별과 복음 전파자로서의 여정에 역사하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는, 아들과 자매의 성별, 그리고 지난 9월 초의 순회설교에도 넘쳐났다.
먼저 결국 배교한 무리들에게서 성별해 나온 가족 이야기를 하자면, 아들이 진리의 대열에 서게 된 것에 고무된 나는 자매의 성별도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자매는 인터넷에 도배된 "이단"이라는 글자에 사로잡혀 나를 무섭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길게만 느껴지던 성별의 여정을 마친 지금이야,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시는 징계요 연단의 시간들이었다고(히 12:5-11) 여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는 정말로 지옥 같은 3년이요, 비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6천 년간 사람을 다루는 귀재요 전문가인 마귀는 쾌재를 부르며 나의 가정을 무참히 황폐화시켰다. 원수는 가족 중에 있었고(마 10:36), 때로는 자살로, 때로는 이혼으로 협박했다. 마귀는 그래도 가정 파괴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번에는 호소의 눈물로 다가왔다. 그러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기가 겁이 난다던 자매, 다투는 모습이 보기 싫어 친구들과 밖으로 배회하던 아들, 기도를 한다면서도 믿음 없이 육신적이 되어 마귀에게 속고 또 속아, 패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 우리 가족은 모두들 영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러기를 한 해, 두 해가 지나자, 나와 자매는 서로 체념한 채 싸움을 피하는 쪽으로 타협을 하며 지내기 시작했다. 비록 금요철야예배 때마다 밤에 나가는 일로, 또 자매가 헌금을 내는 일로 가끔씩 다투긴 했지만, 함께 산책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진리에 눈을 뜬 아내가 배교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 뒤 어느 산책길에서 나에게 해주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 몰래 전도지를 읽어 보았어요. 대학 다닐 때 네비게이토에서 영접 기도 하고 구원받은 기억이 또렷해서, 전도지의 내용이 정확하다는 생각에 기본적으로는 이단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몇 장 나눠 주기도 했어요." "현대종교에도 전화해서 이단이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단이라 규정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그랬어요."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토요일마다 거리에 나가 부침개를 부쳐 주며 전도할 때마다 '이게 아닌데.' 하며 회의가 들곤 했어요. 그곳에서 나와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내는 주님을 위해서 해 놓은 게 없는데 어떻게 주님 앞에 갈까 두렵다고 했다. 전에는 성경이 어렵고 믿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성경이 쉽고 다 믿어지며, 성경 읽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마귀에게 미혹된 모든 교인들이 이런 고백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렇게 성별한 아내와 함께 지난 9월 초, 2박 3일 일정으로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지역을 순회하며 거리설교를 했다. 원래는 자매를 구출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매가 성별한 지 1달쯤 지나, 아들과 셋이서 2박 3일 일정으로 전주 인근 지역을 순회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를 철썩 같이 믿고서 그만 첫날만 복음을 전하고서 비를 핑계 삼아 하루 앞당겨서 돌아오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주일 오전 예배 때 목사님을 통해 "순회설교 한다고 해놓고 하지 않는 거짓말쟁이를 주님께서 쓰시겠는가?"라는 강한 찔림을 주셨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하여 설교 후 초청시간에 단상 앞으로 나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 나의 믿음 없음을 자백하고 회개했다. 그리고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순회설교를 다녀오겠다고 주님께 말씀드렸다. 이번 기회에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최전방 지역을 순회설교 하고 싶다고 아뢴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기예보 검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설교지에서는 비를 기적적으로 그치게 하셨다는 목사님의 순회설교 간증을 문자 그대로 "믿고" 집을 나선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히 11:6). 역시나 주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셨다. 자신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이들에게 은혜와 자비를 풍성히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서 시작한 2박 3일의 순회설교 여정에 주님께서는 쾌적한 날씨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순회설교 첫째 날, 나는 작년 가을 동두천 공원에서의 풍성했던 구령을 떠올리며, 그 위쪽에 위치한 인적 드문 연천에서부터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연천역 앞 삼거리에서 각 방향별로 설교를 하는데, 지나가던 차 안에서 운전자들이 들었고, 상가 점포에서는 점원들이 나와서 듣고 있었다. 젊은 주부 한 명은 길모퉁이에서 복음 설교를 끝까지 경청하고 있었다. 그 사이 자매는 상가를 돌며 전도지를 나눠 주었는데, 그림판을 걷고 이동하는 길에 초등학교 교정에 들러 구령을 다 하고 났더니, 그때서야 경비원이 다가와 방해하려 했고 수업 시작 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자매는 성별 후 처음으로 구령의 기쁨을 누렸는데 그것도 쌍둥이 혼을 구령했다.
