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서 분류

순교자들이 남긴 영적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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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12월호>

옛 성도들은 "하늘에서 안식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승리한 교회'(Church Triumphant)이고, 이 땅에서 순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전투하는 교회'(Church Militant)이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말하자면 코를 찌를 듯이 강렬한 화약 냄새와 지축을 흔들어 대는 포성과 전차 소리, 사방에서 빗발치는 총격 속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씩 부상당하고 전사하는 아주 치열한 영적인 전장 한복판에 그리스도인들이 서 있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가?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교회를 무너트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중 공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싸움은 교회가 세워지기 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교회사를 통관해 볼 때, 이 예언의 말씀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실제로 성취되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우셨다. "반석"이신 그리스도(고전 10:4) 위에 그분의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둘째, 이 교회는 세상뿐만 아니라 매우 강력한 지옥의 권세들로부터 거센 비난과 공격을 받아 오고 있다. 사탄은 세상 통치자들과 교황들을 통해 매우 교활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공격해 왔는데 그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셋째, 극도에 달한 마귀의 모든 악의와 공격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승리하고 있다.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들과 신실한 성도들은 "피 흘린 믿음의 발자취"를 통해서 지옥의 문들을 향하여 당당하게 위대한 승리를 입증해 보이며 휴거될 그날까지 존속해 나갈 것이다.

과거에 사탄이 교회를 공격할 때 주로 사용했던 방법은 "물리적인 박해"였다. 이 일은 주로 "로마제국"(정치적 로마)과 "로마카톨릭"(종교적 로마)에 의해 자행되어 왔다. 그래서 박해에 관한 한 문제의 핵심이 "로마"에게 있는 것이다. 로마는 예수 그리스도께 사형을 집행했다.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운 것은 로마였다.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도, 옆구리에 창을 찌른 것도 로마였다. 베드로를 감옥에 넣은 것도, 야고보의 목을 벤 것도 로마였다. 바울을 감옥에 넣고 목 베어 죽인 것 역시 로마였다. 또한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화형시키고 매질하고 사자에게 잡아먹히게 함으로써 무죄한 피를 흘렸다. 정치적인 로마보다는 종교적인 로마의 박해가 더욱 심했다. 교황들은 로마제국이 10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을 죽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성도들을 단 50년 만에 살해했다. 그야말로 로마카톨릭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계 17:6) 흠뻑 취한 잔인한 집단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피에 대한 책임을 교황들을 위시한 로마카톨릭에게 물으실 것이고 환난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살후 1:6).

교회사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총체적으로 자행된 공식적인 박해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곧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기간에 시작되었다. 이것은 지중해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세계를 제패한 로마제국이 공식적인 정복 전쟁을 끝낸 기간으로서, 초대 황제 카이사 아우구스토(눅 2:1)가 집권하기 시작한 B.C. 27년부터 A.D. 180년까지 약 200년간 지속된 평화의 시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평화"는 없었다. 로마제국의 지배층들에게는 평화의 시기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지배를 받았던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로마의 평화 유지를 위해 폭력과 착취와 수탈을 당하는 고통의 기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가 극심하게 일어났으니, 이 기간을 "평화의 시기"라고 부르는 역사가들은 아주 편견이 심하고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정신 이상자들임이 분명하다!

심지어 "유아 대학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유대인의 왕"의 탄생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헤롯은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마 2:16). 또한 대부분의 황제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티베리우스는(눅 3:1) 공포 정치를 했고, 칼리굴라는 정신 이상자로서 폭정을 일삼았으며, 클라우디우스는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

네로는 끔찍하고 잔악한 통치를 했는데, 그리스도인들만 박해하고 죽인 것이 아니라 그의 로마 시민들까지 죽일 만큼 정신 이상자였다. 특히 그는 더 웅장한 로마시를 건설하기 위해 도시에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는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위용을 자랑하던 로마제국이 불길에 휩싸였고 로마 시내는 공포와 죽음의 지옥이 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도시가 불타는 동안 네로는 하프를 켜면서 "불타는 트로이"를 노래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범죄 사실을 감추기 위해 9일 동안 지속된 대화재에 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시켰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이 박해로 인해 로마에 거주하던 약 3천 명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10%가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는데,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성도들이 있었는가 하면, 짐승 가죽에 묶여 투기장으로 끌려나와 개들에게 물어뜯기면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성도들도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맹수들에게 던져지기도 했고, 네로의 정원에 있는 기둥에 묶인 채로 온몸에 역청이 발라지고 불이 붙여져 어두운 밤을 밝히는 "횃불"로 사용되기도 했다. 바로 이 시기에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했다.

이처럼 세상이 평화라고 말하는 그 시대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극심한 박해와 고난의 때였던 것이다. 『그의 지혜를 통하여 그가 자기 손에 기술을 늘려서 자기 마음속에 자신을 높이고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하리라』(단 8:25). 적그리스도는 대환란 기간에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할 것이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고, 평화를 위해 그에게 걸림돌이 되는 모든 존재를 가차 없이 죽일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로마의 황제들이 그런 자들이었고, 이것이 바로 "팍스 로마나"의 진실이었다.

