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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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아낌없이 주님께 바친 두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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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0월호>

흔히 "젊은 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힘과 열정으로 대변되는 청년 시기에 어떤 이상을 품느냐에 따라 인생이 무궁무진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무엇인가 시도해 보지 않은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을 위해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얼마나 낭비된 청춘이겠는가. 이 글은 주님께 자신의 젊음을 온전히 드렸던, 아름다운 "두 청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19C 말에 미국의 시카고, 일리노이에서 태어난 "윌리엄 보덴 "(1887-1913)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청교도인 부모의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배운 사람 이었다. 당시 무디 교회의 목사였던 R.A. 토레이의 설교를 들으며 자란 보덴은 8세 때 생일 기념으로 받은 성경 구절 "고린도전서 6:19,20"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6세 때는 이미 부모의 낙농 사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로서 백만장자나 다름없었다. 그의 부모는 졸업 선물로 세계 일주를 시켜 주었는데, 그는 "코리아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출항하여 요코하마에 입항한 뒤 일본을 위시해서 중국 남부, 인도, 이집트,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를 지나 영국으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소년 보덴은 이 여행에서 각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교제할 수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세계와 하나님의 일꾼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특히 동양에서 극단적인 고행으로 우상을 섬기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난민들을 보면서 보덴은 강한 연민을 느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을 취하시어 친히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 땅에서 아무런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리고 있는 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헐벗은 채 어둠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보덴은 선교사로 헌신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인생을 선교 같은 데다 내버리려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그 말을 들은 보덴은 성경책 뒷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남김없이 드리리라 !"

귀국 후 보덴은 선교사가 되겠다는 분명한 목적으로 예일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무도회장과 이성 교제에 빠진 대학생들 사이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성경 읽기와 기도 모임을 시작했다. 시간도 철저히 관리해서 학업 이외에 "예일 소망 선교회"를 조직하여 주변 지역 빈민들을 구제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대학 생활 자체를 하나의 사역으로 여겼다. 마침내 1천 5백만 명의 모슬렘들이 살고 있는 중국에 단 한 명의 선교사도 파송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이슬람 선교에 자신을 드렸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엔 여러 기업들에게서 고액 급여를 제의받았지만 한사코 뿌리쳤으며 그즈음 성경 뒷장에 이렇게 썼다. "물러서지 않으리라!"

이후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를 마친 보덴은 중국으로 가기 전에 아랍어를 배울 요량으로 이집트로 갔다. 그곳에서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아랍어로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그러나 3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유행성 뇌수막염에 걸려 한 달 만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때가 불과 26세의 젊은 나이였다. 비록 그의 헌신은 짧게 끝났지만, 보덴에게는 구주를 위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오명보다 그 편이 더 나았다. 세상에서 많은 것을 이루며 살다가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가는 삶보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을 위해 사는 편이 훨씬 나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성경 뒷장에 다음 두 단어를 더 적어 넣었다. "후회하지 않으리라!" 보덴은 알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뿐인 인생 전체를 드려도 결코 후회스럽지 않은 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 한 사람은 남미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선교사 "짐 엘리엇"(1927-1956)이다. 그 역시 29세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순도 높은 헌신을 주님께 드렸다. 오리건 주에서 태어나 침례교 신앙을 가진 부모 밑에서 성경적 훈육을 받으며 자라난 엘리엇은 6세 때 이미 구원의 확신과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때때로 친구들을 잔디밭 그네에 앉혀 놓고는 꼬마 설교자가 되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설파하곤 했다. 지혜와 키가 자라면서 성경에 대한 사랑 또한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언제 어디서든 성경을 끼고 다니면서 한두 명의 청중만 있어도 성경을 펴서 복음을 전했다. 고교 시절에는 주님께 최상의 몸을 드리기 위해 꾸준히 운동했으며, 연설을 잘하여 교내 웅변 클럽에서 활동했는데 성경적 신앙과 반대되는 연설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절했다. 학생회 회원으로서 학교 조회 시간에 중국인 설교자를 초청하여 전교생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도 했다. 그가 휘튼대학교에 진학한 것도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분명한 목적에서였다. 그는 자주 『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정해졌나이다.』(시 108:1)라고 기도했는데, 이제 막 고등학교를 입학하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는 그런 엘리엇의 생활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날마다 조용한 가운데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해라. "죄가 너를 성경에서 멀리하게 하든지, 성경이 너를 죄에서 멀리하게 하든지 한다."라고 말한 존 번연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학교에 입학하거든 친구들에게 아예 처음부터 전도지를 줘라. 첫 출발부터 당당하게 시작하는 거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중에 어중간하게 시작하는 것보다 쉽다. 전차 안에서는 말씀을 암송해라. 시간을 사서 얻어라! 시간은 덧없이 지나가 버리므로 매우 귀한 것이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항상 주님을 위해 살고자 했던 엘리엇이 선교사라는 구체적인 소명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이 시기에 그의 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록되었다. 『"성경의 한 단어도 번역되지 않은 언어가 1,700여 개나 된다."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들 중 90% 이상이 평생 선교지에 나가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주님 가겠습니다.'라는 단순한 고백을 뛰어넘어야 한다." "전 세계의 약 64%가 그리스도에 대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매시간 5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죽는다." "인도의 인구는 북남미와 아프리카의 인구를 다 합한 수와 맞먹는다. 인도의 선교사 비율은 인구 7만 1천 명당 한 명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기독교 사역자가 인구 5만 명당 한 명이지만, 미국은 500명당 한 명이다."』 그는 이런 현실을 알았기에 잠자코 미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그런 삶에 만족할 수 없어서 "남자답게" 곧바로 행동에 옮겼는데, 이듬해 여름, 한 멕시코 선교사의 집을 방문하여 6주간 그들의 사역 원리와 선교지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웠던 것이다. 엘리엇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한 걸음씩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갔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는 선교지에서 필요한 지식들을 섭렵했고, 원주민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게 될 것도 염두에 두면서 헬라어를 배웠다. 또한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레슬링을 배우기도 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멀리했고, 특히 젊음의 정욕을 치밀하게 방어했다.

주변 사람들은 전도유망한 이 청년이 미국에 또 하나의 부흥을 가져올 "차세대 리더"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엘리엇이 남미의 선교사로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극구 말리면서 "미국에 남아 사람들을 일깨우는 부흥사가 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사실 그것도 나쁘진 않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었다. 그러나 엘리엇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상의 헌신과 희생"을 주님께 드리고 싶었다.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를 통해 "최상"의 수준으로 영광을 받으시든지 아니면 나를 죽이시든지 둘 중 하나를 하시도록, 나는 아버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그분의 은혜로 "차선"의 길을 가는 것은 거부할 것이다. 그분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음을 믿는다. 따라서 이제 나는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신 것처럼 "아들"로서 희생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면 곧장 하늘나라에 가길 원한다. 나는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 "아버지 하나님, 저의 삶은 주님의 것이오니 다 태워 주소서.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처럼 꽉 차고 충실(充實)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결국 엘리엇은 밤마다 묵상하던 중에 자신의 뜨거운 "심장"에 지시하셨던 "주님의 권고"(시 16:7)에 따라 남미로 갔다. 그것은 "살인과 약탈로 살아가는 아우카족에게 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6년간 기도해 온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주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았던" 엘리엇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자신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처럼 살기를 갈망한 엘리엇에게는, 그것이 최상의 영예였기 때문이다. BB