경기도 연천군의 전곡시장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하교하는 학생들을 구령한 다음 동두천으로 내려왔는데, 때마침 설교하는 지행사거리를 지나던 중고등 학생들을 구령할 수 있어 감사했다. 영종도에서 혼자 거리설교 하는 게 익숙해서, 가는 곳마다 스스럼없이 시내 중심 번화가를 물어보고 설교 장소를 정했는데,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주차 시간까지도 절약할 수 있도록 알맞은 주차 장소까지 쉽게 찾게 하셨다. 첫날은 포천에서 짐을 풀고 숙박했다.
둘째 날, 포천 신읍 사거리에서는 설교만 4번 하고 철원으로 넘어갔다. 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설교를 한 후 인근 초등학교 앞으로 갔는데 때마침 하교시간인지라 "바쁘게" 고기를 잡을 수 있어 감사했다. 그러고 나서 김화로 넘어갔는데, 평소에 가보고 싶던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김화로 가는 텅 빈 전용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다 보니 힘이 더욱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5일장이 열린 김화 와수리 로터리에서 설교를 마치고 대학생 2명을 비롯한 학생들을 구령하고 그림판을 접고 있는데, 마침 로터리에서 수신호로 차를 통제하고 있던 순박한 아저씨가 보였다. 그를 손짓으로 불러 복음을 전했더니, 자신은 글을 모른다며 연신 부끄러워하면서도 웃는 모습으로 영접기도를 따라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우리는 그렇게 구령한 후 화천에서 숙박 장소를 정하고 짐을 풀었다.
셋째 날 아침, 화천 인근 칠성전망대에 올라가기 전에 위치한 노인정 앞 평상에 노인정 회원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기에 다가가서 설교하고 구령했다. 그리고 전망대로 올라가 분단의 아픈 현실을 목도한 다음, 다시 돌아와 화천 중앙로에 성령님께서 특별히 마련하신 텅 빈 야외무대에 올라가 세 방향으로 복음을 선포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자매는 상가를 돌면서 전도지를 나눠 주며 구령하고 있었다.
순회설교 막바지 코스인 원통에서는 장터에서 설교하고 구령했으며, 인제로 가서는 군청 사거리에서 설교와 구령과 전도지 배포를 끝낸 후 사흘간 내걸었던 그림판을 걷었다. 설교 31회, 구령 152명의 전투 결과를 문자로 교회에 보고하고 있는데, 저 너머 산 위에서 천둥과 벼락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복음을 전할 동안에는 쾌적한 날씨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과 구령의 기쁨이 넘쳐 피곤함을 몰랐는데(사 40:31),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빗방울도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장거리 귀갓길이 막막해져 운전대를 잡고 기도로 아뢰었는데, 경춘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장대비가 퍼붓더니 앞 차가 바퀴로 물 폭탄까지 퍼붓는 바람에 순간 아찔할 정도로 위험해졌다. 자매가 다급했던지 기도 요청을 하자고 했다(시 56:3). 그래서 나는 내가 말로 불러 줄 테니 당신은 문자로 교회에 전송하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드리는 교회의 기도를 듣고 계셨다. 기도 요청이 끝난 뒤 1분이나 되었을까? 퍼붓던 장대비가 차츰 수그러들었다. 생생한 기도응답의 현장을 목도한 자매는 연신 놀라워하며 감사해 했다. 소강상태의 비는 이어졌지만 운전에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주님께서는 영종도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를 자상하게 보살펴 주셨다.
이 글의 초안을 작성해 놓은 다음 날, 자매와 함께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인천공항 구내식당에 들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다양한 직종의 상주 직원들에게, 양복차림으로 한 손에 성경을 든 채 입구에 서서 1시간 동안 전도지를 나눠 주었다. 외부인의 영업 행위를 경고하는 표지판이 부착된 구역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고, 거의 모두가 전도지를 받아가고 또 읽고 있는 모습에 주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주님께서는 아들과 자매의 성별, 그리고 순회설교의 모든 여정에 함께하셨다. 이 모든 일에 주님께서 들어쓰시는 하나님의 종 이송오 목사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바른 성경과 바른 교회, 그리고 바른 목자, 이 완벽한 조화 속에 시작된 새 인생의 여정이 교회가 휴거되는 그날까지 지속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이 모든 일들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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