이제 네로를 시작으로 공식적인 "열 차례의 박해"가 일어나게 된다. 『너는 고난받게 될 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서 시련을 당하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 2:10). 여기에서 "열흘"은 공식적인 "열 차례의 박해"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증인"이다. 복음과 진리를 신실하게 증거하는 증인인 것이다. "증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마르투스"인데, 이것을 음역하면 "martyr," 곧 "순교자"이다. 그렇게 보면 증인은 순교자이다. 신약에서 최초의 순교자는 "스테판"이었는데 그 이름의 뜻은 "면류관"이다. "증인," "순교자," "면류관" 이 세 단어는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죽기까지 신실했던 순교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계 2:10)이 주어지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박해 속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증인들이 순교했다. 이들에 대해 피터 럭크만 목사는 "그들은 양처럼 살았고, 성도처럼 기도했으며, 사자처럼 설교하고 전파했으며, 파리처럼 죽었다."라고 묘사했다.

네로 이후 공식적인 두 번째 박해를 자행한 황제는 도미티안이었는데,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아무 이유 없이, 그저 그의 분노를 참지 못해 죽일 만큼 잔인성이 타고난 황제였다. 다음으로 트라얀은 어린 소녀들까지 고문할 정도로 잔악한 황제였다. 이 시기에 시리아 안티옥 교회의 목사였던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했는데, 그가 순교할 때 보여 준 용기는 교회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맹수들이 나를 잡아먹을 준비를 하도록 기도하겠고, 맹수들이 달려들지 않으면 내가 직접 맹수들에게 가서 쓰다듬어 달래겠다. 그래도 덤벼들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 맹수들을 끌어내겠다." 그런데 교회 역사가 필립 샤프는 이런 순교의 열망에 대해 "병적인 광신주의"라고 폄하해 버렸다. 그는 로마카톨릭의 누룩에 취한 역사가였기 때문에 성도들의 순교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내릴 만한 분별력이 없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히 11:35). 여기에서 "더 좋은 부활"은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높은 수준의 "보상," 즉 "생명의 면류관"과 연관된다. 그러니까 순교자들은 "광신주의자들"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진실하게 믿었던 성도들로서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이... 훨씬 뛰어난 영원한 영광의 비중을 이루어』(고후 4:17) 간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며 살았던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주 잔인한 황제였는데, 유독 그리스도인들에게 독기를 품고 사납게 굴었다. 그의 잔인한 행위를 기록하려면 책 한 권이 필요할 정도라고 한다. 특히 이 극심한 박해의 시기에는 "성도들의 삶이 땅 위의 박해와 땅 밑의 기도로 점철되었다."는 말이 전해졌다. 왜냐하면 땅 위에서는 원형경기장에서 순교당하고, 땅 아래에서는 박해를 피해 카타콤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로마 부근에는 약 60여 개 이상의 카타콤이 있다고 한다. 그 안에는 수많은 지하 통로들이 있고 통로 측면의 벽은 층계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 벽면에는 성도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고 관들을 열어 보면 그 뼈들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죽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벽면에 새긴 글들과 순교하면서 외친 말들은 오히려 평안과 기쁨과 승리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 준다. "마르시아가 평안을 꿈꾸며 이곳에 고이 잠들어 있도다." "갓 구원받은 다프넨, 3월 24일 평안 속에 묻히다." 일곱 명의 아들과 함께 순교한 펠리시타스는 "나를 죽인다 해도 죽음을 통해 더욱 더 큰 승리를 거두리라."라고 말했다. 참수형 당한 저스틴 마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 더 귀중한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원형경기장에서 몸이 찢겨져 순교한 퍼피튜아는 "형제자매들에게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서로 사랑하라고 전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실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무런 죄도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잔악하게 죽인 자가 세속 역사에서는 "5현제"(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으니, 실로 세상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그래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살 만한 데가 못 되는 것이다(히 11:38).

세베루스 역시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이어갔는데, 클레멘트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많은 순교자들이 매일 타 죽었고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목베임을 당했다." 그다음 막시무스의 잔악한 박해로 인해 수많은 성도들이 재판정에 서 보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했고 무더기로 쌓여 매장되었다. 데시우스는 교회들이 확산되는 것에 분노를 품고 박해했는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 했다. 발레리안은 로마에 순응하지 않는 성도들을 추방시켰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금지시켰으며, 목사와 집사들을 사형에 처했고, 그리스도인들의 재산을 압류했다. 아우렐리안 역시 잔혹한 박해를 서슴지 않았고, 그다음 황제인 디오클레시안은 1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는데, 당시 순교했던 그리스도인이 약 1만 명이었고, 고문, 투옥, 추방된 성도는 약 2만 명에 달했다. 곳곳에 성경을 태우는 모닥불이 있었고 수천 개의 보존된 필사본들이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디오클레시안을 끝으로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박해는 로마카톨릭이 그 "바통"을 이어받을 때까지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죽기까지 신실하라!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의 문제점은 이런 순교자의 정신이 실종되었다는 데 있다. 성경적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기까지 신실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싸울 줄도 모른다. 성별해야 하는 필요성을 모르는 세대들도 많아지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적들과 부딪쳐 보려 하지 않는 성도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리적 성별을 위한 싸움을 무익하게 여기고, 순교자적인 믿음을 병적인 광신자들의 생각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 배교의 시대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진리를 위한 싸움을 멈추라고 미혹한다. 하지만 우리는 순교자들이 남긴 영적 유산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